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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새롭게 이는 “정율성 붐”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원장 최옥화 교수 인터뷰
작성일
2021.07.23

중국에서 새롭게 이는 “정율성 붐”  

-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원장 최옥화 교수 인터뷰


한국이 낳은 광주 출신의 음악가, 중국에서는 인민음악가로, 중국무산계급혁명음악의 개척자 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군가의 아버지”로 불러지고 있다. 그는 정율성郑律成(1914-1976)이다. 중국조선족사회에 정율성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폭하고 있다.


정율성郑律成(1914-1976)


정율성郑律成(1914-1976), 한국 광주 출생, 유소년 시기를 고향에서 보냈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의열단에 가입, 1937년 10월 중국혁명의 승지 연안으로 갔다.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작곡가이다. 중국무산계급혁명 음악의 개척자 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중국조선족 정율성은 1996년경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해 10월 정율성의 미망인 정설송丁雪松(1918-2011) 여사가 정율성이 세상을 떠나 20년만에 처음으로 남편의 고향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고 서초동 국립국악원 소극장에서 “정율성 작품 발표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그리고 또 거의 10년이 지난 2005년 11월 정율성의 고향 전남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제1회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가 열렸다. 한중문화교류와 관광의 개발과 추진 차원에서 지금까지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정율성 기념 관련 행사는 중한합작으로 영화분야에서도 진행되었다. 정율성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전남대학교에서 “한중영화포럼”을 개최하였고, 결과물 작업으로 베이징해안화청海晏和清영화텔레비죤문화유한회사와 한국 (주)동성同成제작소는 10억원  한화를 투자하여 영화 “청년정율성青年郑律成”을 제작하였다.


한국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정율성 관련 행사와 창작활동에 비하여 중국조선족사회에서의 양상은 기대 이하였다. 작은 규모의 정율성기념관이 하얼빈시조선족문화관 소속으로 2009년 4월에 개관했고, 이혜선李惠善(1956- 현재)의 “정율성 평전”(민족출판사, 2013) 출간이 정율성 관련 전부 내용이 였다.

이러한 소극적인 국면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는 계기가 서서히 찾아왔다. 정율성의 문화예술적 가치와 연구적 잠재력은 최근 들어 조선족사회의 주목을 받아왔고, 따라서 관련 연구와 개발사업이 봄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정율성은 새중국을 위하여 공헌한 “100명 영웅”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2016년 중국 습근평 주석은 서울대학교 요청강연에서 중한 우의 대표자로 정율성 이름을 호명하기도 하였다. 정율성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정율성 관련 연구와 기념활동의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은 수년의 노력 끝에 정율성 관련 연구와 창작, 나아가 사료개발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20 억원을 넘게 투자한 대작- 민족가무극 “정율성”은 정율성 연구에서의 또 하나의 기념비적 창작상과로 평가 받고 있다. 



민족가무극 “정율성” 총기획, 예술총감을 맡은 최옥화 교수민족가무극 “정율성” 총기획, 예술총감을 맡은 최옥화 교수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원장이며 독자적으로 창작한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총기획과 예술총감을 맡은 최옥화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러한 배경하에 자연스럽게 스케쥴을 잡게 되었다.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은 정율성의 예술적, 역사적 그리고 민족적 대표성과 예술연구와창작의 잠재적 가치에 기하여 민족가무극 “정율성” 항목신청을 2019년에 확정,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이듬해 8월 “정율성음악연구센터”를 새롭게 설립하였다.  



취재를 받고 있는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원장 최옥화 교수

취재를 받고 있는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원장 최옥화 교수


정율성은 중국 조선족으로서도 중요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독립투사이여 항일전사이며 인민 음악가이다.

 

“우리 예술학원은 자체의 특점과 우세에 입각하여 민족가무극의 형식을 빌어 정율성을 새롭게 조명하기로 하였고 이러한 구상을 이론적으로, 학술적으로, 그리고 사료적으로 뒷받침하고자 2020년 8월 정율성음악연구센터를 세우고 같은 해 10월 25일 정율성작품음악회를 열었지요.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항목선정은 연변대학교 예술학원을 세계 일류 학과로 건설하고 특색 있는 높은 수준의 대학으로 건설하는데 일조하게 될 것입니다.“

  

민족가무극 “정율성”은 2019년 10월부터 창작을 시작하여 극본(장길의张吉义, 국가1급 극작가), 음악창작(작곡총감 우영일禹永一,중국음학학원 작곡학부 교수, 박사생도사)을 마무리하고 무용도 편성(무용총감 김영화金英花,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교수)단계에 들어간 시점에서 2020년 9월 3일 베이징 붕윤국제호텔鹏润国际大酒店에서 기자회견을 가졌고, 금년(2021) 4월 26일 연길아리랑극장에서 첫 공연을 선보이였다.


