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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중고등)] 아이단 + 랴만 = 나
작성일
2021.02.01

[우수상 - 청소년글짓기 부문]


아이단 + 랴만 = 나


홍 찬 양 / 아제르바이잔


나의 인생 14년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불의 나라 아제르바이잔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5년 반 살았고 한국에서 1년 반, 그 후 쭉아제르바이잔이라는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미국에서 유치원(kindergarten), 한국 상주에서 유치원 그리고 이곳의수도 바람의 도시 바쿠에서 초등학교를 거처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꿈많은 소녀다.이곳 아제르바이잔 공립학교들은 이름이 따로 없고 각 학교마다 번호가 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236번 학교다. 과거 공산국가 러시아의 식민지 영향인 듯하다.이곳 학교는 아제르바이잔어(아제리어)로 수업하는 반과 러시아어로 수업하는 반으로 나뉜다. 나는 1학년 때부터 러시아 반에서 공부하고 있다.아제리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이곳뿐인데 러시아어는 많은 나라들이사용하고 있고, 글로벌 시대에 러시아의 영향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은 점을 고려해 부모님이 러시아 반으로 정해 주셨다.이곳 학교는 1학년 때 같은 반 아이들이 4학년까지 같이 올라가고, 5학년부터 11학년 졸업할 때까지 같이 올라간다.몇 년을 똑같은 교실, 똑같은 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지루할 때가 있고새로운 환경과 변화가 그리울 때가 있다.

반면에 새로운 선생님 또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바뀌는 반 친구들과 1년에 한 번씩 서로를 알아가고 적응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 없는 장점이 있다. 또 친구를 깊이 사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방식이마음에 든다.

나는 이곳 현지 학교를 다니면서 아주 친하게 지내는 절친 두 명이 있다.‘아이단’과 ‘랴만’이다.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키가 커서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그때 짝꿍이아이단이란 친구다.처음 아제르바이잔 학교에 다니다 보니 모르는 게 많아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언어가 안 통하는 나를 아이단은 눈치껏 티 나지 않게 챙겨주곤했다.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눈이 아주 크고 우리 또래 아이들이 감히 흉내 내지 못할 패션 감각이 뛰어난 친구였다. 1학년 때부터 신발과 옷, 배낭을 늘 색깔을 맞춰 입고 학교에 왔다. 우리 학교 전체를 통틀어 단연아이단의 패션 감각은 최고였다.학교에서의 모습도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행동이 성숙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봐도 참 여성스러운 모습이 아이단에게 있었다. 그런 아이단을 우리 반 여자아이들은 좋아했고 같이 짝꿍을 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반에서 인기가 많고 주목받는 아이단이 나에게 관심이 많고 친하게 지내는 것을 우리 반 여자아이들은 부러워했다.한국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아이단에게 있었던 거 같고 방탄소년단을좋아 한다는 공통점이 우리에게 있었다.

아이단과 나는 4학년 때까지 계속 짝을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빠나 엄마들이 데리고 집으로 가는데 아이단은 늘 할머니 아니면 할아버지가 아이단과 언니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4년 동안 한 번도 아이단 엄마나 아빠를 본 적이 없다. 하루는 쉬는 시간에 아이단에게 물었다.“왜 너의 엄마와 아빠는 한 번도 학교에 안 오니?”아이단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그리곤 이렇게 말했다.“우리 엄마는 매일 일하러 직장에 가야 하기 때문에 바빠서 학교에 올시간이 없어. 학교 끝나면 언니랑 할머니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숙제하고놀다가 해가 지는 저녁 엄마가 퇴근할 시간에 집에 가.”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아이단은 내 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때 아빠가 엄마를 자주 때렸어.”“그래서 언니와 나는 아빠가 무서웠어.”“어느 날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도 다투고…….”“지금은 아빠와 같이 살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아이단의 얼굴은 빨개졌고 슬퍼 보였다. 나는 그날 집에와서도 아이단이 학교에서 나에게 한 말들이 계속 떠올랐다. 저녁을 먹을때 아빠와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아이단 이야기를 했다. 이곳 사람들은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들이 많다고 아빠가 말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아이단으로 나의 생각이 가득했다.

