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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노를란드의 송이버섯
작성일
2021.02.01

[가작 - 단편소설 부문]


노를란드의 송이버섯


김 미 영 / 스웨덴


신영은 잡동사니들 사이에 가까스로 발을 디디고 서서 절반만 모습을 드러낸 배낭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손아귀에 힘을 주고 끙 소리를 내며 잡아당겨 보았지만 켜켜이 내리누르는 짐들의 무게에 눌려 배낭은 꼼짝달싹하지 않았다. 천천히 한 발을 옮겨 몸의 균형을 잡고 다시 허리를 숙인 다음두 손으로 손잡이를 거칠게 흔들 때에야 배낭 위의 물건들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마침내 납작하게 눌려 볼품없는 모습의 배낭이 쑥 빠져 올라왔다.

“배낭은 왜?”

동진이 다가오며 물었다.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신영은 바닥에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는 물건들을 대충 발로 들이밀며창고 방의 문을 닫고 베란다로 향했다. 이사 온 날부터 착실하게 쌓여 온먼지가 탁탁 소리와 함께 이른 아침의 대기 속으로 흩어졌다. 동진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가는 거야?”

신영이 배낭을 여행 가방 옆에 내려놓고 콘센트에 꽂혀 있던 배터리를 휴대폰과 연결한 채로 빼내어 작은 가방 안에 넣으며 말했다.

“금요일 저녁까지는 돌아올게. 전화해도 안 받을 테니까 전화하지 말고잘 지내고 있어.”

“당신이 결근을 다 하겠다고? 그것도 삼 일씩이나?”

신영이 여행 가방을 일으켜 세웠다.

“휴가 낸다고 새벽에 메일도 보내 놨어.”

어디론가 떠나겠다며 이른 아침부터 짐을 챙기는 동안 설마 하는 시선으로 신영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동진이 휴가를 냈다는 말에 허둥대기 시작했다.

“어디 가고 싶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얼른 씻고 나와서 내 짐도 챙길테니까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동진이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들고 안방에서 나와 급히 욕실로 들어서는 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던 신영은 샤워기에서 물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자재빨리 배낭을 어깨에 메고 여행 가방을 달랑 들어 올리고는 가만가만 현관으로 걸어가 문 앞에 놓여 있는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신발장에서 등산화를 꺼내 쇼핑백에 넣은 다음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신영은 동진의 무딘 성격을 한심스러워할 때가 더러 있었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노를란드에 대해 말했고 바로 다음 날 계획에도 없던 여행을 가겠다고 한다면 목적지는 노를란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었다. 신영은호밀을 베고 밑동만 남은 들판 위로 새들이 날아드는 광경을 내다보며, 그렇지 않아?라고 중얼거렸다. 숲으로 연결되는 벌판 끝에는 노루 서너 마리가 고개를 숙이고 들판에 흩어진 낱알을 핥고 있었다. 신영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동진이 심정적으로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온 것은그의 느긋하고 무딘 성격 덕분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신영이 다시 중얼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혼자만 느긋하면 다야?

신영은 벌판의 끝자락에 덩그러니 서있는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주유구에 노즐을 꽂고 서서 노를란드까지 가려면 도중에 한 번 더 기름을 채워야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국도를 타고 달리면 저녁 무렵에는 노를란드의 한 마을에 도착하고 오늘 밤이나 내일 아침에는 인혁을 만날 것이었다.

신영은 노즐을 주유기에 정착하고 주유기 옆에 붙어있는 화장지 통에서 화장지를 한 장 뽑아 손을 닦은 다음 휴대폰의 전원을 켜고 오늘 저녁에 마을에 도착할 것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인혁에게 보냈다. 동진에게서 여러 통의문자가 와있었지만 읽지 않기로 했다. 공연히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이고 그러면 한 시간 남짓 달려온 길을 되돌아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국도는 끝이 없는 침엽수림을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간혹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자작나무 숲과 넓은 벌판을 지나칠 때도 있었지만 곧이어 곧게 뻗은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다시 나타나곤 했다. 차창 밖으로 지나치는나무들은 그들끼리 대열을 이루며 자동차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고 신영은 수시로 나무들의 행렬에 포위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일렬로 뻗어있는 도로의 끝 지점이 아무리 달려도 도달할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며 달아나기만 하는 것 같아 신영은 현기증을 느끼며 갓길에 차를세웠다.

