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Main page
  2. 재외동포 광장
  3. 재외동포문학
  4. 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길몽
작성일
2022.01.12

단편소설 - 대상

길몽

이 월 란 [미국]


콘도 옆 주유소 주차장에 수진은 차를 세웠다. 한 달에 한 번 올 때마다 주차를 하 는 곳은 서쪽 끝자리다. 거의 비어있지만 때때로 우체부나 아마존 배달부 혹은 야외 노동자의 트럭이 주차되어 있기도 하다. 그녀가 오는 시간이 늘 점심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차창을 열고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유색 의 피부를 가졌다. 주유소를 드나들며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멕시칸, 폴리네시 안 아니면 흑인이다. 백인들이 세운 나라에 백인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 훨씬 많다. 수 진의 동네로 잔디를 깎으러 오는 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오는 지도 모른다. 수진이 그 자리를 선호하는 까닭은 숨어 있기 좋다거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만은 아니 다. 콘도와 가장 가까운 자리여서 샨이 차에 실린 식품들을 나르기에 가장 짧은 거리 이기 때문이다.

수진은 이곳에 차를 주차시킬 때마다 희망을 주차한다. 평생을 드나들게 될 거라는 악몽의 시동을 끄고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네모난 주차구역 가득 걸 어둔다. 오늘은 그 기대가 가득 차고 넘치는 날이다. 거의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먹을 것을 사다 주었고 그 30일이 가까워올수록 악몽은 잦았다. 그 악 몽의 끝에는 꼭 문자가 왔다.

“엄마, 캔 위 고 그로서리?”

생리통을 치르듯 그것은 통증과 함께 왔다. 이렇게 두 달 가까이 간 적은 단 한 번 도 없었다.

시동을 끄자 옆 좌석에 놓인 김밥이 보였다. 그동안 한 번도 음식을 해온 적은 없었 다. 밖으로만 나돌며 자란 아이는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만큼 집밥에 길들여져 있지 도 않다. 기대가 무너졌을 때 아이에게 먹일 이 특별한 김밥엔 단무지, 쇠고기, 시금 치, 당근, 어묵, 계란, 분홍색 어묵까지 평소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 다. 그리고 제초제가 들어있는 것은 바로 시금치다. 하얀 도마 위에서 김밥을 말 때 도 토막토막 썰 때도 떨리지 않았는데 막상 김밥 봉지를 들어 올리는 수진의 오른손 이 떨리고 있었다. 가방을 왼쪽 어깨에 메고 차에서 내린 뒤 운전석에 김밥을 내려놓 았다. 잔디 깎는 기계와 낙엽을 쓸어 담는 갈고리와 사다리들을 가득 실은 낡은 트럭 이 바로 옆자리에 들어서고 있었다. 야구 모자를 눌러쓴 멕시칸이 동승자와 함께 내 려서 주유소로 걸어 들어가는 것까지 수진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주유 중인 차들이 보였고 길가엔 시내버스 한 대가 서 있었다. 흘러내리는 가방을 고쳐 멘 뒤 김밥을 다 시 들고 차 문을 닫았다. 삐삐, 잠긴 차를 확인한 뒤 콘도 쪽으로 걸어갔다. 콘도 정문 앞 구석에 한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거실에 걸린 그림 같 다. 퀭한 얼굴은 늙지도 젊지도 않다. 언젠가 샨의 콘도 거실에 앉아있던 여자의 얼굴 인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얼굴이 없다. 다만 노숙인의 행색과 느린 걸음걸이가 있을 뿐이다. 헝클어진 여자의 머리카락 사이로 초점 없는 두 눈과 마주쳤다. 쥐고 있던 여자의 검은 비닐봉지로 시선을 떨어뜨리는데 부서져 내리는 햇 살을 받아 모은 듯 꼼꼼히 봉지 입구를 틀어쥐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 날씨에 아래위 로 여러 가지 색을 겹쳐 입은 여자의 옷은 그저 잿빛 그림자로 보일 뿐이었다. 여자의 텅 빈 눈 속으로 도시의 빛이 모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도시의 서쪽 끝, 이곳은 늘 해가 지고 있다. 노을처럼 얼굴을 붉히다 어둠 속에 엎 드리고 말 것 같은 곳. 그리고 마침내 산 너머 영원한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만 같은 곳이다. 해가 떠 있을 땐 모두가 물속에 잠겨 있다. 물속을 걷듯 천천히 걸어 다닌다. 물 밖으로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된 사람들 같다. 수진도 물속을 걷는 듯 한번 씩 하늘로 쳐든 입술이 벌어지고 긴 한숨이 뻗어나간다.

차가 드나드는 콘도의 정문은 늘 닫혀 있어 비밀코드가 필요하지만 옆에 달린 쪽문 은 항상 열려 있다. 그래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노숙자들이 하나 둘 걸어 들어와 차고 옆에 딸린 작은 창고 속으로 숨어드나 보다. 수진이 콘도를 매입했을 때도 실외 차고에 딸린 작은 창고 안에는 찢어진 이불, 종이 박스, 플라스틱 컵들이 먼지를 뒤집 어쓴 채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다리를 뻗고 누울 수도 없는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누군가 살다간 흔적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었다.  

쪽문을 들어서는데 남자아이가 파란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나왔다. 하마터면 부 딪칠 뻔했지만 아이는 아랑곳없이 지나쳤다. 하늘도 나무도 바람도 수진의 김밥 봉지 만 쳐다보고 있었다. 샨의 집이 있는 이층으로 향하는 잔디밭 구석에 둥근 철제 쓰레 기통이 보였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으로 계단을 다섯 칸쯤 올랐을까. 한 번 살포하 면 몇 시간 내 나무들이 죽기 시작한다는 고엽제도 아니고 요즘은 소금보다도 덜 위 험한 저독성 제초제라는데. 마시지 않는 한 반려동물이나 가축에게도 해가 없다는데. 시금치에 버무린 정도가 마시는 양에 미칠 리도 없다. 죽지도 않고 병원 신세만 지거 나 불구자가 되어버린다면 더 큰 악몽일 것이다. 김밥 봉지를 든 수진의 손에 힘이 들 어갔다.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하늘과 김밥을 번갈아 보다 쓰레기통에 김밥을 던졌 다. 이를 악물고 돌아서다 입술 안쪽에 깊이 파인 이빨자국을 혀로 쓸어보다가 다시 쓰레기통으로 갔다. 허기진 노숙자가 쓰레기통을 뒤지다 김밥을 찾아 먹기라도 한다 면 큰일일 것이다. 김밥 봉지를 다른 쓰레기 밑으로 더 쑤셔 박고 보이지 않게 덮었다.

