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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엄마를 닮았네
작성일
2022.01.12

단편소설 - 우수상

엄마를 닮았네

박 시 드 니 [덴마크]


아침 8시가 넘었지만 창밖은 아직도 칠흑같이 어두운 밤, 거실 안의 전등불은 유리 창에 녹아들어 정원 너머로 긴 손을 뻗친다. 담벼락 넘어 풀숲엔 거대한 나무 한 그루 가 무거운 어둠을 머리에 이고 우두커니 서 있다. 그 나무는 수십 개의 팔을 벌리고 어숨푸레 눈을 비비며 기지개 켤 준비를 한다. 어제 날짜로 동지가 지난 올 12월은 한 달 동안의 일조량이 겨우 두 시간 남짓이라고 아침 라디오 뉴스가 전한다. 이맘때 쯤 이면 대략 아침 9시쯤 동이 터서 오후 3시 반에 해가 진다. 하지만 하루 종일 끼어있 는 짙은 구름은 두터운 암막이 되어 사람들에게 해님의 존재를 망각하도록 주술을 걸 고 있다.


솔미는 자신의 기억 장치를 검색해서 몇 년 전 1월 한 달 동안의 일조량을 끄집어 냈다. 11시간. 그 당시 한달 동안 최소의 일조량으로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올해 남은 마지막 일주일 동안의 일기예보를 보아하니, 아마도 올 12월은 일조량면에서 한 자리 숫자를 넘기기가 힘들어 보인다. 덴마크 역사상 한 달 동안 최소의 일조량 기록 을 깨버릴듯한 기세다.


그녀는 내심 멜랑꼴리해져서, 계절에 어울리는 동지 팥죽이나 해 먹을까 하고 잠 시 고민에 빠졌다. 한국에는 간단히 전자렌지에 데워먹을 수 있는 팥죽이며, 호박죽, 야채죽이 있고, 그 외에 거의 모든 음식들은 진공 포장되거나 냉동 포장으로 유통되어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든 전화 한 통이 면, 요즘은 전화보다는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언제든지 원하는 음식을 주문 할 수 있고 신속 배달을 해 준다. 집 현관 앞뿐 아니라 바닷가 해수욕장이나 한강 강 변 공원으로도 음식 주문이 가능하다. 최근 그녀가 한국에 갔을 때 친구의 가족과 함 께 바닷가에서 캠핑을 한 적이 있다. 그녀의 친구는 눈앞에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배경 삼아 생선회를 먹고 싶어 했다.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근처 생선회 배달 검색을 한 후 전화를 걸었다. “생선회 배달되죠?” 상대편에서 ‘예, 어디로 배달해 드릴까요?’ 하고 되물은 모양이었다. “정자 바닷가 공용주차장으로 와주세요. 얼마나 걸리나요?” “예, 그럼, 30분 후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친구는 약속대로 30분 후 바닷가에서 계 단 몇 개를 올라가서 주차장에 도착했다. 곧이어 스쿠터를 탄 배달원이 나타나서 친 구에게 생선회를 전달해 주고 친구의 카드를 받아 결제를 한 후, 다시 스쿠터를 타고 사라졌다. 역시, 한국은 진정한 배달의 민족인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덴마크에 음식 배달 문화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Wolt라는 회사명이 써 진 네모난 하늘색 보온 가방을 등에 멘 배달원들이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는 모 습을 대도시 중심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덴마크의 대표적 배달음식은 피자이다. 한 국에서의 대표적인 배달음식이 무엇일까 그녀는 궁금해졌다. ‘아마도 치킨? 짜장면?’ 피자는 분명히 아닐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알래스카에선 헬리콥터로 피자를 배달 한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그녀는 자전거 배달이 가장 친환경적이란 생각을 한다. 머지 않아 배달 산업에도 첨단 기술이 도입되어 작은 드론이 세계 구석구석을 날아다니며 배달을 할 것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한국이 아닌, 지구 반대편, 8시간의 시차 생활권에서 살고 있고, 이곳에서 한국 음식은 배달이나 쇼핑으로 해결 되는 게 아니라, 직접 손수 재료를 사고 다듬고 끓이고 볶고 조리를 해야만 한다. 한 번도 직접 동지팥죽을 끓여본 적이 없는 그녀는 열심히 유튜브 동영상을 뒤져서 동 지팥죽 만드는 법을 배우고 연구한다. 만드는 법도 천차만별, 누구는 팥을 밤새 불리 라 하고, 누구는 불릴 필요 없이 한번 끓여서 첫 물을 따라 버리고, 새 물을 받아서 압 력솥에 끓여서 믹서기에 갈면 된다 한다. 찹쌀가루 반죽을 해서 새알을 직접 빗어 하는 사람도 있고, 간편하게 냉동 새알을 구입해서 넣으라는 사람도 있다. 불린 찹쌀을 넣으란 사람도 있고, 불린 맵쌀도 섞어 넣으라는 사람도 있다. 모든 레시피에는 소금 과 설탕을 기호에 맞게 첨가하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녀가 팥을 사려면 시내에 있 는 아시안 상점까지 다녀와야 하고, 그곳에서 살수 있는 팥은 모두 중국산이다. 찹쌀 가루는 태국산이거나 베트남산이고, 한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습식 찹쌀가루와는 전 혀 다른, 봉투를 열자마자 먼지처럼 하얗게 날아가는 완전한 건식 가루다. 압력밥솥 이 없는 그녀는 일반 냄비로 몇 시간동안 팥을 끓일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곳엔 전 문 한국 슈퍼마켓은 아직 없지만 최근 한류의 여파로 몇몇 기본적인 한국 식품을 이 곳 아시안 상점에서도 살 수 있긴 하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일의 프랑크푸 르트에 있는 Kmall이라는 한국 마트에서 한국 식품을 주문했었다. 인터넷으로 주문 을 하고, Paypal로 대금 결제를 하면 독일에서 덴마크로 택배가 도착하는 데에 이틀 이 걸리곤 했다.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팩을 넣어 아무리 포장을 잘했다 해도 이틀 후 택배가 도착했을 때는 모든 냉동식품이 해동이 된 상태였고, 그녀는 며칠 동안 부지 런히 해동된 냉동식품을 혼자서 소모하느라 무진장 애를 썼었다. 그녀는 팥빙수용 통 조림을 사서 물에 넣어 끓이다가 건식 찹쌀가루를 풀어 넣어 되직하게 편법적인 팥죽 을 쑤어 볼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결국 팥죽 생각은 접어버렸다.


