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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중・고등 부문] 상하이에서 ‘해방’을 외치다
작성일
2022.12.12

청소년글짓기 중・고등 부문 장려상


상하이에서 ‘해방’을 외치다

고 수 경 (중국)



어느 날 나는 ‘로마’라는 ‘화원’에 갇혀 버렸다!
이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 키의 몇 배는 될 듯한 이름 모를 석고상이 시선을 압도하며 한껏 위용을 뽐내고, 길로 난 커다란 금박 철제문을 마주한 남신들은 한가로이 풀밭 한가운데 모로 누워 강렬한 태양 빛 아래 한가로이 태닝을 해대는 듯 보이지만 여전히 대문 밖 자유를 갈망한 채 오롯이 박제되어 버린 이곳 ‘로마화원’.
건물 4개의 한쪽 면이 모두 대문을 향하고 있고 건물과 대문 사이 크지 않은 공터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여신상 분수대가 자리해 베란다에서 고개를 빼고 내려다 보노라면 이 모든 풍경이 한 폭의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비릿한 흙냄새와 습한 기운이 아무렇게나 한데 섞여 현실과 동떨어진 또 다른 세계를 보는 듯 아득해지기도 한다.
혹자는 물으리라. 내가 이탈리아 로마에 사냐고?

정답을 먼저 이야기 하자면…… 아니!
나는 중국 상하이 어디쯤에 위치한 ‘루어마화위엔(로마화원)’이라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어떻게 해서 여기가 로마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우리 동네 아파트들이 아테네, 리옹, 로테르담, 파리 등 유럽의 이름난 도시 이름을 달고 있는걸로 봐서 설계한 사람들이 상하이 안에 또 다른 유럽을 건설해 보려고 애쓰다가 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꼭 내가 살고 있다고 그런 건 아니지만 비교해 보면 주위에서 우리 아파트가 제일 예쁘다!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지금 태닝하는 신들 만큼이나 저 문 너머 존재할 자유를 미치도록 갈망하며 이곳에 봉인되어 있다. 우리의 용맹한 로마화원 린쥐(이웃)들은 마치 ‘이 안전지대를 몹쓸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고야 말리라’ 맹세한 투사가 된 것처럼 모두 하나로 똘똘 뭉쳐서는 갑자기 아파트 단톡방을 네댓 개 만들더니 동별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등 혹시나 닥칠 사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아마 전생에 중세 로마의 기사 군단이었을지도? 전 세계가 앞다투어 보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곳 상하이에서 어느 날 거짓말처럼 벌어진 그 일, 모두 짐작하셨으리라.
그렇다, 바로 봉쇄!
지금 현재 우리의 공공의 적은 바로 ‘코로나바이러스’이고 주민들은 ‘칭링(중국의 코로나 제로정책)’이라는 승리를 향해 이렇게 다 같이 고군분투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가족이 300가구도 안 되는 이 조그마한 아파트에 이사를 온 것은 바로 2년 전의 일이다. 16년차 주재원인 아빠를 따라 갓난아기 때 중국에 발을 디딘 나는 중국어, 쌍어, 한국어, 영어 등 여러 커리큘럼의 학교를 두루두루 섭렵해가며 중국 전역을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고수경의 중국 도장깨기? 그쯤으로 정리해두자!
해맑게도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부모님의 우려와는 달리 새로운 지역이나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한 편이었고, 덕분에 6개월 밖에 보내지 못한 광동성 선전에서 다시 상하이로 이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를 ‘마누라’라고 장난스럽게 불러주는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은 못내 아쉽지만 우리에겐 중국에선 다 통하는 위챗이 있으니까! 앞으로 닥칠 코로나 재앙이 우리를 한껏 위협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나는 그렇게 선전을 떠났다.

