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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기업명
드레스포럼
국가
담당업무
Sales
작성자
15기 이다솜
기수
상시
작성일
2024.01.08

2022년 겨울의 끝자락 시작되어 2023년 뜨거웠던 여름까지,

한상재단의 인턴십을 진행한 약 7개월은 단연코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항상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넘어지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근력을 키울 수 있었기에

이제는 자랑스러운 성장의 기록이라고 말하고 싶다.


1. 세 번째 떠나는 미국의 인턴십, 이게 맞나?

미국으로 인턴을 가는 것은 첫 번째가 아니었다.

인턴십을 떠나기 전 한국의 스타트업커머스 팀에서

약 2년간 강도 높게 근무했고, 번아웃이 찾아왔다.

낯빛은 어두워져 웃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해야 하는 일을 마치기 위해 야근과 주말 출근이 반복되었고,

피로가 누적되어 쉬는 날에는 내리 잠을 잤다.

사회 초년생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이 되자 도망가고 싶었고, 활력을 되찾고 싶었다.

좋아하는 영어를 쓰며 고객을 응대하고,

세일즈를 배우는 것을 상상했다.

새로운 환경과 경험을 마주하며 즐기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던 중 한상재단의 청년인턴십의 공고를 우연히 발견했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돈을 버는 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두 번의 인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비자 발급부터 코로나 이후 올라간 물가와 치안, 기업 매칭까지의

긴 과정을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짐이 덜어 진다는 것이 감사했다.

지원금으로 정착 시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과 인턴의 경험을 통해

해외 취업을 고려했기  때문에  주저없이  지원했다.

출국 전 4박 5일의 사전교육을 받으며 현지 적응에 도움이 되는

양질의 강의를 듣고, 동기들과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시기가 맞아 운이 좋게 세 번째의 인턴십을 떠날 수 있었다.

한 켠으로는 이게 맞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고 행동하는지 달렸다고 믿었다.



2. 패션 회사에서 세일즈 인턴으로 지낸다는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드레스포럼은

20-30대를 타겟으로 여성 드레스를 자체로 제작하여

소매점에 대량으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외국인  40%, 한국인 60%로 구성된 이곳에서

지망했던 Sales(영업)팀에 배치되었다.

도매점이기에 규모가 있는 거래처 30곳 가량의 오더를 받았고,

수량에 맞게 주문을 받은 뒤 중국과 베트남에 있는 벤더를 통해

자체 생산된 의류 샘플을 거래처에 보내는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PO 오더장을 만들어 정확한 스타일과 수량을

벤더사에 발주하는 방법과 납품일자에 맞추어 서류를 작성하고,

거래처에 보내는 일을 담당했다.

그리고 거래사에서 회사에 미팅이 오면

보여줄샘플을 선별하는 보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벤더에 보낸 샘플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샘플의 양이 쌓이며 몇 백 개가 넘어가자 관리가 어려워진 적이 있었다.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각 회사에 보낸 샘플 목록을 작성하고,

보낸 날짜와 받아야 하는 날짜를 분류해서 적었다.

받지 못한 샘플은 리스트로 정리하여 주 1회마다 해당 벤더에 고지했고,

샘플 회수율이 약 20%에서 80%로 올라갈 수 있었다.

작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만의 프로세스를 적립해서

성과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에 만족감이 생겼다.

회사의 사정이 생겨 입사 3개월 후 팀 이동이 있었다.

원하지 않던 것이었지만 업무량과 인력의 분배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응할 만 하니 팀을 옮겨야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다.

프로덕션 팀으로 옮긴 뒤에는 주기적으로 미국 각 지역에서

열리는 규모의 의류 트레이드 쇼 준비를 맡았다.

2,000개 이상의 샘플 중에서 시즌과 트렌드에 맞는 의류를 선별하여 쇼에 보냈다.

의류 회사에서의 근무가 처음인 만큼 옷에 대한

기본 지식이 부족하여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그럴 때 사장님이 의류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프로세스와

디테일을 알려주셔서 비교적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트레이드 쇼 준비를 위해 고된 적도 있었지만 같이 인턴생활을 하던 친구들이

도움을 주어 준비가 예상된 시간보다 빠르게 끝난 적도 있었다.

업무에서 오는 피로감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인턴 동기와의 대화가 큰 힘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세일즈 팀에서의 업무와는 비슷했지만

산업이 달랐기 때문에 생소한 점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같지 않아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미국에서 배운 의류 지식을 토대로

잠시 지인의 의류 매장에서 일을 봐 주었다.

6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일이 손에 익어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옷을 분류하고 정리할 수 있었다.

같이 근무하시던 분도 경력직인 티가 난다고 할 정도로 놀라셨다.

미국에서 근무하던 당시에는 기초적인 지식과 옷을 다루고 알아가는 것이

어렵다고만 느껴졌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익숙해 졌음을 알게 되어서 뿌듯했다.


3. 찾았다, 나의 은인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그 사람의 우주를 만나는 것이라 했다.

4박 5일 사전교육기간 나는 가장 다가가고 싶은 우주를 골랐다.

큰 설명 없이도 서로의 감정과 행동이 이해되는, 말 그대로 결이 맞는친구를 찾았다.

아쉽게도 미국 입국의 일정이 맞지 않아 처음부터 룸메이트가 될 수 없었지만

한상인턴을 통해 만난 지민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나에게

누구보다 소중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3일만에 급하게 구한 아파트에서

함께 거주하던 사람과 마찰이 있었다.