한국에 다녀온 지 겨우 나흘이 지났고,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그녀는 오후 4 시면 핸드폰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한국시간으로 치면 밤 12시다. 한 시간여 유튜브 채널을 뒤적이다 오디오북을 읽어주는 채널에 고정시키고, 책 읽어주는 소리 를 자장가 삼아 사르르 잠에 빠져든다. 잠에 빠져든지 두 시간쯤 지났을까? 따르릉따 르릉 울려대는 전화기 소리에 놀란 그녀는 시공간의 개념이 뒤죽박죽된 채로 그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깜짝 놀란 한 마리 닭처럼 푸드득거리며 날아올라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핸드폰 창에는 발신자 모름 표시가 들어왔다. 그 녀의 다른 모든 친구들은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이름으로 발신자가 뜨지만, 단 한 명, 발신자 모름이 뜨는 친구가 있다. 단 한 명이기 때문에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발신자 모름 표시는 이제 그녀에겐 친구들 중 유일하게 발신자 표시를 거부하는 마틴이라고 인식이 되어있다. 개인 사생활 보장을 철저히 옹호하는 그 친구는 본인의 전 화번호 표시를 극구 부인하여 발신자 번호 보호신청을 계속 유지해 왔다.


“여보세요?” 그녀가 답했다.


“어? 벌써 잠자는 거야?” 마틴은 그녀가 아직 시차 적응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녀의 잠에서 깬듯한 부스스한 목소리가 언짢은 듯 하다. 저녁 8 시도 채 안 된 초저녁에 잠자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질타하는 듯 하다. 야행성인 그 친구는 새벽녘이 되어서나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그에게 저녁 8시는 한낮과 같은 시 간이다. 친구이기 보다는 덴마크의 유일한 가족과 같은 그의 존재는 그녀에게 항상 힘이 되고 위안이 되어왔다.


그녀에게는 하나의 모토가 있다. ‘기대를 하지 말 것! 기대 뒤엔 항상 실망이 따르 니까’. 하지만, 가끔씩은 그 모토를 잊고 기대도 한 번씩 해 본다. 그녀는 며칠 전 한 국에서 돌아올 때 공항으로 픽업해 줄 만한 친구를 모색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일 년에 한 두번씩 꼭 다녀오는 한국 여행, 항상 주말에 들어오는 비행기 편을 선택했었 다. 주말엔 모두들 쉬는 날이기 때문에 공항으로 픽업해 줄 친구를 찾기가 쉬운 편이 었다. 하지만, 이번엔 목요일 밤 한국을 출국해서 금요일 새벽 암스테르담 도착 후 비 행기를 갈아타고 금요일 오전에 덴마크로 들어오는 여정이었다. COVID-19 팬데믹 으로 매일 운항하던 비행기편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친구들은 근무 중이라 서 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 히든카드를 뽑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마틴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사정 얘기를 하고 공항으로 픽 업을 부탁했다. 그녀는 거절의 답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터라 그의 반응 에 사뭇 놀람을 금치 못했다. 한국에서 덴마크로의 먼 여행길, 비행기 안에서, 또 공 항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을 그녀에게서 혹시라도 COVID-19 감염이 되지 않 을까 걱정이 앞선 마틴은 그녀에게 택시 타기를 권고했고, 대략 50-60만원의 택시 비 중 기꺼이 20만 원을 보조해 주겠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 대신으로. 빠듯한 살림에 알뜰살뜰 살림꾼으로 소문난 그로서는 엄청나게 큰 선심을 쓴 셈이었다. 그는 본인도 본인이지만, 팔순인 노모와 항암 치료 중이신 새아버지도 있고,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애인에게 감염의 위험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외부 접촉을 전 면 차단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 동안 그녀는 놀란 마음에 멍 해져 있었으나, 잘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마틴 또한 마 음이 많이 불편했는지, 전화 통화 후 연신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본인의 거절 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그녀는 서운한 마음도 잠시, 마틴이 가엽게 생각되었다. 괜히 그 친구에게 거절을 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겨주었다는 생각이 밀려 왔고, 이럴 줄 알았으면 부탁을 하지 않았어야 하는 건데 하고 후회가 막심했다. 잠 시 동안 그녀는 남에게 신세 지지 말고 그냥 택시를 타고 가는 게 배짱 편하겠다고 생 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비행기 요금과 택시요금이 저울대에 올랐 고, 거리 대비 턱 없이 비싼 택시요금에 그녀의 지갑 사정까지 비교해가며 곧 결단을 내렸다. 택시보다는 역시 친구의 픽업의 길을 택하겠노라고. 그녀는 결국 덴마크 도 착 후 공항에서 세 시간을 더 기다린 후에야 재택근무를 일찍 끝내고 공항으로 나와 준 중국 친구로부터 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틴은 그녀가 집에 도 착한 후에도 내심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하루에 한번씩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있다.


“모레 시간 어때? 같이 산책하면 좋겠는데, 너 주라고 우리 엄마가 구워준 크리스 마스 쿠키도 있고. 세시 삼십 분 전 괜찮니?” 마틴이 수화기 반대편에서 산책을 제안 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시간을 말할때, 또 숫자를 말할 때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표현 을 사용한다고 그녀는 항상 생각해왔다. ‘세시 삼십 분 전이 뭐람? ‘두시 반’ 이라던가 ‘두시 삼십분’이라 표현하면 알아듣기도 쉽고, 간단하고, 편할 텐데 말이지.’ 그녀에게 숫자는 더 헷갈린다. 예를 들어 89는 ‘팔십구’라 하면 될 것을, 여기에서는 ’구와 팔십’ 이라고 한다. 북구의 어둡고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모로 생각에 생각 을 거듭한 끝에 덴마크 사람들은 시간과 숫자를 어렵게 표현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으 리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해도 빨리 지는데, 좀 일찍 안될까?” 그녀는 어둠이 내리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오 고 싶어 했다.


“어, 그러면 내가 서둘러서 두시 삼십 분 전 까지 가도록 할게.” 그녀는 아직 덜 깬 잠 속에서 열심히 덴마크식과 한국식의 시계 읽는 방법을 계산해가며 약속시간을 머 릿속에 구겨 넣었다. ‘한시 반’으로.


“마을 입구에서 만날까? 아님, 마을 끝에 있는 교회 앞에서?” 그녀는 약속 장소를 제안했다.


