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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연 매출 10억 달러' 韓商 "항상 꿈꾸고 창조하세요"
안봉락 뉴라이프그룹 회장 [뉴라이프그룹 제공]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꿈이 있는 것이죠. 저는 꿈을 꾸고, 기획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창조'했습니다." 1992년 8월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고 2년뒤 중국에 진출해 연간 매출 1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한 안봉락 뉴라이프그룹(新生活集團) 회장은 자신의 성공비결을 '끊임없는 노력'과 '창조'라고 전했다. 안 회장은 중국 선양(沈陽)에서 작은 화장품 공장으로 출발해 27년 만에 선양과 상하이(上海)에 화장품 생산 공장, 칭다오(靑島)에 건강식품과 생활용품 공장, 쿤산(昆山)에 화장품 사출용기 공장을 둔 글로벌 CEO(최고경영자)가 됐다. 중국 전역에 60개 지사, 12개 물류기지, 1만7천여 개의 매장(대리점)을 둔 유통망을 구축했다. 지금은 중국을 넘어 한국과 베트남에도 진출했다. 안 회장은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창조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고, 가장 큰 창조는 비전 창조"라면서 "미래에 대한 나의 기획, 계획, 전략, 목표 이런 것들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그 비전은 나만 좋으면 안 되고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 꿈을 이룰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드는 것, 즉 기업의 핵심 창조인 차별화한 마케팅을 내세워 중국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충북 영동 출신인 그는 화장품 방문판매를 한 친형 영향으로 10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화장품과 친해졌다. 이후 국내 10여 개 화장품 회사의 대리점을 운영했고, 20여 년 동안 전국 화장품의 흐름과 흥망성쇠를 터득했다고 했다. 자신이 꿈꾸는 화장품 브랜드를 가지고 싶어 화장품이 거의 없는 중국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그는 "줄곧 다른 회사 화장품만 팔다가 내 브랜드의 화장품을 파는 비전을 창조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좁은 곳에서 서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중국에서 꿈을 펼쳐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선양으로 날아갔어요. 당시 '중국의 1등이 세계의 1등이 될 것'이라는 꿈을 품고 있었죠." 안 회장은 마오쩌둥(毛澤東) 초대 주석이 내건 '시골에서 도시로'라는 슬로건을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했다. 베이징(北京), 상하이와 같은 1선 도시가 아닌 2∼3선 시골 도시에서 화장품을 판매했다. 그는 "시골 도시는 숫자도 많고 인구도 많다. 농촌에 들어가서 농사짓는 아주머니들부터 공략했다"며 "이렇게 소규모 도시에서 시작해 대도시로 진입했다"고 소개했다. 3선 도시에서 고객에게 화장품 2세트를 팔면, 1세트를 집에 가져가게 하고, 나머지를 매장에 두도록 하는 전략이 주효했다고 한다. 매장에서 얼굴 마사지를 받으면서 효과를 체감하게 하는 마케팅 기법과 다양한 전략으로 1만7천여 개 매장은 '창조'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출도 창조라고 표현했다. 매출은 소비자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판매자가 만들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안봉락 뉴라이프그룹 회장 [뉴라이프그룹 제공] 안 회장은 제조보다는 유통망 구축을 우선했다. 공장 짓고 제품 개발하는 데 투자하지만, 나중에는 정작 상품을 판매할 곳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는 유통망을 확충하고, 그다음에 제조에 뛰어든 자신의 전략을 '고속도로를 깐 다음에 자동차를 만드는 이치'로 비유했다. "우리가 모두 꿈꾸고, 추구하고, 함께 사는 것"을 뜻하는 '뉴라이프'라는 기업 이름은 1994년 당시 중국이 새롭게 도약하던 시기와 맞물려 소비자들에게 각인됐다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조차 이 이름을 따라 할 정도였다고 그는 술회했다. "진출 당시 선양의 조선족 마을을 갔더니 화장품이라고는 크림 하나 달랑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는 모습을 봤죠. 저들을 화장품 판매원으로 만들어 시간을 돈으로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조선족 아주머니들이 밤낮없이 화장품을 팔았습니다." 안 회장은 그때의 고마운 기억 때문에 조선족 동포를 위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직접 채용을 하는 것은 물론 체육대회 등 다양한 행사에 후원하고, 조선족 학교를 설립하거나 연변과기대 등에 후원금을 내놓고 있다. 안 회장은 중국에 진출하려는 청년들에게 우선 '생각하라'고 말했다. "생각은 창조의 아버지고, 생각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이다. 