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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응급약
작성일
2020.03.25

[단편소설 - 가작]



응급약

 


지병림 / 카타르




 

  항공사에 입사한 건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유치원 다니던 나를 두고 떠나버린 엄마를 되돌리려면 꼭 항공사에 입사해야 했다. 고모들에 따르면 엄마는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전혀 다른 삶을 야무지게 일궈냈다. 새 남자를 만나 보란듯이 팔자를 고쳤다고 했다. 그런 소리를 늘어놓는 고모들은 하나같이 엄마를 앙큼한 불여우에 빗댔고, 자식새끼 팽겨치고 얼마나 잘 사는지 두고 보겠다는 심산을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우리가 오손도손 살던 붉은 기와집에 엄마를 데려다 놓으리라 다짐해왔다. 엄마가 나를 그렇게 쉽게 버릴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자식인 내가 장담할 수 있었다. 승무원이 되어 지구 반대편을 내 집 앞마당처럼 드나들게만 되면 반드시 엄마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엄마가 떠난 후 새 아내를 맞으려고 노력했지만 누구와도 성사되지 않았다. 툭하면 전처와 행실머리나 비교당하면서 순종적인 아내상을 강요받는 오묘한 상황을 아무도 견뎌내지 못 했다. 아버지와 같은 처지의 여자들과는 꼭 각자의 자식들 문제가 화근이 되었다. 전처 소생인 나를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도 굳이 본인이 낳은 자식을 아버지가 기꺼이 거둬주길 희망했다. 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제 자식을 향한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서 아버지를 질리게 만들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엄마 역시 비록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나 가슴 깊은 속에서 나를 키우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굳혔다.

 

    환갑을 한참이나 넘긴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것은 전역한 아버지의 옛 동료에게서 분양받은 셰퍼드 한 마리 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고마움을 모르고 개 밥그릇 한 번 깨끗이 닦아주지 않는다. 나 마저 외항사로 취업하여 집을 떠나게되면서 아버지는 손수 자신의 식사를 챙기는 신세가 되었다. 초로의 아버지는 홀로 남겨졌다. 언젠가부터 그래도 네 엄마가 미인상에 키도 큰데다 가방끈도 제법 길었다며 그리워했다. 아버지는 결국 엄마에게 졌다. 그것이 아버지의 운명이라고 단정짓자 안쓰럽게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엄마가 언젠가 손발이 닳도록 빌며 돌아올거란 상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더 없이 가엾고 불쌍했다. 엄마는 한 번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 나는 고모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했고, 소풍이나 야유회때 김밥도 제대로 못 싸갖고 다니는 천덕꾸러기로 자랐다. 서른이 넘도록 엄마의 그림자는 먼 발치에서 조차 구경하지 못 했다. 

  

    고모들은 쉬쉬했지만 나는 엄마의 행방을 스스로 수소문해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수백명의 ‘이숙희’를 페이스북에서 찾아 일일이 확인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앉은 자리에서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엄마는 타인의 귀감으로 성장한 인물이 아닌가. 엄마는 뉴질랜드에서도 꽤 저명한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섣불리 확신할 수 없을 만큼 엄마는 반듯하게 살고 있었다. ‘수잔’이라는 영문이름에 외국인 남편의 성까지 쓰고 있었지만 미들네임에 선명하게 박혀있는 ‘숙희’로 엄마란 걸 확신했다. 심리상담에 관한 블로그까지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로 이민가정의 사춘기 청소년이나 입양아, 혼혈아동들의 정체성을 다루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강의를 하거나 듬직한 남편의 팔에 감겨 혼혈 여자아이들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 엄마였다. 한참동안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점처럼 작게 소멸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너무 행복하고 안정되어 보여서 이제 와서 굳이 엄마 앞에 나타난다는 평생의 계획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와서 멈출 수는 없었다. 엄마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고 똑 같은 사진을 수십번도 더 들여다 보면서 엄마를 느꼈다. 기필코 저 노린내 나는 코쟁이들 틈에서 엄마를 빼내와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 외에 행복해질 방도가 달리 없었다.     

 

    비행을 시작하면서 수중에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버지 앞으로 떨어지는 자그마한 연금에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아버지 마저 날 버렸더라면 지금의 난 없었을 것이다. 홀로 나를 키우면서 아직도 떠난 엄마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제와 생각해보니 순정이지 미련이나 집착이 아니었다. 첫월급으로 아버지의 잠옷을 사드리고, 남은 돈으로 엄마를 만나는 날 입을 칵테일 원피스와 구두를 장만했다. 절대로 만만해 보여선 안 된다.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었으니 어른스럽게 엄마를 만나 용건을 전달할 생각이었다. 신파극에서처럼 과자 값이나 쥐어 돌려보내지 않도록 반듯하게 차려입고 갈 것이다. 시간이 더해갈수록 점점 두려워지는 것은 엄마가 날 잊어버릴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든 정해진 약속이든 꼭 만나야 한다. 기내 화장실 문 앞에서 두리번 거리는 촌스런 동양 아줌마나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아 나를 호출하는 우아한 중년의 사모님들을 틈에서 나는 늘 엄마를 찾아 헤맸다. 

   -엄마? 저 윤이에요.- 

   누군가의 장난처럼 엄마의 블로그에 쪽지를 남겼다. 내 이름을 기억한다면 짧은 물음에도 답을 주리라 믿고 한없이 기다렸다. 무려 달포가 지나서야 답장이 돌아왔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라면, 한국에 단 한 명 밖에 없는데, 설마!”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엄마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변명했다. 엄마의 사회적 성공과 안정된 가정은 모두 나를 위해서란 말처럼 들렸다. 그 안으로 내가 들어갈생각이 전혀 없는 나를 향해 엄마는 이기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내게 답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자식을 둘이나 새로 낳아키우면서 번듯한 가정을 꾸렸든 말든 엄마만 빼내오면 모두 거품처럼 사라질 현실이라고 믿었다. 엄마, 전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나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많이 컸겠구나! 너무 보고 싶어요. 마침내 용건을 털어놓자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침내 엄마를 만나러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이 있는 날이다. 밤새 가슴에 뛰어한 숨도 못 잤다. 마침내 함지박만한 배를 앞세우며 들어서는 임산부를 시작으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7개월쯤 됐다고 전했다. 승객의 팔을 양 손으로 부축하여 자리로 안내했다. 비행기는 점프하듯 이륙하여 마침내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낮아진 기압으로 금세 허기를 느낀 승객들은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해 마실 음료와 주전부리를 찾아댔다. 식사가 시작되자 기내는 입을 오물거리며 바삐 음식물을 삼키는 수백 명의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주스와 물을 더 달라는 사람들이 기다리다 못해 스스로 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서비스를 끝내고, 기내 조명을 소등했다. 불이 꺼지기 무섭게 승객들은 마법에 걸리 듯 일제히 고개를 떨군다. 영화를 보다 창밖의 별을 감상하다 결국 고단해져 잠이 든다. 