“네가 편한데로 정해” 그는 결정의 공을 그녀에게로 던졌다. 그들의 최애 산책 코 스는 스캐너보 라는 소도시로 호수와 녹색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마을 입구에서 주 차공간을 확보하기에 어려움을 여러번 겪었던 그녀는 교회 앞 주차장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그날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지 않길 기대하면서.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다시 잠을 청하다가 잠이 쉽사리 돌아오지 않자 침대 옆 탁자에 놓아둔 전화기를 다시 손 에 집어 들었다. 전화기는 그녀에게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이자, 음악을 들려주 는 디스크자키이자, 날씨를 예보해 주는 기상대이자, 약속을 저장해 주는 비서이자, 뭐든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대답을 찾아주는 오라클이 된지 오래다. 그녀에겐 이제 전화기가 없는 일상생활은 상상할 수가 없다. 전화기는 그녀의 반려자가 되어 어디든 지 동행한다. 그녀는 전화기의 유튜브 속으로 잠수하는 것을 즐긴다. 그녀는 각국의 뉴스를 찾아본다. 온통 코로나 관련 뉴스다. 한국에서는 K-방역으로 COVID-19 유 행을 잘 제어하고 있지만, 최근 겨울로 들어서면서 매일 천여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정부에서는 사회 거리두기 3단계로의 봉쇄를 감행하느냐 여부에 촛점이 맞춰서 있다고 했다. 덴마크 또한 연일 4천 명에 육박하는 확진자 추세로 크리스마스와 새 해 연휴 동안 나라를 봉쇄하겠다고 경고했다. 영국에서는 유전자 전이로 확산이 더욱 더 빨라진 COVID-19 변이가 유행하고 있다며 유럽 내에서는 영국이 격리 대상국이 되었다. 독일 또한 연일 확진자 폭등세로 대 도시들이 봉쇄를 시작했다. 덴마크에 있 는 친구들은 그녀에게 한국이 더 안전하다면서 내년 봄까지 한국에 더 있다가 코로나 가 잠잠해지면 돌아오라고 충고를 했었다. 그녀는 팬데믹 관련 뉴스의 진실성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팬데믹을 등에 업고 나라마다 권력을 남용하고 개인의 이동할 권리를 제압하고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는 최악의 독재정치를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들이 앞을 다투어 국경을 봉쇄하고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다고 해서 과연 바이 러스가 통과를 하지 못할까?’ 그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지난해 가을 그녀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14일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140일처럼 이나 길게만 느껴졌던 자가격리 기간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요양원에 계시 는 엄마를 보러 면회를 갔었다. 그녀는 마스크를 쓰고, 알코올 소독제로 손을 닦고, 체온을 재고, 면회 신청서를 자세히 기록한 후 요양원 직원에게 면회를 부탁하면, 직 원은 침대에 누워 계신 그녀의 엄마를 일으켜, 외투를 입히고 마스크와 모자를 씌우 고 휠체어에 앉힌 후 무릎 위에 담요를 두른 후 현관 입구로 모시고 나왔다. 그녀는 현관 밖에서, 그녀의 엄마는 현관 안에서, 현관의 대형 유리 문을 사이에 두고 반가 운 얼굴을 마주했다. 그녀는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서 날아왔지만, 엄마를 바로 눈앞 에 두고도 마지막 남은 몇 걸음을 더 다가갈 수가 없다. 그녀에게 좌절감이 몰려온다. 가깝지만 먼 거리다. 반갑다고 손을 잡을 수도 없고, 감싸 안을 수도 없다. 머리에 눌 러쓴 모자와 입과 코를 감싼 마스크 사이에 엄마의 빼꼼한 눈 밖에 볼 수 없다는 사실 이 그녀는 너무 아쉬웠다. 그녀는 문득 팬데믹 이전의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때는 그 녀가 자유롭게 요양원에 출입을 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요양원에 출근하듯 들어와 서 엄마 침대에 걸터 앉아서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엄마에게 책을 읽어드리기도 하고, 엄마에게 옛날이야기를 물어보면, 엄마는 기억나는 대로 열심히 대답을 해주셨 다. 엄마는 어렸을 때 불렀던 노래라면서 옛날 노래도 흥얼거리셨다. 11시 반에 점심 시간이 되면 그녀는 엄마의 점심 식사를 도와드리고. 12시가 되면 그녀는 직원식당으 로 내려가서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요양원 직원 같다는 착 각을 하기도 했다. 오후에는 그녀 엄마 옆에 누워서 함께 낮잠을 자기도 했고, 엄마가 낮잠 주무시는 모습을 뒤로하고 그녀는 숙소로 돌아오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이면, 그녀는 또 요양원으로 엄마를 만나러 갔다. 그때는 자유스럽게 요양원을 들락거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몰랐었다.


이제는 팬데믹 때문에 그녀가 요양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현관 밖에 서 유리 문을 사이에 두고 겨우 30분간의 면회가 허용되었다. 그나마도 일주일에 한번만 면회를 허용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그녀가 덴마크에서 왔다는 사실을 잘 아시는 요양원 이사장님의 특별한 배려로 그녀는 매일 면회를 올 수가 있었다. 귀가 잘 들리 지 않으시는 엄마와 마스크를 쓰고 대화를 나누기란 불가능했다. 그녀는 요양원 직원 에게 부탁해서 이면지 한 묶음과 매직펜을 받아 쥐고 그녀의 엄마가 쉽게 읽을 수 있 도록 글씨를 커다랗게 써서 유리문 앞에 가까이 다가 섰다. “엄마, 나 누구?” 하고 그 녀가 질문을 써서 보여주면서 물었다. 그러면 그녀의 엄마는 “누구긴 누구, 내 딸이 지” 하고 반갑게 내색하셨다. “내 딸도 못 알아볼까 봐? 엄마를 놀리고 있어”. 엄마는 기분이 좋으셨다. “엄마 잘 잤어?” 라고 써서 보여드리면서 물어보면 그녀의 엄마는 고개를 끄덕하셨다. “어디 아픈 데는 없고?”하면 “딱히 아픈데 없다” 하셨다. “가려 운 건 좀 어때?” 엄마가 가렵다고 팔을 긁는 시늉을 하셨다. 그녀는 간호 과장님을 불 렀고 엄마의 가려움증에 대해서 어떤 치료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간호과장님은 꼼꼼 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알러지성 피부염으로 늘 고생하시는 엄마는 피부 연고를 자 주 바르셨는데, 근래에 피부염이 심해졌고 계속해서 연고 처방만 받아오다가 두피에 도 심하게 번져서 한참을 고생하신 후, 결국 피부 전문병원에 가서 옴 진단을 받으셨 단다. 엄마는 물론 담당 요양보호사님들도 함께 옴 치료를 받았으며, 회복 중이라 하 셨다. 옷가지들과 이불 담요 등 엄마가 사용하시던 모든 것들을 삶아 빨았다고도 했 다. 그녀는 옴이란 게 뭔지 몰랐고 나중에 전화기 속 구글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옴이 무엇인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사람 피부 아래에 굴을 파고 사는 감염성 기생충 벌레 란다. ‘엄마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벌레에 옮았을까?’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녀의 몸에도 벌레가 기어가는 듯 간질간질 해졌다. 현관에서 유리 문을 사이에 두고 겨우 30분을 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면회를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위안하며 그녀는 매일 엄마 면회를 갔다. “엄마, 나 누구?” “엄마 잘 잤어?” “어디 아픈 데는 없 구?” “가려운건 좀 어때?” 그녀는 주로 종이에 쓰여진 똑같은 질문을 재활용했고, 때 론 새로운 질문을 첨가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그녀의 엄마 또한 재방송을 하듯 어제 와 같은 답을 해주셨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어디에서 잤는지, 끼니는 잘 챙겨 먹 고 다니는지를 제일 궁금해하셨다. 그러던 중 COVID-19확진자 수가 점점 늘어나면 서 거리두기 통제가 강화되었고 엄마를 매일 보러 가던 요양원의 면회도 금지되었기 에 그녀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녀는 벌써 석달 가까이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엄 마를 보러 갈 수 없게 되자, 그녀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한국에 머물 의미가 없어졌다.


