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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기 중・고등 부문] 홍콩에서 요식업 경영하기
작성일
2022.12.12

청소년글짓기 중・고등 부문 우수상


홍콩에서 요식업 경영하기

정 승 호 (중국)



홍콩에서 산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홍콩에서 보낸 시간이 한국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많은 지금은 홍콩이 제 고향이나 다름없습니다. 홍콩은 문화적이나 경제적으로 한국과 꽤 유사하면서도 다르기에 종종 이곳에 안 왔다면 지금 무엇을 했을지 상상하곤 합니다. 이곳에서 이렇게 오래 생활하며 홍콩 사람들과 얽혀서 나름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경험은 제 어머니의 식당 창업에 따른 자영업자 가족으로서의 제 역할이라 하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2년 반 정도 동안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 라면가게였습니다. 레스토랑 라이선스도 따고, 가게 인테리어도 하고, 창업을 주도한 라면 본사 사람들과 회의도 하며, 희망찬 출발을 하는 듯 분주해 보였습니다. 나와 동생도 언제든 가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생긴 것에 흥분했습니다. 일본 라면이 주메뉴였고 이외에도 돈가스, 일본식 가라아게(치킨), 가츠동 등 제가 좋아하는 메뉴가 아주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머니는 2년 반 동안 단 한 번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아주 낮은 값에 가게를 넘기고는 ‘이제 살았다’며 좋아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를 보고 요식업의 운영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서 라면 한 그릇으로 수익을 내고, 외국에서의 창업은 그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식당 운영 초반에 제 어머니를 도우며 제일 많이 들은 불평 중 하나는 직원들의 능력과 존재의 필요성이었습니다. 처음 운영을 시작했을 때는 5명이나 6명이 항시 홀을 왔다 갔다 했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많아 봐야 4명, 어느 날은 두 명일 때도 있었습니다. 식당의 매출은 개업 첫날 흔히 ‘오픈발’이라는 수준보다 점차 떨어져서 더 이상 직원들을 모두 고용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태도에 어머니의 불만은 계속 쌓여갔습니다. 직원들의 태도가 다소 손님들에게는 부적합하고, 생산성도 부족해 직원 수를 줄이는 것만이 유일한 대책이었다고 했습니다.