 

  조종실에 앉아 내내 정면을 향해 앉은 조종사들의 식사를 챙긴다. 화장실을 가는 일 외에 늘 자리를 지켜야 하는 그들은 앉아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거나 매뉴얼을 뒤적거리며 오로지 두뇌만 움직였다. 점점 살이 불어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체구가 작은 조종사를 보면 무언가 결핍되어 보일 정도였다. 조종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조종석 뒷좌석에 앉아 정면에 훤히 드러난 달을 바라본다. 이 설렘을 누구 한 사람에게 털어놓고 싶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지만 이 비행 이후 언제 또 다시 볼지 모를 사람들이었으므로 나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오클랜드에 도착하면 뭘 하실 거에요? 기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쇼핑몰에 들러 미리 봐 둔 카메라를 한 대 고를 생각이라고 했다. 부기장은 이혼하고 전처 손에 맡긴 아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갈 계획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이혼한 전처가 재혼을 하면서 이제 새아버지 밑에서 자라게 된 아들을 돌연 빼앗긴 기분이 드는 지 부기장은 아들을 만날 계획에 대해서 굉장히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오클랜드에 있는 가족을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기장이 관심을 보이며 고개를 좌측으로 살짝 돌려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오클랜드에 엄마가 있어요. 그 말을 하는 내 어깨에 살포시 바람이 실렸다. 오클랜드의 하늘은 그림처럼 파랗게 물들어 솜사탕 같은 구름을 쉼 없이 토해놓을 것이다. 그 하늘 아래 엄마가 서 있겠지? 엄마가 정말 나와 줄까? 호텔 로비에 슈케이스를 끌고 들어서는 순간 엄마가 나를 단번에 알아볼까? 달려가 얼싸 안고 반겨야 할까. 아니면 45도 각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올려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자존심을 차릴 생각을 하는 거도 사실 엄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떤 분일지, 어떻게 변화되었을지, 아무 것도 예측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 홀로 들어서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집을 나서기 전 카톡 제목을 12,13,14 오클랜드로 바꿔놓았다. 엄마가 이걸 본다면, 먼저 말을 걸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니까…. 엄마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아니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아무런 문자도 없이, 약속한 내용 그대로 호텔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 이코노미 할 것 없이 만석이었다. 처자식을 비롯한 아이들의 보모들은 이코노미 석에 남겨둔 채 홀로 비즈니스 석을 꿰어찬 중년신사 하나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 시간 간격으로 일반석의 아이들을 차례대로 불러들여 두 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자도록 하는 것이었다. 가족이 돌아가며 승객의 좌석을 이용하는 동안 남자는 곁을 지키고 서 있다. 흔히 있는 일이었으므로 이런 부류의 승객에 대처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일단은 정중한 자세로 제안을 하나 했다. 이런 식으로 다른 승객들을 불편하게 하느니 남은 가족이 머물고 있는 일반석으로 가시라고 말이다. 그러자 남자는 정색을 했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하나 남은 계란을 잽싸게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한 입에 삼키곤 했다. 날계란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두른 찻잔을 엄마가 내오면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꿀꺽 삼켰다. 집을 나서면서 군화가 광이 나도록 닦여있질 않으면 워커발로 발길질을 했다. 엄마는 늘 쥐죽은 듯 구석으로 몸을 숨겼지만, 결국 울분을 참지 못 하고 달려 나와 아버지에게 말대답을 했다.  

  정색을 하는 승객에게 다시 다가섰다. 만만하게 보이는 순간 이런 일은 14시간 내내 되풀이될 것이다. 승무원의 지시에 응하지 않고 기내질서를 어지럽히면 공항경찰을 호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승객은 허허 웃으며 물이나 한 잔 그것도 얼음을 가득 넣어서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승객이 새를 쫓듯 훠이훠이 팔을 휘젓자 부인과 아이들이 군말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들은 거역할 수 없는 삶의 원칙에 익숙하게 순응하는 모습이었다. 반항이나 거역이라곤 없는 삶이었다. 얼음물을 쟁반에 담아 대령하자 자녀들은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고 없었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했어도 엄마에게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너무 똑똑해서 탈이었다. 나는 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남자 승객의 헛배를 잠시 시선을 두었다.  

 

  아버지는 한참 부족한 여자를 만났어야 했다. 공연히 욕심을 부려 유학준비에 앞길이 구만리 같이 창창하던 엄마를 탐했다. 엄마처럼 잘난 여자한테 하루 세끼 밥상을 제때 차려라. 매일 저녁 가계부 검사를 맡아라. 살림이나 해라. 등등의 제약을 두었다. 아버지가 적을 뒀던 부대 인근의 ‘황금 다방’ 미스 리 정도가 알맞았다. 군화로 발길질을 하고, 국이나 나물이 싱겁다고 밥상머리에서 머리를 쥐어박아도 결국엔 배운 것 없이 박복한 팔자려니 하고 삭히며 살아줄 여자를 만났어야 했다. 엄마는 대학졸업 후 준비하던 미국유학을 결혼과 함께 반납했다. 콩나물국이 팔팔 끓는 부엌에서 아침마다 칼자루에 힘을 실어 포기김치를 썰던 엄마. 잘록한 허리 위로 봉오리처럼 맺힌 올림머리를 갸우뚱하며 간을 보던 엄마. 엄마가 빠져나간 텅 빈 부엌엔 먼지가 쌓이고, 늘 윤이 나던 식기와 유리그릇들에 물때가 쌓일 때 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자기 배 아파 낳은 새끼 버리고 집 나간 게 무슨 에미니? 됐다. 그만 잊어라. 아버지의 등 너머로 긴 담배연기가 피어오르면 한사코 미련 섞인 푸념이 들렸다. 뛰어 봤자 벼룩이지. 어디 돌아오기만 해봐라. 다신 도망 못 가게 다리를 꽁꽁 묶어 버릴 테닷! 