수진의 두 발엔 철컹거리는 쇠사슬이 묶여 있다. 그래서 큰 폭으로 걸을 수도 없다. 나이가 들수록 더 무거워진 족쇄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드문드문 생채기가 나 고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듯 잡초가 더 많은 잔디밭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른다. 50년 이 훨씬 지난 저소득층 아파트를 콘도로 개조한 이 건물에서 가장 튼튼해 보이는 건 이층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철제 계단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족쇄와 부딪 히며 철커덩철커덩 날카롭게 메아리친다. 검은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있는 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영화에서 본 교도소 계단이 떠올랐다. 아이가 6개월쯤 갇혀 있을 때 면 회를 간 적이 있다. 마약을 못해서인지 반짝이는 얼굴에 붉은색 수의가 예뻐 보이기 까지 했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나면 옛말하며 살날이 올 줄 알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이발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예전으로 소리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교도소마저 아이의 바닥은 아니었다.

샨은 죽어있을지도 모른다.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버도스! 마약중독자들은 거의 과다 복용으로 죽지 않던가. 죽은 지 오래되었다면 아이는 썩어가고 있을까. 문 을 열면 저승의 냄새가 역겹게 휘몰아칠까. 911을 불러야 하나. 아니 남편을 먼저 불 러야 하나. 붉은 사이렌을 돌리며 웽웽 미친 듯이 달리는 911 소방차를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아니 아이가 어렸을 적에 수진의 집에도 두 번이나 온 적이 있다. 한 번은 아이가 장난전화를 했을 때였다. 달려온 소방차는 준엄한 경고장을 날렸고 수진은 머 리 숙여 사죄를 해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수진의 집에서 스프링클러를 틀고 트램 펄린을 뛰던 동네 아이가 미끄러지며 엉덩이뼈가 어긋나버렸을 때였다. 수술 직전까 지 갔었지만 다행히도 뼈를 되돌리는 마지막 시도가 성공했었다. 혹 그 아이의 가족 으로부터 고소를 당하지나 않을까 맘을 졸였었다.

계단을 오를수록 911 대원들이 들고 나오는 들것 위에서 샨의 시신을 덮은 하얀 시 트가 눈부시게 빛났다. 부패가 진행되고 있다든가 백골화가 되었다든가 시체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이 무르익었다. 마침내 질기고도 무거운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야무진 꿈만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 끝에서 왼쪽으로 두 번째 집 앞에 섰다. 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는 두 개의 유리창은 나무판자로 가려져 있다. 문과 도어락은 오래된 콘도 건물에 어울리지 않게 반짝이는 새것이다. 부서지고 깨어진 것들을 고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가방을 고쳐 메는데 검은 피부에 머리가 곱슬한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잔디밭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조금 전 샛문에서 부딪칠 뻔했던 바로 그 아이였다. 죽어있 는 듯 황폐한 땅에서도 아이들이 자라고 논다. 이층 맞은편 건물의 문이 열리더니 검 은 후드티를 입은 젊은 남자가 나온다. 수진에게 손을 흔들더니 가드 레일에 두 팔을 올리고 담배를 입에 문다. 아이가 사라졌을 때 곧 돌아올 거라며 위로하던 남자다. 남편이 그랬었다.

“쳐다보지도 마. 하나같이 다들 개쓰레기 중독자들이야.”
수진은 남자를 향해 보일 듯 말 듯 손을 올려 보이려다 다시 문을 응시했다. 죽어있 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기도하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린다.
똑똑,
똑똑,
똑똑,
사람이 쉽게 죽지 않지. 희망을 접으며
한 번,
두 번,
세 번,
제발 열리지 않길 간절히 바라며, 긴 간격을 두고 다시.

구석구석 켜켜이 쌓인 먼지가 끔찍했다. 방 같기도 거실 같기도 한 공간은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바로 찍어버린 사진처럼 흐물거렸다. 영혼만 남겨진 여자는 걷는 듯 나 는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꼭 그래야 한다는 듯이. 수초처럼 일렁이는 벽들이 옹 기종기 둘러앉기도 나란히 줄지어 복도를 만들기도 했다.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벽 을 따라 문도 없는 욕실이 성큼 열렸다. 거의 누렇게 변해버린 변기가 요의를 기다리 는 듯 앉아 있었다. 무너져 내리는 삼면을 떠받치고 있는 욕조는 녹슨 철제 기구처럼 썩어가고 있었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증과 여기를 말끔히 닦아내고 싶 다는 욕구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바로 그때 부르지도 않은 요의가 여자를 번쩍 들 어 올렸고 재래식 화장실에 앉듯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았다. 그 사이에 여기저기 열심 히 청소를 한 기억도 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청소도구를 양손에 들고 바쁘 게 오가던 남자의 두 눈이 여자의 성기에 정면으로 꽂혔다. 여자가 고개를 숙여 들여 다본 것도 아닌데 눈앞에 클로즈업된 그 곳은 방금 제모를 마친 듯 음모가 단 한 가닥 도 남아있지 않았다. 연분홍색 살갗이 새 기저귀를 차기 전 아기의 것처럼 깨끗해 보 였다.

몇 시쯤 되었을까.  

서랍장 위에 놓인 디지털시계는 보일 때보다 보이지 않을 때가 훨씬 많다. 창문 옆 이어서인지 해 뜨고 난 후 해질 때까지는 장님과 눈을 맞추는 기분을 들게 한다. 역광 인지 후광인지 짜증만이 탑재된 무용지물이었다. 피사체 후면에서 투사되는 조명을 잘 이용하면 피사체의 세부가 사라지고 실루엣만 남는 기하학적인 그림을 얻을 수 있 다. 디지털시계의 숫자가 사라지고 남은 시계의 실루엣은 기하학적이라기보다 눈알 이 빠져나간 검은 동굴을 마주 보듯 혼란스러웠다. 침대 반대편으로 여기저기 위치를 바꿔보아도 밤낮으로 온종일 잘 보이는 곳은 없었다. 7:12, 전화기에 있는 시간을 확 인한 후 문자도 전화도 아무런 알림 표시가 없는 액정을 보자 수진은 몸속의 흐르는 피가 잠시 멈춘 듯했다. 혹시라도 죽었을까.