생각이 과학을 발전시키고, 미래를 만들어간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 확장의 성공 기반은 '정직', '인화', '창조'라는 사훈 가운데 창조였다고 설명하면서 창조의 토대는 바로 '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안 회장은 중국을 넘어 한국, 베트남 그리고 글로벌 시장공략에 나섰다. 최근 '미애부'라는 브랜드를 만든 국내 화장품 회사를 인수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경험하면서 건강과 면역력 중요성이 높아지자 '예방 건강'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뉴라이프 코리아'도 설립했다. 인체에 존재하는 유익한 미생물 유전자,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이를 산업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2021년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해로 정했다. 그러면서 첫 사업으로 '신화 속으로'라는 이름의 피카소 전시회를 열고 있다. 5월 1일부터 8월 29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파리국립피카소 박물관 소장의 피카소 작품 110점을 선보인다. 지금까지 피카소 그림 2∼3점을 국내에서 볼 수는 있었지만, 이처럼 많은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피카소 전시회를 주최한 뉴라이프의 의도에 대해 그는 "미술 그 자체가 창조이고, 피카소는 창조의 창조를 거듭한 화가로 유명하다"며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마케팅 즉 피카소의 창조 매력에 반해 그 가치를 전하고자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에서의 학살'(1951년作)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그린 피카소에게 늦게나마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 그림은 한국 전쟁의 참상을 그린 작품으로, 캔버스 왼쪽에는 벌거벗은 여인들과 아이들이, 오른쪽에는 이들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 있는 철갑 투구의 병사들이 있다. ghwang@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06.08
남아공 32년 무역 정해권 韓商 "아프리카는 틈새시장"
정해권 남아공 우리코퍼레이션 대표 (대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석한 정해권 남아공 우리코퍼레이션 대표. 2021.5.25. wakaru@yna.co.kr (대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아프리카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지만 대기업이 아닌 이상 진입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죠. 틈새시장 공략이 필요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2년째 무역업에 종사하는 정해권(68) 우리코퍼레이션 대표는 오랫동안 사업을 이어온 비결로 "큰 주문은 없어도 꾸준한 수요가 있는 게 대박이라고 믿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와 연합뉴스 주최로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대표자대회·수출상담회'에 참석 중인 그는 25일 인터뷰에서 "아프리카에서 대박 가능성이 높은 비즈니스는 이미 시장이 형성됐거나 대기업이 진출한 경우가 많으므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발전소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 공급으로 매년 100∼150만 달러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근 국가인 마다가스카르 광산 인근에 세워진 화력발전소에 부품을 대고 있다. 그는 "광산개발과 맞물린 발전소라서 건설 단계에서부터 자재 공급을 해 고정 거래처로 인정받았다"며 "발전설비는 한 번 들어서면 영구적으로 운영되므로 안정적 거래가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동아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에 입사한 그는 가나에 디젤기관차 차량 12대 납부를 위해 1985년 아프리카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가나는 도시에서조차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많을 정도로 낙후했지만 생동감이 넘쳤다. 성장 가능성을 본 그는 앞으로 사업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 주저하지 않고 사표를 냈다. 우선 아프리카를 배우려고 가나의 현지 무역회사에 들어가 4년을 다닌 뒤 1989년 독립해 남아공에 회사를 차렸다. 그는 남아공에서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 전 대통령의 출소와 민주화 바람, 흑인 우월주의 등장, 경제 디폴트 등을 겪었다. 변화의 바람 속에서 사업이 위기에 몰린 적도 있고 총을 든 무장 강도를 두 번이나 만나고도 목숨을 건졌다. 