 

  모름지기 나만큼은 좋은 배필을 만나야 한다고 아버지는 강조했다. 그리하여 마련된 맞선자리는 인천비행으로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아주 갑작스럽게 이뤄졌다. 딱히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군말 없이 따르는 것도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버지만 좋다면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며 만나볼까 싶기도 했다.  

  공항 인근에 위치한 아울렛 1층 퓨전중식당에서 아버지가 내놓은 남자를 만나기로 했다. 전직 대학교수를 아버지로 둔 남자는 삼남매 중 막내였다. 혼자 힘으로 나이 서른일곱에 40평대 아파트를 두 채나 돌릴 만큼 재테크에 능한 자라고 했다. 소규모지만 네댓명의 직원을 둔 중소기업의 대표로 인물도 제법 준수한 편이었다. 부족한 점은 되도록 가능성으로 봐달라는 당부도 잇따랐다. 중매자로부터 건네받은 남자의 사진을 요리조리 훑어본다. 하관이 고요하게 빠진 남자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빛이 감돌았다. 딱히 흠잡을 만한 곳이라곤 없었지만 그렇다고 끌리는 타입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체구도 작아 보였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막상 약속장소에 들어서는 남자를 보자 여린 한숨이 먼저 새어나왔다. 밑단을 접은 바지 아래 양말도 없이 구두에 끼워 넣은 남자의 발목 때문에 단신이 더욱 도드라졌다. 하이힐 위로 길게 늘어진 종아리를 보고 남자도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긴 비행을 마친 터라 밤새 부은 발이 구두 안에서 아프게 겉돌았다. 냉큼 일어나 남자를 맞을까 하다가 나는 앉은 채로 자리를 권해버렸다. 천근만근 눈꺼풀이 무겁게 늘어지면서 텅 빈 위장이 쉬지않고 부대꼈다. 

  남자는 막 휴가 나온 일병처럼 깍듯하게 인사를 건넸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뜨거운 차가 먼저 나왔다. 그가 먼저 잔을 건네주길 기대하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남자의 전화였다. 그는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연후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어이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얼른 받으세요.” 

  사슴처럼 초롱초롱 눈망울에 동그랗게 힘을 주자 남자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남자의 전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지난 달 실적이며 미수금 완납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오천 팔백 얼마 쯤…. 남자가 액수를 거론하며 왼손바닥을 펼쳐 수화기를 살짝 가렸다. 졸졸졸…. 남자의 통화내용을 벽처럼 세워놓고 나는 스스로 차를 따라 마셨다. 남자의 잔까지 마저 채운 연후에 나도 스마트 폰을 꺼낸다. SNS 즐겨찾기에서 슬그머니 남자를 떨궈 버린다. 남자의 통화가 점점 길어지는 사이 전채요리가 나왔고, 나는 젓가락을 힘주어 세우고 보란 듯이 음식을 마구 집어 먹기 시작했다. 젓가락 사이로 뭉텅뭉텅 흘러가는 의미 없는 시간을 생각하자 걷잡을 수 없는 피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밀린 잠이나 잤으면 딱 좋을 시간에 이런 무례를 당하고 있는 이유도 모르겠다. 남자도 딱히 마음이 있어서 나온 건 아닐지 모른다. 밥이라도 먹여 보내는 걸로 소개시켜 주신 분에 대한 도리를 다 하는 것 뿐인 것이다. 마침내 통화를 끝낸 남자는 미안한 듯 빙그레 웃는다. 남자는 무슨 이야기든 내가 먼저 털어놓길 바라는 눈치다. 

  “진상 승객 만나면 어때요? 꽤 힘드실 것 같아요.” 

  통화를 마친 남자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남자가 겨우 한 마디 끌어올린 모양이다.

  “글쎄요. 그런대로 할 만 해요.”

  나는 시큰둥하게 내뱉는다. 제 까짓게 ‘비행’에 대해 뭘 안다고, 초면에 덮어놓고 동정부터 하려는 자세가 심히 마땅찮다. 

  “통계에 따르면, 항공승무원의 감정노동도가 가장 높지 않습니까? 가끔 뉴스에서도 기내에서 민폐 끼치는 못된 사람들 얘기 종종 올라올 때 마다 승무원들 보면 안쓰러워요. 대한민국에서나 인기직종이지 미국이나 유럽에선 3D 업종이잖아요.”

  초반에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심리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뭐, 그런가 봐요.”

  발끈하지 않고 순순히 남자의 말에 수긍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흔해빠진 공항 인근의 퓨전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자장면을 먹어 주고 있는 이유로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다면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다. 아까부터 발바닥이 저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나는 구두코 위로 밤새 퉁퉁 부은 발을 함부로 꺼내놓고 반쯤 눈을 감았다.   “저, 혹시 기분상하셨나요? 그랬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피식!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심 비웃음으로 비춰졌길 바라면서 나는 빈 찻잔을 탁하고 내려놨다.

 “비행기 자주 타세요?” 

 “아, 그게…. 최근에 사업 확장하느라 바빠서 자주 못 다닙니다. 여름휴가 활용해서 동남아에 스쿠버 다이빙하러 가는 정도입니다.”

 “어느 기종 타보셨어요?”

 그런 걸 알 턱이 없을 남자의 얼굴이 늦가을 젖은 낙엽처럼 누렇게 뜨기 시작했다.  

 “저를 무슨 버스안내양 보듯 하시길래, 출장을 자주 다니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버스 안내양요? 아유, 오해십니다. 사실, 저 외항사 승무원은 정말이지 처음입니다.” 

 남자가 익히 섭렵하지 못 했던 세상이 궁금해서 나왔다는 말로 들렸다. 

 “국내 항공사만 죽 이용 하셨나 봐요.”

 “아, 그게…. 국내항공사 승무원들과는 몇 차례….”

 남자는 쓰고 뜨거운 중국차를 두 손으로 공손하게 쥐고 후후 불며 키득거리기까지 한다. 

 “사실 우리 형수도 승무원이었어요.” 