“인혁 씨가 스웨덴 노를란드라는 곳에 있대.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봐 줄수 있어?”

“노를란드가 무척 넓은 곳이야. 아마 한반도보다 더 넓을걸.”

“그래서 안 돼?”

“너 그동안 계속 인혁 씨 생각하며 살았던 거야? 왜?”

“그런 게 아니라 한동안 텔레비전에 나왔었거든. 그냥 걱정이 돼서 그래.”

신영은 희숙과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인혁의 페이스북을 찾아 친구 신청을 했고 몇 분 만에 인혁으로부터 친구 수락을 받았다. 신영은 인혁의 프로필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사진에는 스웨덴 버섯 책에서 자주 보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던, 자루와 연결되어 있는 둥근 갓에 진한 갈색 비늘로 덮인 듯한 버섯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신영은 간단한 인사말을 인혁에게 보낸 후에 대뜸 프로필에 올려놓은 버섯을 아느냐고 물었다.

인혁이 ‘그럼요, 한국에서는 송이버섯이라고 합니다.’라고 답을 보내왔다.

신영은 인터넷에서 한국의 자연산 송이버섯의 사진을 찾아 스웨덴 버섯 책의 버섯과 비교해 보았다. 그리고 혼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지금까지 이걸 몰랐지?”

‘그곳에 송이버섯이 많은가요?’

인혁에게서 즉시 답이 왔다.

‘네. 올해 많이 보았다고 들었습니다.’

신영은 잠자리에 드는 대신 인터넷에서 노를란드의 송이버섯에 관련된 내용을 검색해 보았다. 송이버섯에 대한 기사가 있기는 했지만 책에 소개된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대신 한 블로그가 신영의 눈길을 끌었다. 노를란드에 살고 있다는 블로거는 숲에 갔다가 너무 많은 양의 송이버섯을 따게되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건조하라거나 냉동실에 넣으라는 댓글들이 수두룩하게 이어졌고 그런 댓글들 끝에 스톡홀름에 내다 팔면 제법 큰돈을 벌 것이라는 글이 하나달려 있었다. 신영이 스웨덴어로 송이버섯의 가격을 두드렸을 때 ‘숲 속의황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고 신영은 기사에 나와 있는 송이버섯의 가격을 믿을 수 없어 눈을 깜빡이며 한 번 더 숫자를 확인해 보았다. 책에 따르면 송이버섯의 채취기는 바로 지금이었다. 신영은 갑자기 노를란드의 송이버섯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진이 늦은 시간 침실로 들어왔을 때 신영이 침대에 누운 채 동진에게말했다.

“노를란드에 송이버섯이 좍 깔려있대.”

동진이 시큰둥하게 “노를란드 어디?”라고 물었다.

“아무튼 노를란드에 좍 깔렸는데 그게 스톡홀름에서는 무척 비싸게 팔린대.”

