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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게 빛나는 청춘은 아픔이었음을
기업명
A & P Global Corporation
국가
담당업무
해외영업
작성자
정해철
기수
4기
작성일
2019.06.21

 ‘청년실업률 ‘최악’… 고심하는 靑’, ‘벼랑 끝 ‘청년 실업’…일자리 해법은?’, ‘실업률 18년 만에 최악…청년층 10%가 실업자’, ‘숨 멎는 고용쇼크…청년실업률 역대 최악’, ‘넷 중 한 명, 최악의 청년실업률’, ‘바늘구멍 같은 취업 문…청년 실업률 사상 최악’ 하루에 수 백 수천 번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청년실업’ 이다.


 ‘청년실업은’어느덧 우리에게 있어 일상의 아침을 함께 시작하는 친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아픈 청춘을 마주한건 아니었다. ‘다른 나라 이야기겠지, 내 이야기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시절은 무심히도 빠르게 지나갔고, 나도 어느덧 ‘청년실업’이라는 현실의 한 일부에 편승하고 말았다. 이 현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과도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도 나아가는 것이 맞는 걸까 의문이 들었고, 언제부턴가 방향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청년실업이란 현실은 늪과 같이 내 두 발을 붙잡았다. 움직일수록 빠져들어 갔고, 낙오자라는 낙인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과연 여기서 내 미래를 찾을 수 있을까?


 어느 한 사내가 있었다고 한다. 그 사내는 뙤약볕 자동차의 트렁크에 갇혀있었다. 그는 안타깝게도 트렁크에서 문을 여는 법을 몰랐다. 결국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만약 그 사내에게 있어 지나가던 누군가가 열어주었다면, 혹은 그 전에 안에서 트렁크 여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의 삶은 180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운과 기회에 대해서 말을 하려고 한다. 운이 좋게도 그 사내와는 다르게 나는 갇혀있는 늪에서 기회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 기회는 해외인턴십 도전이었다.


 나는 말레이시아의 A&P Global이라는 화학전문 무역업체에 지원하였다. 화학이라고 해서 단순한 공산품을 생각하고 지원했으나, 이것이 또 다른 고생으로 가는 길이었음을 이땐 알지 못했다. 내가 지원한 A&P Global (M) Sdn Bhd(이하 A&P Global)의 이재룡 대표님께서는 업무상 바쁘셔서 한국에 오지 못하셨고, 때문에 한상대회의 현장 면접 대신 유선으로 면접을 진행하였다.


인턴 정해철 사진1


 면접을 보고난 뒤, 통과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 후로, 한국에서 같은 동기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며 합숙 및 집체교육 과정을 보냈다. 그리고 출국 일정이 다가왔다. 드디어,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에게 있어 말레이시아는 특별한 인연 같은 국가이다. 16년도 2학기를 교환학생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보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레이시아에 발을 내딛은 기분은 마치 1년 만에 친구를 만나는 기분과도 같다고 할까...


 처음 대표님을 만나 뵈었을 때, 대표님의 느낌은 상상이상이셨다. 풍채에서 나오는 아우라와 기품. 그저 내 머릿속엔, 나도 나이 들면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됐었다. 그 만큼 자신감 넘치셨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으셨으며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업체 사이에서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계셨다.



인턴 정해철 사진2


 A&P Global에서 Sales Executive로서 내가 맡은 주된 업무는 거래선을 발굴하여 제품을 파는 것이었다. 사실 무역이란 것이 어렵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 원리는 간단하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그 규모는 조금 커지고 장소가 외국으로 바뀌었을 뿐. 회사에서 주로 취급하는 물건은 내가 사전에 봤던 대로 화학품이었다. 사실, 처음 품목을 접하고 적잖은 걱정을 하게 되었다. 상품이 화학품이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아무래도 이미 다 잊어버린지라 대표님에게 공통과목 수업할 때 기본적인 화학 배운 것 기억나지 않으냐는 소릴 많이 듣기도 했었다. 십년 전 공통과목 할 때 말레이시아에서 화학품을 거래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인턴 정해철 사진3


 그렇게 물품을 공부하고, 일일이 전화 및 메일을 돌리며 영업을 하였고, 관심 있는 업체에 접촉하여 대표님과 같이 미팅을 나가 명함을 주고받고 얘기를 나누었다. 정말로 무역의 하나부터 열까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대표님 옆에서 지켜보며 배워가며 그렇게 서툰 업무를 진행하였다.


