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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중・고등 부문] 세상의 이웃, 글로벌 코리안
작성일
2022.12.12

청소년글짓기 중・고등 부문 장려상


세상의 이웃, 글로벌 코리안

김 세 린 (칠레)


내 이름은 세상 ‘세(世)´, ’이웃‘ 린(隣)’, 세린(世隣)이다. 부모님은 내가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길 바라면서 이렇게 이름을 지어주셨다. 그리고 부모님을 따라, 지금 한국 반대편 이웃들과 여기 칠레 산티아고에서 살고 있다. 6살에 칠레에 왔으니 이제 10년째다.


칠레에서 유치원에 처음 간 날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우리 반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자 한국인이었던 내겐 모든 것이 낯설었다. 친구들도 나를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첫 질문은 항상 ‘어느 나라 사람이야?’ ‘중국인이야?’였다. 내가 ‘한국인이야.’라고 대답하면,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당시에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왠지 창피하고 숨기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어를 못하는 척하고, 도시락으로 한국 음식을 싸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처럼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하기를 바랐다. 한국에 가면 인천공항에서부터 아무도 나를 다르게 보지 않고, 내가 그저 똑같은 한국 사람 중 하나라는 게 정말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외국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해졌다. 그 시선은 무시가 아니라 관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에는 칠레인들과 다른 점을 숨겼지만, 이제는 서로 공유하고 알리려고 노력한다. 한국어로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우리의 특별한 문화도 알려주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케이팝 가사를 번역해 줄 수 있는 것도 기쁘다. 따라서 이제 더는 다름으로 인해 힘들어하지 않는다. 모든 면에서 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고, 서로의 차이가 우리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로의 특별한 점을 주고받고 있다.


비록 지금은 이런 환경이 익숙하지만, 친구들과 있으면 여전히 차이가 있다는 것도 느낀다. 나는 젓가락을 사용하고 우리 집 식탁에는 항상 밥과 김치가 빠지지 않지만, 친구들은 포크와 나이프로 빵에 아보카도를 발라 먹는다. 나는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지만 친구들은 집에서도 신발을 신고 거실을 돌아다닌다. 학교에서는 스페인어로 말하지만 부모님과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나와 달리, 친구들은 항상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도 다른 점이 많지만, 그렇다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성적에 대한 고민, 화장과 패션에 대한 관심,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은 10대 청소년으로 똑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위로해주고 공감하면 웃을 수 있다. 즉,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변하지 않는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달라도 함께 공감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깨달은 것이다.


사실, 때로는 한국 친구들과도 다르고 칠레 친구들과도 다르기 때문에, 어디에 있어도 항상 이방인이라고 느낀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것 같은 소외감도 경험한다. 하지만 내가 소외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변화하는 오늘날의 세상에 맞는 새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꼭 어느 한 곳에만 소속된 마음을 갖기보다는, 이 넓고 서로 연결된 세상 안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나름의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국적이 있고, 여전히 국경은 굳건히 존재한다. 하지만 인터넷 등 지금의 정보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 덕분에 끊임없이 교류한다. 과거에는 여행이나 출장이 그 교류의 전형적인 수단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직접적인 교류가 줄어들었지만, 화상 회의 방식 덕분에 랜선 교류라는 새로운 방식의 교류도 더욱 활성화됐다.


이렇게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도 매일 오가고 소통하기 때문에 국경은 점점 허물어지고, 그만큼 국적의 개념도 옅어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어떤 일이 발생하면 국경을 넘어 세계가 함께 이겨내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 아무리 한 지역에서만 백신을 맞고 방역하더라도 백신을 살 수 없는 나라가 있다면 전염병은 극복하기 어렵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전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 앞에서도 모두의 협력 만이 답이다.


이제는 세상이 기술과 과학의 발달 덕분에 정말 가까워졌지만, 아직 전 세계가 완전히 하나가 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세계화가 가져온 다양성을 수용해야 하지만, 기존의 고정관념 때문에 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직도 남녀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 다름을 거부하고, 자신이 우월하다는 착각으로 남을 혐오하는 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하나가 되는 것은 단지 같은 곳에 사는 것만이 아니라, 그 공동체 안에서 아무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차별하지 않고 항상 포용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양성은 국적만이 아니라 장애, 소득수준, 피부색, 종교, 살아가는 방식에도 있다. 칠레의 자연을 구경하기 위해 배낭을 메고 해외여행을 온 사람도 있듯,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칠레에 온 주변국 이민자도 있다. 자신의 조국이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는, 가족을 두고서라도 타지로 떠나는 것만이 마지막 희망이다. 보다시피 살아가는 방식에 우리 모두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차이를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고 배우는 사람이 진정한 글로벌인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와 배경의 사람을 만나려면 외국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나의 조국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민족의 역사와 현대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할 수 없고 오히려 다양성을 점점 잃어갈 것이다. 따라서 한국에 살든 해외에 살든, 여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아야 한다.


내게 ‘세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셨을 때, 부모님께서는 내가 한국인으로서 어떻게 세상의 이웃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셨을까? 글로벌 코리안에 대한 정의는 정확히 내리기 어렵다. 특별히 무언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 가장 글로벌한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작고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이웃은 물리적으로만 가까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가 다르지만 공감하고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각자가 살아가는 공동체 안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특별함을 잊지 않으며 나눈다면 세상은 더 풍부해질 것이다. 또한, 차이를 차별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존중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과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글로벌 코리안의 모습이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