동진은 기복 없는 목소리로 단지, “그래?”라고 대꾸하고는 침실의 전등스위치를 눌렀다. 신영은 노를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송이버섯의 가치를 잘모르는 것 같은데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의 사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말을 동진에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꺼내기에는 어쩐지 좀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비록 동진이 몇 년째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해도 그는 송이버섯 같은 것이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신영은 침대에 누운 동진에게서 등을 돌리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길과 나무와 벌판만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달린 후에 도로 가에 세워져있는 식당 안내 표지판을 발견했을 때 신영은 이제야 살았다는 기분이 되어주저 없이 식당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 식당은 비교적 도로 가까운 곳에위치해 있었다. 신영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덩치 큰 남자 하나가 천천히 앞치마를 두르며 카운터에 섰다. 음식 냄새보다 방금 잘라낸 진하고 향긋한 나무 냄새가 천장과 벽 그리고 식탁과 의자에서 퍼져 나와 식당 안을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영은 메뉴판에 적혀 있는 세 개의 메뉴 중에 하나를골라 주문하고 나서 식당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휑뎅그렁한 식당은 벽에 걸린 커다란 곰 사진과 늑대 머리로 인해 다소 황량한 느낌을 주었다. 신영은 늑대 머리를 애써 외면하며 사진이 걸려 있는 카운터 맞은편의 벽 쪽을 향했다. 사진 속에는 땅과 바위를 뒤덮은 두터운 이끼 위로 제멋대로 솟아 오른 전나무들 사이에 두 발을 들고 우뚝 서있는 곰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신영은 얼굴을 사진 앞으로 좀 더 내밀고 곰을 들여다보았다. 붉은 갈색의 털은 비에 젖은 듯 늘어져 있었고 야생의 얼굴에 감정 따위는 담겨 있지않았다. 거대한 몸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불가항력의 힘이 뿜어져 나왔지만곰은 살아간다는 것 한 가지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듯이 보였다. 신영은 숲에서 이런 곰과 마주치게 될 때에 느낄 두려움의 정도를 가늠해 보았다. 혼자 이곳까지 오는 동안 무수히 많은 잡념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감언이설로 동진에게 부실한 회사를 넘겨 동진의 회사까지 문 닫게 만들었던 김과, 어쩌다 마주칠 때면 어쩔 건데?라는 식으로 턱을 치켜들어 보이는 김의 부인, 신영 부부의 사정이 달라지자 태도를바꿔버린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 그리고 아무리 애써도 해결되지 않는생활의 많은 문제들.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일상적인 상처와 두려움도 저 곰 한 마리 앞에서는 한낱 깃털처럼 가벼운 것으로 전락하고 말 것같았다. 식당 남자가 팬케이크와 링곤잼이 담긴 쟁반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을 때 신영은 목에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카운터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세 차례 휴게소를 더 거친 후에야 신영은 숲길에서 벗어나 인혁이 알려 준마을로 들어설 수 있었다. 나지막하고 작은 건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도로를 따라 얼마간 지나자 빈자리가 넉넉한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신영은 도로에서 가까운 자리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짐을 내렸다. 호텔이있는 광장까지는 약간의 오르막길이었지만 걸어서 가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다양한 색상의 다알리아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키를 재고 있는 커다란돌 화분을 가운데 두고 분홍빛이 감도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돌들이 바닥에 빈틈없이 깔려 있는 광장은 왕래하는 사람들이 적어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광장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들러선 이삼 층짜리 건물들 속에서 호텔 간판은 금방 눈에 띄었다. 신영은 창틀마다 붉은 제라늄을내건 호텔을 향해 걸으며 저녁 시간에도 여전히 푸르기만 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티끌 하나 떠있지 않은 원시적인 푸르름이 광장을 시원하고 넉넉하게 감싸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방을 구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숙박료를 지불하기 위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계산기에 넣는 순간 신영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흘 휴가를 냈으니 휴가 첫날의 전액과 나머지 이틀 급료의 이십 퍼센트가 다음 달 월급에서 제하여질 것이었다. 거기에 기름값과 숙박비 그리고 식사 비용까지 계산하면 월초에 생각하지 않았던 지출이 너무 많아진 셈이었다. 만약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여행은 그저 피곤하고 지루하며소모적일 뿐이었다.

호텔 방 침대에 걸터앉아 광장을 내다보면서 신영은 이 시간 동진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신영은 외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켜고는 잘 도착해서 쉬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내용의 문자를 써서 동진에게보낸 다음 다시 전원을 껐다. 오늘 남편의 애를 태웠던 대신 가족이 모두 모이는 금요일 저녁에는 캐러멜 향 같기도 하고 소나무 향 같기도 하다는 송이버섯을 식탁에 올릴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광고를 내 남은 송이버섯을모두 팔 것이다. 버섯만 많다면 따고 파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 신영은여전히 찌그러진 모양으로 바닥에 놓인 배낭을 내려다보았다.

인터폰이 울렸을 때 신영은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잠시만 쉬자고누웠던 것인데 창밖은 어느새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신영이 수화기를들자 호텔 직원이 아래층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신영은 가방을 뒤적거려 머리끈을 꺼내 들고 어수선하게 흐트러져 있는 머리카락을 대강 손으로 쓸어 올렸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비해 얼굴에는 여전히 윤기가 남아있는 인혁이 신영을보자 웃음을 띠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게 얼마만입니까? 신영 씨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이네요. 우연히마주쳤어도 바로 알아보았겠어요.”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옛 모습과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인혁의 얼굴을 보며 신영은 환하게 웃었다.

