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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중고등)] 2019년이 1919년에게
작성일
2020.06.10

[최우수상 - 글짓기(중고등) 부문]



2019년이 1919년에게


홍세흔 / 뉴질랜드

(노스랜드 임마누엘 한글학교)



2019년을 살고 있는 나는, 2001년 12월생으로 뉴질랜드 나이로는 17살,
우리나라 나이로는 19살로 백세시대를 꿈꾸는 소녀이다. 


1919년에 살았던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생으로 우리나라 나이로 18살이었고, 다음 해 1920년 9월에 19살의 나이로 순국한 소녀였다. 


2019년의 나는, 뉴질랜드로 유학을 와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가끔은 힘들어서 짜증을 부리기도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해서 밤 새워 놀기도하며, 나의 발전과 나의 재미와 나의 소원을 위한 기도를 더 많이 하는 평범한 소녀이다.   


1919년의 유관순 열사는, 서울로 유학해 이화학당에 다니면서 가끔은 뜨개질을하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를 ‘명태 이름으로 빕니다’라고 해서 시험에서 낙제점을 받기도 하는, 평범하면서도 튼튼하고 영특한 소녀였다. 


2019년의 나는,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로 인해 글로벌 이슈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고 글로벌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접하면서 하나가 되고 있는 세계를 위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는 소녀이다. 


1919년의 유관순 열사는, 삼일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탑골공원에 나가 만세를 부르고, 전국적인 휴교령이 내려져 돌아가게 된 고향에서는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직접 태극기를 만들어 나눠주면서 연설을 하고 만세운동에 앞장 서는 등 직접 실천하는 소녀였다. 


2019년의 나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어떤 대학에 진학하여 어떤 공부를 할까를 고민하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나의 미래가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소녀이다. 


1919년의 유관순 열사는, 만세운동 중에 부모가 일본 경찰에 의해 살해 당하는 경험을하고 유관순 열사 자신은 체포되어 공주 지방법원에서 5년형을 구형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옮겨가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옥중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나라의 독립을 염원하는 소녀였다. 


2019년의 나는, 1919년 삼일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삼일운동  100주년 기념 사업과 전시회와 각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독립 만세운동 시연소식을 접하면서 삼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 유관순 열사를 기념하는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를 만나게 되고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에 가슴 먹먹한 경험을하게 되면서 유관순의 삶에 내 삶을 비추어 보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1919년의 유관순 열사는, 여느 10대와 같이 삶에 대한 고민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살았기에 어떤 하루는 "만세운동을 한 것을 후회한다"며, “정당한 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실 줄 알았다”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 연약한 소녀였다. 


2019년의 나는, 열사와 같이 가끔은 고민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평범한 10대로 살아가며  열사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 때문에 눈물도 훔치며, 내 탓 남 탓하며 한숨도 자주 쉬는 내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된 소녀다. 


1919년의 유관순 열사는, 동지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이 대신 나설 수 있는 용감한 성격으로 조선인이 조선인을 핍박하는 억울하고 비겁한 상황에서 “조선인은 일본말을 할 줄 알아도 조선말을 쓴다”며 그릇된 행동을 지적할 수 있는 곧은 소녀이기도 하였다. 


2019년의 나는, 친구를 도와주고 격려해 줄 수는 있지만, 내게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오지 않는 일에 대해 열사처럼 나설 수 있을까 반성하게 된 소녀다. 


1919년의 유관순 열사는, 끔찍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마음만은 자유로움을 간직하고 하나뿐인 목숨 자신이 바라는 일에 맘껏 쓰겠다고 생각하며 특별 사면으로 형을 반으로 줄여준 일제에 감사하라는 말에도, 일본말로 빌면 고문을 멈추겠다는 말에도, 끝까지 자신은 “죄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소녀이기도 하였다. 


2019년의 나는, 육체는 자유로우나 때때로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며, 모범적인 생활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그려놓은 경계선을 두려움 때문에 넘지 않으려하며,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새로운 도전을하는 것을 꺼려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고쳐 보겠다고 다짐하게 된 소녀다. 


1919년의 유관순 열사는, 주위에서 미련하게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물음에  “그럼 누가 합니까?”라고 담담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나라를 원망하지 않으며, 자신이하는 일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소녀이기도 하였다. 


2019년의 나는,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이따금 투정부리고 원망하는 모습에서 남을 돌아보고 남을 먼저 생각해보겠다고 결심하게 된 소녀다. 


2019년이  100년 전의  1919년에게, 나라를 잃고 억압받으며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에게,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씩씩하게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유관순 열사에게, 2019년이 1919년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때의 열사처럼 할 자신이 없기에, 그때의 열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것이기에, 그때의 열사도 나와 같은 소녀였기에, 그 소녀가 지키려고 한 나라가 발전하고 행복한 나라가 되었기에, 2019년의 소녀는 1919년의 그때 그 소녀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고, 많이 감사하다고,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이 마음이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그 마음에 가 닿기를 염원하며, 가만히 진심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