직원이 부족해지자 어머니가 일하는 시간이 길어진 건 물론, 저 또한 사람을 못 구하는 토요일 오전에는 캐셔, 설거지는 물론, 홀 서빙까지 해야 했습니다. 제가 긴장감 없이 손님 없을 때마다 폰을 쓰다가 어머니가 보고 있는 CCTV에 걸려서 지적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일할 의욕이 없긴 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저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서 확실히 알게 된 점은 원하는 시간에 일할 직원을 찾는 건 요식업에서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식당 운영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2019년 홍콩 시위가 한창일 때는 가끔 시위대가 8시에 와서 라면을 많이 먹고 간 며칠 정도를 빼고는, 시위가 과격해져 시내에 있던 가게의 위치는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손님도 점점 줄었습니다. 심지어 가게가 있는 건물에서 셔터를 내려 그 안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 무기를 겨누고 있는 장면도 지켜봐야 했습니다. 미리 준비한 음식을 다 버리고 집으로 오기도 했고 가게 문을 열지 못해 저와 동생이 시위대를 뚫고 가게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외식업이 특히 외부 환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위가 줄어들지도 않은 순간에 찾아온 2020년 1월 홍콩의 코로나 사태.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식당 내 식사 금지, 영업시간 제한이 저녁 6시, 8시 10시로 반복되면서 식당 운영은 그야말로 고비였습니다. 아무리 일찍 식당을 닫아도 재료는 사야 하고, 월세와 직원의 월급은 고스란히 나갔기 때문에 적자에 적자가 거듭되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홍콩 정부에서 무려 3번이나 레스토랑에 내려준 정부보조금으로 1년을 더 유지할 수 있었다고 들었고, 정부 보조금이 끝나는 순간 더 이상 직원 월급을 줄 수 없게 되어 가게를 아주 싼 가격에 새 주인에게 넘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론 새 가게는 스파게티 전문점이었는데, 한 달의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지금까지도 문이 닫힌 상태라고 하며 어머니가 자신의 경영능력을 자랑하셨습니다. 아주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 정도로 어렵고 처절한 것이 자영업이란 건 알 수 있었고 홍콩에서 사업에 성공한 많은 한인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일본 라면 가게를 열면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돈코츠 라멘과 값싼 배달 점심 도시락, 그리고 저녁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할 계획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값싼 점심 세트, 배달에 필요한 인력 부족, 저녁 시간이면 비어버리는 건물 등으로 계획이 완전히 빗나가면서 우리 가게는 시위와 코로나19가 아니라도 그리 많은 돈을 벌지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
재밌었던 것은 손님들은 일본 라면보다 값싼 배달 도시락을 좋아했다는 사실입니다. 저희 가게도 처음에는 팔지 않으려 했지만 좀 더 저렴한 것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 나중에는 서서히 가게에서 팔기 시작했던 것이, 결국에는 도시락 가격대에 맞춰 팔다 보니 가게 매출은 더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즉 저렴한 도시락이 잘 나가면서 점심시간 손님은 많아졌지만, 점심시간을 위한 직원 고용과 낮은 가격대의 음식 판매로 인한 매출 급락의 문제가 새로 발생한 것입니다. 게다가 단체로 도시락을 시키는 주문이라도 있는 날에는 패닉이 되는 비전문 경영인인 어머니와 몰아치는 일을 감당하기 힘든 적은 인원도 제가 보기엔 큰 문제로 보였습니다.
홍콩에는 일본 음식과 제품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나라 문화와 음식, 제품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사람들은 회의를 거쳐 점차 일본 음식을 대신해서 한국 반찬과 한국 찌개로 구성된 새 메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한국 라면 ‘너구리’에 해물을 넣은 한국식 해물 라면, ‘짜파구리’마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처음에 있던 일본 셰프는 어느새 보이지 않고 한국인 셰프가 메인 셰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손님들에게 “일본 셰프는 일본 음식밖에 못 하지만, 한국 셰프는 못하는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자주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홍콩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한국 반찬에 감동한 듯 보였습니다. 멸치볶음에 감동하고 순두부찌개에 밥을 말아서 먹는 손님도 있었다고 합니다. 김밥에 매운 닭강정이 추가되고 나중에는 일본 라면도 먹을 수 있는 한국 스낵 하우스가 되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퓨전이고 안 좋게 말하면 정체성이 사라진 그냥 밥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학교 수업으로 Economics를 들으면서 수입에서 재료비, 렌트비, 직원 급여를 빼면 수익이 남는데,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번 것도 없는데, 회계 처리 비용이 너무 비싸고, 회사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 유지 비용이 낮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요즘, 올라가는 재료비에 점심값이 올라 직장인이 점심 먹기가 부담스럽다는 한국 기사를 보면서 주변의 값싼 런치세트가 넘치는 상황에서 만원이 넘는 라면을 그나마 팔았다는 게 대견할 정도입니다. 또한 홍콩사람들은 플라스틱 컵에 든 아이스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음료수 없이 점심 장사를 했다는 것도 이제 생각해 보면 잘못된 결정이었던 듯합니다.
저 역시 어려운 때 생각 없이 폰을 쓰면서 성의 없게 일을 도왔던 것이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좀 더 정성껏 일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머니가 다른 곳에 취업을 하면서 가게 문을 닫은 지금의 우리 가족의 생활이 훨씬 안정적인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절할 일은 겉으로 보이는 가게의 모습과 달리, 가게 주방의 기름을 거르는 통의 끔찍함이었습니다. 라면의 기름이 식기세척기를 거쳐 거의 매일 그 통의 끔찍한 냄새와 함께 굳은 기름을 걷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전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 작업을 직원들이 꺼리기 때문에 어머니와 제가 직접 해야 했고, 하루라도 이 작업을 게을리하면 라면의 기름이 하수구를 막아 물이 역류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튀김과 식당 음식들을 내세운 뒤에 처리해야 하는 수많은 일의 무게는 정말 대단했고, 외부의 상황과 맞물려서 초보 경영인의 가족은 그야말로 매일이 전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팔다 남은 치킨과 밥을 도시락에 담아 밤늦게 가져왔기 때문에 거의 매일 먹은 제 피부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것도 제 탓이겠지요.
저 대신 나온 동생이 딜리버리 업체의 주문을 잘못 확인해서 엉뚱한 도시락을 내준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때문에 셰프가 급하게 도시락을 다시 만들어야 했고, 동생은 너무 당황하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동생은 그 후로 다시 가게에서 일을 돕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가게가 정리되었지만 아직도 세금레포트를 하거나, 2년 계약된 전화요금을 납부하는 불평은 2년 반 동안 온 식구가 가게를 경영하면서 겪은 큰 어려움에 비하면 정말 웃으면서 가볍게 말할 정도입니다.
한국도 최근 자영업자에게 주는 정부보조금이 좀 오른 것 같았습니다. 정부가 보조금을 많이 줘서 자영업자들이 적어도 직원 고용을 하는데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홍콩 국내경제에서 요식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정부가 많은 신경을 썼다고 들었습니다.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첫째 조건으로 정부보조금을 주었다고 하니, 실업을 막고 어려운 시기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정부가 마련한 점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홍콩은 현재까지 국경 봉쇄(격리정책)를 풀지 않는 나라이기에 그 어려움은 여전하다고 들었습니다.
빨리 홍콩이 한국처럼 봉쇄를 멈추고 다시 관광과 줄 서는 식당이 많은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심한 바이러스가 없던 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며, 우리 가족처럼 문을 닫지 않고 적자를 견디면서도 식당을 경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성공하고 직원도 더 많이 고용해서 홍콩의 경제를 활성화시켰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