“제가 여기 묵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이 마을에 호텔이 여기 하나밖에 없거든요.”

인혁이 공연히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정말 송이버섯 때문에 오셨어요? 아니면 저처럼…”

신영이 잠시 주저하다가, “네, 송이버섯 때문에 왔어요.”라고 말했다.

“저녁 식사는 하셨어요? 호텔 맞은편에 친구가 일하는 피자 가게가 있는데 그리로 가실래요? 그 집 파스타가 맛있거든요.”

인혁의 말을 듣는 동안 신영의 얼굴에 살짝 안도의 빛이 스쳤다.

“친구요? 아, 인혁 씨는 친구를 찾아서 이곳까지 오신 거군요?”

“아니요. 여기 머문 지 두 달이나 됐으니 친구가 생길 만도 하죠. 하하.”

신영은 인혁이 예전에 비해 자주 웃는다고 생각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신영은 입고 있던 스웨터의 앞자락을 두 손으로모아 쥐었다. 구월 중순의 저녁 바람이 신영의 목덜미를 선뜻선뜻 스쳤다.

피자 가게 앞에는 편백나무 한 그루가 가지마다 매달린 열매들이 버거운지바람에 느리게 일렁거렸다. 인혁이 가게로 들어서자 아랍 지역에서 온 듯한젊은 남자가 인혁에게 다가와 인혁을 억세게 안았다. 남자가 신영을 보자 슬쩍 눈짓을 하며 물었다.

“부인? 여자 친구?”

신영이 재빨리 스웨덴어로 말했다.

“아니요, 난 기혼이고 인혁은…… 오래전에 알던 사람이에요.”

남자는 여전히 유쾌한 표정으로 두 팔을 앞으로 죽 내밀었다.

“오우, 웰컴 웰컴!”

인혁이 카운터에 서서 남자와 영어로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스파게티 까르보나라와 스페셜 파스타를 주문하고 나서 신영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저 친구 스웨덴어 잘 못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 난민 심사 과정에있다는데 항상 저렇게 밝아요.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 난 그게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식사를 마친 후에 두 사람은 말린 순록 고기와 맥주를 들고 광장 쪽으로내놓은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신영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별문제 없이 살아왔던 사람처럼 인혁이 말하는 그의 학업과 성취, 그리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긴 이야기를 들었다. 피자 가게가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인혁이 광장을 지나 호텔까지 신영을 바래다주었다. 신영은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며 두 사람이 희숙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인혁은 신영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신영 씨는 잘 사셨던 것 같네요.그것이 전부였다. 인혁은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혐의는 벗은 상태지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일과 사람들을 피해 스웨덴의 숲으로 숨어든 셈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광장으로 나섰을 때 피자 가게 앞 테이블에 축구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앉아있다가 신영을 보고 손짓했다. 그 무리들 속에 인혁도 있었다. 신영이 피자 가게를 향해걸었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은 신영이 그들 앞에 서자 한 명씩 악수를청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말했다. 신영이 빈자리를 찾아 앉자 자신을 피자가게 주인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말했다.

“인혁의 오래전 친구라고 들었어요. 스톡홀름에 살고 있다면서요?”

“네, 이곳에 송이버섯을 따러 왔어요.”

신영의 말이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는지 사람들이 갑자기 웅성대기시작했고 신영의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신영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용감하네요. 버섯 때문에 이렇게 멀리까지 오다니…… 예전에 송이버섯은 우리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냥 버려지는 버섯이었어요. 그 버섯은 사실 맛있는 버섯이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때가 2000년도였나.일본에서 식물학자들과 장사꾼들이 이곳에 들어와서는 마치 보물섬을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었죠.”

음료수를 마시는 사람들 틈에서 혼자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던 남자가 수줍은 둣 입가에 웃음을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축구 셔츠를 어깨까지 끌어올려 팔뚝에 새겨진 버섯 문신을 드러내 보였다.

“그때 내가 무려 삼십 킬로를 땄단 말이에요. 일본 상인이 그 자리에서모두 샀는데 뜻밖에 정말 큰돈을 벌었었죠. 이건 그날을 기념해서 새긴 송이버섯 문신이에요.”

남자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이 동네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고 남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속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여자가 말했다.