 이런 멘트 날리면서 우리 세계에 대해서 아는 척 하는 남자가 제일 싫다. 

 “처음엔 착했대요. 근데 결혼 하고 보니 살림도 못 하고, 씀씀이가 너무 헤프더래요.” 

 “지금은…?” 

 “이혼 했죠….”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 역시 명심하란 말로 들렸다.     

 “그런 분일수록 마음이 넓은 남자를 만나셨어야 해요.” 

 “우리 형도 꽤 촉망받는 대기업 연구원이었습니다.” 

 “어디, 삼성이요?” 

 남자가 알 거 없다는 듯 말을 아끼더니 차를 한 모금 쭉 들이켰다.  

 “전 여친도 승무원 지망생이었어요. 아무리 말려도 하겠다고 하길래 물신양면으로 지원했는데, 결국 헤어졌어요.”

 승무원과 사석에서 만난 일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맞선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신기해하는 게 뻔히 보이는 데 굳이 아닌 척 하려고 애쓰고 있다.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모를 정도로 앞뒤도 없다. 항공업계와 관련된 사사로운 인연을 총동원하여 어떻게든 한 수 위에 서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사뭇 궁금했다. 가부장적인데다 여자를 우습게 알았다. 욱! 하는 성질까지 있다면 아뿔싸! 아버지와 판박이였다.   

  “막내라면서요?” 

  어색한 침묵을 깨고 나온 신상에 관한 질문이었다. 

  “네! 그래도 어머님은 제가 모실 겁니다.” 

  “아, 네에…?” 

  부연설명을 기대하자, 남자가 공격적이면서도 단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형님들이 모두 외국에 계셔서요.”

  “효자로군요.” 

  “막내로 자라셨으면, 귀염 많이 받으셨겠어요.” 

  “사고뭉치였죠. 어머니가 뒷수습 많이 해주셨어요.” 

  “네에.”

  “언제 한국에 들어오세요?”

  “글쎄요.”

  “결혼 하셔야죠.”

  “그것도 인연이 돼야죠.”  

  초장부터 대화가 겉돌고 있는데 결이라는 화두를 당당히 꺼내드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급격히 나른해졌다. 이대로 픽 베개에 이마를 묻고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지금 이 순간의 곤욕이 꿈처럼 사라질 거란 기대만이 한 자락 희망이었다. 

  “그게 항상 딜레마에요.”

  “마음에 듭니다.”

 상하좌우로 어기적거리던 어금니가 멈춰 섰다. 앞니로 반쯤 잘라 먹던 딤썸을 앞 접시 위로 도로 내려놓았다. 

  “저 어때요?” 

  남자의 얼굴은 빤히 들여다봤다.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인 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종업원이 계산서를 남자 앞으로 들이밀고는 휙 지나갔다. 홀 안의 테이블이 모두 차고, 대기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데면데면 겉돌던 대화를 종료할 시기였다. 남자는 피해의식이 있어보였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남자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성급하게 한 마디 쏘았다. 

 “제 여자 답습니다.”

 나는 입술꼬리를 한 쪽만 치켜세우며 피식 웃었다. 

 “일어날까요?”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홧김에 계산서로 내가 먼저 손을 뻗치자 질세라 남자가 냉큼 가로챈다. 남자는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 세운 다음 신경질적으로 신용카드를 내민다. 밥값 정도야 얼마든지 낼 용의가 있으니 제발 나서지 좀 말란 소리쯤으로 들렸다. 굳이 숙소까지 바래다주겠다는 남자를 뿌리치고 나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런데도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손목을 가로채 비틀 더니 길을 막았다. 이건 예의가 아니죠! 한사코 뜯어말리는 남자의 얼굴은 필사적이었다. 그럴수록 한시라도 바삐 남자로부터 벗어나야 했다. 대낮에 만나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남자는 갑자기 보란 듯이 버럭 했다. 

  “지금 내 차가 고물이다 이겁니까?” 

  남자의 바닥이 훤히 드러냈다. 나 원 참…. 헛웃음과 함께 참았던 분노가 눈물이 되어 치솟았다.  

 

  며칠 수 중매인은 남자의 배웅을 고사한 저의가 무엇인지 따지고 들었다. 남자가 한 소리 퍼부은 게 분명하다. 뒤끝 있는 놈이었다. 안 타길 백 번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됨됨이로 따져야지 차종을 갖고 판단하는 버르장머리를 어디서배웠냐는 설교까지 잇따랐다. 남자가 뭐라고 나를 싸잡아 자신의 퇴짜!를 합리화 시켰는지 알만했다. 늘 그런 식으로 합리화 시켜왔으니 그 나이가 되도록 모난 데가 많은 것이다. 부잣집 막내도련님 답지 않은 면모였다. 솜이불처럼 폭신한 남자였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성한 곳이 없는 내 날개를 충분히 보듬어 줄 남자였다면 지금쯤 내 삶에도 봄바람이 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남자는 어떻게든 내 기를 누르지 못 해 안달이었다. 

 

  보름쯤 후 남자에게서 다짜고짜 전화가 날아들었다. 시차를 무시한 채 서울에서 달려든 전화는 새벽녘 단잠을 산산이 부수어 놓았다. 엉겁결에 받은 수화기를 열자 남자의 한 맺힌 고함이 터져 나왔다.  

  “외제차로 바꿨습니다.”

  역시나 차종 때문에 내게 퇴짜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외제차도 성에 안 차시나보죠?”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매섭게 쏘아붙였다. 

  “저는…. 그 쪽에게 생각이 없어요….” 

  한 동안 침묵이 흐른 연후에, 전화가 뚝 끊겼다. 아마도 그 쪽 배터리가 떨어졌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자던 잠을 재촉했다. 아침부터 장거리 비행이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지독할 정도로 집요했다.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것 같았다. 철저한 냉대와 멸시에도 불구하고, 보름 쯤 후 다시 기별이 왔다. 첫 만남에서의 어설픈 말실수와 경솔함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용서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장문의 사과문이었다. 공연히 전화벨이 울리다가 받으려는 찰나 저절로 멈추곤 했다. 보나마나 그 어설픈 남자였다. 딱 한 번 떠밀리다시피 나와 마지못해 식사만 한데다 이미 매몰차게 선을 그었음에도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날이면 날마다 문안인사를 남기더니, 구정 명절엔 아버지가 홀로 계신 집으로 갈비와 사과, 배를 한 상자씩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집안 청소와 부엌일을 거들게 했다. 그 청년, 사람이 시원시원하니, 제법 듬직하더라. 그만하면 됐다. 이제 못 이기는 척 하고 받아줘라. 이것도 다 인연이 되니까 생기는 일이다. 아버지는 한 결 같이 남자를 감싸고 돌았다.  