그녀가 엄마를 보기 위해 요양원으로 가는길은 결코 쉽지가 않다. 물론 자가용 운 전자나 렌터카 운전자에게는 쉬운 일이겠지만. 시내의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 과는 완 전 반대인 시골 산골짜기 동산 아래에 요양원이 있다. 그녀는 숙소에서 좌석 버스를 타고 불국역까지 간다. 불국역에서 요양원까지는 택시로 가면 8,000원 정액 요금제 다. 들고 가야 할 짐이 많은 날이나 시간에 쫓기는 날, 두어 번 그녀는 택시를 탔다. 그외 대부분의 날들은 왕복 8킬로를 고행길 삼아 걷는다. ‘스위스의 언덕이나 노르웨 이의 산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렇게 먼 곳이 아니더라도, 토함산 올라가 는 산길만 같았어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벗 삼아 걸을 수 있을 텐데…’ 그녀는 매번 아 쉬운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인도가 따로 없는 시골 찻길에 차들이 왕왕 거리며 지나 갈 때마다 그녀의 몸은 한껏 더 움츠러든다. 이곳 주변은 소 축사가 너무 많다고 그 녀는 생각했다. 소 축사를 지나 개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가축시장이 나오 고, 거기서부터는 콘크리트로 닦아놓은 논 둑 길을 지나서 다시 한번 개천을 건너면 또 다른 소 축사들이 나온다. 그곳에 묶여있는 개들의 “환대”를 받으며 언덕길을 오르 면 동산 아래 시골 마을을 품은 요양원이 나온다. 평생 줄에 묶여 지내는 개들에겐 그 앞을 지나가는 행인에게 목청 높여 짖어대는 것이 그날 최대의 하이라이트인듯 하다. 여러 개들중 특히 한 마리는 하얗고 긴 털을 가졌다. 견생에 한 번도 털 손질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듯 정신없이 얽혀진 털 때문에 몇 걸음 걷기조차도 불편해 보였다. ‘물 론 단 한 번의 산책도 해 본 적이 없겠지’. 그녀는 차마 그 개들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가슴이 조여 온다.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언덕을 올라간다. 그녀는 그녀 자신 이 목줄에 메여 평생 묶여 사는 그 개의 입장이 되어 본다. 돌아누울 자리도 없는 좁 은 철장에 갇혀 있는 돼지의 입장도 되어본다.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수평아리라는 이 유 하나만으로 분쇄기에 던져지는 병아리의 입장도 되어본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입장도 되어본다. 이 세상에는 끔찍한 살생이 너무나 많이 저질러지고 있다.


그녀는 치가 떨린다. 수많은 고통과 죽음이 그녀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그녀에 겐 고깃간의 고기가 더 이상 음식 재료로 보이지 않는다. 그녀 자신의 몸뚱아리가 도 살 된 느낌이다. 그녀 자신의 살덩이처럼 느껴진다. 모든 생명들이 그녀 자신의 몸뚱 이처럼 느껴진다. 고깃국 끓이는 냄새에 그녀의 속이 뒤집어 진다. 그녀가 완전 채식 을 고집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녀가 정치인이 된다면 개를 줄에 묶어 키우 는 것을 불법화하고, 가축을 가둬 키우는 것도 불법화하리라.


덴마크로 돌아오기로 결정한 그녀로서는 과연 덴마크에 무사히 입국할 수 있을는 지도 의문이었고, 입국 후에는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인데다, 코로나 테스트 음성 증명서 없이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도, 예정대로 비행기가 뜰지도, 모든 것들이 의문 투성이었다. 그녀는 열심히 구글을 뒤져서 덴마크 입국 관련 정보를 탐독했다. 덴마크 국적자인 경우는 코로나 감염 여부에 불문하고 언제든지 덴마크에 입국이 가 능하단 사실을 알아내고 나서야 그녀는 마음을 한시름 놓았다. 한국의 인천 국제공항 이용자는 팬데믹전에 비해 95퍼센트 감소했고, 그 여파로 공항버스들이 거의 대부분 운항을 중단한 상태였기에, 새벽 1시 출국을 위해 밤 10시에 공항에 도착하려면 사용 가능한 대중교통수단은 단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아냈다. 서울역에서 지하철을 타는 방법과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KAL 리무진을 타는 방법. 그 녀 혼자서 무거운 짐 세 개를 끌고 메고 긴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해서 포기했고, 유일하게 운행 중인 KAL 리무진을 타기 위해 김포공 항으로 가는 방법을 모색하던 차에 한국 친구 서연에게 김포공항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고맙게도 서연은 김포공항으로 가느니 곧장 인천공항까지 태워다 주겠 다고 흔쾌히 부탁을 들어줬다.


팬데믹 전에는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여행할 때 비자가 필요 없었다. 덴마크 국적자 인 그녀는 노 비자로 3개월간 한국에 머물 수 있었기에 자유롭게 한국을 오갈 수 있 었다. 팬데믹으로 모두들 국제 여행을 삼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살아생전 한 번이라 도 더 엄마를 만나보고자 또 한국행을 계획했다. 덴마크 주제 한국 대사관 영사와 통화하여 한국에 가는 방법이 있는지 문의 했다. COVID-19 때문에 한국으로의 노 비 자 자유여행은 불가능하지만, 재외 동포 F4 비자를 발급받으면 한국 입국이 가능하다 고 했다. 재외 동포 F4 비자를 준비하기 위한 서류 목록은 상당히 길었다. 비자 신청 서 외에, 컬러판 여권 사진, 비행기 표 사본, 여권 원본과 여권 사본, 은행 잔고 증명 서, 덴마크 국적 취득 증명서, 이전 한국 국적을 증명할 만한 서류, 국적 이탈서, 무 범죄경력 증명서, 이름 변경 시 동일인 증명서가 요구되었고, COVID-19 관련 서류 로는 테스트 음성 증명서, 건강 증명서, 시설격리 동의서가 필요했다. 시설 격리 동의 서란 한국 입국 후엔 곧바로 14일간의 격리에 들어가는데, 한국 주소지가 없으면 시 립 격리 시설 비용 210만 원을 본인이 지불하고 격리소에 들어가는 데에 동의한다는 내용이다. 다행히도 그녀의 친구 서연은 최근에 그녀가 별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남양 주 소재 돌담집을 기꺼이 격리 장소로 제공해 주었다. 한국 입국 며칠 전에는 남양주 소재 보건소에 덴마크에서 입국하는 사람이 있다고 사전에 신고도 해야 했다. 덴마크 에서 암스테르담을 거쳐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모든 승객은 체온 을 쟀고, 아무런 이상 증상이 없고, 확진자 가까이 가지 않았다는 건강증명서를 제출 했다. 모든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마스크 착용은 의무이며, 기내 식사를 하거나 음료 를 마시기 위해서 잠깐 마스크를 벗을 수 있지만 그 외에는 계속 마스크를 써야 했다. 비행기에는 대략 70퍼센트의 빈자리가 있어서 그녀 혼자서 4개 좌석을 차지하고 누 워서 편하게 비행을 했다. 여전히 마스크를 쓴 채로.