“요즘은 이곳까지 송이버섯을 사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버섯을 따면 이건세상에서 제일 비싼 버섯이다 생각하면서 우리끼리 그냥 먹어요. 이것으로실제로 수익을 얻지는 못하니까요.”

영어로 천천히 말하던 사람들이 송이버섯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빠른 스웨덴어로 대화를 시작했고 그 틈에 인혁이 신영 쪽으로상체를 기울이며 물었다.

“정말 숲으로 들어갈 건가요?”

“그럼요. 여기까지 왔는데요. 인혁 씨는 어떠세요?”

“물론 좋지요. 제가 신영 씨를 이곳으로 부른 셈이니 숲은 제가 안내해야죠.”

인혁이 부른 것도 아니었고 안내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아무래도 이 지역의 숲은 신영이 혼자서도 몇 시간씩 돌아다니곤 하는 동네숲보다 깊을 것 같아 신영은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인혁은 세들어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인이 수리 때문에 방문할 것이라 열두 시까지는집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 열두 시 삼십분에 광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향했다

신영은 도톰한 조끼를 걸친 등산복 차림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를신고 다알리아 화분 앞에 서있었다. 얇은 잠바를 걸치고 중간 크기의 백팩을 멘 인혁이 신영의 앞에 서자 웃음을 터트렸다.

“덥지 않으세요? 그리고 등에 메고 있는 그 큰 배낭은 뭐예요?”

신영이 입가에 빙그레 웃음을 띠며 말했다.

“스톡홀름에는 송이를 살 사람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신영의 말이 끝나자 인혁이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가만히 신영을 들여다보았다.

“진담이에요? 이건 완전히 반전인데요. 예전엔 얌전하기만 한 사람이었던것 같은데.”

신영은 대꾸 없이 자신의 등산화를 내려다보며 신발 끈이 단단히 묶여 있는지 확인했다.

잠시 뜸을 두고 인혁이 물었다.

“그 사람은 요즘 뭐 합니까?”

인혁이 말하는 그 사람이 희숙을 말하는 것인지 수십 년 전 한두 번 마주친 적이 있는 동진을 말하는 것인지 몰라 신영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그 친구랑 결혼하신 거 맞죠? 신영 씨를 고생 많이 시켰나 보네요.예전에는 진정한 공주과였는데.”

신영이 고개를 살짝 돌려 화분의 다알리아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인혁을 바라보았다.

“그런 얘기를 최근에 참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변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제 그만 출발합시다."

마을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숲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송이버섯이 눈앞에 펼쳐져야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걸으면서 두 사람은 단 하나의 송이버섯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신 신영의 집 근처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능이버섯과 그물버섯이 어쩌다 한 번씩 눈에 들어왔다. 신영이 노란 버섯을 발견했을 때 손끝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는 꾀꼬리버섯이에요.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면 아이들 노래에도 있거든요.”

‘꾀꼬리버섯을 본 적이 있나요 얼마나 예쁘다고요.’

신영이 고개를 까딱이며 노래를 부르자 인혁이 하하 웃었다.

“내가 대학 때 잠깐 휴학하고 강원도 산속에 들어가 살았던 적이 있어요.약초꾼들과 함께 버섯을 따러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보았던 버섯 같네요. 워낙 샛노란 버섯인데다 이름도 특이해서 기억에 남아요.”

신영은 희숙하고만 붙어 다녔던 그때를 떠올렸다.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동진은 신영의 배웅을 받으며 군대에 갔고 인혁은 희숙에게 작별을 고하고 산으로 갔었다.

“그때 왜 떠났어요?”

“현실도피였죠.”

“그때도?”

신영이 아차 싶어서 인혁의 표정을 살폈지만 인혁은 개의치 않아 했다.