 

   남자의 아버지는 스스로 목을 맸다고 했다. 사건이 이루어지던 날, 집안에 있던 식구라곤 남자뿐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누나와 형들은 유력한 용의자로 남자를 지목했다. 아버지가 스스로 목을 맬 사람이 아니라는 게 형제들이 남자를 의심한 이유였다. 형들처럼 공부를 잘 하지도 못 했고, 걸핏하면 동네 건달들과 시비나 붙는 남자는 자라는 내내 집안의 우환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남자를 투명인간 대하듯 해왔다고 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어머니를 떼어내려고 득달같이 달려들 때만 아버지는 남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민재! 이 망할 놈의 자식! 하지만 남자는 하늘에 맹세코 아버지와 몸싸움을 벌이거나 반항한 일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발견 당시, 남자의 아버지는 대롱대롱 전선에 목이 감겨 있었지만 누나와 형들은 남자가 아버지를 목 졸라 살해한 연후에 전선에 감아 허공에 매달아 완전 범죄를 꿈꾸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형들은 아버지의 폭언과 거침없는 발길질을 견디다 못한 남자가 아버지를 들이받아 가슴을 쥐어뜯을 듯이 달려들었던 걸 여러 번 목격한 일이 있다고도 경찰에 진술했다. 아무도 남자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남자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라며 남자가 법정소송을 준비하는 사이 남자를 유산을 모두 빼돌렸다. 남자 모르게 아버지가 미리 작성한 유언장에 따른 이행이었다고 형들은 조목조목 설명을 늘어놓았다. 

  

  남자의 아버지는 밖에서는 점잖은 대학교수 행세를 하며 숱한 논문과 책을 줄기차게 써냈지만 집에서는 걸핏하면 어머니를 두들겨 팬 난봉꾼이었다. 물론 중매자에게서 익히 들어본 적 없는 사항들이었다. 조교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고소되어 몇 번이나 재판에 회부된 적도 있다고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그를 의심했던 건 형들과 누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형들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놈은 평생을 아버지 눈 밖에 나돌던 남자 밖에 없다고 했다. 질식사한 아버지의 목을 조른 것은 인간의 손이 아니라 전선줄이었다고 부검결과가 나오면서 그는 모든 혐의로부터 풀려났다. 망자는 스스로 전선줄에 목을 맸던 것이지 누군가 목을 졸라 죽인 연후에 전선을 감아 공중에 매단 것이 아니었다는 부검의의 소견으로 그는 5년 만에야 무죄를 입증 받았다. 이후 그는 끝까지 자신의 결백을 믿어준 노모를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과 인연을 끊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8년째 파킨슨병에 시달리는 노모의 병수발뿐이었다. 그의 세상에선 걸핏하면 송사가 붙었다.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기물이 파손되곤 했다.  

  

  그런 말을 하는 남자가 무척 낯설고 버겁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통과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긴 터널이 찾아오는 법이다.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에는 늘 억울한 누명을 허공에 하소연했다. 걸핏하면 따귀를 갈기고 주먹을 날리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한결같은 주장을 7년간 되풀이해야 했다. 패륜아로 자신을 내몰았던 누나와 형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소송에서 이긴 지금도 수면제와 정신과 치료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익히 들어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나를 만나기 전까지 그가 겪어낸 세상이라니…. 나를 향해 들이댔던 자존심과 거북했던 자신감들이 모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차양막에 불과했음이 안타까웠다. 가엾은 우리 딸…. 처음으로 나를 부르던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엾은 우리 민재씨…. 남자는 외톨이였다. 상관없었다. 인간이라는 바닥은 누구나 똑같다. 전화선 너머로 긴 침묵이 이어진 연후에 나도 마찬가지라고 털어놨다. 부모님은 여섯 살 때 이혼하셨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엄마는 뉴질랜드 남자와 재혼해 나를 조금이라도 닮았을지 모를 혼혈 여동생이 둘이나 있다고 말해줬다. 자주 만나진 못 하지만 SNS로 엄마가 새 가정을 이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나 같은 딸을 하루 빨리 잊어버릴 만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남자에게 그 말을 모두 털어놓고 나니, 두 눈이 퉁퉁 부었다. 전화기를 쥐고 있던 팔과 손목과 귓불도 모두 함께 울었다. 눈물이 콧물과 뒤범벅이 되어 턱 끝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 등장했던 남자들에게 결코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였다. 남자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다며 어떻게든 나를 위로해주려고 애썼다. 긴 침묵이 이어진 연후 남자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는 게 쉽기만 해서야 진짜가 아니에요. 복선도 깔고, 고비도 넘겨야 재미를 보는 법이랍니다. 윤이씨, 어머님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자의 긴 호흡이 지긋이 어미를 종결하자 전율하던 심장이 젖은 모래처럼 후드득 쏟아졌다. 

  

  서비스를 마치고 4시간 정도 쉴 수 있었다. 나는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겨 벙커로 내려서는 난간을 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조심스럽게 몸을 들여놓는다. 고단한 몸을 떨구자 이내 뭉쳤던 근육의 긴장이 일제히 풀어졌다. 이렇게 벙커에 누워 낮은 천장과 맞이할 때면 관 안에 갇힌 기분이다. 살아내고 있지만 결국엔 죽음을 향해 쉼 없이 나아갈 뿐이란 걸 생각하면 시간이 없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꽁꽁 숨겨두었던 남자를 떠올렸다. 엄마를 만나러 간다고 전하자 남자는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마침, 아버지가 계시는 기와집 마당에도 감이 열렸다. 네 엄마가 너 가졌을 때, 주렁주렁 열린 감을 한 소쿠리 가득 따는 꿈을 꿨다잖니? 아버지는 감나무 사진을 보내오면서 태연하게 엄마이야길 꺼냈다. 추궁하듯 결혼을 재촉하던 아버지는 막상 남자에 대해서 고백하자 탐탁찮게 반응했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별반 다르지 않을 남자의 성품을 전해들은 아버지는 좋다 싫다 말이 없었다. 물론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인 형제들과 파킨슨병에 시달리는 노파의 존재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달가워하지 않는 건 이제 남의 집 식구가 될 딸이 서운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다. 어차피 인간이란 바닥은 다 똑같으니까. 아버지도 속절없이 홀로 남게 될 삶이 아쉬울 뿐이라고 이해했다. 아버지가 보내준 감나무 사진을 남자에게 보여주자 남자의 프로필 사진이 금세 교체되었다. 어머님을 만나면 꼭 물어보세요. 윤이씨 가지셨을 때 어떤 태몽을 꾸셨는지. 자세히 들려달라고 조르세요. 벙커에 모로 누워 남자와 나누던 카톡 문자를 끌어올린다. 민재! 강. 민. 재…. 잠결에 아니 꿈결에 나는 남자의 이름을 한 음절씩 소리내본다.  

