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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중・고등 부문] 매듭으로 연결된 인연을 매듭짓다
작성일
2024.01.24

청소년 글짓기 중・고등 부문 우수상


매듭으로 연결된 인연을 매듭짓다

김교윤(인도네시아)


장명루(長命縷)는 빨노파흑백, 오방색의 실을 이용해 짜는 팔찌로, 한자에도 나타나듯 오래 살고 건강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2023년 현재, 내 손목에 장명루가 채워져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2023년 7월,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방문 중이던 나는 우연히 재외동포 청소년 모국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재외동포 모국연수는 재외동포재단 아래, 세계 각국의 재외동포 청소년들에게 소통과 유대감 형성의 기회를 주고, 모국인 한국의 사회, 역사, 문화 체험을 통해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리더십 함양을 위해 제공되는 연수이다.


약속 장소에 집합하기로 한 연수 첫날, 그날의 햇볕은 무척 따갑고 또 뜨거웠다. 더불어 감기몸살로 컨디션 난조의 상태였던 나는 엄마와 뙤약볕에서 대기하는 게 조금 힘들고 짜증스러웠다. 힘들면 가지 말라던 엄마의 제안을 괜히 거절했나 잠시 후회도 하고 있었다.


집합 장소에는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혼자 공항에서 온 듯 큰 짐을 짊어지고 온 아이도 있었고 온 가족과 함께 온 아이, 또 자매가 같이 온 경우도 있었다. ‘재외동포 청소년 모국연수’라는 글씨를 달고 우리를 실어 나를 버스가 도착했고 우리는 가족과 헤어져 드디어 연수 장소로 이동했다.


거대한 큰 홀에 모인 아이들은 어림잡아 오백 명은 넘어 보였다. 시원한 그곳에 도착하니 드디어 행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모두가 초면이었던 우리는 자신이 온 나라를 이름 대신 사용하며 대화를 시작했는데, 특이하게도 서로를 외국인 취급하듯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분명 한국인의 외형이었지만 그곳에서 대화는 세계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었다.


첫날 방 배정을 받은 후 룸메이트들과 친해졌는데 이 친구들과는 이후에도 꾸준히 같은 방을 쓰며 모국연수 중 가장 친한 친구들로 남게 되었다. 사실 한국인인 이 아이들 모두가 한국어를 능숙하게 쓸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친구들은 나로 하여금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감기몸살로 약을 챙겨 갈 정도였던 나는 친구들과 친해지며 떠들다 보니 어느새 감기 증상은 바람에 쓸려가듯 사라지고 있었다.


다 함께 독립기념관으로 이동해 개막식을 마친 후 우리는 각각 배정된 지역으로 나뉘어 흩어졌다. 수원, 군산, 안동, 제주 중 나는 안동으로 배정받았다. 안동에 대해서는 얼핏 책에서 본 것 같은 안동 하회 마을이라든가 하회탈 정도가 다였다. 오백여 명이나 되던 인원이 지역별로 나뉘며 우리 안동팀만의 유대감은 더 깊어졌고 하나의 무리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안동에서의 다양한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은 한국의 고등학교인 성희여고에 방문했던 일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뿌리는 같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현 교육과정에 대한 체험과 경험은 전무했기 때문에 외국인이 드라마나 티브이를 통해 한국 학교의 문화를 알 듯 나에게도 그곳은 여전히 상상의 공간이었다.


기대했던 학교 급식과 교실에서의 수업을 체험하며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인도네시아 학교의 교실과 도시락을 떠올리기도 했다. 성희여고 학생들과 우리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 애들에게 우리는 마치 외국 학생들 같았고, 우리에겐 그 애들이 그렇게 느껴졌다. 내가 한국으로 대학을 가게 된다면, 혹시 그때 봤던 학생 중 누군가와 이제는 같은 대학의 학생으로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를 인연을 기대하며 성희여고에서의 체험을 마무리했다.


이후 우리는 ‘프로젝트 랩’이라는 활동을 통해 안동의 전통 하회탈을 만들고 내가 만든 탈을 쓰고 탈춤을 배우며 방학 중 친지 방문 때에는 하지 못할 귀한 경험들을 이어 갔다.

