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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중・고등 부문] 수라상
작성일
2022.12.12

청소년 글짓기중・고등 부문 우수상


수라상

조 규 희 (인도네시아)


“‘김밥 3인방’이 뭐니?”

테이블 위의 핸드폰에서 한글로 ‘김밥 3인방’이란 그룹 채팅창이 뜨자, 엄마가 ‘깔깔깔’ 웃으신다.
엄마는 “아무리 유치원부터 10년을 같이 공부한 절친이라도, 외국인이 어떻게 한글로 채팅방을 열고, 소통하게 된 걸까?” 궁금해하셨다.
12년 전, 한국에서 돌잔치를 한 달 앞당겨 치르고, 내 발로 걷지도 못해서 엄마 등에 업혀서 온 인도네시아. 이곳에서 나는 걸음마를 뗐고, 인도네시아 유치원에서 한국의 애국가보다 먼저 인도네시아 라야(애국가)를 배워서 불렀다. 지난달 열세 번째 생일도 여기서 맞은 만큼, 음식도 한국의 김치보다 인도네시아 대표 음식인 나시고랭과 깡꿍을 더 좋아한다.

그런 내가 중학생이 되어, 외국인 친구를 통해 역으로 K-팝과 한국 드라마를 소개받았다. 친구들은 나보다 더 많이 한국 연예인의 이름과 유명 드라마를 섭렵한 상태였다. 더 나아가 나의 친구들은 한국 문화와 한글에도 호기심을 보인 터라, 친구들의 이름 머리글자(KYUHEE, MARIA, BEKA)를 조합해 만든 그룹 채팅방 명칭이 바로 ‘김밥 3인방’이다.
지난 학기, ‘코로나 시대를 이길 세계 건강 음식을 소개하고, 책으로 만들어 보라’는 프로젝트 과제를 받았다. 나는 ‘조선왕의 밥상’이 주제에 딱 맞는다며 한 팀이 된 ‘김밥 3인방’에게 제안했다.
‘왕이 곧 하늘이자, 모든 백성의 어버이’였던 조선에서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궁에서 제일 중요한 곳 중 하나가 왕의 식사를 담당하던 수라청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진상된 최상의 식재료를 왕의 체질과 건강상태에 맞춰 조리하고, 마지막엔 직접 목숨까지 걸고, 기미하는 상궁들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다른 팀들이 일본의 ‘낫토’나 그리스의 ‘그릭요거트’, 이탈리아의 ‘올리브오일’ 등 뻔한 음식을 선택할 텐데, 우린 오백 년간 왕의 음식을 만든 수라청에서 건강식을 찾아내면, 그게 ‘으뜸 건강식’ 아니겠냐고 설득했다.

“와 대단한데, 그래, 그래, 한번 해 보자!”