거대한 점보 제트기는 지구 반바퀴를 돌아 나비처럼 우아하게 인천 공항에 착륙했 다. 착륙 전 비행기 승무원이 배부해 준 서류 한 묶음을 받아 쥐고, 그녀는 볼펜, 여 권, 탑승권을 가방에서 꺼내 앞 좌석에 연결된 간이 탁자에 올려놓았다. 평소 같으면 입국 신고서와 세관신고서만 작성하면 되었지만, 이번 경우는 입국 신고서를 대신해 서 자가격리 동의서,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 사용 동의서를 작성해야 했고, 방역지침 서와 방역 안내서도 받았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모든 승객들은 한 줄로 서서 본 인의 방역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각자의 스마트폰에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 해야 했다. 방역 절차가 길어질 거라고 미리 걱정했던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줄에서 대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차례가 되었고, 투명 방역 스크린을 마주하고 담 당 방역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방역원은 그녀의 이마에 체온을 측정한 후 36.2도라고 적었다. 방역원은 한국 내 자가격리 주소를 확인하고 한국 내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친구 서연과 통화를 했다.


그녀는 덴마크에서 떠나오기 전부터 서연에게 미리 신신당부를 해 놓은 상태였다. 공항 방역대에서 확인 전화를 할 테니, 그녀가 인천 공항 도착할 시간쯤 되면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걸려오더라도 꼭 전화를 받아달라고. 방역원은 그녀가 서연의 집에 서 자가 격리하는게 맞는지 직접 통화로 확인을 했다. 방역원은 익숙하고 능률적인 손놀림으로 그녀의 스마트폰을 받아서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고 자가격 리 집주소를 입력한 후, 주소지 산하 보건소 담당자와 연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매 일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씩 정해진 시간에 체온 측정과 건강 이상 증상이 있는 지 없는지를 보고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1차 방역 관문을 무사 히 통과했다는 확인서를 받고 다음 방역 단계로 넘어갔다. 그곳에서는 자가격리 주소 지에서 14일간 머물러야 하며, 이로 인해 이동의 자유를 침해당하는데에 동의하고 위 반 시 법적인 제약을 받는 데에 대한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위반할 시에는 징역형이 나 벌금형이 주어진다고 했다. 이로써 검역 절차는 무사히 끝났고 그녀는 검역 확인 서를 받아들고 입국 심사대로 들어가서 재외 동포 F4 비자를 보여주고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았다. 짐을 찾아 세관 검사대를 빠져나와 입국 게이트 앞에 대기하고 있던 방역 도우미의 안내로 외국에서 입국한 모든 사람들은 최종 귀갓길까지 안내를 받았 다. 그녀의 경우 공항 앞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표를 구입해서 남양주까지 가는 버스 에 탑승했고, 그 버스에는 남양주뿐 아니라 인근 구리시나 하남시까지 가는 입국자들 도 함께 탑승했다. 탐승객들은 모두 남양주 체육센터에서 하차했고, 그곳에는 남양주 보건소 산하 방역원들이 도착한 입국자들의 이름과 자가격리 주소, 연락처를 또다시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다. 방역원들은 입국자들의 마스크 착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손소독제로 손 세정을 권한 후에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게 했다. 그녀는 일 회용 장갑을 낀 채로 준비된 볼펜을 잡고 목록표에 이름을 적은 후 한국 내 자가격리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으려는데 시와 읍 이름 외에 번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전화기에 저장된 주소록을 들춰보려 전화기를 눌렀지만 일회용 장갑을 낀 채로는 스마트폰의 엄지 지문 장금을 해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일회용 장갑을 벗었다 꼈다를 두어 번 반 복한 후에 겨우 목록 작성과 서명을 마친 후에야, 대절해 두었던 전담 택시 편으로 각 자 이용객의 최종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한 마리의 쥐새끼도 빠져나갈 수 없는 철 저한 방역망에 그녀는 감탄과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감옥에 갇힌 듯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숨을 쉬는 자유까지 박탈당한 듯 숨이 턱까지 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에 반해서 그녀의 덴마크 귀국행은 놀랄 만큼이나 아무런 제약이 나 통제가 없었다. 비행기 내와 공항 내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 외에는 덴마크행 비행 기 탑승 시 체온을 측정하지도 않았고, 코로나 증세가 있는지 없는지 건강 확인서를 제출 하지도 않았다. 코로나 테스트 음성 증명서도 필요하지 않았다. 덴마크 유틀란 드 반도 중앙에 자리 잡은 빌룬 공항에 내려서도 아무런 제제나 방역 없이 덴마크 여 권 소지를 확인받은 후에 곧장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자가 격리도 없었다. 그녀는 갇혀있던 새장을 빠져나온 한 마리 새가 된 기분이었다. 날개를 넓게 펴고 하 늘 높이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스크 사이로 스며드는 자유의 냄새 를 깊게 들이마시며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 내 로비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서 두유로 만든 핫초코를 시키고 유튜브의 고양이, 강아지들을 벗 삼아 중국 친구의 픽업을 세 시간 동안이나 더 기다렸었다.


친구 마틴과 산책약속을 한 날이다. 약속시간에 맞춰 가려면 몇 시에 집에서 출발 해야 하는지 그녀는 시간을 꼽아봤다. 그녀는 항상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시간 약 속은 칼처럼 잘 지킨다. 그녀 때문에 마틴은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았고, 얼마 전엔 김치 만드는 방법까지 배워서 직접 김치를 담궈먹는 열렬한 김치 팬이다. 며칠 전 그 녀에게 마틴은 한국 식품 목록을 문자로 보내왔다. 시내 가까운 곳에 사는 그녀에게 는 아시안 상점을 들려서 장을 보는 것이 그보다 훨씬 수월했기에 가끔씩 그는 그녀 에게 부탁을 한다. 이번 목록에는 ‘샘표 진간장 3병, 참기를 한 병, 고추장, 김치만두, 구운 김, 두부, 청경채, 고수, 새송이버섯’ 이 쓰여있다. 그녀가 필요한 식재료를 사 려면 그녀가 애용하는 Rema1000이라는 슈퍼마켓 체인점에 들려야 한다. 그 슈퍼마 켓 체인은 타 슈퍼마켓 체인점들 보다 가격도 저렴하고 유기농 채소도 많고 직원들도 친절한 편이어서 그녀는 최근 3년간 줄곧 이 체인점을 이용한다. 그 슈퍼마켓 체인을 좋아하는 건 분명 그녀뿐만은 아닌 모양이다. 덴마크인들이 선호하는 올해의 10대 브 랜드에 이 슈퍼마켓 체인이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는 라디오 뉴스가 들렸다. 해마다 1등을 한 LEGO를 제치고 Rema1000이 1등에 올라섰다니. 그녀는 내심 놀랐다.


