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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제국에 새로운 엔진을 넣다
기업명
코라오
국가
담당업무
인사총무
작성자
김동규
기수
4기
작성일
2019.04.25

1. 해외인턴십? 까짓 거 다해보자


2017년 8월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주변에서는 하나 둘 적당한 기업을 찾아서 취업을 했지만 나는 평균적인 수치안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친구와 종종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한상재단에서 시행하는 해외인턴십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학교 다니면서 다양한 나라에 여행을 해봤지만 여행이 아닌 업무를 위해 해외를 나간다고 생각하니 좀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남들이 하지못하는 경험을 해본다고 생각하니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언제나 마음의 안정을 주던 동남아 지역에 살면서 마음의 여유와 함께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나를 이끌어줄, 나에게 많은 경험을 줄 기업을 고민하다가 라오스 제1의 기업이라는 코라오에 지원을 하였고 2018년의 시작을 코라오와 함께 하게되었다.



한상기업 청년채용 인턴십 현장면접< 한상기업 청년채용 인턴십 현장면접 사진 >



2. 수스테이 캄보디아 (수스테이 : 안녕이라는 뜻의 캄보디아어)


코라오는 라오스를 기반으로 자동차 산업을 크게 이룩한 기업이었다. 라오스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인도차이나 반도 전역에 진출하기 위하여 캄보디아 미얀마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고 새로 손을 뻗고있는 상황이었다. 


그 중 캄보디아는 공장도 막 완공 직전이었고 사업 역시 일어서려는 단계여서 일손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의 발령지도 캄보디아로 결정되었고 나는 2017년 12월 18일 천년 제국 캄보디아 프놈펜에 첫 발을 내딛었다.


프놈펜은 내가 가봤던 그 어느 동남아국가들과 비슷했지만 마치 시간이 10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 곳이었다. 시내에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대부분이 미국산 중고차였고 그중 9할이 구형 일본차였다. 이곳이 바로 내가 코라오와 함께 새 역사를 만들어 나갈곳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동차의 대부분이 미국산 중고차였고 그중 9할이 구형 일본차< 자동차의 대부분이 미국산 중고차였고 그중 9할이 구형 일본차, 사진 >



나는 마케팅 부서의 인턴으로 발령받아 프놈펜 근교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케팅 부서가 사업 초기단계여서 당장 새 인턴을 받아서 업무에 투입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약 2주간 본사에서 잡무를 도와주며 업무대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정다빈 인턴이 도착하였고 나는 그와 함께 외로움을 극복하며 프놈펜 생활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3. 코라오의 심장으로 들어가다


캄보디아 코라오 법인은 프놈펜 근교의 쇼룸, 프놈펜 시내의 본사 그리고 베트남 국경지대 바벳에 위치한 자동차 공장, 3군데로 나눠져 있었다. 나는 마케팅 부서였기에 쇼룸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마케팅 부서에서 여유가 생기기전까지 본사에서 업무대기 중이었다.


1월 초 마케팅부서에서 여유가 없어서 인턴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가 왔고 이미 온 인턴을 돌려보낼 수 없으니 본사에서는 대책회의를 한 끝에 나를 공장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모든 기반을 프놈펜에 잡은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나는 1월14일 바벳에 있는 공장으로 근무지를 이동하게 되었다.


공장은 1월초에 막 완공되어 사무실에 입주를 시작한 상태였고 나는 그곳에서 공장에서 필요한 서류업무를 맡게 되었다. 품의서와 결재서를 작성했고 아무것도 없는 사무실에 채울 물건을 사러 근처에 몇 없는 가게와 시장을 돌아다녔다. 새로 완공된 공장에는 가동시킬 인력이 필요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신규 직원들이 채용되어 들어왔다. 


나는 새로운 인력 채용정보를 매일 각 부서별로 취합하여 정리한 후 본사에 매일 보고하는 업무를 중심으로 하여 인사관리를 중점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코라오는 한국의 쌍용자동차와 업무협약을 맺어 부품을 들여와서 공장에서 조립하여 캄보디아 시장에 판매할 계획이었다. 첫 컨테이너가 도착하였고 우리 공장에서 처음으로 완성된 자동차가 나왔을 때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드디어 코라오의 심장에서 피가 공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이 점점 모습을 갖춰가고 한국인 구내식당이 오픈을 하자 나에게 새로운 업무가 하나 생겼다. 바로 공장에 근무하는 한국인 전직원들을 위한 식사 및 식당 관리를 전적으로 나에게 맡기겠다는 본사의 지침이었다. 그전까지는 다른 업무의 보조에 그쳤던 나의 업무가 비록 크지는 않지만 내가 전적으로 담당하는 업무로 바뀌었다는 점에 있어서 뿌듯함을 느꼈다.



식당 전경< 식당 전경 사진 >



요리사와 주방이모를 관리하면서 내가 가르칠 수 있는 한식을 가르쳤고 초반 몇 주는 좀 고생했지만 점점 음식의 질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면 나의 만족도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점점 많은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서류에는 나의 서명이 있었고 나의 결정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랐다는 점이 6개월간 근무하면서 나에게 있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르쳐 주었다.


4. 너,나 그리고 우리


캄보디아에 생활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업무적인 어려움은 많이 없었다. 그러나 머나먼 타지생활, 게다가 외딴 공장에서 생활하면서 배려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한 힘든 점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같은 인턴 동기인 정다빈 인턴과 심지수 인턴의 공이 매우 컸다. 서로 근무지는 각자 달랐지만 매일 메신저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달랬다.


인턴 생활에 차차 적응해가던 2월 중순 심지수 인턴이 연휴를 이용하여 미얀마에서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1박2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맥주 한잔 기울이며 나눴던 이야기는 2개월간 쌓인 마음의 응어리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함께한 인턴

< 함께한 인턴 사진1 >



즐거웠던 하루를 뒤로 하고 각자의 생활로 복귀할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꼭 다시 한번 만나자는 말을 남긴 채 아쉬운 이별을 했다. 그 다음의 만남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동남아 전역의 새해맞이 축제인 송크란 축제를 즐기기 위해 정다빈 인턴과 함께 태국으로 놀러갔다. 


마침 심지수 인턴도 같은기간 태국을 방문중이어서 현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동기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고 지금 내가 인턴을 무사하게 마칠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추억들이 되었다.



함께한 인턴< 함께한 인턴 사진2 >



5. 끝은 새로운 시작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았던 나의 인턴 생활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그러나 나는 아직 캄보디아에 머물고 있다. 6개월간 만났던 순박한 사람들과 다채로운 풍경이 나의 발길을 아직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 캄보디아로 가게 되었을때는 인프라도 제대로 없고 과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인지 걱정이 되었지만 막상 와서 생활해보니 부족한 점은 있지만 생활에 있어서는 문제가 전혀 없었다. 6개월간의 경험이 나에게 큰 자신감이 되었고 이곳을 떠나 세계 어디로 가도 이제 살아남을 수 있는 내가 되었다.



함께한 인연< 함께한 인연 사진 >



한국에서 취직준비를 할 때는 최소한 얼마 이상의 연봉을 받고 어느 정도 이상의 복지가 보장되는 곳을 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머릿속에 있었다. 해가 지날수록 마음이 더 조급했고 다른 친구들의 취직 소식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계속 받고는 했었다. 그러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캄보디아로 넘어와서 스트레스가 덜 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다. 동시에 꼭 한국에서 취직해서 사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나는 지금 새로운 준비를 하고있다.


나아가서 나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한 코라오와 제 2의 고향 캄보디아, 그리고 재외동포재단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