 

  꿈속에서 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어느 대학 강의실 한 켠에 앉아 인형놀이를 하고 있다. 교수가 강의에 집중하며 끊임없이 펜대를 움직여 노트 필기를 하는 엄마 곁에서 얌전히 앉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미미인형의 옷을 갈아입히고 머리를 땄다. 쉬는 시간에 간간이 환타나 젤리를 사주러 엄마는 나를 데리고 지하 매점으로 갔다. 엄마와 함께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동기들이 웃으며 다가와 내 머리를 어루만지거나 사탕을 건네주기도 했다. 착하네, 엄마 공부한다고 울지도 않고 얌전하게 잘 있네. 식탁에 앉아 논문을 뒤적이며 타이핑을 하고, 프린트를 해서 다시 읽어보며 엄마가 밤을 지새우고 있으면, 군화를 신은 아버지가 건빵과 별사탕을 잔뜩 들고 나타났다. 

  “책에서 손 떼랬잖아?”

  “당신이 이럴 때 마다 숨이 막혀”

  타자기를 두드리던 엄마는 가만히 아버지를 노려본다. 아버지는 선녀옷을 감춰놓고 전전긍긍하는 나뭇꾼 같았다. 엄마가 펼쳐놓은 논문집과 컴퓨터를 마구잡이 트렁크에 담아 벽장에 숨겼다. 그 때였다. 찰싹! 엄마의 올림머리가 풀어헤쳐지면서 결국 볼을 쥐고 앉아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의 울음이 절규가 되어 집안 가득 울려 퍼졌다. 

   

  엄마의 들썩이는 어깨를 보자 번쩍 눈이 떠졌다. 서둘러 계단을 밟고 올라가 문을 열고 객실로 올라왔다. 뜻밖에도 기내 바닥에 임신한 지 7개월 된 승객이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있다. 모든 승객들이 잠들었기 때문에 아무도 여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못 했다. 나는 여자의 허리를 얼른 일으켰다. 몸의 방향을 비틀 때 마다 뱃속의 아이가 따라 움직인다고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비즈니스 좌석 업그레이드를 노리고 연극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멀쩡하더니 날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고개를 치켜든 여자의 콧잔등 밑으로 새어나온 피를 보자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비행기에서 아이를 낳지 말란 법도 없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응급처치상자와 더운 물과 담요를 가져다 여자의 주위에 늘어놓았다. 여자는 순순히 산소마스크에 쓰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륙 후 여섯 시간이 넘도록 아무 것도 먹지를 못 했다고 했다. 빈 속이 부대낄 법도 했다. 물을 한 모금 겨우 마시는 둥 마는 둥 한다. 과일 좀 가져다 줬는데도 먹는 둥 마는 둥 여자는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 손을 놓고 있다. 의사에게 호출전화를 넣었다. 기계를 작동시키고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수화기 저편에서 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착한 목소리로 산모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29살의 아랍계 뉴질랜드 여성, 동행하는 가족이나 친구는 없다. 4년 전 한 차례 출산 경험이 있고, 이번이 두 번째 임신이며 현재 28주를 조금 넘어선 상황이다. 아이가 나오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전하자 지속적인 산소공급과 함께 아타빈(Atavin)을 투여하란 처방이 나왔다. 아타빈, 몸부림치는 환자에게 투여하는 국소마취제로 일종의 신경안정제다.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 의사의 처방에 대해 설명하고 약을 건네며 이에 동의하는 지 물었다. 곁에 있는 주니어 승무원이 증인이 돼 주었다. 여자는 고통이 몹시 심한 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약을 꿀꺽 삼켰다. 봉곳이 솟은 배위에 양 손을 올려놓고 스마트폰 배경화명으로 설정해 둔 어린 아이의 사진을 보고 있다. 사진 속 아이에게 시선을 줄 때 마다 고름 같은 눈물을 한 움큼씩 짜냈다. 눈물을 훔칠 때 마다 콧잔등 밑을 스친 휴지에 피가 흥건히 묻어나왔다. 얼음주머니를 여자의 콧잔등 위에 올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앞으로 숙였다.  

  “우리 아들이 보고 싶어요.” 

  여자의 말이 떨어지자 폭포수 같은 울음이 배웅하듯 따라나섰다.

  “아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말이라도 시켜야 여자가 의식을 놓지 않을 것 같았다.  

  “뉴질랜드요.” 

  여자는 스마트 폰을 열어 아들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었다. 기껏해야 3-4살 됐을 남자아이가 귀엽게 웃고 있었다. 여자는 화면에 드러난 아이의 눈, 코, 입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어루만져본다.  

  “이제 곧 뉴질랜드에 도착하면 보실텐데요.” 

  진정을 시킨다고 한 말이었거늘, 여자의 울음이 더욱 거세졌다. 

  “전남편이 만나게 해주질 않아요.” 

  그러면서 여자는 사진첩 속의 다른 사진도 보여주었다. 

  활짝 웃고 있는 여자를 감싸고 있는 앳된 남성이 두 번째 남편이라고 했다. 뱃속의 아이는 재혼으로 얻은 아이였다. 이 정도의 사연을 꺼낼 정도의 의식이면, 아직 산고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출산이 임박했는지 다시 물었다. 여자는 그건 아니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앉은 자세에서 좌우로 배를 움직이면 몹시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자는 또 눈물을 짜냈다. 