로마화원의 웅장한 이미테이션 석고상에 홀딱 반한 우리 엄마의 강력한 주장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상하이의 또 다른 곳에서 이 역사적인 코로나 봉쇄 상황을 겪었겠지?
새삼 엄마의 안목이 탁월했음을 깨닫는다. 상하이로 이사를 오자마자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이후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으며 잠깐의 베란다 외출이야말로 유일한 낙이 된 지가 오래인지라 베란다를 통해 내려다보이는, 내가 ‘우리 여신님’이라고 부르며 애정하는 분수대 석고상만이 목욕물을 사방에 흩뿌려가며 인적 하나 없는 저 멀리 지면의 쓸쓸함을 달래주고 있다. 하지만 로마화원에는 정작 여신님이 따로, 그것도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나는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21세기, 봉쇄된 사회에서 필요한 물건과 음식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최첨단 SNS를 통한 원시적 공동구매와 물물교환이다. 상하이 시내 모든 슈퍼마켓과 숍이 문을 닫았고 택배마저 끊겨 엄마는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대량 공동구매를 해보겠다고 종일 핸드폰을 손에 들고 광클릭에 열을 올리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구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부지기수라고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우리가 있는 황푸강 서쪽, 푸시 지역은 정확히 4월 1일 새벽 3시부터 4월 5일 새벽 3시까지 4일만 견디면 된다고 발표했으니 갇혀 있을 때를 대비한 사전준비는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봉쇄 하루 전날 엄마랑 같이 간 동네 마트에서 평소와는 달리 진열대마다 물건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들고 오기 너무 무겁다는 핑계로 딱 하나 남은 10kg짜리 쌀을 결국 포기하고 돌아온 것을 엄마는 두고두고 후회하셨다.
계획된 4월 5일이 되었을 때 정부 썸네일 코로나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는 ’봉쇄 해제는 아주 먼 일이 되겠구나’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봉쇄 한 달이 지나자 욕실 샴푸와 치약, 엄마가 쓰는 주방세제가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통마다 물을 섞어 쓴지 수 일째 되던 어느 날, 두루마리 화장지를 구한다는 이웃의 SOS에 용기를 얻은, 참다못한 엄마가 아파트 주민 단톡방에 당장 급한 주방세제를 구한다는 절박한 메시지를 올렸는데 이게 웬일? 얼마 안 가 한 번도 본 적 없던 어느 ‘여신님’이 생수병에 성수 같은 바다빛 주방세제를 가득 담아 선뜻 우리집 벨을 누르는 게 아닌가? 그 일을 시작으로 엄마도 우유나 설탕과 마늘, 대파가 필요하다는 다른 여신님들에게 기꺼이 우리집 냉장고를 활짝 열어주셨고 쌀과 채소, 귀하디귀한 과일을 서로 나누면서 우리는 그렇게 알음알음 수많은 아름다운 ‘신’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비록 내 인생에서 2022년 중 두 달이라는 시간이 처참히 순간 삭제되었고 학교 수학여행이나 오케스트라 봄 콘서트도 몽땅 취소되고 말았지만 전투애(?)로 끈끈해져 버린 소중한 이웃을 얻게 된 일들은 너무나 특별하고도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딸이 생일을 맞았는데 케이크를 구할 수가 없다는 아버지의 하소연을 들은 이웃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베이킹 재료를 털어 하나밖에 없는 수제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한 후 온라인 생일 파티까지 열어준 일은 기계 덩어리 핸드폰에서 실제로 온기가 ‘퐁퐁’ 뿜어져 나오는 듯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집 안에만 있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층간 소음도 단톡방을 통해 아주 완곡하게 자제를 부탁하는 이웃들의 지혜도 배웠다. “OOO호, 음악 소리가 크게 울리는데 파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로마화원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전수검사에서 PCR검사 이상 소견이 보이는데 재검사로 확실하게 알아봐야 하니 전원 집 안에서만 머무르라는 통지였다. 그 후 미스테리하게도 아파트 안에서만 지내셨다던 나나 나이나이(할머니)가 오미크론에 확진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할머니가 계시는 A동은 물론 아파트 대문까지 폴리스라인 같은 금줄이 일사분란하게 쳐지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로 인해 아파트 주민 전체가 7일간 꼼짝없이 현관문 앞조차 나가보지 못하게 되었고 그 7일 동안 더 이상 확진자가 없으면 아파트 안에서만 산책이 허용되는 7+7 정책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옆집 갓난아기를 배려해 서둘러 격리소로 자진해서 떠나겠다는 할머니를 그저 보내 드려야만 하는 주민들은 베란다로 나가 할머니가 무사히 빨리 돌아오시기를 기원하며 한마음으로 배웅해드렸다. 그 자그마한 몸으로 비닐 방호복을 아무렇게나 뒤집어쓴 채 집채만 한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어찌나 쓸쓸해 보이던지…. 분수대 여신님은 그때도 무심히 샤워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영락없이 다시 집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나나 나이나이가 전혀 밉지 않았다. 이 일이 누구의 탓도,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병에 걸린 사람을 질타하고 책임을 떠넘기는 어리석은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1년을 열심히 준비한 AP시험이 학부모와 친구들의 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취소되어 버린 것, 이 일로 상심이 크신 부모님의 고민이 깃든 깊은 한숨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화가 나지만 이 또한 내가 극복해야만 할 일이라면 용감히 부딪혀 보겠다. 난 봉쇄도 겪은 사람이니까!

엄마는 봉쇄가 끝나 우리가 저 대문 밖을 자유로이 나갈 수 있게 되는 날 신세졌던 이웃분들이랑 반상회를 열겠다고 하신다. - ‘반상회’라는 단어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로마 반상회에는 그동안 맛보지 못한 ‘치코(치킨과 코코 백향과 음료수)’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 -
그러고 보니 봉쇄 이후 조울증이 생긴 것 같은 엄마가 요즘 열심히 챙겨 보는 드라마가 왜 하필 <나의 해방일지>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상하이의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해방’의 그날, 바로 평범한 일상으로의 회복!
아빠는 드디어 이발사 공동구매에 성공, 덥수룩하게 자란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게 되었다. 장발의 늪에서 끝내 해방되신 거다! 그럼 나는 보란듯이 치코를 배달시켜야지. 삼시세끼 준비에 질려버린 엄마가 상하이 봉쇄가 끝나면 우리집 부엌을 봉쇄해 버리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이건 서로 윈윈!
나의 해방은 집밥에서 벗어나는 것!
쉿! 엄마한테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