연수 기간의 중반 무렵부터 이른 장마가 시작됐다. 내가 사는 인도네시아는 우기 때 홍수가 나서 학교도 못 가고 아파트 주변이 물바다로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진국인 한국에서 장맛비로 어떤 일을 겪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며칠이나 이어진 비에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가 폭우로 인해 전기가 끊기고 물도 나오지 않게 된 거였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호텔 방이었지만, 함께였던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아닌 색다른 해프닝으로 여겨 졌고, 하루 일정을 마친 고단하고 지친 상태로 늦게까지 웃고 떠들다 잠이 들었다. 천만다행으로 다음날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땐 전기와 수도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전
날의 정전사태는 곧바로 잊혀진 과거가 되어버렸다.


안동에서의 나의 룸메이트들은 모두 한국어가 불가능한 아이들이었다. 주로 영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지만, 영어마저 통하지 않는 아이들도 몇 있었는데 하지만 우리는 대화할수 있었다. 제한된 몇 개의 단어나 몸짓과 표정으로 결국은 서로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해했다. 그럴 때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던 우리 재외동포 청소년들이 모국의 땅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모여 앉아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있는 그 상황에 괜한 감동과 자긍심이 느껴졌다. 이 작은 나라의 민족이 어떻게 이렇게 전 세계에 걸쳐 또 다른 뿌리를 내리고사는 건지 다시 한번 놀라웠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장 일주일의 시간을 함께 자고 먹고 체험한 우리는 각자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만난 친구들이었다. 나 역시 국적은 한국이지만 출생은 인도네시아다. 각기 다른 외국인들 같아 보였던 우리는 일주일을 보내며 결국은 같은 한민족이었다는 증명을 해 보인 것 같았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 함께 수학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던 이번 모국연수 마지막 날은 그런 우리의 인연에 걸맞은 뜻깊은 일정으로 마무리 지었다. 모두 한 장소에 모여 2인 1조로 짝을 지어 오방색의 실로 장명루를 만드는 경험이었는데, 프랑스에서 온 친구와 짝을 이룬 나는 실을 고정해주는 역할을 그 애가 맡고 나는 다섯 가지의 실을 땋는 역할을 맡아하나의 장명루를 완성했다.


본래 장수를 의미하는 실 중에서도 다섯 방위를 상징하는 오방색, 빨-남쪽, 노-가운데, 파-동쪽, 흑-북쪽, 백-서쪽, 을 이용함으로써 사방의 나쁜 기운들로부터 심신을 지킨다는 의미를 지닌 이 장명루는 혼자서는 완성하기 힘든,그래서 서로 한땀 한땀 협력해야 비로소 본 모습을 완성할수 있는 팔찌였다. 그 다양한 색들의 실이 서로 교차하는 모습이 마치 모국연수에 참여한 무수한 우리들 같았다.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우리들이 모여 나누고 교차해서 만들어진인연의 시간이 완성된 장명루와 일식처럼 겹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방으로 흩어졌던 우리는 다시 처음 모였던 장소에 모여 다 함께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그날은 내 생전 처음으로 친구들과 놀고 떠들며 어스름한 새벽을 맞은 날이기도 했다. 찌뿌둥한 몸으로 이곳에 도착했던 나는 어느새 마지막 새벽바람을 맞으면서도 날아갈 듯한 기분을 안고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의 그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사이 끈끈해진 우정을 과시했는데, 특히 손목에 장명루를 안착한
안동팀과는 더욱 그랬다. 우리는 매듭으로 연결된 인연을 아쉬운 헤어짐으로 매듭짓고 힘찬 인사를 나누며 작별했다. 혹시 함께했던 누군가라도 이 글을 보게 되기를 바라며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23년 여름, 재외동포 청소년 연수단 안동팀 친구들아! 짧은 기간이었지만 긴 시간을 보내며 우리의 우정을 매듭지었던 그 추억을 함께 해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 인연은 풀기 힘든 매듭일지도 몰라. 그러므로 언젠가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 고마웠고 또 보자!다. 찌뿌둥한 몸으로 이곳에 도착했던 나는 어느새 마지막 새벽바람을 맞으면서도 날아갈 듯한 기분을 안고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의 그 어색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사이 끈끈해진 우정을 과시했는데, 특히 손목에 장명루를 안착한 안동팀과는 더욱 그랬다.


우리는 매듭으로 연결된 인연을 아쉬운 헤어짐으로 매듭 짓고 힘찬 인사를 나누며 작별했다.
혹시 함께했던 누군가라도 이 글을 보게 되기를 바라며 인사를 전하고 싶다.


2023년 여름, 재외동포 청소년 연수단 안동팀 친구들아!
짧은 기간이었지만 긴 시간을 보내며 우리의 우정을 매듭지었던 그 추억을 함께 해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 인연은 풀기 힘든 매듭일지도 몰라. 그러므로 언젠가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 고마웠고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