정 대표는 "현지인도 함께 겪는 어려움이므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싶어 늘 정면 돌파를 해오다 보니 내공이 생기고 맷집도 늘었다"고 회상했다. 남아공에서 주요 비즈니스는 백인, 유대계, 인도계가 다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 그런데도 그는 사업 기회가 있다며 "품질 좋은 한국제품 신뢰와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보이는 한국인의 기질 덕분에 호감도가 높다"고 소개했다. 1993년 설립된 월드옥타 요하네스버그지회 창립멤버로 몸을 담아온 그는 지난해부터 지회장을 맡아 차세대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대회 기간 국내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설명회 등에도 참가할 예정인 그는 "환경이 열악한 곳일수록 기회가 더 많은 법"이라며 "한국의 무한 경쟁에 비하면 아프리카는 상대적으로 취·창업이 쉬운 곳"이라고 조언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06.08
日 최대 대형마트 이온몰에 의류 브랜드 입점한 이주희 대표
日 대형마트에 의류브랜드 입점한 이주희 대표 (대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에 참석한 이주희 일본 나고야 타이에이기카구 대표 2021.5.25. wakaru@yna.co.kr (대전=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일본인은 유행과 패션에 민감하지만 튀는 옷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개성을 드러낸 디자인이 제가 지향하는 컨셉입니다." 일본 최대 대형마트 체인인 이온몰에 여성복 브랜드 'Leejure'를 입점시킨 타이에이기카구(太映企劃·TIEIKIKAKU)의 이주희(57) 대표는 회사 제품을 국민브랜드로 키우는 게 목표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와 연합뉴스 주최로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대표자대회·수출상담회'에 참석 중인 그는 26일 인터뷰에서 "옷은 유행을 탄다지만 잘 만들면 10년, 20년도 아끼며 입는 게 소비자다. 누구나 즐겨 입고 애용하는 옷을 만들고 싶다"며 이같이 포부를 말했다. 1988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 패션디자이너 사관학교로 불리는 나고야(名古屋)시 소재 나고야모드학원에서 창작디자인을 전공했다. 4년간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음에도 졸업 후 취업은 쉽지 않았다. 교원자격증에 패턴사 자격증 등 실무에 필요한 자격을 갖췄어도 대기업 입사에 번번이 실패했다. 할 수 없이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고 결과적으로는 그게 큰 도움이 됐다. "외국인 취업 문턱을 실감하고는 눈높이를 낮췄죠. 중소기업에 들어가 보니 의상디자인만 하는 게 아니라 패턴도 뜨고 생산관리에다가 매장 영업도 뛰었죠. 창업을 위한 전 과정을 배운 셈입니다." 실력을 키워 2년 뒤 대기업 디자이너로 옮겨갔고 4년 뒤인 1999년에 독립했다. 여성복에만 매달려온 그는 나고야시에 점포를 내고 일반옷과 맞춤옷 양쪽으로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는 지명도 있는 의류 브랜드의 주문자생산(OEM)을 했다. 봄·가을로 700가지 이상의 의류를 제작할 정도로 다양한 디자인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감각으로 거래처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주문이 계속 늘어 많을 때는 연간 10억 엔(10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사업이 궤도에 올랐지만 내 브랜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OEM사업을 접고 2016년 'Leejure'를 시장에 내놓았다. 이 브랜드는 성인 여성복으로 외출용 상의를 전문적으로 생산한다. 다양한 색감을 사용하고 소매, 옷깃, 단추 등 디테일한 부분에 포인트를 두는 디자인 덕분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곧바로 이온몰에 입점하게 됐다. OEM 생산 시절에 비하면 매출이 반 토막 수준이었지만 오히려 신바람은 더 났다. TV홈쇼핑에도 진출해 인지도를 본격적으로 넓혀가고 있었는데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확진자 발생으로 이온몰의 휴업이 확대하면서 매출이 급락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의류 소비도 다시 늘어날 것이라 버티고 있지만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무역·유통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2006년 차세대무역스쿨 참가로 시작한 월드옥타와의 인연이 여기에 큰 도움이 됐다. 회사의 장점인 디자인을 가미한 마스크를 제작해 월드옥타 회원사를 통해 판매를 시작한 것. 올가을부터는 한국산 화장품의 일본 시장 판매에도 나선다. 이 대표는 "코로나19가 없었으면 의류 한 분야에만 계속 매달렸을 것"이라며 "이제부터는 다양한 사업에 디자인을 접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월드옥타 일본 나고야지회장을 맡은 그는 "코로나19로 조성된 위기감 덕분에 회원사 간 교류와 협력 관계가 더 탄탄해졌다"며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부상조' 전통이야말로 월드옥타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치켜세웠다. 올 9월에는 일본 통합 차세대무역스쿨을 온·오프 병행으로 개최한다. 나고야지회에서 여는 가장 큰 행사로 그는 "차세대에 위기가 기회라는 것을 일깨워줄 좋은 기회로 선배들의 창업 노하우를 전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06.08