 비록 말로만 하자면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의 과정을 진행함에 있어 톱니바퀴 굴러가듯 들어맞지는 않았다. 아니, 잘 안됐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거래선을 찾아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 연락을 안 받거나 관심이 없거나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설령 사용하더라도 현 거래처를 바꾸기 싫어하는 업체도 있었고, 제조사가 아니란 이유로 거절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을 뚫고 가서 현지 거래선을 구하고 한국의 거래선도 구했는데, 갑자기 가격이 올라 거래가 취소되어 모든 것이 도루묵이 된 적도 있고,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현지 거래선과 한국 거래선의 작은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결정적으로 성사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거래 성사를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납품처에서 사정이 생겨 어렵다는 소식을 접한 적도 있었다. 달콤한 성공을 들이키기 보단 씁쓸한 실패만 실컷 들이켰다.


 물론 나는 인턴신분으로 A&P Global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인턴이라서 못한다, 못했다, 잘 못할 수 있다, 틀릴 수 있다, 이런 말들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턴은 경우에 따라 있어도 없어도 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아무리 인턴이 잘났다고 하더라도, 현업에서 이미 한참 먼저 업무를 해 오셨던 직원들과의 실력을 비할 수는 없다. 인턴이 잘 못하는 것이 아주 지극하고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턴이 못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잘해야 한다. 다만, 다른 직원들에 비해 많이 서툴고 요령이 부족하여 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하는 것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인턴으로서 보여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열정이다. 오히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울 줄 모르는 듯 더욱 더 열정 하나를 가지고 달려들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실패하더라도 6개월 뒤 돌아가고, 잘되면 취업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것이다. 시험도 모의고사 때 틀려야 나중에 맞추듯, 지금 인턴신분을 이용하여 더욱 더 도전해보고 발버둥 쳐보아야만 나중에 다른 곳에 취업을 하든 어떻게 하든 지금의 아픈 경험이 빛을 발하게 하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짧았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나의 인턴생활의 경우 열정을 아주 뜨겁게 불태우지 못했던 것 같았다. 오히려 ‘열정을 더 불태웠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가 절반가량 남아버렸다. 그렇다고 시간을 낭비만 하고 온 것은 절대 아니다. 인턴생활을 하면서 겪은 모든 것, 명함을 나누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 분을 만나고, 대표님의 경험을 듣고, 새로운 산업 분야를 알게 되고 했던 그리고 비록 성공하지 못했으나 실패로 가는 경우의 수를 겪었던 씁쓸한 경험들이 그것만의 또 다른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으로서 업무를 진행하면서 잘 안 되고, 잘 안 풀리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어려웠고, 실망하기도 하며 겪은 경험들이 내 청춘에 있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모두들 겪어봤겠지만, 오히려 힘들었던 기억일수록 더 오래남지 않는가. 그러므로 단언하여 말 하건데, 지금의 이 아픔이 앞으로 더 큰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디딤돌이 되리라 나는 굳게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것 하나만큼은 10년, 20년 지나서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이라는 무대에서 벗어나 더 큰 무대에서 직접 몸소 뛰며 고생하며 겪은 시간들이 내 20대 청춘에서 제일 빛났던 순간이었다고.


인턴 정해철 사진4


 시간은 너무나도 무심하게 빨리 지나가 버렸다. 말레이시아에 다시 발을 딛었던 게 12월 크리스마스였는데, 벌써 6월의 끝을 바라보고 있다. 짧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이제 나는 그 다음의 벽 앞에 마주 하였다. 하지만, 자만하면 안 된다. 이제 겨우 고작 작은 벽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를 것 없다. 하지만 인턴십에 참여하기 전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내 무대가 좀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다른 점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앞으로 더 넓은 무대에 당당히 서서 그 다음의 벽에 도전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을 빛바래지 않게 하는 길이지 않을까? 쉬운 길이 펼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디에도 쉬운 길은 없다. 하지만 청춘에서 가장 빛났던 그 순간을 잊지 않는다면, 최소한 좀 더 큰 무대에서 좀 더 다양한 기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에 접근 할 수 있느냐 마냐는 어쩌면 운에 따라서도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되었건, 실력이 되었건 과정이 어떻든 간에, 손에 쥐게 된 기회를 살릴 수 있느냐 마느냐에 대한 것만큼은 운이 아닌 거짓 없이 찬란히 빛나고 있는 청춘이 그 답을 비추리라고 생각한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재룡 대표님과, Teri, Stuart에게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