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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중고등)] 중국에서 만난 안중근의사
작성일
2020.07.15

[최우수상 - 글짓기(중고등) 부문]



중국에서 만난 안중근의사


김정재 / 중국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가 일본의 폭력적 침략에 항거 대한민국의 주권을 회복하고 조국의 독립과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적 사건을 기리기 위해 바로 거사가 일어났던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개관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중학생 이었던 2014년 어느 날 한국 뉴스를 통해 들었다.


하얼빈역은 내가 살고 있는 길림성 장춘시에서 가장 빠른 기차를 타고 가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의 도시이다. 하얼빈은 한겨울 빙등제로 유명하지만 나는 중국 땅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인 위인에 더욱 자랑스러웠고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에 하얼빈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얼빈역은 지워진지 오래 되어 작고 낡아 있었지만, 하얼빈역 정문 왼쪽 편에 중국어로 “安重根义士纪念馆”(안중근의사기념관) 이라고 당당하게 걸려있는 표지판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면 한글로 써 있는 안내문들과 의연한 모습으로 반겨 주시는 듯한 안중근의사의 흉상을 마주하며, 상기된 마음으로 방명록에 어떤 의미 있는 글을 남길까 고민하며 내 이름 석 자와 간단한 소감을 적었다. 기념관 내부는 크지 않았지만 사진자료와 안중근의사가 직접 쓰신 여러 점의 서예품, 의거 당시를 재현한 자료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장소를 창문 너머로 확인 할 수도 있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장소 이었다. 잃어버린 주권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며 대한독립을 위해 용감히 싸우셨던 자랑스러운 안중근의사, 지금은 하얼빈역 공사로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옮겨져 전시중이라 한다. 다시 그 장소 그대로 복원 되어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각종 세균실험과 약물실험이 자행 되었던 731부대도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안중근의사에 대해 찾아 보다 서예작품 마다 찍혀 있던 인상적인 손바닥 도장이 안중근의사가 뜻을 같이하는 동지 11명과 왼손 약지를 끊어 흐르는 피로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란 글을 쓰며 조국을 구하기 위한 맹세를 다짐하고 단지회를 결성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짧아진 약지로 손바닥 도장을 찍으며 마음의 의지를 다지셨을 안중근의사를 생각 하며 나도 의로움을 향한 강한 의지를 닮고 싶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 다음 방학을 이용해서 안중근의사가 수감되고 순국한 장소인 리아오닝성 대련시 뤼순에 있는 일제 시대 때 형무소를 방문 하였다. 밖은 뜨겁게 내리는 쬐는 햇살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등줄기에 땀이 맺히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뤼순감옥에 발을 내 딛는 순간 바로 차가운 한기가 느껴지고, 시멘트 바닥엔 감옥에서 서럽게 죽어간 죄 없는 죄수들의 한이 서려 있는 것 같아, 감옥안의 냉기로 온몸이 오싹 하였다. 수색실 고문실 사형실 공장 등을 둘러보고 안중근의사가 마지막까지 묵었던 독방과 사형실을 무겁고 숙연한 마음으로 조용히 관람하였다.


그리고 그 주변 어딘가에 묻혀 있을 안중근의사의 뼈 한 줌 이라도 찾아, 내가 어렸을 때 엄마 손을 잡고 나들이 가듯 올라가 보았던 효창공원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안중근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려고 만들어 놓았다는 안중근의사의 가묘에 단 한줌의 뼈 가루라도 묻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었다.


2019년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 이다. 3.1운동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지만 3.1운동이 일어나기 한달 전 19019년 2월1일 있었던 무오독립선언에 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번 행사에 참여하기 전까지 무오독립선언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무오독립선언은 2.8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 보다 먼저 있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이며, 세계각지의 민족대표 39명이 중국 만주지역에서 선포 하였고, 2.8독립선언과 3.1독립선언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2019년 1월 26일 중국 선양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선양협의회 주최로 무오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이 개최 되었다. 그 뜻 깊은 자리에 무오독립선언서 낭독자중 한사람으로 참가 하여 당시의 독립선언문 중 일부를 독립을 바라던 그때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조금은 떨렸지만 최대한 당당하고 큰 소리로 낭독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강연을 들으며 대한독립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의로운 분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희생, 역경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 이었다.


중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 한국의 역사에 관하여 정규 수업을 받지 못하였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동북3성 지역은 항일 유적지가 많으며, 상해·항주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중국 곳곳에 우리나라 역사의 자취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중국 동북 지역은 고구려와 발해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에 관한 자료도 찾아보고 직접 체험해 보면서 우리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역사의식도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항일투쟁의 가슴 아팠던 고난의 역사 속에 있어주셨던 안중근의사와 이름 모를 의병과 대한민국을 지켜낸 많은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쓰러지지 않고 피, 땀, 희생으로 우리는 광복을 되찾을 수 있었고 안중근의사가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독립이 이루어지던 날 “대한독립 만세” 라는 눈물의 함성소리가 안중근의사가 계신 천국에도 닿아 분명히 기쁨의 춤을 덩실덩실 추며 대한독립 만세를 목청껏 외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안중근의사 순국 109년이 되는 지금도 유해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국땅 어두운 지하 그 어느 곳에 있는지 조차 모른다. 마지막 유언인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라는 마지막 소원이, 독립을 맞이해 편안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와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나라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나의 힘이 미약하여 글로나마 고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위로 해 드리지만 좀 큰 성인이 되면 글이 아닌 안중근의사의 유해발굴과 항일 유적지의 보존 유지를 위한 실천으로 보탬이 되어 드리고 싶다.


안중근의사는 우리나라의 독립뿐만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꿈꾸고 계셨던 평화주의자 이시다. 대한민국은 일본으로 부터 독립은 이루었지만, 힘이 없었던 그때 불행하게도 한민족은 둘로 나뉘어, 허리가 잘린 분단국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평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남과 북의 자주적이며 평화적인 통일 그리고 나서 안중근의사가 꿈꾼 동양의 평화, 세계가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외국에서 오래 살게 되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얼마나 아름 다운 나라이고, 문화와 기술이 발달 되었으며, 우리나라가 너무 소중 하다는 것을, 그런 소중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영원도록 평화롭게 보존, 발전 해 갔으면 좋겠다. 그 소중한 역사 속에 존경하는 안중근의사가 있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