‘백의의 천사’, 여성 사업가로 비상하다
유성 원장은 지난 2000년 친지를 방문하기 위해 자녀들과 함께 달라스를 찾았다가 자녀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이민을 결정했다. 달라스로 이주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남편과 함께 개인병원을 개원해 운영했고, 의료기기 도·소매업에도 종사했다. 유성 원장은 달라스에 이주한 후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 업체에서 관리자로 근무하게 됐다.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이민자들이다 보니 의사소통 문제도 있고, 한인 노인들의 경우 미국에서 오래 살기는 했지만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혜택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유성 원장은 한인들을 위한 가정방문 서비스가 절실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고, 그 일이 동포사회에 봉사도 하면서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결국 2007년에 주식회사 형식으로 현재의 ‘한국홈케어’를 설립했고, 서비스 영역도 점차 확대해갔다. 유성 원장이 한국홈케어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한인들 사이에서는 가정방문 간호 서비스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던 시기라서, 저소득층 노인들이 사기라는 오해를 할 때도 있었지만 유성 원장의 노력은 보람으로 되돌아왔고 각종 노인 모임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여 노인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유성 원장의 인생 모토는 ‘사랑 나눔’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정신(Spirit)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유성 원장은 “동물이 할 수 없는 정신적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을 주변사람들과 나눴으면 좋겠다”며 “사랑과 노력이 있는 곳에 성공의 향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기사 원문 보기 ‘백의의 천사’, 여성 사업가로 비상하다 [출처 : 미주중앙일보]
2021.02.15
[실리콘밸리 한인 기업열전] 올거나이즈 이창수 대표
인공지능의 테두리 안에 ‘자연 언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이하 NLP)’라는 기술 분야가 있는데 이를 사업에 접목시킨 한인기업 올거나이즈(Allganize)라는 회사를 창업한 이창수 대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이창수 대표는 카이스트 전산학과 학부와 대학원에서 자연어 처리 과정을 전공한 뒤 SK 텔레콤에서 근무하다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첫 창업은 모바일 게임 이용자 분석 업체 파이브락스(5 Rocks)로 이 회사는 지난 2014년 미국 모바일 광고 플랫폼 운영사 탭조이에 인수되며, 첫 창업을 성공리에 마치고 탭조이에서 수석 부사장을 지내다 2017년 다시 회사를 나와 AI 소프트웨어 업체 올거나이즈를 창업한다. 현재 올거나이즈는 미국, 일본, 한국에서 금융, 보험, 제조, IT 쪽의 대기업 70여 곳을 포함, 600여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개발자, 마케터, 회계, 디자이너 등 직군별로 활용하는 방식을 소개하는 콘텐츠 마케팅으로 기업고객을 늘리겠다는 목표다 이창수 대표는 “정보를 획기적으로 관리해주고 자동으로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 필요한 업무에 제공할 수 있는 AI가 최종목표”라며 “자연어 인식 딥러닝 기술을 통해서 Salesforce 같은 글로벌한 B2B SaaS 회사로 성장시키겠다”고 다부진 포부를 보였다. 기사 원문 보기 [실리콘밸리 한인 기업열전] 올거나이즈 이창수 대표 [출처 : 미주한국일보]
2020.10.28
[실리콘밸리 한인 기업 열전] 스윗 테크놀로지 죠시 리 대표
온라인 협업툴 소프트웨어 분야의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는 한인 스타트업 ‘스윗 테크놀로지스(Swit Technologies Inc)’는 지난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창업해 서울에 연구개발센터를 두고 있으며 5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스윗의 죠시 리 대표(한국명 이주환, 40세)는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한국 학원가에서 인기 있는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 코드 없이 앱을 만드는 툴을 제공하는 회사도 운영하는 등 테크 분야에서의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협업 툴 분야의 리더인 슬랙(slack)과 트렐로(trello)을 사용하며, 불편함을 직접 겪었기에 이들 툴의 단점을 보완하여 통합한 툴, 스윗을 개발하게 되었다 스윗은 사내 소통과 협업의 주요 컴포넌트인 메신저와 파일 공유 및 캘린더 등의 업무관리 도구를 결합한 기업 생산성 솔루션으로 프로젝트 관리와 기업용 메신저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사 원문 보기 [실리콘밸리 한인 기업 열전] 스윗 테크놀로지 죠시 리 대표 [출처 : 미주한국일보]
