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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시] 치매꽃
작성일
2022.12.14

시 부문 대상


치매꽃

주 양 수 (중국)



그는 우울했고
아버지는 격분했으며
어머니는 안쓰러웠다.

그는 편집적으로 플루옥세틴을 먹었고
아버지는 모르는 척 했으며
어머니의 안쓰러움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사이 깊고 깊었다.

그는 쇠약한 선인장 같았다.
생채기에서 돋아난 마른 신경들이 날카롭게 삐쳐 나와
아버지의 침잠된 침묵을 찢고 들어가 단단히 고정시켰다.
어머니는 자꾸만 자다가 일어나 서성였다.
아버지의 앙상한 등골이 흑백의 엑스레이 필름 같았다.
형광등이라도 켜면 침묵으로 겨우 견뎌낸 억새 같은 슬픔이 훤히 보일까 봐
눈을 감아 어둠을 지켰다.
억새에도 꽃이 피면
그렁그렁한 눈으로 꽃을 바라보게 되면
외롭도록 견뎌 낸 침묵이 소리내어 울 것이다.

어머니는 달력마다 기억을 걸어 두었다.
그 흔한 장롱도 화장대도 없는 어머니 방에는
성황당 나무같이 달력이, 기억이 어지럽게 자라났다.
서성이다 주저 앉은 곳에서 기억을 꺼내어 한 글자씩 오래도록 응시했다.
몇 번째의 기억인지 알 수 없어 순서대로 돌려놓지 못했다.

선인장에 꽃이 피고 억새에도 꽃이 펴
그가 아들로 돌아와 마주 앉은
몇 번째인가의 유월
어머니는 흰 눈이 내린다며
돌아온 아들 하루 묵고 갈 아랫목을 데웠고
아들 좋아하는 고등어를 사러
땡땡이 양말과 줄무늬 양말을 왼쪽과 오른쪽에 신고
슬리퍼와 고무신을 오른쪽과 왼쪽에 신고 나갔다.

2022년 유월 고등어를 사러 나간 어머니는
2007년 십이월에 갇혔다.
그는
아버지는
십오 년을 돌아와 고등어 없는 단출한 상에 마주 앉았는데
항상 곁에 계셨을 어머니는
매일 밤마다 서성이며
혼자서 십오 년을 되짚어가셨던 것일까.
2007년에는 없었을 시장에서 2022년의 길을 잃고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땡땡이인지 줄무늬인지
도대체 어디인지 모를 로터리에 주저앉는다.

억새꽃이 지면 어머니는 돌아올까
우리가 십오 년을 기다린 꽃은 상여꽃이었을까
모두가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직 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