또 꿈을 꾸었나. 이맘때면 늘 그랬다.
꿈의 주인은 누구일까. 내일을 미리 보기라도 하는 것일까. 어제를 단지 곱씹어 볼 뿐인 것일까. 이렇게 자주 마주치다 보면 두 주인이 바뀌는 것조차 자연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면 꿈과 현실이 뒤바뀌어 있었다. 침대 왼쪽 사이드 테이블 에 놓인 전화기를 잡기 위해 왼팔을 뻗을 때마다 수진은 어깨가 시리다. 아주 가까이 있는 작은 전화기는 그래서 자주 거대한 바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가끔 정신이 몽롱해지는 지점에서는 작은 전화기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리고 싶어진다. 살려주세요! 입 밖으로 차마 나오지 못한 그 다섯 글자는 자신을 지워달라는 애원이기도 했다.

어깨 통증 때문에 수진은 코르티손 주사를 맞은 적이 있다. 의사는 끝끝내 주사를
주지 않을 것처럼 시간을 끌었다. 어느 정상적인 부위를 비정상으로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될 수 있으면 맞지 않는 것이 좋은 나쁜 속임수임이 틀림없었다.

“밤에 그 통증 때문에 자주 깨나요?”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요.”

그 단호한 불평을 몇 번 들은 후에야 독침처럼 맞을 수 있었다. 코로존 주사로 사라 진 통증은 묘한 것이었다. 느낄 수 있는데 느낄 수 없는 감각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었 다. 마취 주사를 맞았을 때와는 또 다른 마비였다. 분명 그 자리에 있는 선명한 통증 이 가물거리는 장막 너머에서 수진을 빤히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모른 척 살아가기에 좋은 거리에 그것은 늘 숨어 있었다.

수진은 검색창을 띄운다. 꿈, 해몽, 먼지, 욕실, 청소, 성기, 노출. 열거해 본 것을 적당히 배합한다. 흉몽과 길몽 사이 애매한 배합은 바로 경고장을 날리기도 한다. 검 색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검색어의 단어 수를 줄이거나 보다 일반적인 단어로 검색 해 보세요. 두 단어 이상의 키워드로 검색하신 경우 정확하게 띄어쓰기를 한 후 검색 해 보세요. 키워드에 있는 특수문자를 뺀 후에 검색해 보세요. 성기 같은 19금 단어 때문에 실명 조회까지 거칠 판이었다. 지난밤의 해몽은 늘 천국과 지옥을 뒤섞어놓고 연옥쯤에서 미리미리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청소하는 꿈은 대체로 운이 상승하고 근심거리가 사라지는 운세다. 근심거리만 사 라진다면 일 년 삼백육십오일 내내 침대를 떠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반가운 소식 또 한 청소하는 행위에 포함된다. 특히 화장실을 청소하는 꿈은 재물의 손실부터 신분 상승까지 극과 극을 암시한다. 여성의 성기는 자식, 작품, 수치심, 비밀, 창조의 근원 까지 다양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수진이 대학에 떨어졌을 때는 철로가 끊어진 꿈을 꾸었고 3차로 들어간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을 때는 거대한 독수리가 지붕을 덮는 꿈을 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가 빠지는 꿈도 야무지게 꾸었다. 꿈 을 되새기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다. 해몽 글을 읽으며 눈이 반짝이는 이유다. 성 기가 노출되는 꿈은 자식의 신변이 노출되는 거란다. 오래전 수진이 다니던 교회 장 로님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다.

“샨을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수진은 문자를 읽자마자 연락처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장로님은 자신이 운영하 는 식당의 남은 음식들을 홈리스 쉘터에 갖다주거나 재활센터에 봉사를 다니다 샨을 목격했을 것이다. 자식의 신변이 노출된 것은 그렇게 오래전의 일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은 그때부터 교회를 향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한국 마켓이나 한국 식당에서 마주치는 옛 교우들은 알고 묻는지 모르고 묻는지 흔들리는 그들의 눈빛 속에서 수진 의 세상도 흔들렸다. 한발 앞서 거짓 대답을 꾸며내기 바쁜 처참함은 남의 불행 앞에 서 행복해 본 적이 있는 수진의 폐부를 찔렀다. 자식이 죽는 꿈을 꾸고 싶다. 아니 자 식이 죽는 꿈은 길몽이란다. 자식은 근심거리나 문제를 암시한다. 내가 꾸고 싶은 꿈 은 자식이 죽는 해몽을 가진 꿈이다.

며칠 전 수진은 제니를 보았다. 분명 제니였다. 단골 마켓의 늘 주차하는 자리로 꺾 어드는 순간이었다. 맞은편 차에서 내리는 여자아이는 기억 속에 선명한 바로 그 얼 굴이었다. 자그마한 키에 스모키 화장, 늘어뜨린 금발은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 지였다. 얼마나 맑고 파란 눈이었는지 쳐다보면 호수에 빠질 듯 허우적거리곤 했다. 그녀의 두 눈은 그녀가 입은 옷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변했다. 초록색 옷을 입은 날 은 초원을 가로지르는 새이기도 벨벳 주머니 속에 숨겨 둔 에메랄드이기도 했다. 파 랑색 옷을 입은 날이면 지중해의 푸른 지붕처럼 동그랗게 반짝였다. 초점이 흐려 보 이는 날은 가질 수 없는 보석처럼 쇼윈도 안에서 반짝거리곤 했다. 이혼한 엄마와 아 빠가 아래위층으로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이상한 아이였다. 하얀 피부에 할로윈 커스 튬처럼 너덜거리는 옷과 반짝거리는 색조화장도 예전 그대로였다. 급하게 시동을 끄 고 핸드백을 낚아채듯 차에서 내리며 마켓 입구로 걸어가는 제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차문을 닫다가 열쇠가 발등에 떨어졌다. 열쇠를 급히 집어 들고 자동문 너머로 사라지는 금발을 뒤쫓았다. 제니는 구름 위를 걷듯 가볍게 오른쪽 베이커리로 사라졌 다. 도넛 코너를 지나 케잌 진열장을 지나 통밀빵 코너까지 뛰어갔다.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서 선명히 걸어가던 그녀가 사라졌다. 제니는 죽었다. 죽었다고 했다. 작년 마켓에 가는 차안에서 분명 샨이 말했었다.

“엄마, 제니 죽었대.”
“아빠가 산다는 샌디에이고 재활센터로 갔다더니.”
왜 죽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제니 엄마는 얼마나 좋을까.