“그때 아버지가 한창 잘나가다 사고를 치는 바람에 고소를 당했어요. 그일은 결국 아버지가 여자의 남편에게 거액의 돈을 물어주는 것으로 끝났지만 그 상황이 아버지에게도 너무 힘들었는지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더라구요.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살다 보면 인생에 함정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숲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쓰러진 나무와 크고 작은 개울들 그리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여기저기에서 길을 막았고 날벌레들이 옷과 모자 위로 날아올랐다. 큰 날벌레들은 모자를 뚫고 머리를 쏘기도 해서 신영은 가끔 모자를 벗어 들고 날벌레를 쫓아야 했다. 성가신 것은 벌레만이 아니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촘촘히 쳐져 있는 거미줄이 수시로 얼굴과 옷에 달라붙어 끈적하게 따라다녔다. 신영은 노를란드의 숲이 동네 숲처럼 만만할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안이함을 자책했다. 신영이 불안한 마음으로 주변의 형세를 둘러보고 등산복 주머니 안의 나침반을 만지작거리며 이제 그만 돌아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에 거짓말처럼 느닷없이 드넓고 평평한 소나무숲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나무 숲 입구에 선 신영의 코끝으로 설핏 바람결에어떤 향이 실려 왔는데 그것은 소나무의 향기 같기도 하고 흙의 냄새 같기도 하면서 그것들과는 구별되는 두 가지의 향기를 적당한 비율로 섞어놓은것 같은 독특한 향이었다. 송이버섯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신영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송이버섯의 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영은 허리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천천히 소나무 밑동들을 훑어 나갔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흙 밖으로 뻗어 나온 뿌리들 틈으로 이끼를 살짝 밀어 올리고 있는 무엇인가가 신영의 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뛰었지만 신영은 서두르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뿌리 주변을 덮고 있는 이끼와 마른 솔잎을 걷어냈을 때 드디어 사진으로 보았던 작은 송이버섯이 앙증맞은 모습을 드러냈다. 신영은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럽게 버섯을 뽑아올렸다.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던 인혁이 소리쳤다.

“뭐가 보여요?”

신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송이버섯을 치켜들어 보였다. 인혁이 잔가지들을넘으며 빠른 걸음으로 소나무 숲을 향해 왔다.

“오늘따라 그렇게 숨어있어서 내가 다 미안하더니. 정말 축하합니다.”

신영은 배낭에서 휴대폰을 꺼내 송이버섯과 주변의 풍경을 찍었다. 신영은 혹시라도 모르는 사이에 송이버섯을 밟게 될까 봐 조심조심 발을 옮기며버섯들을 찾아냈고 뽑아낸 버섯들은 그 자리에서 손질해 배낭 안에 차곡차곡 담았다. 인혁은 자신의 백팩이 가득 차자 나머지 버섯들을 신영의 배낭에넣기 시작했다. 자루를 몇 개 들고 왔더라도 그것들을 다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송이버섯이 드넓은 소나무 숲에 퍼져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신영이 불룩해진 배낭을 짊어지고 일어섰을 때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인혁이 서로의 짐을 바꾸자고 했지만 신영은 고집을 부렸다.

숲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는 것을 감안해도 해 지는 때까지 네 시간이 남아 있었고 숲을 벗어나는 데에는 빠른 걸음으로 두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쪽으로만 가면 안전하게 숲을 빠져나갈 수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길이라는 것이 없는 숲을 빠져나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낭의 무게에 눌려 점차 무릎과 허리가 아파오기시작했다. 신영의 걸음이 자꾸 느려지자 인혁이 신영의 배낭과 자신의 백팩을 바꾸자고 했고 신영은 하는 수 없이 어깨에서 배낭을 내려 인혁에게 건네주고 인혁의 백팩을 받아 들었다. 나침반을 계속 보며 걸었는데도 웬일인지숲의 입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인혁은 나무로 가려진 하늘을 수시로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어느 방향의하늘에서 해가 지는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었다. 아무리 걸어도 마냥 그 길이 그 길인 것 같아 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높이 올라가면 멀리 마을이 보일까 싶어 풀숲을 헤치고 높은 지대로 올라가 보았지만 하얗게 말라버린 이끼들과 여기저기 뒹구는 짐승의 뼈만 눈에 띌 뿐 사면은 오직 나무들뿐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낮은 지대로 내려가나침반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한참 동안 걸었다. 숲속에 어둠이 성큼성큼 내려앉았다. 여기저기 쓰러진 나무의 뿌리가 우뚝우뚝 서있는 짐승의 모습처럼 보이기 시작하더니 숲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신영은 넓적한 바위 앞에 쪼그리고 앉아 등산복의 지퍼를 내리고 목에 걸린 호루라기를 꺼내 들었다. 짧게 호루라기를 불자 어둠 속에서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날아올랐고 짐승들이 땅을 두드리며 빠르게 움직였다.