2020.08.26
[차이나통통] '그녀에겐 특별한게'…디자인으로 꽃피우다
베이징 왕징의 명소가 된 키즈 카페 '보니봉봉' [Z+DESIGN 사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베이징(北京) 최대 한인 밀집 지역인 왕징(望京)에 모델 하우스처럼 예쁜 키즈 카페가 있다. '보니봉봉'(boni bon bon)이라는 이 카페는 입소문이 나면서 중국인 중산층 고객들이 몰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선방하고 있다. 이 키즈 카페의 명함부터 메뉴판, 실내 및 외관 디자인까지 도맡은 중국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의 아트 디렉터가 한국인 여성이다. 그 주인공은 2006년에 중국에 출장을 왔다가 자리를 잡게 됐다는 임한나(41) 중국 Z+DESIGN 디자인 총괄. 그녀는 이 키즈 카페로 지난해 중국 연간 상업가치상, 아키텍처 마스터 프라이즈 등 중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테리어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원래 2006년에 중국이 아닌 미국에 진출하려고 했다고 한다. 미국 인테리어 회사로 옮기기 전 중국 출장을 왔다가 그 매력에 빠지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임한나 중국 Z+DESIGN 디자인 총괄 [Z+DESIGN 사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녀는 "중국을 전혀 모르던 때라 매우 열악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발전해 있는 모습에 놀랐죠. 새로운 시장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베이징에 발을 딛게 됐죠"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중국 진출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2006년 베이징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했으나 경영난이 겹치면서 결국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한국에서 독자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중국이 눈에 아른거렸다고 한다. 키즈 카페 '보니봉봉'의 상품들 [Z+DESIGN 사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녀는 "한국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할 바에는 차라리 망하더라도 후회 없이 중국에서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다시 중국으로 왔죠"라고 말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베이징에서 '디자인 엔진'이란 회사를 차려 중국 고객만 받는다는 각오로 임했다. 임한나 총괄은 "주변의 한국 회사들 중 잘 안되는 경우는 대부분 한국 고객들하고만 일해선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아직 젊기 때문에 중국 사람하고만 일해보자는 생각으로 버텼죠"고 말했다. 중국 Z+DESIGN 사옥 전경 [Z+DESIGN 사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디자인 실력을 믿고 찾아주는 중국인 고객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팝마트'는 지금까지 단골이다. '팝마트'는 그녀에게 초창기 인테리어를 의뢰했을 때만 해도 점포가 3개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수백개가 넘는 중국의 대표적인 트렌디 샵으로 성장했다. 그녀는 중국에서 월간 인테리어 잡지 'INTERORS' 편집장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이 잡지를 발행했는데 한국인 여성 디자이너가 사업과 더불어 매체까지 운영한 덕분에 중국 전역으로 디자인 관련 인맥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한국실내건축가협회 이사이기도 한 임 총괄은 이 잡지를 통해 한중간 인테리어 디자인 가교역할을 시도하고 있다. 그녀는 "다른 분야에 비해 인테리어 디자인 쪽은 한중간 교류가 거의 없어요. 중국도 과거와 달리 디자인 실력이 좋아져 한국 디자이너가 출중하지 않으면 '한국 브랜드'로 먹히는 시대가 아녜요"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코로나19로 막혀있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한중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상호 교류 방문 등을 추진해볼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임 총괄은 중국에 진출하려면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녀는 "중국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오래 일을 못 한다"면서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바탕에서 본인의 역량을 쏟아붓겠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president21@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8.18
