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단체 소식

<오사카 통신>을 닫으며~~~~~
구분
정부
단체명
오태규 오사카총영사관 총영사 페이스북
작성일
2021.05.28
원본URL
https://www.facebook.com/taikyu.oh/posts/4262602430436844

<오사카 통신>을 닫으며.


2018년 4월 부임 이래 3년여 동안 운영해오던 <오사카 통신>의 문을 닫을 때가 되었다. 귀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어서, 잡무 정리 외에 총영사로서 발신할 공적인 내용도 이젠 거의 없다.


 재임 기간을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이 있었지만, 일일히 기억을 소환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그동안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일해왔는지는 남기고 싶다. 생각해 보니, 지난해 10월 출간한 <총영사 일기>의 머릿말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 글로 <오사카 통신>의 폐간사를 대신한다. 원래 한글로 먼저 작성한 뒤 일본어로 번역해 책에 실은 것인데,  여기에 한글본과 일본어본을 모두 올린다.
 그동안 나의 미미한 글을 읽고 격려해준 한-일의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나는 ‘주오사카대한민국 총영사’로 임명되기 전까지 약 32년 동안 신문기자로 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친 뒤 들어간 첫 직장이 신문사였고, 신문사를 그만둔 뒤 다른 정규직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오사카 총영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니 나에게 신문기자는 첫 직업, 총영사는 둘째 직업인 셈이다.


저널리스트에서 공관장(대사 또는 총영사)으로 직접 전직하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신문기자가 정부의 관료에 발탁되어 일한 뒤 공관장이 된 경우는 있지만, 나처럼 바로 공관장이 된 사례는 없는 것 같다.


저널리스트와 공관장은 어떤 면에서 일의 방향성이 역이다.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정부의 밖에서 정부가 하는 일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인 데 비해, 공관장은 정부의 정책이나 방침을 주재국 정부나 국민에게 전파하고 설명하는 일을 주로 한다. 저널리스트가 ‘정부 밖의 감시자’라면 공관장은 ‘정부 안의 행위자’라고 할 수 있으니 변신의 폭이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2017년 7월부터 5개월 동안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 위원장으로 일한 전력도 있다.


이런 특이한 배경과 경력 때문인지, 나의 오사카 총영사 임명에 관해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낙하산 인사’라는 시각이 있었는가 하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태스크포스의 위원장을 맡은 경력이 한일관계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런 지적이 전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반응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오히려 이런 지적이 내가 총영사로서 해야 할 일을 더욱 선명하게 제시해주고, 더욱 열심히 업무를 하도록 분발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낙하산 공관장’, ‘반일 공관장’의 이미지를 탈피하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30여 년 동안 저널리스트로서 쌓은 경험과 식견을 활용해, 주재국 시민과 동포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고 자문자답했다. 이 책의 재료가 된 글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산물의 하나이다.


외교관 일을 하면서, 외교관과 기자가 하는 일이 다른 것 같지만 의외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외교관은 주재국의 인사를 만나면서 중요한 내용을 본국에 보고한다. 영어로 말하면 ‘네트워크’(network)와 ‘리포트’(report)가 주요 업무이다. 기자도 사람을 만나 취재를 하고 그 결과를 기사로 보고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네트워크와 리포트라는 점에서 일의 내용이 거의 비슷하다. 다만, 외교관이 동료 외교관이나 상사를 대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기자는 일반 독자를 상대로 기사를 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외교는 외교관들끼리만 하는 ‘그들만의 리그’인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외교 분야에도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민을 주체 또는 대상으로 하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요즘은 시민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외교관만의 폐쇄적인 외교교섭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민의 대다수의 관심사인 사안일 경우가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5년의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이다.