그녀는 약속 시간 계산 외에도 움직일 동선까지 계산한 후 계획을 세운다. 집에서 12시에 출발해서 시내 아시안 상점에서 볼일 보고, 신호등을 피해서 국도보다는 고속 도로에 차를 얹어 스캐너보에 있는 Rema1000 슈퍼에서 장을 본 후, 그 마을 끝자락 에 있는 교회 주차장에 1시 반에 도착한다는 완벽한 계획이다.


“엄마는 좀 어떠셔?” 마틴이 물어본다. 항상 그렇듯 마틴은 그녀의 엄마 걱정을 해 준다. “엄마는 나름 선방하고 계셔. 밥도 약도 잘 드시고. 엄마 머리에 다시 검은 머 리카락이 자라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오래 사실 것 같아”. 그녀의 엄마는 검은 머 리 염색을 40여 년 동안 고집하셨었다. 엄마와 오랫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결국 그녀 의 소원대로 엄마는 머리 염색을 포기하셨고, 그 이후론 멋진 은발의 소유자가 되셨다.


그녀는 마틴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의논도 많이 한다. 사는 얘기, 죽는 얘기, 죽음 뒤편의 얘기, 삶은 다른 모습으로 계속된다는 얘기, 카르마 법칙, 윤회의 법칙. 그들 에게 대화의 장르와 토픽은 무궁무진하다. “왜 사는지 통 모르겠어. 난 도대체 왜 태 어났을까? 삶은 고난의 연속인 것을. 난 이 고난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데 말이 지”. 그녀는 기운 없는 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녀는 밤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살하는 방법을 수없이 생각하느라 간밤에 한숨 도 못 잤다. 특히나 그녀가 엄마를 만나고 돌아온 이후로 그녀는 죽음이란 단어에 집 착이 더 심해졌다. 그녀는 항상 ‘삶은 고통, 죽음은 자유!’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 그 녀 자신을 속박하고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매일매일 떠올리는 ‘오늘 저녁에는 뭘해 먹을까?’ 같은 대수롭지 않은 고민처럼, 그녀는 ‘어떻게 죽어버릴까?’라는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지만, 실은 그녀가 스물다섯 살 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때는 길고 짧은 것 생각하지도 않고, 확실한 방법을 심각 하게 연구하지도 않고, 단지 죽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너무 즉흥적으로 실 천에 옮겼다. 그녀는 청바지에 둘러진 가죽 허리띠를 빼서 목에 두루고 난 후, 발 받 침대에 올라서서 방문 위에 허리띠 버클 쪽을 올리고 최대한으로 문을 닫아 보았다. 잠시 버둥거리다가 곧 후회하고 다시 발 받침대를 딛고 내려왔다. 혼자서 관객 없는 팬터마임을 하고 난 기분이었다. 잠깐 시늉만 냈었다. 너무 허술했다. 허망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자살은 안 돼? 알지? 너를 아끼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심장 에 비수를 꽂는 일이야. 그들의 남은 평생을 완전히 망쳐버리는 거라구. 살아 있는 동 안은 어떻게든 노력을 해서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지만, 우울 한 상태에서 목숨을 끊는다면, 그 당시의 우울한 상태가 죽은 후 저세상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거야. 그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거지. 아무리 깨어나고 싶어도 깨어 날 수 없 는 영원한 악몽에 시달리는 것.” 마틴은 그녀의 자살 생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 다 시 한번 그녀에게 자살은 안된다고 다짐을 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차츰 삶의 의미와 에너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를 가던 목조 건물의 튼실한 나무 기둥을 볼 때마다, 목을 메달기에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목재뿐 아니라 살아있는 나무를 볼 때도 마찬가 지다. 몇 년 전 그녀가 살던 주택에는 넓은 정원이 있었고, 그 정원 한가운데에는 대 략 수령이 최소한 50년 정도는 된 커다랗고 실해 보이는 붉은 메이플 나무가 자랑스 럽게 우뚝 솟아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균형 있게 뻗어져 있고 동그스름한 돔을 머리 에 이고 있는 모습으로 균형이 잘 잡힌 아주 잘 생긴 나무였다. 그녀는 창고에서 알 루미늄 사다리를 가져와서 나무 기둥에 비스듬히 기대어 놓고 나무가 두 팔을 벌리는 곳까지 올라갔다. 시야가 넓어지고 저 멀리 녹색 광야가 한없이 펼쳐졌다. ‘이 나무에 목을 메달면 멋진 풍경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저세상으로 갈 수 있겠지’ 그녀는 또 병처럼 떠오르는 자살 생각을 억지로 떠 밀어내어 땅 밑으로 내동댕이 쳤다. ‘이 바보야, 공개 교수형도 아니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한눈에 볼 수 있는 이 나무에 목을 메단 다는 건 그저 쇼에 불가해. 길가에 지나가던 행인이, 아님, 지나가던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나를 구하려고 노력하겠지. 남들의 눈에 뜨이지 않는 어딘가 으슥하고 조용한 곳이라야 한다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머물자 그녀는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머릿속으 로 열심히 물색했다. ‘겨울의 바닷가는 인적이 드물고 한적하니까, 바닷가로 가서 한 쪽 구석에 차를 세워놓고, 배낭에 돌멩이를 가득 주워 담고 바닷속으로 걸어들어가 는 거야.’ 아주 쉽고 그럴듯한 계획이다. 성공 확률도 높을 것 같다. 그녀가 실종되었 다는 사실은 그녀가 물고기 밥이 되고 나서야 알려질게 분명하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집에 아주 잘 드는 면도 칼이 있었다면,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따뜻한 물속에 몸 을 담그고 양쪽 손목을 베어버렸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차츰 따뜻한 물은 차 갑게 식어 갈 것이고, 검붉은 색으로 변해 버린 물은 그녀의 야윈 몸을 커튼처럼 감싸 서 보듬을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절대로 면도 칼을 사지 않았으며, 집안에 있는 칼들은 너무 무뎌서 손가락을 베기도 힘들 정도였다. 문 득 그녀는 그녀의 엄마가 처녀 시절에 선택했던 자살 방법이 최소의 고통을 주는 방 법이라 생각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녀의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불면증을 호 소하고 수면제를 처방받아서 수면제 한 병을 한꺼번에 모두 입속으로 털어 넣는 방법 이다.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그녀에게는 그 많은 약을 한 알씩 삼켜야 한다는 게 처 참한 고문이 되겠으나, 무사히 약을 다 삼키고 나면 스르륵 잠에 빠져 들것이고 다시 는 그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엄마 경우에는 군에 갔던 엄마의 남동생 이 휴가를 맞아 누나를 찾아와서 머리맡에 놓은 약 병을 발견한 후 잠에 빠진 누나를 들쳐 없고 병원으로 실어가 위 내용물을 세척해서 살려 냈었다. 그녀는 ‘그때 엄마가 살아나지 않았다면?’하는 헛된 상상을 해 본다. 그랬다면 그녀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내심 아쉽다는 생각이 맴돈다. 항상 그렇듯 그녀는 그녀의 엄 마를 원망했다. ‘자식을 키울 능력도 없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왜 자식을 세상에 내놓 았냐’고. 그녀는 절대 자식을 낳지 않겠노라고 어린 나이에 다짐을 한 터였다. 그녀는 수면제에 취해 잠든 그녀를 찾아와 깨워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내심 확신했다. 완벽하고 그럴싸한 방법이다. 이번엔 그녀의 생각이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으로 날 아갔다. 차고 안에 차를 주차 시키고 연통에 고무호스를 연결해 차 안에 들이고 시동 을 걸어서 질식하는 방법이다. 그것도 어렵지 않은 괜찮은 방법인 듯하다고 생각했 다. 그녀는 산 정상을 오르면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목뒤로 삼켜야 했으며, 물가를 지나칠 때면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싶은 충동을 잡아 묶어야만 했다. 다리 위 에서 철도 아래로 몸을 던진다던가, 차를 몰아 교각을 들이받는 방법도 종종 레퍼토 리에 등장한다. 몇 년 전 그녀는 회사 근무 중 외부 회의 참석 후 차를 몰아 사무실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지하주차장 입구 가까이 왔을 때쯤 그녀는 잠깐 몇 초 동안 정신 을 잃었고 차를 큰길에서 꺾은 후에 지하주차장 앞 가로등을 계속해서 들이 받고 있 었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회사 동료가 놀라서 그녀의 차 옆으로 뛰어왔었다. 자살 근처엔 가지도 못했다. 사고 전날 그녀는 엄마와 전화 통화를 했었다. “내가 이제 살 면 얼마나 더 살겠니?” 엄마는 자신의 레퍼토리를 또 재방송하셨다. 그녀는 그 소리 가 너무 듣기 싫었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라는 법이 어디 있어? 누가 먼저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내가 당장 차 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거구”. 말이 거의 씨가 될 번 했다.