제니는 샨이 고등학생 때부터 늘 붙어 다니던 여자 친구였다. 제니는 샨에게 또 다 른 가족이 되었다. 먹을 것을 챙기러 올 때 말고는 방과 거실이 있는 지하실에서 올라 오지 않았다. 제니의 어린 부고는 내가 들어온 것 중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알래스 카에서는 백 가지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지만 아이의 주변에선 하나같이 단 하 나의 이유로 죽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호수가 입을 벌리고 얼음의 심장으로 빨려 들 어간 것일까. 불모의 바닥에 이마를 찧고 나비를 쫓아 오래오래 춤추던 아이. 교통사 고처럼 부딪혀 겁 없이 사들인 환각은 재활 혹은 부활을 꿈꾸는 더 큰 도시로 퍼져나 간다. 짙어진 화장이 세상과의 돈독한 경계였다면 마약처럼 보드라운 입술은 물에 빠 져도 둥둥 떠오르던 소문이었다. 즐거운 피가 도는 울창해진 미답의 숲은 꿈으로 가 는 지름길투성이. 조롱당할수록 유독해지고 시들어갔을 부랑한 공주여. 근육강화죄, 심장흥분죄를 저지르던 도핑족들은 승자의 기분을 독식하거나 프리웨이 입구에 구걸 하는 앙상한 해골로 서 있다. 잔혹한 동화가 너무 길었다. 불시착한 별이 욕망의 지구 라니. 별을 보고서 어찌 별을 잊을까. 하얀 시트가 드리워진 그녀의 생몰연도는 꿈이 었다. 그녀를 홀로 버려둔 건 꽃이 저절로 핀다고 착각한 바람의 소행이었다. 밤과 어 둠 사이 물 위로 둥 떠오른 소식에 수진의 꿈도 성큼 다가오고 있다고 여겼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하루를 손꼽아 기다렸다.

샨이 변두리 콘도에서 혼자 지낸지도 2년이 넘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집에서 쫓겨났을 땐 자신의 차를 몰고 나갔었다. 백 번 아니 천 번쯤의 약속을 어긴 뒤 아이는 집을 떠났다. 아이는 가족 간의 정신적 유대감을 갉 아먹는 벌레였다. 수진의 가족은 동거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살가움과 안타까움은 이내 고통으로 이어지고 말 것을 너무 나 잘 알게 되었다. 울며불며 붙들고 끌어안고 사정과 회유와 보상을 거친 뒤 바로 다 음날 아이의 방에서 찾아지는 주사기는 희망 없이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주었다. 각자의 늪으로 매일매일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각자의 바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미워하다 떠나버리는 것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너무 열심히 살아온 죄였을까. 지난날의 모든 어둠이 아이가 퍼먹던 숟갈 위로만 고스란히 내려앉았고 지난날의 모든 아픔이 아이가 마시던 컵 속으로만 고스란히 녹아내렸을 까. 늘 화가 나 있던 아이를 되돌아볼 시간은 수진에게 없었다. 시간은 돈이었고 달리 다 멈추면 곧바로 뒤처지는 것이 이민자의 삶이었다.

어디로라도 사라져주었음 했다.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혔고 들어오지 않으면 더 숨이 막혔다. 달리는 거리의 수많은 차들 중 어느 한 차와 부딪치기라도 했음 싶었다. 여름 의 끝자락에서 나무들은 하나 둘 가지를 줄이고 있었고 나뭇잎은 수명을 다한 듯 푸 른빛을 버리기 시작했다. 인내심의 수명도 거기까지였다. 우유부단함이 모성인 듯 모 성애를 연기하던 수진도 남편의 결정에 무언으로 항복했다. 남편은 수진이 없는 틈을 타 아이의 차 한가득 옷가지를 실어준 뒤 몇 백 불을 쥐여주었을 것이다. 수진에게 마 지막 인사를 시키지 않은 건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가 떠난 다음날은 이층에 있던 아이의 방이 말끔히 치워진 뒤였다. 아이의 손길이 닿았던 모든 물건들이 쓰레 기차에 실려 갔다. 값나가는 것들은 이미 전당포로 다 팔려나간 뒤였다. 아이의 방에 있던 물건들은 하나같이 고통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끔찍했다.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나지 않아 태워 없애버려야만 할 것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길만이 망각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아이에 관한 모든 대화는 금기시되었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살 것 같았다. 지난 10년간의 고통을 기억하기에 수진은 이젠 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잊어 주리라.  

너는 죽어가지만 나는 살아가리라.

SNS로 들려오는 소문에 아이는 알렉스라는 친구 집에서 농장 일을 하며 지내는 듯 했다. 한 달쯤 뒤 알렉스와 남편은 몇 번의 문자와 전화를 주고받았다. 같이 마약을 하며 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알렉스는 이제 정상인이 되어 있었다. 백인과 일본인의 혼혈인 알렉스는 아버지의 농장을 물려받고 건실한 농장주가 되어 있었다. 샨이 자꾸 만 사고를 치니 차를 없애달라는 부탁이었다. 남편은 거절했다. 차를 가지고 오면 끊 어냈던 아이와의 끈을 다시 잇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가 살지 않는 집으로 날아드는 법원 출두 명령서나 빚 독촉장들은 잊을만하면 아이의 존재를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아이에게는 마지막 재산일 차를 자신이 나서서 처분해버리고 싶지도 않았으리라. 남 편은 더 이상의 간섭이나 걱정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 는 알렉스의 농장에서도 쫓겨나 차에서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몇 달 뒤 아이는 문 자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경찰이 차를 끌고 갔고 폐기처분되기 전에 벌금을 내달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차는 숙식을 해결하는 마지막 재산이기 전에 마약으로 이어진 유일 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차가 처분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 라 경매 처분되었단다. 아이는 학교를 버렸고 친구를 버렸다. 아이는 아빠를 버렸고 엄마를 버렸고 집을 버렸다. 아이는 옷을 버렸고 전화를 버렸고 차를 버렸다. 아이는 내일을 버렸다. 무욕의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길바닥으로 나앉았을 것 이다.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홈리스 쉘터에는 샤워실도 컴퓨터실도 식당도 있다 고 한다. 하지만 마약은 없을 것이다. 마약과 마약 사이에서 길을 잃은 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인지도 모른다. 다음 마약에 닿을 때까지.

햇살이 부서져 내리던 화창했던 날 현관 벨이 울렸다. 샨이 쫓겨난 지 6개월 만이 었다. 수진은 집을 나설 때마다 어디선가 아이를 마주치지 않을까 두려웠다. 도로 길 모퉁이나 프리웨이 입구에 종이 팻말을 들고 서 있는 홈리스를 볼 때마다 얼굴을 살 피는 버릇이 생겼다. 어디선가 마주칠지 모르니 지갑엔 늘 현금을 두둑이 넣어 두었 다. 초인종 소리가 날 때마다 블라인드 사이로 먼저 창밖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아 이는 현관 벤치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블라인드 사이로 수진과 두 눈이 마주 쳤다. 아이의 눈은 수진의 눈을 후벼 파고 있었다. 설마 문을 안 열어주지는 않겠지 하는 눈빛이었다.