“소용없어요.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이 나아요.”

신영이 어둠 속에서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신영의 사과에 아무대꾸가 없던 인혁이 한참 만에 입을 열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곳으로도망쳐 이렇게 지내고 있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숲에 갇힌 두려움과 인혁에 대한 미안함으로 잔뜩 주눅이 든 신영이 젖은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낸다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도망도 한 방법이었을 텐데… 너무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허기와 무서움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더 강도 높게 신영의 몸과 정신을 짓눌렀다. 신영은 배낭을 끌고 옆걸음을 쳐서 인혁의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인혁의 어깨가 떨리는 것이 느껴져 신영은 더듬거리며 배낭을 열어 호텔에서 들고 나온 지역신문을 꺼내 인혁에게 건네주었다. 이따금 검게치솟은 나무들 사이로 뭔가가 빠르게 이동했고 곤충들이 팔과 무릎 위로기어올랐다. 밤이 깊어지면서 숲의 여기저기에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점점더 가까이 다가왔다. 신영은 우렁우렁한 물소리 속에서도 곰이나 늑대가 금방 나타날 것처럼 주변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인혁이 자주 자리에서일어나 한참 동안 팔다리를 움직이고 나서 다시 신영 옆에 바짝 붙어 신문으로 어깨를 덮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밀려드는 졸음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 싶을 때 숲속에 푸르스름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푸른빛이 희뿌옇게 변할 때 인혁이 다소 느긋해진 자세로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온이 조금만 더 내려갔으면 구월 중순에 얼어 죽을 뻔했네요.”

신영이 차곡차곡 접은 신문을 배낭에 끼워 넣으며 말했다.

“제가 너무 무모한 짓을 하는 바람에……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봐 주겠다고 해 놓고는 인혁 씨만 힘들게 만들었어요.”

인혁이 움직임을 멈추고 신영을 내려다보았다.

“누구한테 뭘 알아봐 줘요?”

“아니 그냥…… 모르는 사이에 인혁 씨 걱정해 주고 힘내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짧은 순간 인혁의 눈빛에 반갑고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이 참…… 좋은 일로 유명했어야 했는데…… 잘 지내고 있죠?”

“그럼요. 한가하게 남 걱정이나 하면서 잘 지내고 있지요.”

두 사람은 칠흑 속에 밤을 새운 사람들 같지 않게 서로를 마주 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신영이 허리를 숙여 배낭을 들어 올리려 할 때 인혁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송이버섯은 그냥 버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오늘 몇 시간을 걸어야 마을을 찾을지 알 수 없거든요. 그걸 메고 출발해 봤자 얼마 걷지 못해 포기하게 될 거예요”

지난밤의 공포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지금의 뻣뻣해진 몸과 극심한 허기,그리고 밀려드는 졸음을 생각한다면 인혁의 말대로 송이버섯은 모두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신영은 그럴 수 없었다.

“걷다가 정 힘들면 그때 버릴게요. 당분간은 견딜 만할 것 같거든요.”

“우와, 정말 지독하시네.”

인혁이 배낭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아섰다.

빛이 점점 더 환하게 숲을 밝혔고 풀과 나뭇가지에 맺혀 있는 물기 위로해가 비치자 눈이 닿는 모든 곳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영은 얼마 걷지 않아 배낭을 덤불 속에 내려놓고 말았다. 어깨가 부서지고 발목이 뒤틀릴 것 같았다. 신영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튼실한 배낭을몇 번이나 돌아보며 한참 동안 걸었을 때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혁이 제멋대로 뻗어있는 낮은 가지들을 성큼성큼 뛰어넘으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달렸고 신영은 등산복 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입에 물고 있는힘을 다해 불었다. 아침 산책을 나온 사람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을 때 신영은 마을 입구까지 불과 십오 분 거리를 두고 밤새 추위와 공포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호텔 레스토랑에는 소금에 절인 연어와 삶은 계란, 베이컨, 소시지, 요구르트, 오믈렛, 빵 등이 놓여 있었지만 신영은 허기보다 졸음을 더 견딜 수 없어 우유 한 잔에 빵 한 조각을 뜯어 먹고는 비척비척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객실 문을 열자마자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잠에서 깨어났을 때 목 안이 따끔거리고 몸의 마디마디가 끊어질 듯 아프고쑤셔왔다. 신영은 여행 가방을 열고 얇은 스카프를 꺼내 목에 둘렀다. 그리고 침대 위에 팽개쳐져 있는 등산복을 집어 들고 주머니 속에서 전화기를 꺼낸 다음 충전기에 연결해 콘센트에 꽂고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전화벨이계속해서 울렸을 때 잠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는 데까지 얼마 동안의 시간이걸려야 했다.