친구들의 동의를 얻자, 나는 기운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수라청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도 찾아서 같이 보고, 특히 조선의 역사와 역대 27명의 왕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우리가 같이 공부한 바에 따르면, 조선 왕의 식사는 하루 5끼로 <초조반상, 아침 수라상, 낮것 상, 저녁 수라상, 야참(주안상)>으로 준비된다. 200명의 수라청 궁인들은 2교대로 궁에 상주하면서 음식을 만든다. 수라청의 일은 노동강도가 높아서, 남자 요리사인 ‘숙수’가 도맡았다고 한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본 것처럼 여자 궁인들이 음식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만들어진 음식을 나르고, 차리는 일을 돕는 나인들이 ‘장금이’와 같은 여자 궁녀였고, 그중 연장자인 ‘기미 상궁’은 왕의 식사 전 반드시 음식에 독의 여부를 먼저 감별하는 ‘기미’를 시행했다. 절대 권력에 대한 찬탈이 빈번했던 시기이고, 독살로 의심되는 선왕들의 죽음도 있었기에 ‘기미 상궁’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왕보다 먼저 음식을 먹었다.
우리 ‘김밥 3인방’ 중 제일 용감한 행동파 레베카는 “나는 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기미 상궁 할래, 매일 최고의 음식을 왕보다 먼저 맛볼 수 있잖아. 스릴도 있고 멋진 직업인 거 같아.”라고 했다.
보통 12첩으로 차려진 왕의 수라상은 혼자 먹기엔 상당히 많은 양이다. 수라청에서는 왕과 왕가의 식사 준비 외에 궁인들의 음식은 따로 만들지 않는다. 궁인들은 모두 왕과 왕가의 식사가 끝난 후, 수라상에서 남은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레베카에 비해 겁이 많고, 쫄보인 나는 “그냥 왕이 남긴 음식을 나눠 먹는 무수리 할래. 아무리 맛난 음식도 ‘독이 들어 있을까’ 걱정하면서 먹으면 맛없지.”
“맞아, 나도 무수리 할래.”
마리아도 내 말에 맞장구를 쳐 줬다. 우리는 왕의 밥상에 올려진 음식들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자카르타 시내에 있는 한국문화원 도서관에도 방문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한글학교도 다니고, 한국문화원 도서관에서 매주 5권씩 한글책도 빌려다 읽었다. 문화원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이나 전시 관람도 자주 하던 터라 익숙한 장소였다. 그런데 외국인 친구들을 데리고 간 것은 처음이라 나도 친구들도 흥분됐다. 친구들은 도서관에 비치된 K-팝 앨범들과 드라마 VOD, 연예 잡지에 감탄했다. 계속 사진을 찍고, 다른 사람이 없어 다행이지 소란을 떨었다.
나는 궁중요리와 관련된 책을 찾아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볼 만한 요리를 선정해보자고 했다. 우리는 왕의 하루 식사 5끼를 따로 분류하고, 대표 음식과 특별히 사연이 있는 왕을 연결해 보았다.
조선의 왕이 아침에 일어나면, 가볍게 속을 달랬던 <초초 반상>으로 어린 나이에 삼촌의 손에 죽임을 당한 제6대 비운의 어린 왕 단종이 좋아했다는 ‘타락죽’을 골랐다.
<아침 수라상>은 채식주의자였던 제21대 왕 영조가 좋아한 ‘구절판’과 붕당정치를 없애고, 탕평책을 펼칠 의도로 영조가 직접 신하들에게 하사한 음식 ‘탕평채’를 선정했다. <낮것상>은 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는 제4대 세종을 위해 아버지 세조가 장례식 중에도 세종의 수라상에는 고기를 올리라고 유언으로 남겼다고 해, ‘불고기’를 선택했다.
<저녁 수라상>은 중립외교를 펼친 제15대 왕 광해군이 궁중연회 특별식으로 꼽은 ‘신선로’를 뽑았다. 마지막으로, <야참, 주안상>은 왕과 신하가 토론하는 경연을 제일 많이 했다는 제9대 성종이 늦은 밤까지 학문 토론과 민생을 논할 때 올린 ‘삼색 다식’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우리는 두 가지씩 요리를 나눠 각자 필요한 재료와 만드는 방법을 정리했다. 그리고 대망에 요리를 진행하기로 한 날에 한국 식자재를 파는 한국 마트로 갔다. 장도 보고, 분식코너에서는 떡볶이와 김밥, 어묵, 쫄면도 사 먹었다. 무슬림인 마리아는 부대찌개, 삼겹살 등 돼지고기가 들어간 한국음식을 못 먹어서 아쉽다면서, “나는 반드시 결혼은 한국 남자랑 할 거야!”라고 해서 우린 어안이 벙벙했다. “뭐야,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 무슬림이 아닌 한국 남자랑 결혼할 거라고?” 레베카 말에 우리는 모두 어이가 없어 한바탕 웃었다.
음식 만들기는 한국 그릇과 양념이 있는 우리 집에서 했다. 재료 손질부터 조리, 데코레이션까지 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계속 서서 분주히 움직였더니, 다리도 아팠다. 그런데 하나씩 음식이 완성될 때는 신이 났다. 색깔이 예쁜 한국 요리들은 엉성한 우리 솜씨를 가려줬다.
책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음식마다 한국적인 소품들로 장식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기미 상궁처럼 맛을 볼 차례, 역시 용감한 레베카가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십년지기 내 친구들은 그 전부터 젓가락 사용법쯤은 이미 터득해 놓은 터였다. 레베카를 따라 나와 마리아도 하나씩 음식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어서 우린 서로 감동했다. 친구들 부모님께도 맛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각자 음식을 포장했다. 친구들은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조선의 왕을 위해 만든 궁중요리라고 소개하고 “왕처럼 드시고, 맛을 평가해 달라”고 했단다. 부모님들께서는 오색 채소로 꾸민 ‘신선로’를 좋아하셨고, 우린 전병을 대처해 무쌈으로 만든 구절판이 제일 맛있었다.
‘김밥 3인방’이 만든 ‘왕의 밥상-수라상’은 책으로 만들어 학교에 제출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왕의 면역기능과 건강 증진이 목적인 수라상은 건강한 밥상이라는 주제에 부합하고, 오백 년 전통의 전문 궁중 요리사들의 비법을 따라서 재현해 본 것에 좋은 점수를 준다”며 칭찬해 주셨다.
우리 ‘김밥 3인방’은 이번 과제를 하면서, 더 깊이 한국 문화와 역사를 알게 됐다.
특히 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조선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기 위해 세세하게 조선 왕조를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어제 마리아네 가족은 한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나는 마침 경복궁에서 진행하는 ‘수라간 시식 공감’이란 체험 프로그램이 있어 정보를 공유해 주고, 참여해 볼 것을 권했다. 거기서 마리아가 그녀의 바람처럼, 미래의 예비 신랑을 만날 수 있기를 살짝 기대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