“당신도 책임은 있어.”

아이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선 아이의 행색은 다운타운에서 카트를 끌며 횡단보도를 지나거나 HELP ME 라는 사인을 들고 서 있는 홈리스들과 다르지 않았다.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한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머리에는 벙 거지 모자를 쓰고 해진 신발 위에 껴 신은 두꺼운 양말이 찢어진 창자처럼 너덜거리 고 있었다. 낮에는 땀에 젖고 밤에는 찬바람을 맞기 시작한 얼굴은 땟국물과 엉켜 반 듯했던 이목구비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들고 있는 천 가방은 때에 찌든 잠바와 무슨 서류뭉치들이 뒤섞여 곧 터질 듯 부풀어있었다.

“화장실 좀 쓸게요.”  

물음이 아니라 통보였다. 당신의 아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 똑똑히 보세요, 하는 표정이 눈치를 보는 두 눈에 서려 있었다. 10분이 지나도 화장실에서 나 오지 않아 그녀는 아이를 불러내었다. 아이는 세수도 하고 나왔다. 땟국물이 엉성하 게 지워진 얼굴이 더 낯설어 보였다. 손에 들고 나오는 수건을 받아들고 수진은 페이 퍼 타올을 대신 건넸다. 네가 가져온 거리의 불행을 우리 집에 묻혀두고 가지 마,라고 하는 듯.  

“아빠가 곧 오실거야. 태워다 줄게.”

다행히 남편이 집을 비웠을 때라 혹시 마주칠까봐 마음은 더 급해졌다. 자식 때문에 무너질 대로 무너진 남편은 이제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권총을 사다 모으는가 하 면 다 버리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자고도 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곳이란 대 체 어디란 말인가. 혼자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그런 남편과 마주치게 할 순 없었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해먹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도시락 을 싸줄 수도 없었다. 시동을 걸며 옆에 앉은 아이가 안쓰러웠다. 터질 듯한 천 가방 을 발 앞에 두고 안전벨트를 매는 아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수진도 아이도 서 로에 대한 기대는 더 이상 없었다. 해답을 모르는 문제지를 받아들었을 땐 그냥 영점 처리를 받으면 그만이다. 더 낮은 학점과 더 낮은 수준으로 내려앉으면 그만이다. 더 낮은 연봉의 직장이나 더 작은 집을 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이제 더 내려갈 곳이 없었다. 땅속 밖에. 바닥을 치면 이제 올라오겠지. 바닥에 처박히면 이제 올라올 일만 남았겠지, 하던 때도 있었던가. 하지만 아이는 바닥을 질질 끌며 살기로 했나보 다. 온몸을 바닥에 끌며 옷이 해지고 살점이 해지고 뼈가 부러지고 가루가 되어 그냥 그렇게 사라지면 되는 것이었나 보다. 질질 끌며 살기엔 세월이 참 느리다. 잘 지내 니? 어떻게 지내니? 어디서 자니? 뭐 먹고 사니?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물음들을 수 진은 한 마디씩 삼켜냈다. 할 말이 없어 한동안 침묵으로 달렸다. 둘의 침묵은 아이에 게도 수진에게도 참으로 익숙한 대화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목적지만은 물어야 했다.

“어디로 갈까?”
“1700 사우스 스테이트 쯤에 내려주세요.”

세상이 모두 자기 집이 된 건가. 거기가 어디쯤이더라. 수진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홈리스 거주지는 다운타운 근처에 있었고 아이의 목적지는 많이 떨어진 곳이다. 날씨 는 곧 추워지는데 나름대로의 철저한 규율이 있다는 홈리스 쉘터도 못 견디고 뛰쳐나 온 것일까. 수진은 이제 방관자에서 추측자가 되었다. 프리웨이에서 내려 햄버거 집 으로 갔다. 배가 고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이는 햄버거 두 개와 빅 사이즈 감자튀 김 두 개, 그리고 콜라를 시켰다. 오늘 밤과 내일쯤의 끼니였을까. 드라이브 인에서 끼니를 받아든 아이가 땡큐 엄마! 땡큐! 감사의 인사를 연발했다. 아이의 미소가 밝아 질수록 수진의 가슴은 더 찢어지고 있었다. 몸속의 피가 혈관을 찢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물샘은 결코 비를 맞아본 적 없는 사막으로 변한지 오래여서 모래바람이 부 는 듯 서걱거리기만 했다.

목적지는 쓰러질 듯 허름한 모텔이었다. 모텔에서 사는 듯한 피난민 같은 행색의 아이들이 열린 객실 문 너머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각으로 둘러싼 객실 건물 중앙 에 주차장이 보였다. 아이는 거기 내려달라고 했다. 천 가방과 햄버거 봉지를 든 아 이가 차에서 내려 주차장 구석으로 엉거주춤 걸어갔다. 핸들을 꽉 잡은 수진의 두 손 으로 몸속의 모든 힘이 재빠르게 몰려들고 있었다. 서 있었다면 아마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저 많은 객실 중 어느 한 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이는 구석에 멈춰 섰다. 천 가방을 내려놓자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것을 잊지 않았 다. 아이의 미소가 언뜻 천진난만해 보였다. 반짝이는 차를 몰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 갈 엄마에게 길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잘 아이가 손을 흔들었다. 바이 엄마!라고 말 했을까. 당신의 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똑똑히 보았지?라고 말했을까. 차를 돌 리며 아이가 펼쳐진 종이박스 위에 엉덩이를 붙이는 것을 보았다. 두 눈을 부릅뜨고 새드 엔딩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듯 몰입하다 매몰차게 고개를 돌렸다. 집이 어느 쪽이더라. 서쪽으로 왔으니 동쪽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프리웨이 입구가 어느 길에 있었지. South? North? I-15? I-215? 왔던 길이 어느 길이었지? 길이 보이지 않았 다. 짧은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텔 주차장 구석이 보였고 잠들기 전 엔 떠도는 아이가 보였다. 수진은 더 큰 악몽에 시달렸다. 마지막 잎새 앞에서 첫눈 소식이 휘몰아쳤다. 손발이 얼어붙은 하얀 눈사람 하나가 굴러들어오는 꿈을 꾼 뒤 남편에게 울며불며 매달렸다. 그리고 퇴직금을 헐어 서쪽 변두리에 작은 콘도를 샀 다. 마음은 급한데 투기꾼들인지 매수자들이 몰렸고 현금만 거래되었다. 선택의 여지 가 없었다. 해가 지는 서쪽으로 갈수록 가격이 내려갔다. 백인들은 동쪽으로 유색인 들은 서쪽으로 몰려 산다. 오래된 콘도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급조된 싸구려 인테리어와 숨겨둔 세월이 훤히 보였다.