‘오늘 하루만 더 참아보지 뭐. 자살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오늘 하루만 더, 하루만 더. 그녀는 그렇게 하루살이가 되어간다. 그녀가 자살 생각에 시달리는 것 또 한 그녀가 엄마에게서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거라는 엉뚱한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또 다시 엄마가 원망스러워졌다. 그녀가 어렸을 때는 왜 사람들이 결손가정을 꺼리는 지, 가정교육 여부를 왜 따지는지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녀도 조 금은 알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집안을 따지는지를.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결 손 가정이나 고아원에 자란 아이의 인성은 틀리다는 것을. 그녀의 엄마는 가난 때문 에 홀트 아동 복지원을 통해서 자식을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려고 했었다. ‘그때 엄마 는 왜 자식 입양 보내기를 포기했을까? 내가 그때 다른 나라로 입양되었다면?’ 그랬 다면 어떤 모습의 인생이 펼쳐졌을지 그녀는 너무 궁금해졌다. 입양아로서의 삶이 훨 씬 더 흥미진진할 것 같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가 보지 않은 그 길 위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가 궁금했다. 그녀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심은 눈덩이 처럼 커져만 갔다. 그녀는 그 당시 상황을 매트릭스에 업로드해서 ‘취소’ 버튼을 눌러 그 당시 엄마의 선택을 무효화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외국 입양’ 버튼을 선택한 후 에 다시 게임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는 엄마와 전혀 닮지 않았다고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그녀의 삼촌들조차 그녀가 갓난아기 때 답십리 개천 다리 밑에서 주워다가 키웠노라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보는 사 람들마다 어쩌면 엄마랑 똑같이 생겼느냐고 혀를 내두른다. ‘어렸을 땐 전혀 닮지 않 았던 얼굴이 나이 들면서 닮아 가는 건 무슨 오묘한 요술일까?’ 그녀는 늙고 병들어서 나날이 약해져만 가는 그녀의 엄마를 보면서 33년 후 그녀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더욱 울적해졌다. 그녀는 요양원 침대에 누워서 기저귀에 볼일을 보 며 살고 싶지 않다. 하루 종일 누워서 천장이 뚫어져라 바라보며 살고 싶지 않다. 하 루 종일 찾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며 원망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다. “이렇게 살면 뭐 하니, 빨리 죽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질 않는구나” 그녀의 엄마가 그녀 를 볼 때마다 되뇌는 구절이다. 그녀는 엄마의 판에 박힌 그 말이 너무나 듣기 싫다. ‘엄마, 말로만 죽고 싶다 하지 말고 정말 죽고 싶으면 실천에 옮겨야지. 약 끊고 음식 물 끊고!’ 그녀는 엄마에게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고 싶은 걸 참아내느라 얼 굴이 빨개지고 몸속에서는 열이 피어올랐다. 침을 삼켰다.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덴마크에 왔었을 때 하숙했었던 집 주인 할아버지 기억나? 그 할아버지 암 투병 중에 식음을 전폐하셔서 돌아가셨데.” 그녀는 이 대화 를 통해 엄마에게 영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본인의 의지로 삶을 끊어낼 수 있다는 사 실을.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귀가 멀어졌다는 핑계로 본인이 듣고 싶은 말들만 선택 해서 들으셨다. 그녀의 엄마는 살고 싶어 하셨고, 식사 후 손바닥 한가득 약을 한입에 털어 넣으셨다. 파킨슨 약, 혈압 약, 위장 보호하는 약. 때로는 신경안정제가 첨가되 기도 했고 필요에 따라 약의 종류나 개수가 조절되기도 했다. 약의 색깔도 가지가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그녀는 그 흔한 두통약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녀는 모든 종류의 약을 혐오한다. 가끔이지만 그녀에게도 약을 복용해야 하는 때가 있긴 하다.


염증을 다스리기 위해 페니실린을 복용하고 페니실린에 죽음을 당한 대장균을 보충 해 주기 위해 프로바이오틱도 함께 복용해야 한다. 그녀가 알약을 삼킬 때면 그녀의 식도는 반사적으로 입구를 차단해 버린다. 알약을 잘게 쪼개고 나서야 간신히 삼킬 수가 있다. 그녀는 약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약을 거부하고 끼니를 거부하리라. 단식은 길면 14일 이상도 끌 수 있다. 그녀에겐 14일도 너무 길다. 냉전 시대 때 소련의 KGB 소속 스파이가 신분이 탄로 났을 때, 구속과 취조를 피하기 위 해 목걸이에 달고 있던 독극물을 삼키던 영화 한 장면을 그녀는 떠올린다. 그녀 자신 을 위한 아주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을 찾은듯하다.