뉴질랜드서 IT 개발업체 3개 창업한 20대 김민제 씨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거주하는 김민제(29) 스위프트 홈 대표는 2016년 소셜네트워크 모바일 플랫폼 ‘테코리아’를 시작으로 자동차 부품 거래 플랫폼 ‘파이브시스터’, 집값 분석과 부동산 관리 시스템 기능을 제공하는 앱 ‘스위프트 홈’을 연이어 창업해 연간 50만달러(약 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김 대표는 오클랜드대를 졸업 후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IT기업 중 하나인 ‘데이터콤’에 취업했으나 뭔가 변화를 가져보고 싶었던 그는 월드옥타 창업 무역스쿨의 문을 두드렸고 2016년 테코리아를 창업하게 됐다. 그는 해외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해외에 나가면 무조건 잘 될 것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충고하면서도 “도전정신과 의지만 있다면 어디서든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용기를 전했다. 기사 원문 보기 뉴질랜드서 IT 개발업체 3개 창업한 20대 김민제 씨 [출처 : 재외동포신문]
2020.08.13
'음악가·파일럿·비행사CEO' 화려한 이력의 고졸 출신 재미동포
미국 애리조나에 비행회사 '플라이 하이' 대표 이광진 [이광진 제공]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저의 최종학력은 고졸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학력만이 전부가 아니더군요. 살면서 꿈이나 목표도 바뀔 수 있습니다. 뭐든 늦었을 때는 없는 거 같아요. 중요한 것은 생각에 머물지 않고 도전하는 겁니다." 베이시스트, 재즈 콘트라베이스·트럼펫 연주가, 영어학원 강사, 파일럿, 비행회사 CEO(최고경영자), 자선사업가…. 미국 애리조나의 비행학교 교관이면서 비행회사 '플라이 하이'의 대표인 이광진(31) 씨의 이력서에는 다양한 경력이 기재돼 있다. 다재다능하다 싶을 정도로 여러 분야를 섭렵한 그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화려한 경력처럼 보이지만 사실 실패를 그만큼 많이 겪었다는 증거"라며 "수많은 좌절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에 후배들에게 지레짐작으로 포기하지 말고 직접 부딪쳐야 얻는 게 많다고 조언한다"고 이같이 말했다. 대구 출생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고뭉치였던 그는 부모가 정신 차리라고 보낸 서부 아프리카의 중서부 지역 라이베리아에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수도 몬로비아에 있는 선교센터가 세운 학교에 다니며 그는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또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에서 성장했는지 알았고 인내도 배웠다. 전기가 안 들어와 밤에는 촛불을 켜야 했고, 식수 부족에 풍토병·해충·더위와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내전이 심해져 1년 만에 귀국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베이스기타를 배워 대구예술대에 합격했다. 뒤늦게 배워 동기 중에 가장 실력이 뒤처졌 고민하던 그는 휴학 후 콘트라베이스로 전공을 바꿔 네덜란드의 왕립음악학교인 '프린스 클라우스 콘서바토리움'에 지원해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이 씨는 "실기면접이 끝난 뒤에야 입시정보를 알았지만 1년 뒤를 기다리지 않고 학장에게 기회를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뜻밖에도 규정에 없는 영상 심사를 해준 덕택에 입학할 수 있었다"며 "그때의 경험 덕에 뭐든 늦었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어렵게 얻는 유학 기회를 살려야 했지만 여기서 그는 또 좌절한다. 최소 5년 이상의 연주 경력을 지닌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늘 밀리는 느낌이 싫어 휴학하고 귀국해 입대했다. 트럼펫도 불 줄 알았던 그는 군악대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했다. 제대 후 대구예술대에 복학해 2학년을 마친 뒤 다시 계명대학교 경영학과에 3학년으로 편입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연주자로서의 꿈을 접고 사업가가 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라이베리아 초등학교 후원하는 이광진 대표 이광진 '플라이 하이' 대표는 2018년부터 라이베리아 북쪽 포야지역의 오지마을에 자리한 현지 학교를 후원하고 있다. 