  “둘째가 생긴 걸 안 다음부터 전남편이 돌변했어요. 이제 겨우 4살 난 아이한테 출국금지를 시켜버렸어요. 이젠 아들을 듣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못 하게 해요! 무능력에 외도에 학대를 일삼으며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든 건 모두 그 인간 때문이에요. 내가 낳은 내 자식을 왜 볼 수가 없나요?”  

  갑자기 여자가 눈물을 쏟았다. 여자가 고개를 모로 틀면서 젖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나는 어깨를 흔들며 여자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윤아!”

  시장골목에서 내 손을 놓친 엄마는 절규하듯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서너명의 어른의 어깨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정확히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요! 라고 답을 했지만 엄마는 쉽게 알아듣지 못 했다. 윤아! 윤아! 엄마는 목청껏 내 이름을 불렀다. 나를 잃어버리면 세상이 다 끝나기라도 할 듯 절박한 떨림이었다. 겨우 어른의 다리 사이를 비집고 나가 엄마의 왼쪽 다리를 감듯이 잡았다. 다리에 매달려 웃는 나를 발견한 엄마는 왜 자꾸 말썽이냐며 엉덩이를 찰싹찰싹 내리쳤다. 시장이 다 떠나가도록 나는 목 놓아 울었다.  

 

  비행기 문에 머리를 묻은 채 쓰러진 여자를 바닥에 눕힌다. 자세가 바뀌면서 아이가 움직였는지 여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나는 여자의 이름을 다시 한 번 불렀다. 원망과 불안과 그리고 체념이 뒤섞인 얼굴로 여자는 나를 바라봤다. 물에 젖은 여자의 눈동자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렸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누구도 잘못되면 안 된다. 아이도 산모도 모두 무사해야 한다. 산소마스크를 씌우며 여자의 어깨를 흔들어봤다. 여자의 눈가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 떨어졌다. 맥박과 호흡은 정상이었다. 의사의 지시대로 아타빈(Atavin) 한 알이 추가로 투여됐다. 여자는 약을 삼키고 그대로 바닥에 누워 잠들었다. 여자가 잠든 동안 4백 여명의 점심식사가 시작됐다. 잠든 여자의 호흡 사이로 마시고, 씹으며, 삼키는 소리가 끊임없이 반복됐다. 

 

  서비스를 마치고 여자에게 달려갔다. 여자는 비행기 도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내가 언제 기절했냐는 듯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괜찮으세요? 여자는 미소를 짓길래 나도 따라 웃었다. 두 번째 서비스도 끝난 데다 착륙을 위한 강하가 시작되기 까지 이제 겨우 한 시간 남짓 했다. 여자는 스마트 폰을 손에서 놓지 못 한 채 아들의 사진을 슬픈 얼굴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멀쩡하다가도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끝 위로 뜨거운 이슬이 뚝뚝 맺혔다. 우린 모두 무사했다. 뱃속의 아이도, 전남편이 만나지 못 하게 한 그녀의 아들도 괜찮았다. 울 일은 없었다. 다만 뒷목이 뻐근했다. 어깨 죽지가 고무처럼 딱딱하게 굳어 들어갔다. 오른손을 뻗어 왼쪽 어깻죽지를 주무르며 여자에게 물었다.

  “자리로 안내해드릴까요?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여자는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자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길게 누워 자던 승객은 냉큼 일어났다. 마침내 여자를 좌석에 앉힌다. 여자는 떠나려는 나를 불러 세워 선반에 있는 핸드백을 꺼내달라고 한다. 여자는 핸드백에서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 엉망이 된 화장을 고치기 시작한다. 파운데이션을 쿠션에 찍어 능숙한 솜씨로 얼굴 골고루 펴발랐다. 립라이너를 그리고 붉은 색 립스틱을 덧발랐다. 마스카라를 덧칠하느라 눈꺼풀을 반쯤 내려뜨리며 고도로 집중할 때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모두 신경안정제의 힘이었다. 이제 여자의 고통은 말끔히 흘러갔다. 여자는 덧난 상처는 거짓말처럼 재생되고 있다. 달수를 채운 아이가 태어나면 4살 난 아들 같은 것 까맣게 잊고 잘만 살 것 같은 얼굴이다. 여자의 고통을 가장한 연기에 한 바탕 속은 기분까지 들었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엄마를 만나는 일을 더는 지체해선 안 된다. 이대로 감당할만한 고통이 지나치면 엄마도 나를 영영 잊을 것이다. 나를 잊기 위해 더 열심히 책을 읽고, 논문을 쓰며 기회가 닿을 때 마다 복사꽃처럼 환하게 웃을 것이다. 곱게 분을 바른 얼굴에 짙은 립스틱을 바르고 더욱 꼿꼿하게 걸음을 걸을지 모른다. 틈틈이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면서 용케도 내가 없는 삶을 이끌어나갈 것이다. 아! 한시라도 지체해선 안 된다. 나는 임산부가 앉은 좌석을 잰걸음으로 지나면서 더욱 분주히 몸을 놀린다. 창문 가리개를 서둘러 올리고, 승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소리치며 하늘 위를 달린다. 두 발이 퉁퉁 붓고 짓물려도 멈추지 않는다. 

 

   엄마는 약속한 시간에 호텔 로비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체념하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부은 발에서 땀으로 찌든 압박스타킹을 벗겨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냉큼 일어나 수화기를 집어들자 고운 중년 여자의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우리 윤이, 잘 도착했구나. 차가 막혀서 좀 늦었다.” 

  엄마였다. 나는 준비한 원피스에 샌들을 받혀 신고 부스스한 얼굴에 비비크림과 립글로즈로 덧바르고 다시 내려갈 채비를 서둘렀다. 엄마는 호텔 로비 한 켠의 소파에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었다. 엄마와 나 사이의 공백이 되어버린 세월이 무상하게도 거짓말처럼 젊고 우아했다. 큰 언니나 이모라고 해도 될만한 용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나를 버리고 떠난 엄마는 돈 많고 우아한 비즈니스클래스 승객의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엄마를 따라 주차장에 이르자 열대여섯 쯤 돼 보이는 소녀 둘이 엄마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엄마의 팔짱을 양쪽으로 꿰어찼다. 엄마는 뉴질랜드 남편 사이에서 낳은 두 딸들에게 나를 이모라고 소개했다. 아이들은 내 존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많이 컸구나. 길에서 보면 못 알아보겠다.” 