나와는 성향이 너무나도 달랐다.

높은 월세가 일반적이어서 안전한 집을 구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기에 마음은 불편했지만 쉽사리 나오고 싶지는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도착한지 2주일 만에 코로나에 걸렸다.

한국에서도 걸려보지 못한 통증에 서러웠다.

지인도 없던 상황에서 우버를 통해 약과 죽을 배달시켜 먹으며

꼬박 일주일을  혼자 끙끙 앓았다.

시차에 적응하자마자 걸린 코로나에 당황스러웠지만 한국 음식을 시켜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세 달이 지나 비가 많이 내리던 날 아침,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장 집을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많이 놀랐지만 날 일으켜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하루 아침에 홈리스가 될 뻔한 나를 친구는 자신의 집주인을 설득해

일주일만 같이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

주말을 반납하고 같이 5군데 가량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고,

가장 맞는 곳과 계약하여 무사히 이사할 수 있었다.

어디에 있느냐 보다 누구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었다.


왼쪽은 샌프란시스코, 오른쪽은 산타 바바라를 함께 놀러간 지민과 나



지민이를 통해 알게 된 교회 모임에서 쫓겨났던 상황을 들으신 뒤

지민이가 다니던 교회 관계자분께서 한국 반찬을 쇼핑백 가득 넣어 주셨다.

그리웠던 배춧국, 미역국, 전, 갈비, 불고기, 나물까지.

안도감과 감사함에 찔끔 눈물이 나왔다.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선행을 베풀어 주신 그분께 감사했다.

이후 마음이 움직여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다같이 인근 도시인 샌디에고에 놀러가기도 하고,

금요일 퇴근 후 볼링을 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으로 미국 생활에서 안정감을 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들이었다.

밋업(MEET-UP,이벤트를 통해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끼리

참가하는 커뮤니티)에서도 재미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어를 배우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피티 천문대에 야간 하이킹을 가고 별자리를 보며 타코를 먹기도 했다.

잊지 못할 즐거운 경험이었다.

인턴 근무가 끝나고 주어진 1달 동안의 grace period에는

뉴욕에서 인턴 생활을 하던 친구들과시카고 여행을 떠났다.

한상재단 동기였던 시카고에서 근무하는친구들과 만나

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상 동기 친구들의 도움과 정보력으로 짧은 기간동안

알차고 신나게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4. 서부만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끽하며

미국 서부에는 서부 바이브(vibe)라고 불리는 그것이 있다.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다른 이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움과

느긋한 여유로움.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과는 다르게 8시 출근, 4시 반에는 칼퇴근을 했다.

트레이드 쇼를 준비하기 전날에는 2번 정도 8시까지 야근을 하긴 했지만,

야근 수당과 저녁이 제공되었다.

이 밖에도 주말에는 날이 좋을 때 야외에서 브런치를 먹고,

공원에서 아이들 그리고 강아지들과 뛰어 놀고, 근처 산과 바다에 가서

놀기도 하며 엘에이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불행한 사람은 이미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고,

갖지 못한 것만 바라보며 불평한다.

가족이라는 기반과 떨어져 타 문화권, 지역에서 일한다는 것이

때로는 외롭고 서글플 때도 있었지만 최대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했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부자인 외국 친구들과 지내고,

주어진 것을 만끽하는 환경에 있다 보니 나도 물들어서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었다.

미국 서부에서의 생활이 아니었다면 느긋하게 있는 것을 누리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5. 아이언 다솜의 목표는 매일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미국에서의 별명은 아이언(iron) 다솜이었다.

아이언맨처럼 어떤 것이 와도 이겨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가까운 친구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마음이 어렵던 상황에서도

주 5회 운동을 꾸준히 했으며,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했다.

주말이면 피곤하고 귀찮더라도 밖으로 나가 재밌는 활동을 찾아 다녔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친구들과 여행지를 다녔고,

사진에 담기 좋은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며 맛있는 커피를 마셨다.

날이 좋을 때는 공원에 담요를 가지고 가 요가를 하고, 책을 읽었다.

한국 책이 구비된 공공도서관이 있어 무료로 책을 8권씩 빌릴 수 있었다.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쌓여 한 달이 되며 일년이$된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목표는 매일 나의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것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건강한 심리 상태란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은 것이라 한다.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고 싶었다.



6. 인턴십을 마무리하며, 다시 활력이 가득한 나로

한국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인턴십은 6개월로 마무리 짓게 되었다.

로스엔젤레스에서의 7개월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응을 한다면 빠져나갈 곳이 분명히 있고,

주변에는 응원하고 도와주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떤 것이는 지나가며 코어 근육을 위해 플랭크를 하듯(!)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마주할 수 있는 성숙함,

내면의 견고함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한상재단 동기들과의 즐거웠던 시간! 라라랜드에 나온 해변에서.



한상재단 인턴십을 통해 미국 생활의 기반이 되도록 지원을 받고,

건강하고 멋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원하던 산업군에서

배우고 싶은 직무로 일을 해볼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 희노애락이 가득했던 미국 생활을 시작하기 전으로

갈 수 있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 대답은 YES다.

예측할 수 없던, 계획에도 없던 고마운 사람과 기회,

경험과 배움을 잔뜩 얻게 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 비할 수 없는 축복으로 가득했다.

웃지 않던 나는 활력이 가득한 채로 한국에 돌아왔다.

이 모든 것은 한상재단 인턴십의 기회가 주어졌기에 가능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나지만 성장의 기회를 받을 수 있었음에 다시 한번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