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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중・고등 부문] 나의 한국어 학습과 체험
작성일
2024.01.24

청소년 글짓기 중・고등 부문 우수상


나의 한국어 학습과 체험

한태일(미국)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국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난 사람들에게 날 한국인이라고 소개했지만, 부모님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외에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전혀 없었다. 


엄마는 한국인은 한국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집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한글을 배우기 전에도 다른 사람들과 한국어로 대화할 때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한글을 읽거나 쓰지는 못했다. 


내가 다섯 살 때 한국에 방문한적이 있다. 한 할머니 한 분이 나에게 “넌 한국 이름은 없니?”라고 물으셨고 난 자신 있게 대답했다. “있어요. 내 미국 이름은 앤드류 한이고 한국 이름은 한 앤드류예요.” 나는 대답을 잘한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지만 할머니는 내 대답에 크게 웃으셨다. 그때는 할머니가 왜 웃으시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난 당황스런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너의 한국 이름은 한태일이고 한글로 이렇게 쓴단다”라며 내 한글 이름을 종이에 적어 주었다. 그렇게 한글에 대한 나의 관심이 시작되었다. 


미국 남부의 작은 시골에서 살던 나에게 한국의 고층아파트와 지하 주차장은 정말 신기했다. 밤에 반짝거리며 빙글빙글 도는 상점 간판은 더욱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신기한 것은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내가 한글 읽기를 스스로 배웠다는 것이다. 넓은 지하 주차장을 걸어 다니며 난 자동차 번호판에 있는 한글을 어떻게 읽는 건지 궁금해서 엄마에게 번호판을 읽어 달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자동차 번호판을 하나둘 읽기 시작했고 길거리에 있는 상점들의 간판을 읽으며 한글을 배웠다. 


한글 읽기는 정말 쉬웠다. 영어와 한국어는 달랐다. 영어는 알파벳을 다 배워도 영어 단어를 읽을 수 없지만 한글은 모음과 자음만 알면 처음 보는 단어여도 다 읽을 수 있었다. 한국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올 때 엄마는 빠르게 한글 읽기를 배운 나에게 감동해서인지 많은 한국 책을 사서 미국으로 가져왔다. 난 큰소리로 멋있게 한국 책을 읽었고 엄마는 많이 기뻐했다. 하지만 엄마가 한국 책을 읽는 날보며 기뻐한 시간은 짧았다. 왜냐하면 엄마는 내가 책은 읽지만 내가 읽은 문장이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른다는 사실
을 깨달은 것이다. 


엄마는 날 한글학교에 데려갔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한국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한글학교는 한인 교회에서 매주 하루 운영되었다. 솔직히 한글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난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엄마가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방과 후 학교도 가고 있었다. 주말에는 피아노와 테니스 그리고 영어 교습으로 정말 바빴다. 친구들과 놀 시간도 부족한데 주말에 한글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짜증이 났다. 


나는 엄마에게 한글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나의 한글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한글 쓰기는 읽는 것보다 어려웠다. 한 글자를 쓸 때 모음을 먼저 써야 하는지 자음을 먼저 써야 하는지 헷갈렸고 모음에서도 어떤 선을 먼저 써야 하는지 헷갈렸다. 각 글자의 모든 선에 번호를 붙여주면 더 쉽게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글학교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친구들과 책도 같이 읽고 누가 글자를 빨리 쓰는지 경쟁도 했다. 받아쓰기에서 백 점을 맞으면 정말 기뻤다.


내가 아는 한국 친구 중에는 한국말을 할 수 없어서 부모님과 대화를 잘 못하는 친구도 있다. 내 친구가 아주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부모님은 장사하시느라 항상 바쁘셨고 친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맡겨져서 한국말을 배우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 친구는 한국말로 감정 표현이 힘들고 그 친구의 부모님은 영어로 감정표현이 힘들다. 


그 친구는 부모님과 “학교에 간다.” “밥 먹었다.”와 같은 일상 대화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친구
는 부모님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많이 외로워했다. 안타깝지만 많은 한국 친구가 어렸을 때는 한국말을 잘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혹은 사춘기가 되어 부모님과 대화가 줄어들면서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중고등학생 나이에 이민 온 친구들은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영어로만 대화하도록 부모님이 강요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본인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서 영어로만 대화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국어가 조금씩 서툴어지고 한글을 사용할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후회한다는데 참 안타깝다. 


난 부모님과 문자를 주고받을 때 한글을 쓴다. 처음에는 내가 한글이 서툴러서 문자 하나 보내는 데 긴 시간이 걸렸고 실수 횟수가 많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영어 대신 한글로 문자를 계속 쓰다 보니 내 한글 실력이 많이 늘었다. 


난 내가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고 한국 책을 읽을수 있으며 이렇게 한글로 글짓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이런 기회들이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 한국학교 나 온라인을 통한 한글 배우기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져서 미국에서도 쉽게 한글을 접하고 배울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나처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한국 드라마 보기를 즐기고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국 문화를체험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이제 누군가가 내게 한국 이름이 있냐고 묻는다면 “제 한국 이름은 한태일입니다.”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