재일동포 인권지킴이 김경득 변호사
작성자
코리안넷관리자
작성일
2018.10.25

재일동포 인권지킴이 김경득 변호사

재일동포 인권지킴이 김경득 한국 국적을 가진 첫 일본 변호사이자 재일 한국인들의 인권보호에 앞장선 故 김경득 변호사

차별을 피해야 했던 재일동포의 삶 그의 부모님께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동포로, 그 역시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동포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재일동포 차별이 심했던 그 당시, 김경득 변호사는 어쩔 수 없이 한국인임을 숨긴채 살아왔습니다.

민족의식에 눈을 뜨다! 하지만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취직을 거부당하게 되고 그는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됩니다. 1976년 경향신문 일본 사법시험 합격 재일동포 "한국 국적으로 연수 받겠다" "나는 일본 사회의 차별을 피해 살려던 생각을 버렸다! 한국인임을 써 붙이고 살기로 결심했다. '한국인 변호사'가 되어 한국인 차별을 없애는데 앞장설 것을 생애의 목표로 삼았다." -1976년 12월 14일 일본 아사히 신문 투고 中-

차별철폐의 시작 이후, 1976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는 외국인은 사볍연수원에 입소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귀화를 종용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민 거은 귀화 신청서가 아닌 '청원서'였습니다.

외국인 최초 일본 사법연수소 입소 일본 사법부를 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한 결과 국적 요건이 완화되었고, 그는 마침내 한국인으로서 일본 사업연수원에 입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업연수원에 입소한 최초의 법조인

재일동포 인권투쟁에 앞서다 1985년 도쿄에 '우리 법률사무소'를 개소한 그는 재일동포 인권투쟁의 중심에 서서 내·외국인 평등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재일동포 국민연금 소송 지문날인 거부 운동 일본군 위안부 전후 보상 소송 특히, 재일동포 인권 옹호 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1980-90년대 재일한국인 사회와 일본 지식인, 한국 정부 세 축을 연결하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재일동포 인권 옹호의 절정 법적 지위 재협상 문제가 마무리된 후 그는 참정권 운동에 나서며 재일동포의 진정한 권리 확보를 위해 전진하고자 하였으나, 아쉬운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인권투사' 김경득 변호사 조국을 대신해 재일동포의 인권을 지키는데 힘쓴 김경득 변호사.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 법조인들은 그의 뒤를 이어 참정권 운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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