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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 초등 부문] 할머니와 나의 한글 공부
작성일
2024.01.24

청소년 글짓기 초등 부문 최우수상


할머니와 나의 한글 공부

손한빛(미국)


저에게는 사랑을 참 많이 주시던 외증조할머니가 계셨어요. 몇 년 전 돌아가셔서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지만 저에게 잊지 못할 따뜻한 추억을 많이 남겨 주셨어요. 증조 할머니는 저희 엄마가 31년 전 미국에 이민을 오실 때 한국에서 같이 오셔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서 함께 사셨고 자주 우리 집에 와 계셔서 저는 증조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어요. 증조할머니는 저희 엄마가 아기였을 때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댁에서 함께 사시면서 엄마를 돌보아 주셔서 저희 엄마에게는 엄마와 같은 분이셨대요. 그래서 증조할머니는 엄마를 닮은 저를 유난히 이뻐해 주셨어요. 저는 그런 따뜻한 증조할머니를 그냥 할머니라고 불렀어요.

할머니는 저에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시고 할머니가 어릴 적 부르시던 노래도 많이 불러 주셨어요.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쉬시는 시간에는 혼자 식탁에 앉으셔서 무언가를 조용히 읽으시면서 종이에 천천히 쓰시던 기억이 있어요. 제가 할머니께 다가가서, “할머니 뭐 하세요?”라고, 물으니 할머니께서는, “할머니 한글 공부하는 거란다.”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엄마가 오셔서 할머니 방해된다고 저를 데리고 가서 놀아 주셨어요.

저희 엄마는 제가 미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지만 한국어를 잘하기를 바라셔서 제가 엄마 배 속에 있을 적부터 한글책을 많이 사서 읽어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한글책을 매일 자기 전에 꼭 읽고 자는데, 증조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계실 때면 제가 좋아하는 한글책을 가지고 종종 할머니께 가서 읽어 달라고 했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천천히 읽어 주시던 기억이 나요. 여러 목소리로 바꿔 가며 재미있게 읽어 주시는 엄마와는 달랐지만, 할머니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 주시면 마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참 좋았어요. 할머니께서 책을 읽어 주시고 나면 제 손가락을 잡으시고 글자를 가리키시며 한글을 가르쳐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증조할머니께서는 저의 처음 한글 선생님이셨어요.

그때는 제가 많이 어려서 잘 몰랐는데, 나중에 엄마가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저희 증조할머니가 한국에서 태어나셨을 때는 한국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시기 였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는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를 쓰시지 못하고 일본어를 배우셔야 했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왜 그런 일이 있게 된 건지는 잘 이해가 안 되었지만, 할머니의 나라 글인 한글을 배울 수 없고 한국어도 자유롭게 말할 수도 없으셨다니 할머니가 너무 불쌍하게 생각되고 슬펐어요. 나중에 한국이 일본에서 해방이 되었을 때도 가난하셔서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한글을 배우지 못하셨다는 말을 듣고 저는 눈물이 났어요. 그래서 저희 증조할머니께서 시간이 될 때마다 성격책을 읽으시면서 한글을 종이에 열심히 쓰셨던 거라는 것을 저는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에 알게 되었어요.

저는 매주 수요일마다 학교가 끝난 후 한국학교에 가서 한글을 배우고 한국 문화도 배워요. 저는 한국어가 참 좋아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 듣고 배운 말이고, 우리 한국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미국에 있는 가족들이 함께 모이면 쓰는말이이라서 참 정겹고 좋아요.

저는 한글이 살아 있는 말 같아요. 나비가 훨훨, 바람이 솔솔, 시냇물이 졸졸, 파도가 출렁, 엄마와 한글 책을 읽을 때면 마치 글이 소리가 되어서 정말 들리는 것 같고 저의 머리속에는 글들이 그림으로 그려져요. 이렇게 한글이 재미있어서 저는 한국학교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져요.

엄마에게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할머니께서 어려웠던 시절에도 소중히 지키셨던 한글과 한국어 그리고 한국에 대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글을 배우고 싶어도 마음대로 배울 수 없으셨던 우리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면 저는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살면서 한글, 한국어, 그리고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해요.

이제는 자기 전 엄마와 한글책을 읽을 때면 엄마와 제가 번갈아 가며 재미있게 읽어요. 할 수만 있다면 저희 증조할 머니께도 예전에 할머니께서 저에게 읽어 주시던 한글책을 제가 읽어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