거처를 마련하고 나니 아이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 홈리스 쉘터는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사람을 찾아주지 않는단다.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노숙자들의 동네를 훑고 다녔다. 전쟁터 사진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텐트촌이 건물 사이사이 혹은 도로변 에 버젓이 모여 있었다. 동면 준비를 하는 듯 텐트마다 겹겹으로 덮인 천막들이 쓰러 져가는 썩은 고목들 같았다. 이 풍요한 땅에서도 하늘을 지붕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 이 있다니.

어디 있을까. 피가 마르는 시간은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도 고문이었다. 침대와 옷 가지들 그리고 부엌 용품들로 새살림을 차리며 언뜻 언뜻 희망을 품었다. 길바닥에서 밤바람을 맞으며 쪼그려 자 본 아이는 따뜻한 집에서 이제 따뜻한 어른으로 다시 태 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 친구의 SNS에 메시지를 남기고 며칠 뒤 수진에게 전화가 왔다. 콘도 청소를 마친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왔다. 쫓겨난 후 6개월 만에 현관 벨을 눌렀던 바로 그때 그 모습이었다. 아니 그때는 여름 노숙자였다면 지금은 겨울 노숙자였다. 그래서인지 한층 더 성숙되고 준비된 노숙자의 모습이었다. 더 두꺼운 코트와 더 더러운 바지, 더 큰 배낭과 둘둘 만 담요까지. 껴입은 코트가 몸에 맞지 않아 마네킹이 걸어오는 듯했 다. 퇴역군인의 전술 가방 같은 거대한 배낭을 질질 끌며 패잔병 하나가 걸어오고 있 었다.  

“네가 살 집이야. 청소도 하고 깨끗하게 지내렴. 문제 일으키면 바로 쫓겨날 거야.” “오케이, 땡큐!”

누군가는 몇 년을 안 쓰고 모아도 살까 말까 한 집이 생겼는데도 아이의 감정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콘도에 들어온 아이는 깨끗이 쓰겠다고 곧 직장을 잡겠다고 점점 나아질 거라고 거짓에 거짓을 쌓아올리기 바빴다.

한 달에 한 번씩 들여다보는 콘도는 갈 때마다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늙어가는노인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가고 검버섯이 피듯 멀쩡했던 새집은 문짝이 떨어져 나가 고 벽이 찢어지고 거울이 깨지고 유리창은 부서져 있었다. 부서질 수 있는 모든 것은 부서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하나하나 쓰레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여분의 침실엔 한 가족이 들어와 살기도 했고 마약 중독자들의 정거장인 듯 뜨내기들의 짐이 쓰레기 처럼 쌓여갔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난 듯 구석구석 인간 말종들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욕실은 꿈속의 끔찍했던 바로 그 장면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콘도를 사는 게 아니었어.”

문제를 해결하라는 통보를 받고 콘도로 달려갈 때마다 남편의 악다문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이었다. 콘도 관리자로부터 소음 문제로 전화를 받거나 아래층 욕실에 물이 샌다거나 또 다른 지옥의 문은 끝도 없이 열렸다. 플러머를 데리고 막힌 변기를 벌써 세 번째 뚫고 오는 남편은 십 년은 더 늙어버린 얼굴로 다시 주저앉았다.  

“미친 중독자들만 드나들 거라는 걸 몰랐나?”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아직 더 내려갈 곳이 있다는 듯 남편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마약을 들고 오는 중독자들에게 숙소를 제공했을 것이다. 냉장고에 가득 채워 준 음식들과 맞바꿨을 것이다. 약에 취하면 자고 약에서 깨면 광 폭해졌다. 그리고 서로의 거래가 어긋날 때마다 싸우고 부쉈을 것이다. 콘도를 뜯어 먹으며 살고 있었다.

지난 연말에도 아이는 거리에서 겨울을 보냈다.

아이의 생일과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진은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렸지 만 한 달이 넘도록 문자가 없었다. 예전엔 한 달을 넘기진 말라고 당부하던 남편도 그 즈음엔 소식이 올 때까진 먼저 연락하지 말라고 상기시켰다. 연락을 기다리는 쪽으로 도 연락을 하지 않는 쪽으로도 인내심은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악몽 에 시달리다 맘먹고 찾아가기로 했다.

문을 몇 차례 두드리다 수진이 열쇠를 꽂으려던 참이었다.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거 덕거리는 문이 열렸다. 빼꼼히 내다보는 멕시칸 남자는 샨의 부모라고 하자 잠시 눈빛이 흔들리며 문을 활짝 열었다. 반바지에 민소매 차림인 남자는 콘도의 주인인 것 처럼 행동했다. 문신이 새겨진 두 팔을 휘저으며 샨을 어제부터 볼 수 없었단다. 자기 는 렌트로 살고 있으니 샨이 보이면 연락을 주겠단다. 거실에 있던 검은 개를 급히 침 실로 들여보내는 남자의 여자 친구가 보였다. 붉은 반점이 가득한 얼굴과 두 팔, 어눌 한 발음까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샨의 방으로 가보겠다며 따라들어 갔다. 침대의 위 치가 바뀌어져 있고 아이의 옷가지나 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며 수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멕시칸 남자가 샨을 죽여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칼로 찔렀을까. 총으로 쐈을 까. 설마 때려죽이지는 않았겠지. 얼마나 아팠을까. 불쌍하고 불쌍한 내 새끼. 오 불 쌍한 내 새끼. 아이는 마약이 필요했을 것이고 멕시칸은 거처가 필요했으리라. 그리 고 아이는 사라졌고 아이의 짐까지 모두 사라져버렸다. 아이가 돌아올 거라면 아이의 짐이 모두 사라질 리가 없었다. 고심 끝에 수진은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지금 바로 콘도로 가서 불법 거주자들을 쫓아내주겠단다. 그리고 샨의 실종 신고를 받아들 였다. 몇 시간 후 바로 연락이 왔다. 콘도는 안전하게 비워졌고 멕시칸은 샨의 행방 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단다. 콘도의 지역구 관할청인 경찰들은 이미 그 콘도 거주자들 이나 주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샨의 신원 조회 후 이미 실종 신고에 대한 심각성 도 사라진 후였다. 그때까진 차라리 샨의 장례식을 꿈꾸며 잠시 행복했었다. 아이와 의 마지막 마음을 준비하며 잠시 들떠 있었다. 아픈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그 냥 사라져버렸다니.