최근 한국정부가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특히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공외교에 힘쓰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공관이 하는 외교 활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관이 하는 일을 주재국 국민과 동포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알리고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인 외교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2018년 4월17일 오사카에 부임한 뒤부터 바로 총영사로서 하는 활동 가운데 공개해도 되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오사카 통신>이란 이름으로 투고하기 시작했다. 시민과 함께하는 외교가 아무리 중시되는 시대라고 하지만, 외교 활동 중에는 아직 밖으로 공개하지 못하는 일과 행사도 많이 존재한다. 그래도 공개와 비공개의 경계를 잘 구분해서 될 수 있으면 공개의 영역을 넓히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일반적으로 외교관이 외교활동에 대해 직접 공개 투고하는 것은 드물고 낮선 일이겠지만, 기자 출신인 나에겐 잘할 수 있고 익숙한 일이다. 더욱이 ‘외교관 순혈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민간인을 공관장에 기용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하이브리드(잡종) 인사정책에도 이런 활동을 통해 조금은 긍정적으로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오사카, 교토를 비롯한 간사이지역은 고대시대부터 한반도와 교류가 가장 먼저 시작되었고, 지금도 인적 교류가 가장 활발하고,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가장 밀집해 사는 곳이라는 3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 전역에서 한일 우호와 협력의 잠재력이 가장 큰 ‘공공외교의 보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정부 사이의 공식적인 관계가 나쁘더라도, 아니 나쁠수록 간사이지역이 지니고 있는 이런 자산을 활용해 ‘간사이지역이 주도하는 한일우호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간사이지역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나라와 나라의 갈등이 조금이라고 완화되길 바랐다. 재임하는 동안 일본의 지자체, 경제계, 학계, 언론계, 문화계의 인사들과 폭넓게 만나 깊게 듣고 얘기하려고 노력했다. 민단을 비롯한 다양한 동포 단체 및 동포들과도 함께 행사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기쁨과 어려움, 고민을 함께 나누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내가 부임한 이래 2020년 7월 말까지 각종 활동을 하면서, 보고 느끼고 말하고 생각한 것을 일기처럼 기록한 글을 모은 것이다. 신문기자 출신의 초보 총영사가 관할지역(오사카부, 교토부, 시가현, 나라현, 와카야마현)을 무대를 발로 뛰면서 기록한 보고서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듯하다. 외교 일정이 연례적으로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주제가 겹치고 내용이 중복된 경우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의 생각의 변화와 확장을 살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대로 두었다.


총영사 재임 중에 책을 출판하는 것이 마음의 부담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7월 말까지로 끊어 원고를 마감했다. 하지만 앞으로 재임하는 기간까지는 중단 없이 투고를 계속할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공관장의 임기가 3년 정도이므로 2021년 상반기까지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https//:ohtak.com)에서 글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출판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닌데 출판까지 오게 된 데는, 투고 초기부터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도 블로그까지 만들고 손수 일본어 번역까지 하면서 글을 차곡차곡 쌓아준, 도쿄특파원 시절 때부터의 지인 오구리 아키라 형의 힘(본문 65 참조)이 절대적이었다. 이 책의 일본어 번역은 극히 일부의 용어 및 문장 수정과 제목의 변경, 외에는 전적으로 그의 힘에 의존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전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 하사바 기요시 형과 저술가 가와세 슌지 씨는 관할지인 오사카지역의 동방출판사에서의 출판을 주선해주었다. 출판 과정에서 원고와 사진을 자기 일처럼 꼼꼼하게 정리하고 살펴준 비서실의 김진실, 장정훈 비서, 그리고 동방출판사의 기타가와 편집자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또 항상 곁에서 ‘가차 없는 야당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처 정현진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어려운 한일관계 속에서도 두 나라 시민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고, 한국과 재일동포 사회, 그리고 동포 개인 개인의 거리를 좁혀주는 접착제나 촉매제, 위안제가 되길 바란다.


2020년 8월 말일, 도지마강이 바라다 보이는 관저에서

참고로 이 책에 대한 정보를 담은 사이트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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