아침에 잠에서 눈을 떴다.눈뜨자마자 아이단이 떠올랐다.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나에게만 아이단의 어두운 부분을 들려준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것을 계기로 아이단과 더 깊은 친구 관계로 발전한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좋았다.

나의 또 다른 절친의 이름은 랴만이다.아이단의 집은 학교 뒷문 쪽으로 가고 나와 랴만은 학교 정문을 지나가는 같은 방향이다. 랴만과 나는 집에 오는 길이 같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랴만은 아이단과 달리 털털하고 씩씩한 성격이다. 키도 우리 반에서 제일 크고 정의로운 성격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남자아이들과도 싸운적이 있다.이곳 여자아이들은 남의 집에 잘 놀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랴만집에 자주 놀러가고 숙제도 같이 했다. 랴만 엄마는 나를 예뻐했고 갈 때마다 맛있는 아제르바이잔 음식을 만들어 같이 먹고 집에 갈 때 조금씩싸주기도 했다.랴만 엄마는 우리 아빠보다 키가 크고 이슬람 여자들이 하는 히잡을늘 썼다. 랴만 아빠는 러시아에 돈 벌러 가서 가끔씩 집에 온다고 랴만이말했다. 그러나 나는 1학년부터 7학년이 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랴만 아빠를 본 적이 없다. 또 랴만이 아빠에 대해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거의없었던 거 같다.

아이단과 랴만은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다. 학교에서도 둘은 별로 얘기를 하지 않는다. 아이단과 랴만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친하게 지내면좋을 것 같아 다리 역할을 하려고 하루는 수업이 끝난 후 학교 옆 분수공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그런데 아이단과 랴만은 서로 어색해하고 별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마치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않을 거 같고, 하얀색과 까만색같이 둘에게는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내가 좋아하는 아이단과 야만이 나와 함께 셋이서 절친 삼총사로 지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날은 아무런 소득 없이 피곤하기만 한 하루였다.

아이단은 4학년 중간에 시내로 전학을 갔다. 아이단보다 두 살 많은언니가 학교생활을 힘들어 해 다른 학교로 전학 갔는데 엄마의 강요로아이단도 같이 가게 됐다.아이단은 언니가 학교생활이 왜 힘들었는지는 나에게 말하지 않았다.나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좋은 일, 자랑거리는 부풀려서도 말하지만 안 좋은 일은 잘 드러내 말하지 않는다. 그냥 짐작만할 뿐이다. 아이단이 전학 간 이후에도 가끔 주말에 나는 아이단 집에 놀러가 시간을 같이 보내곤 했다.그러나 아이단은 지금까지 한 번도 우리 집에 온 적이 없다.

6학년 여름방학 전쯤 랴만을 경험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는 수업을마치고 함께 학교 건물을 지나 집으로 오고 있었다. 분수 공원을 지나다가 랴만이 멈춰 서더니 나에게 말했다.“누가 학교 건물 위에서 너의 배낭에 물감을 뿌렸어.”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살폈다.핑크색 배낭에 파란색 물감이 튀긴 자국들이 있었다.나는 몹시 짜증과 화가 났다.“누구야!!”“누가 이런 거야 도대체…….”“랴만 너는 봤어?”“아……아니 못 봤어.”집에 와 저녁에 엄마와 아빠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아빠 생각에는 랴만이 학교 건물 지날 때 물감이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봤으니 누가 그랬는지도 봤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랴만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하셨다.만일 랴만이 모른다고 하면 아빠가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에게 말하고물감 뿌린 아이를 찾겠다고 하셨다.그러나 아빠가 직접 나서면 일이 커지니 랴만에게 전화해 너희 둘이 해결을 해보라고 하셨다.