“응……”

“당신 목소리가 왜 그래?”

“몸살"

동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니 왜 또 몸살에는 걸리고 그래? 아침부터 그렇게 가버리더니 기껏 혼자 가서 앓고 있는 거야? 사람 걱정하는 것도 생각해야지. 전화기는 내내 꺼놓고 말이야.”

신영은 뭐라고 대꾸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목 안이 바늘로 찔리는 듯따끔거렸다.

“그래서 지금 어디 있어?”

“노를란드”

“뭐?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갔단 말이야? 대체 거긴 왜 갔는데?”

신영은 웃고 싶었지만 잠긴 목에서 웃음소리 대신 컥컥 소리가 났다.

“송이버섯”

“그걸 왜?”

동진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동진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가 여러 가지로 참 미안하네……”

신영이 목의 통증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가……”

동진은 전화를 끊은 잠시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오후 두 시 기차를 예약했다고 했고 신영은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를 받치며천천히 화장대로 걸어가 화장대 위에 놓인 호텔 안내 책자를 찍어 송이버섯사진과 함께 동진에게 전송했다. 그리고 인혁의 페이스북으로 들어가 오늘밤에 동진이 도착할 것이고 내일 아침에는 스톡홀름으로 출발할 것이라는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인혁이 자신은 예정보다 일찍 한국으로 돌아가기로했으며 한국과 연락할 일이 많아 내일 나와 보지 못할 것 같다고 답을 보내왔다.

신영은 동진이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잠이 든 건지 깨어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아무렇게나 쓰러져있는 나무뿌리들과 사진 속에서 걸어 나오는 붉은 갈색의 곰, 그리고 날카롭게 쏘아보는 늑대의 눈동자를 어지럽게 보았다. 그리고 우렁찬 개울물 소리와 함께 소나무 뿌리 틈에서 일제히 이끼를 뚫고 몸을 일으키는 수백수천의 송이버섯들을 보았다.

동진이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 신영의 여행 가방과 배낭 등을 들고 내려오는 동안 신영은 천천히 광장을 가로질러 피자 가게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이 신영을 보자 손을 흔들거나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전날 송이버섯의 수익에 대해 말했던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제 버섯 딴 얘기 들었어요.”

신영이 간신히 목소리를 내었다.

“길도 잃어버렸었죠. 이제 스톡홀름으로 가야 해서요…… 모두 건강하세요.”

팔뚝에 버섯 문신을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빨리 회복되기 바라며 내년에는 함께 숲에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앉아있던 사람들이고개를 끄덕이며 저마다 짧은 인사말을 건넸다. 자동차에 짐을 싣고 돌아오던 동진이 그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신영을 지켜보았다.

“저 사람들과 숲에 같이 갔었어? 그럼 나도 인사를 해야지.”

신영은 이 마을에서 인혁을 만나 송이버섯을 함께 땄으며 어둠과 두려움을 함께 버티고 마침내 동네 사람에게 발견되어 숲에서 나왔다는 말을 동진에게 하지 않았다. 그 얘기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것이어서 부어오른 목이 가라앉은 다음에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내년에 해.”

동진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신영을 바라보았다.

“내년에 또 오겠다고?”

신영이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응, 또 오라잖아.”

주차장을 빠져나간 자동차는 몇 분 지나지 않아 국도로 들어설 수 있었다. 여전히 어깨가 욱신거리고 다리가 뻐근했지만 신영은 운전하는 동진의옆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등을 기대었다. 끊임없이 자동차 옆으로 다가왔다 사라지는 나무들 사이로, 언제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길의 끝자락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마침내 집이 가까워질 것이었다. 신영은 돌아가는 길에도 야생 곰의 사진과 늑대 머리를 보며 점심을 먹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는 순간에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소름 돋는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었다. 배낭 안에 가득한 송이버섯의 향기가 배낭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자동차 안에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