마틴과 산책 중에 산책코스로 항상 교회 묘지를 끼고돌 때마다 그녀는 묘비명을 자 세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음을 맞이했는지를 유심 히 살펴본다. 대 다수 묘비명의 주인들은 80년 이상을 이 세상에 머물고 떠났다. 간 혹 20대 청춘의 죽음도 있고, 중년의 죽음도 여럿 있다. 청춘의 죽음을 알리는 묘비 명을 맞이하면 그녀는 청춘의 짧은 삶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슬픈 마음이 찌릿하게 그녀의 가슴속으로 흐른다. 중년의 죽음을 만나면 그녀 는 단번에 이렇게 생각한다: ‘분명 암이었을 거야. 암 선고를 받고 몇 달간 고통스러 운 투병을 했겠지.’ 이번엔 부모를 먼저 보낸 젊은 자녀들의 안타까움과 서러움이 그 녀에게 전해진다. 갑자기 그녀는 통계라는 학문에 관심이 생긴다. 사람들이 몇 살에 무슨 원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녀는 그녀의 비서인 전화기를 열 어 덴마크 통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덴마크인들의 죽음에 관한 통계 데이터를 들여 다본다. ‘대략 1년 동안 평균 55,000명이 사망을 하며, 암은 사망 원인 1위이다. 1년 동안 대략 600명이 자살을 하고, 하루에 대략 2명이 자살을 하는 셈이다. 자살률은 총 사망률의 1.1%를 차지한다.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자살률이 대략 세배나 더 높다.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자살을 많이 한다. 10대와 20대의 젊은 층의 자살이 많다.’ 그녀는 이제 한국의 자살률이 궁금해진다. 이번엔 한국통계청에 접속해서 최근 사망 통계 보고서를 다운 받아 읽는다. ‘한국에서는 최근 1년 동안 295,110명이 사망을 했 고, 그중 13,799명이 자살을 했고, 하루에 대략 38명꼴이며, 자살률은 총 사망률의 4.7%를 차지했다. 한국은 OECD 국들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달고 있다.’ 한국 역 시 남자의 자살률이 여자보다 더 높다. 그녀는 또 궁금해진다. ‘도대체 왜, 남자들이 자살을 더 많이 하는 걸까?’


마틴과의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는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녀는 또 엄마를 생각한다. 그녀의 엄마는 요양원에서 지내신지가 벌써 8년이나 되 었고, 요양원에서 지낸 처음 몇 년 동안은 목발을 짚고 걸어 다니셨으며, 외식이 그리 우실 땐 콜택시를 타고 외출도 가끔씩 하셨었다. 요양원에서 지내시는 동안 한 번은 넘어져서 손목이 부러져 수술을 받으셨다. 휠체어를 타고 욕실 세면대 가깝게 기대 어 씻으시다가 갈비뼈에 금이 간 적도 있다. 그녀의 엄마는 골다공증이 심해져서 작 은 충격에도 유리그릇 깨지듯 온몸의 뼈가 너무나 쉽게 금이 가고 부러졌다. 어느 날 은 새벽에 잠이 깬 후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화장실에 가시다가 넘 어져셔 골반뼈가 부러져 큰 수술을 받았다. 그 당시 의사가 말하기를 “대부분의 어르 신들은 골반뼈 수술 후 5년 넘게 사는 게 힘들다”라고 하셨다. 골반뼈 수술 이후에 그 녀의 엄마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녀의 엄마는 오래전에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고, 몇 년 전엔 폐암 진단도 받으셨다. 의사는 엄마가 앞으로 2년 정도 더 사실 거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덴마크와 한국을 자주 오가면서 최대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의 엄마는 매년 겨울마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최근 에는 폐렴이 심해져서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원도 하셨다. 의사는 그녀의 엄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엄마의 형제분들과 가까운 친척분들이 엄 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병문안을 다녀갔다. 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며칠 후 의식 을 되찾으셨고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수가 있었다. “나 배고파, 밥 먹고 싶 어” 의식을 되찾으신 후 그녀 엄마의 첫 마디였다. 그녀의 엄마는 폐렴에서 회복하신 후 병원에서 퇴원하셨고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오실 수 있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도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의 엄마는 여전히 식사도 잘 하시고 건강 상 태도 안정적이다. 그녀의 엄마는 최근 들어서는 요양원을 나가고 싶다고 보채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와 단둘이 살고 싶어 했다. “솔미야, 우리 방 하나 얻어서 같이 살자” 그녀의 엄마는 애원하듯이 그녀에게 부탁을 했다. “난 이제 엄마 랑 같이 못 살아. 엄마 기저귀는 누가 갈아줄 건데?” 그녀는 곰곰이도, 심각하게도 생 각해 보지 않고 엄마의 제의를 일촉에 거부했다. 요양보호사들이 엄마의 기저귀를 갈 아주실 때면, 그녀는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뼈만 앙상한 엄마의 알몸 보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엄마의 대소변과 마주하기를 거부했다. 그녀의 엄마를 통해 삶이란 게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그녀는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녀는 오래 산다는 건 축복 이 아니라 저주란 생각을 한다. 특히나 병들어서 오래 사는 건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 치는 일이라고. 그녀가 엄마라면 그녀는 자신의 딸에게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지 않 을 것 같다. 자식 앞에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을 것 같다. 그녀가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삶을 끈질기게 지속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녀 에게 가족이 없이 혼자라는 사실에 그녀는 흡족해한다. 그녀는 그녀가 병들고 늙었을 때 민폐를 끼칠 가족이 없다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개나 고양이는 물론이고 돼지, 소, 닭, 뱀, 개미, 거미, 지렁이, 파리,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살아있는 생물들에 대한 무한한 측은지심을 가지 고 있지만, 왜 그녀의 엄마에겐 원망과 심판의 감정이 앞서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한 번이라도 그녀가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그녀 는 그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고, 그녀 자신의 생각만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그녀의 세상에서는 그녀가 주인이다. 그녀의 세상에는 모든 것들이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녀를 위해 존재한다. 그녀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 춰가면서 그녀 자신에게 적절하고 합당한 결정을 내려왔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세계 를 빠져나와 엄마의 세상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엄마의 세상에서는 당연히 그녀의 엄마가 주인공이다. 엄마가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원하든, 엄마의 책임이고, 엄마의 삶이다. 과연 그녀가 엄마의 세상으로 침투해서, 그녀의 임의대로, 그녀 자신의 생각 의 잣대를 가지고, 엄마의 삶은 이런 점이 옳고 저런 점이 그르다고 쉽게 심판을 하는 게 바람직한 일인가? 그녀에게 회의가 일어난다.


결국 그녀는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나름 최선을 다했을거야.’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가난한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안 된다는 건 그녀의 성숙하지 못한 생각일 뿐이라고. ‘엄마가 살고 싶다는데 내가 나서서 엄마한데 당장 굶어 죽으시오’라고 할 순 없는 거라고. 그녀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엄마에게는 꼭 옳지 않을 수도 있는거라 고. 엄마가 그녀와 똑같은 선택과 결정을 내릴 거란 바램을 해서도 안되고 강요해서 도 안되는 거라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의 가슴 한켠이 멍멍해진다. 그녀는 엄 마가 불쌍하게 여겨진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찾아 오지않는 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지나 않는지. 식사는 잘 하고 계신지. 내일 아침 에는 일찌감치 요양원에 전화를 넣어서 엄마의 근황을 물어봐야겠다고 그녀는 생각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오늘따라 더 멀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