랴만에게 전화했더니 랴만은 누가 그랬는지는 못 봤다고 말했다.그러나 랴만답지 않은 망설이는 듯한 전화 목소리였다.나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물었다.랴만은 내일 학교에서 얘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나는 랴만이 뭔가 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첫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랴만이 나의 손을 붙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2층으로 끌고 올라가 5학년 반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누군가를 찾는데 순간 한 남자아이가 우리를 보자마자 교실 뒷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랴만도 그 남자아이 뒤를 쫓아 뛰어갔다. 나도 덩달아 랴만의 뒤를 쫓아 뛰어가다가 랴만의 뛰어가는 뒷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덩치가 큰 랴만이 뒤뚱뒤뚱 엉덩이를 흔들며 뛰어가는 모습이너무 웃겼다. 랴만은 정말 달리기를 못한다.그 아이는 남자 화장실까지 도망갔다. 잠시 머뭇거리던 야만이 바로 남자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가 잠시 후 남자아이 팔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 있던 나에게 빨개진 얼굴로 끌고 와 빨리 사과하라고 그 아이를다그쳤다. 주변에 있던 남자아이들이 다 우리를 쳐다봤다.그 남자아이는 쑥스러운 듯 바닥을 쳐다보며 머뭇거리다 작은 소리로“미안하다”고 말하곤 바로 자기 교실로 도망치듯 달려갔다.나와 랴만도 다음 수업이 시작되어 아래층 우리 교실을 향해 달렸다.수업 하는 동안 나는 랴만을 자꾸 쳐다보며 혼자 웃었다. 랴만에게 고마워해야 하는데 뒤뚱뒤뚱 뛰어가던 랴만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웃음이 계속 나왔다.남자 화장실까지 범인을 잡으려고 들어가다니…….

수업이 모두 끝나고 학교 건물을 지나면서 물감을 뿌렸던 2층을 한 번쳐다봤다. 그리고 랴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랴만은 아무 표정 아무 말도 없이 걷기만 했다.고마운 마음으로 랴만이 좋아하는 도내르를사주려고 도내르 가게 앞에 멈췄는데 랴만은 그냥 지나쳐 걷기만 했다.분수 공원을 지날 때쯤 랴만은 멈춰 서서 나에게 말했다.“어제 너에게 물감 뿌린 남자아이는 내 사촌 동생이야. 외삼촌 아들…….”이곳 사람들은 친척들이 한 동네에 많이 모여 산다.“어제 물감 묻은 배낭을 보며 화를 많이 내던 너의 모습을 보며 사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어. 하필 사촌 동생이 한 짓이라…….”“그리고 밤새 고민했어.”“사촌 동생의 잘못을 너에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그런데 넌 외국 사람이지만 내 소중한 절친이기 때문에 너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미안해. 이제야 말해서…….”나는 랴만의 손을 꼭 잡았다.“아니야.”“낯선 나라에서 살면서 좋은 오빠 같은 친구가 있어서 넘 좋아.”“너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내가 너에게 고마워해야 해.”랴만은 그제야 씩 웃었다.

아이단과는 전학 간 이후로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아이단은 매년 내 생일을 기억하고 정성스런 선물을 준비해서 준다. 반면에 거의 매일만나는 랴만은 한 번도 내 생일을 기억한 적이 없다.내가 전화해서 “오늘 내 생일이야.”그러면 “아이고 어제까지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깜박했네.”늘 그런 식이다. 그래서 항상 랴만 선물은 생일 다음 날 받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아이단과 랴만. 내 욕심인 절친 삼총사는 이루지 못했지만 아이단과 랴만은 나의 아제르바이잔 생활에 큰 위로와 힘이 되는 절친들이다. 내가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치 천사같이 내주변에 머무르며 자신들이 손해가 되더라도 나를 도와주는 사랑스런 친구들…….이 글을 쓰며 아이단과 랴만이 더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단과 랴만을 합친 모습이 나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아이단+랴만=나 ㅎㅎ어른이 되어서도 절친으로 남을 수 있는 오랜 친구들이었으면 좋겠고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가는 우정이 우리에게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