주인 잃은 콘도는 끔찍한 상태로 남겨졌다. 청소업체와 핸디맨을 데리고 가 청소와 수리를 했다. 창문과 문 그리고 도어록을 바꾼 후 콘도로 돌아오면 엄마 아빠에게 전 화하라는 메모지를 붙여두었다. 콘도의 이웃들이 한 번씩 지나가며 샨은 조용하고 착 한 아이였고 곧 돌아올 거라고 말해 주었다. 층간 소음이나 물이 샌다고 연락을 해오 던 아래층 남자는 샨이 멕시칸에게 쫓겨난 거라고 했다. 그날 밤 싸우는 소리를 들었단다. 아이가 죽은 건 아닐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또다시 허탈해졌다. 이웃들의 증 언을 퍼즐처럼 맞춰보았다. 죽지도 않았다면 왜 돌아오지 않을까. 아이의 전화 마지 막 통화는 911 이었다. 심란해진 수진을 단숨에 잠재운 건 남편의 한 마디였다.

“다 똑같은 개쓰레기들!”

불행의 이유는 참으로 여러 가지라고 했던가. 아이가 겪게 해 주는 지옥은 참으로 다양했다. 끝이 없는 호러 무비의 주연이 되는 건 갈수록 잔인해진다는 것이다. 이제 그냥 무심히 살아질 때도 되었건만 수진에게 익숙해진 통증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있었다. 두어 달 후 아이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멀쩡하게 돌아왔다. 송곳니 하 나가 빠졌다든가 눈썹과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버렸다든가 하는 건 더 이상 놀랄 일도 아니었다.

초법적 살인을 통해 범죄를 일소한다는 공약으로 필리핀의 대통령이 된 두테르테 는 내 아들이 마약에 연루되었다면 사살하라고 했다. 고급 페라리 스포츠카를 지게차 로 밀어버리거나 지게차의 쇠뭉치가 반짝이는 차를 들었다 놓았다 구겨버리는 장면 은 보기만 해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벌거벗은 시체들이 홀로코스트의 가스실 처럼 쌓인 사진은 끔찍하지만 아주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초법적 처형으로 수천 명이 사살되었다.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쾌락을 꿈꾸다 천상으로 옮겨진 이들의 몸뚱이는 구원받은 영혼들과 다르지 않다. 마약 세계에서의 빈부의 격차는 확연하다. 부유한 중독자들은 고액의 변호사들이 지켜주는 화려한 방에서 합법적인 환각을 즐긴다. 가 난한 중독자들은 락스나 윈덱스 같은 청소용품들을 흡입하다 구걸하거나 훔친 돈으 로 사들인 마약과 함께 교도소를 드나든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폴레옹보다 더 위대한 두테르테여!

수진이 꿈꾸는 오직 한 가지 희망은 자식의 시신을 보는 일이었다. 매일 전사자 명 단에서 아들의 이름을 찾았다. 수많은 총성과 수많은 포화를 뚫으며 끈질기게도 살아 돌아오는 아이. 거리에서 공원에서 주차장에서 구석진 나라를 구하려 몸을 던지다 번번이 탈영병이 되었을 것이다. 신분을 버리고 세상을 버리고 온 세상의 때를 혼자 다 묻히고 돌아오던 그 무욕의 얼굴. 하늘은 벙거지 모자를 쓰고 땅은 해진 신발 위에 더 해진 양말을 신고 있었다. 부러진 주삿바늘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를 앙상한 아이의 몸을 꼭 껴안던 날 두테르테는 이천 명을 살해하고 칠십만 명의 자수 를 받아냈단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백해무익한 짐승들은 그렇게 죽어가는 것이 마 땅하다. 완전범죄가 있다면 정말 아이를 죽이고 싶었다. 적어도 자신보다 일찍 죽기 를 바랐다가 이제는 하루라도 빨리 죽어줬으면 싶었다. 수진의 삶은 왜 이토록 죽기 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차 있을까.

수진에겐 한국에 있는 엄마가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시길 기도했던 날들이 있었다. 하반신 마비로 누워 계신지 이태 째, 남동생과 올케는 이미 자식과 며느리가 아닌 지 쳐가는 간병인이 되어 있었다. 우울증이 왔다며 올케는 걸핏하면 아이를 데리고 밖으 로 나돌았단다. 지방에서 올라온 언니들은 잠긴 아파트 문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 다 창문을 두드리며 엄마와 대화를 했단다. 몇 달에 한 번씩 얼굴을 비치는 시누이들 은 친정엄마를 내팽개친 몹쓸 년들이었고 병든 시모를 가둬두고 외출을 하는 며느리 는 더 몹쓸 년이었다. 엄마를 사이에 둔 가족들은 서로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욕창이 번지는 몸뚱이에 갇혀 천정만 바라보는 생명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멀쩡히 돌아온 샨의 얼굴을 다시 보았을 때 수진은 한순간 기뻤던가. 어디서 샤워 를 하고 온 것인지 말끔해진 얼굴이 어쩐지 더 예뻐 보이기도 했던가. 세상 끝까지 갔 다 온 수도자의 모습을 잠시 보기도 했던가. 그러다, 그래 사람이 쉽게 죽지 않지. 마 주 보는 고통의 무게를 통째로 무대 위로 올린다. 관객의 시선으로 아주 큰 것을 아주 작은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나면 세상은 참으로 쉬워진다. 아주 소중한 것을 아주 하 찮은 것으로 바꿔 버리고나면 세상은 참으로 단순해진다. 냉정하게 돌이켜 보건대 목 숨을 걸고 지켜온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목숨만이 질기게 붙어있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수진에게는 아주 익숙한 불행 같기도 했다. 가슴이 자라면서부터 수진은 행복에 익숙해 본 적이 없다. 행복은 늘 불안을 데리고 다녔다. 한국 드라마 속에서 자식의 시신 위에 엎드린 한 여자가 오열을 했다. 자식이 먼저 죽는 것이 저리 끔찍한 일일 수도 있을까 싶었다.