학교 건립을 도운 이 대표에게 감사의 글을 적은 현수막을 들고 촬영한 학생들. [이광진 제공] 네덜란드에서 공부할 만큼 영어에 자신 있었던 그는 학원강사와 과외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영어학원을 세울 궁리를 하던 중 재미동포 2세인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25살에 결혼한 그는 부인이 첫째를 임신한 2015년 처가가 있는 미국 애리조나의 주도 피닉스로 건너갔다. 지금껏 배운 실력이 별 쓸모없는 상황에서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애리조나는 날씨가 건조하고 하늘이 맑아 비행학교가 많았고 한국인 학생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결심해 2015년 1월 '웨스트 윈드'라는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8만∼9만달러(1억원 내외)가 드는 비싼 학비를 대느라 고생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 수업과 과외였다. 시작부터 학생이 몰렸고 맞춤형 수업이라는 입소문도 퍼져 학비를 벌 수 있었다. 학비가 저렴한 '플라이 굿이어'로 옮겨 모든 과정을 마쳤고 2018년 1월에 파일럿 자격을 취득했다. 내친김에 좀 더 어렵다는 비행교관 자격에도 도전해 합격했다. 곧바로 '플라이 굿이어'의 교관으로 취업한 그는 샐러리맨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회사를 차렸다. 이 씨는 "항공사 파일럿이 되려면 미연방항공청(FAA)에서 발급하는 자가용 비행 면장(PPL), 계기판 비행 면장(IR), 상업비행 면장(CPL), 다발프로펠러 비행 면장(MEL) 등 4단계 자격을 모두 취득해야 한다"며 "한국인 학생들이 영어 실력 때문에 필기나 실기보다 2시간 넘는 구술 면접을 어려워하는 것에 착안해 '플라이 하이'를 차리게 됐다"고 소개했다. '플라이 하이'는 한국인 학생을 위해 기숙사 시설을 갖추고 영어 과외도 병행해 학교 적응을 돕는다. 교습용 비행기도 1대 보유해 비행 경험도 쌓게 한다. 그의 회사는 '플라이 굿이어'와 파트너십을 하고 한국인 입학을 주선하고 학생 관리까지 한다. 그는 '플라이 굿이어'의 수석교관이면서 총괄 매니저이기도 하다. 이 씨는 "처음 사업을 제안했을 때 선례가 없음에도 미국인 대표가 한번 해보자고 받아들였다"며 "아이디어와 실행력보다 중요한 게 먼저 문을 두드리는 거란 걸 또 한 번 실감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사업수완 덕분에 '플라이 굿이어'는 한국인 학생이 급속히 증가해 비행기도 2대에서 15대로 늘었다. 졸업한 한국인 파일럿이 아시아나, 제주항공 등 한국 항공사에 10여명 취업하는 성과도 냈다. 5천달러 들고 미국에 건너온 그는 5년 뒤 번듯한 직업과 회사를 가졌고 집도 사고 둘째 아이도 낳았다. 이광진 대표 경험을 담은 '플라이 하이' 이광진 대표는 라이베리아 유학에서부터 미국 파일럿이 되기까지 좌절과 성공이야기를 담은 '플라이 하이'를 최근 출간했다. [이광진 제공] 그는 비행교관이 된 이래로 3년째 라이베리아의 초등학교를 후원하고 있다. 적은 금액이지만 운영비를 지원하거나 학용품·교육용 기자재 등을 꾸준히 보낸다. 이 씨는 파일럿 자격 취득 전 과정을 교육하는 굴지의 비행학교를 세우려는 목표 못지않게 다른 꿈도 꾼다. 라이베리아에 제대로 된 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라이베리아에서 만난 또래 아이들이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들의 자립을 돕겠다고 맹세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연애·결혼·출산·집·경력을 포기해 '오포세대'로 불리는 한국 청년들에게 희망을 잃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전하려고 자신의 경험을 담은 '플라이 하이'라는 책도 얼마 전 출간했다. 그는 성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믿기에 바쁜 일정을 쪼개 강연 요청에 꾸준히 응하고 있다. 이 씨는 "아프리카를 돕는 일에도 비행 조종간을 잡듯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wakaru@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7.15
[실리콘밸리 한인 기업 열전] 굿타임 문아련 대표
문아련 굿타임 대표는 텍사스 대학에서 경영학과 회계학을 전공한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미국 삼성물산과 프리스케일 회계부서에 근무하다 코딩에 매력을 느껴 독학으로 마스터한 뒤 소프트웨어 업계에 투신한 이색적 배경을 갖고 있는 여성 창업가이다. 굿타임은 구인자와 구직자의 일정과 경력을 반영해 채용 과정을 최적화해주는 기업 소프트웨어 회사로 캘린더에 인적자료를 결합하여 인공지능으로 스케줄을 구현하는 intelligent enterprise scheduling product를 개발 고객사에 공급한다. 또한 굿타임은 중요 사업 미팅을 자동화해 캘린더에 접목하면서 회의 조정을 지능적으로 자동화하는 회의 자동화 플랫폼까지 갖췄다. 문아련 대표는 지난 4년간 전반적인 회사 전략을 독특하게 홍보하는 팀 문화를 만드는 것에 주력했고 앞으로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고 디지털 혁신의 물결을 타기 위해 미국과 한국에서 다음 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다부진 의욕을 내비췄다 기사 원문 보기 [실리콘밸리 한인 기업 열전] 굿타임 문아련 대표 [출처 : 미주한국일보]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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