  엄마는 글라디올러스처럼 생기롭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곱게 늙을 수 있는지 정말이지 궁금했다. 마음고생이라곤 단 하루도 해 본 적 없는 사람 같았다.  

  “오클랜드 비행, 자주 오니?” 

  “앞으로 종종 나올 거에요.”

  “다음에 오면 엄마랑 쇼핑도 좀 하자. 괜찮은 가방이랑 옷이랑 몇 벌 사줄게.”

  근사한 레스토랑에 나를 데리고 간 엄마는 샐러드 접시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익숙한 손길로 포크와 나이프를 딸각거리며 새우껍질을 벗겨 내 입에 넣어주려고까지 했다. 

  “그러지 마세요. 제가 뭐 어린 앤가요?”

  극구 사양하다 나는 결국 포크로 엄마의 새우를 받았다. 엄마는 자꾸 엄마 접시에 있는 고기와 해산물을 내 접시 위로 나르며 소스 더 줄까? 느끼하지 않아? 라고 물으며 테이블 한 켠에 있는 드레싱을 권했다. 두 아이들이 익숙한 칼질로 음식을 먹다가 엄마에게 물을 달라, 화장실에 가고 싶다 등등의 요청을 하면 엄마는 웃는 얼굴로 소녀들의 얼굴을 마주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친인척의 일원 처럼 나를 다정하고 깍듯하게 대했다. 나를 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마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 같진 않았다. 이제 엄마라면…. 더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엄마, 행복해…? 

 

  엄마가 발라준 새우를 먹다 말고 나는 물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러려고 엄마를 보러온 게 아니었는데,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할 말은 해야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엄마를 붙들었다. 엄마가 떠나고 난 이후로,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엄마가 쓰던 화장대도 그대로 있고, 엄마가 즐겨 쓰던 향수와 머리핀도 모두 제자리에 있어요. 이제 엄마만… 엄마만 돌아오면…. 흐흑. 오클랜드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한낮의 기온이 쨍쨍해서 선글라스 너머로 옅게 비치는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거렸다. 엄마는 새우를 마저 손질해서 내 접시 위로 날라주는 일을 천천히 마무리하고 조용히 답을 했다. 

 

  “때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 덜 고통스러운 법이란다. 넌 고통이 뭔지 모르지? 죽지 못해 달아나고 싶게 만드는 고통을 너는 아직 모르지…. 얘야, 인생을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라…. 나는 그럭저럭 괜찮단다. 그러니까 너도 꼭 보란 듯이 잘 살렴…. 알았지?” 

  

  우리에게 돌아올 생각 따윈 눈곱 만큼도 없어 보였다. 엄마가 현재의 삶을 악착같이 지키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면 공연히 엄마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무사한 엄마가 제 발로 찾아와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것이라 믿고 있다니. 엄마는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한국남자를 구세대 유물로 취급하면서 우월감을 드러냈다. 똑 부러진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우리’는 ‘너희 한국’과는 달라서… 라는 말로 종종 나를 별나라로 데려다 놓곤 했다. 엄마는 이미 나를 버린 지 오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엄마는 능숙한 운전솜씨로 차를 몰며 오클랜드 다운타운 사이를 가로질렀다. 호텔에 이르러 내가 조수석 문을 열자, 엄마는 또 보자며 아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엄마에겐 내가 필요하지 않다. 엄마에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저렇게 능청을 떨며 먼 친인척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30년 전의 나를 기억의 저장창고에서 꺼내드는 일은 괴로운 고문이거나 자학일 것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머리가 새하얗게 새었거나 그래서 새남편이 더는 사랑해주지 않길 기대했던 내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엄마를 데려올 구실이라곤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한 시간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는 힘을 다해 울었다. 괴성을 지르며 악을 쓰며 울어도 눈물이 한밤중까지 멈추질 않았다. 

  

  한밤중에 요기가 느껴져 잠에서 깼다. 퉁퉁 부은 눈가가 벌겋게 부어있었다. 찬물을 콸콸 틀어 북북 세수를 한 다음 정신을 차리자 남자의 영상전화가 요란하게 울려댔다. 전화를 받으려면 이 퉁퉁 부은 얼굴을 보여줘야 했는데, 이 초라한 꼴을 보여줄 자신이 없다. 엄마를 데려올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수신거부 버튼을 누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자가 날아들었다. 

  -어머님은 잘 만났어요? 궁금해서 문자 남겨요. 어머님과 재회한 순간이 생애다시 없을 환히의 순간이었길 바래요. - 

 -네, 잘 만나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엄마는 아직도 젊고 예쁘세요. 저보다 더 행복해 보여서 앞으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다음 달에 서울에 들어가면 민재씨 어머님 목욕을 같이 시켜드릴까 해요. 간병인 아주머니 대신 제가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민재씨 어머님께 잘 할게요.-   

   차오르는 눈물을 닦으며 발신 버튼을 누르자 화장실로 향하던 다리에 힘이 쭉 풀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창 밖으로 밤이 깊어가는 광경을 지켜보자 세상엔 인력으로 어찌할 바가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는 데 생각이 모아졌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오랫동안 달을 바라보았다. 해가 떠난 자리를 달이 메꾸고 있었다. 심연과도 같은 검은 우주는 빛을 잃었지만 쏟아지는 별들로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달을 향해 물었다. 아, 정말 엄마를 되돌릴 방법은 없는 걸까요. 달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의 마지막 음성이 귓전을 맴돌았다. 얘야, 인생을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라…. 엄마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 왕자의 심장에 칼을 꽂을 수 없었던 인어공주가 거품이 되어 사라졌듯이 엄마의 심장에 칼을 꽂지 못 한 나는 바람이 되어 하늘로 숨어든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는 사이 엔진 소리가 회오리처럼 몰아친다. 인샬라! 어쩌면 엄마 말이 정답일지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이 훨씬 덜 고통스러울지 모른다. 쏟아지는 별 사이에 가로등처럼 우뚝 선 달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반드시 당도해야 할 최종목적지 있다고 달은 말하고 있었다. 앞치마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자 어제 임산부가 먹다 남긴 신경안정제가 잡혔다. 나는 마른 입으로 알약을 꺼내 삼켰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 상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