제초제가 든 김밥을 싣고 수진이 콘도로 가는 길은 여느 때와 달랐다. 차들은 무엇 엔가 쫓기듯 미친 듯이 달렸다. 뚜렷한 목적지를 향해 거침이 없었다. 차들이 닿을 목 적지에는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에 따라 힘이 주어지던 오른 발이 속도를 올렸다 줄였다 했나 보다. 뒤차의 운전자가 백미러 속에서 두 손을 치켜 들고 있는 것이 언뜻 보였다. 머리가 쭈뼛 당기자 가슴까지 예리한 통증이 왔다. 엉 겁결에 차선을 바꿔 주었다. 쌩하고 지나치는 왼쪽 뺨이 화끈거렸다. 그녀를 향한 이 목구비가 욕지기를 내뱉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그 차의 목적지 가 정녕 궁금했다. 그녀도 그렇게 빵빵거리며 추월을 하고 결사적으로 달린 적이 있 었다. 그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성공한 삶을 위해 달리고 달리다 막상 목적지에 닿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뭔가 보이긴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상처들, 이름 지을 수 없는 통증들, 후회스럽도록 시들고 쪼그라진 꽃잎들만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 었다.

핸들을 잡을 때마다 수진은 신기했다. 저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저리도 안전하게 달릴 수 있을까. 손목을 조금만 비틀어도 바로 거기엔 죽음이 있는데. 잔인한 광경 속 의 주인공으로 던져질 수 있는데. 거대한 바퀴로 다가오는 집채만 한 트럭을 지나칠 때마다 수진의 손목은 종종 움직이려 했다. 80마일의 도로 위에서 5도만 꺾여도 그녀 의 차는 저 거대한 바퀴와 맞물릴 수 있다. 맥없이 뽑혀 잡초처럼 뒤엉킬 것이다. 바 퀴와 바퀴 사이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종잇장처럼 구겨질 것이다. 그리고 앰뷸런스 에 실려 화장터로 옮겨질 것이다. 그래서 부서진 차나 뒤집어진 차, 웅성거리는 사고 현장을 지나칠 때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살다가 코 미디처럼 피를 묻히고 구겨진 차 안에 거꾸로 앉아 있는 것은 50대의 이름 없는 여자 였다.  

멍하게 이어진 속도를 따라 멀어진 수진의 초점 사이로 공항과 레드우드로 빠지는 사인이 보였다. 서쪽 끝으로 가까워지면 공항으로 갈 수도 있고 붉은 숲으로 갈 수도 있다. 공항 가는 길은 수진을 늘 서울로 데려다주었다. 늘 서울로 가고 싶지만 서울 에서 살고 싶진 않았다. 숲으로 핸들을 꺾는다. 삼나무가 가득한 길 없는 숲이다. 오 래된 숲에는 이제 나무가 없다. 붉은 나무들이 붉은 피가 도는 사람이 되어 곳곳에 박 혀 산다. 한 달에 한 번 먹이를 주러 가는 길. 20마일 남짓한 그 길은 서울에서 이 도 시까지의 거리처럼 멀다. 태평양을 건너는 비행시간만큼 지루하다. 길 없는 하늘길을 뚫고 가는 것처럼 막막하다. 물속을 헤엄쳐 바다를 건너는 만큼 힘겹다. 수진은 전생 에 무슨 죄를 지었을까. 궁금해질 때마다 이승에서 지은 죄들이 하나 둘 선명하게 떠 올랐다. 어릴 때 구멍가게를 하던 큰언니의 가게에서 훔쳐 먹었던 칠성 사이다까지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아이가 재활센터를 드나들 때도, 그룹 카운슬링을 다닐 때도,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랜덤 메시지를 받고 마약검사실을 드나들 때도, 개인 상담을 받으러 다닐 때도 절망보다 희망이 컸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기다리던 주차장 가득 선명한 희망이 주차되어 있었다. 의사인 샨의 상담사는 마약 중독자들은 환자와 다름 없다며 자신 또한 한때 중독자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시처럼 박혀있는 조언.

“경험상 희망을 많이 갖지 않는 것이 좋아요.”
마켓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차 안에서 샨이 그랬다. 부끄러움과 미망 사이에서 아 이의 섬섬한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엄마, 난 이 동네가 좋아. 눈이 찢어진 아이도 왕따도 없어. 모두들 똑같아 보여.”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앨범 속에서 환히 웃고 있던 다섯 살배기와
다르지 않았다. 멜빵 달린 반바지를 입고 데이케어에서 달려 나오던 아이. 앙증맞은 턱시도를 입고 피아노를 치던 아이. 중학교 강당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아이. 농구를 하고 축구를 하던 아이.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벌렁 드러눕거나 벽에 머리를 부딪치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도 했었는데 자라면서는 점점 말 수가 줄면서 아무것도 요구하려 들지 않았다. NO라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거 절당하기 전에 냉소적이고도 어두운 자아의 세계로 숨어드는 듯했다. 초등학생 때는 전날 밤에 준비해 둔 옷을 얌전히 입고 등교를 하지만 메고 나가는 백팩 속에는 몰래 갈아입을 옷이 들어 있곤 했다. 한글도 읽고 쓰던 아이는 사춘기 때는 아예 말도 섞으 려 하지 않았다. 잘잘못을 따지고 들자면 모두 수진의 잘못인 듯 여겨졌다. 엄마가 한 국에 가면 다신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든 건 바로 수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콘도 문을 나서며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다. 처음엔 아이의 온몸에 언 뜻 서운함이 감돌더니 이제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도 만져주지 않고 아무도 껴안아주지 않는 아이는 환각인 듯 점점 더 말라가고 있었다.  

인기척 없는 문을 수진이 다시 두드리는데 잔디밭 사이로 검은 피부에 머리가 곱슬 한 아이가 파란 자전거를 타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지나간다. 이층 맞은편 건물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담배를 비벼 끄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이 없다. 다시 문을 두드린다. 여전히 기척이 없다. 수진의 전화번호 뒷자리로 만들었 던 비밀번호를 누른다. 첫 숫자를 누르며 썩어가는 시체가 보였고 두 번째 숫자를 누 르며 멀쩡히 걸어 나오는 아이가 보였다. 세 번째 숫자를 누르며 소파 위에 백골이 된 시체가 보였다. 시체를 갉아먹고 있는 구더기떼를 보는 상상, 아이의 배를 갈라 사망 시점을 꺼내는 상상, 아이의 장례식에서 억지로 눈물을 흘리는 상상 끝에 번호의 끝 자리를 누르려는 순간 문 안쪽으로부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철커덕 문이 열렸다. 빵 모자를 뒤집어쓰고 긴팔 셔츠를 입은 아이가 시체처럼 서 있다. 초점 없는 눈이 말을 한다.

“쏘리 엄마, 자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