민족가무극 “정율성” 서막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 서막의 한 장면


4막으로 된 민족가무극 “정율성”은 거꾸로 서술하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정율성이 연안시기의 창작활동과 전투생활을 소재로 특정한 역사시기 정율성의 걸출한 성과와 감정경력을 체현함으로써 “연안송延安颂”, “연수요延水谣”와 “중국인민해방군군가中国人民解放军军歌” 등 대표작의 창작배경과 배경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최옥화 원장은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창작 특점에 대하여 이렇게 강조하고 있었다.

“정율성의 역사적 가치와 시대적 가치를 깊게 발굴하면서 인물의 이상과 신념, 고향과 국가에 대한 정감모순의 승화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가무극의 무대언어 표현, 종합적 무대미술의 편성과 연출 및 예술 양상방식 등 요소를 종합적으로 운용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내용의 유기적 융합을 도출 하여 관객에서 새로운 시각과 정감체험을 부여하며 유미적이고 잊지 못할 역사기억과 청춘항쟁의 노래를 선물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정율성의 사상 경계, 정감 경력과 예술 성과를 전면적으로 보여주었지요 ”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은 정율성이 1933년 19살에 고향을 떠나 형님을 따라 중국에 와서 항일구국의 길을 탐구하던 때부터 세계 반파쇼전쟁이 승리할 때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율성은 1914년 한국 전라남도 광주 양임동杨林洞에서 출생하였으며 가족 여러분이 반일투사로 이름이 남기였다. 정율성의 맏형 정효룡郑孝龙과 둘째형은 정충룡郑忠龙(정인제郑仁济), 셋째형 정의은郑义恩은 반일투사이며 그중 둘째형 정충룡은 운남강무당을 졸업한, 홍군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중국 주덕 총사령과 동문이다. 주덕 총사령은 연안에서 정율성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권총을 선물하기도 하였다. 누나 정봉은郑凤恩은 조선인 항일지도자였던 박건웅朴建雄의 부인이다.


정율성의 작은 외숙모 김필례의 큰오빠 김필순은 상하이 영화황제라 불리웠는 김염金焰의 아버지이다. 중국 음악계와 영화계의 두 큰 별인 정율성과 김염은 이렇게 친인척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유소년시기를 고향 광주에서 보낸 정율성은 중국에서 김원봉의 의열단에 가입하였으며 조선혁명군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하여 비밀결사 활동을 하였고 중일전쟁  발발 당시 대공전영희국독자회 제5지대에서 항일운동에 종사하였다.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한 장면


1937년 10월 중국혁명의 성지 연안에 들어갔고 1년도 안되는 1938년 4월 “중국의 아리랑”으로 평가 받는 “연안송”을 창작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모이면 부르는 노래가 “연안송”이였다. 그리고 1939년 가을, 25살 나이에 훗날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지정된 “팔로군행진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1945-1949년 조선에서 사업하는 기간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창작, 조선인민군군가로 지정되었다.


 1950년 10월, 주은래 총리의 요청에 따라 정율성은 중국으로 돌아왔고 1951년 베이징에 정착, 베이징인민예술극장, 중앙악단에서 음악창작에 종사하였다. 만년에서 모주석의 시사에 작곡하는 작업을 10여년간 이어왔다. 1976년 12월 베이징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민족가무극 “정율성”의 성공적인 창작과 공연은 정율성 관련 사업의 시작에 불과하다. 최옥화 원장의 주도하에 2020년 8월 설립된 정율성음악연구센터가 그 복필로 된다. 해방전 항일가요 전문연구자로서 음악에 독특한 문화적 감각과 문화산업의 잠재력을 충분히 감수하고 있는 최옥화 원장은 연구센터가 갖고 있는 자원적 우세와 연구실력 및 발전방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의 연구인력의 우세를 충분히 이용하여 크로스오버跨界 예술가의 다중체험과 음악창작의 규율과 특점을 연구하며 중국홍색경전음악과 민족음악예술문화를 탐구하는 음악연구기구로 승화하며 정율성 관련 음악문화의 예술적 내함과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탐구하여 예술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기초로 방법론의 갱신을 밀로나갈 것입니다. 독자적인 창작과 인재양성, 과학연구를 결합하며 본 센터를 정율성 나아가 조선족음악가 연구의 문헌자료중심, 학술연구중심, 대외교류중심으로 건설할 것입니다. ” 


  베이징기자회견에서 민족가무극 “정율성” 관련 전반 창작 상황을 소개하는 최옥화 원장(2020.09.03)베이징기자회견에서 민족가무극 “정율성” 관련 전반 창작 상황을 소개하는 최옥화 원장(2020.09.03)


정율성 관련 연구와 창작 사업은 다변합작을 통한 사화 효익 제고를 고심하고 있다.  여러가지 주제와 형식의 학술세미나, 오페라, 뮤지컬 나아가 드라마 형식 역시 시도해 볼만한 분야이다.

민족가무극 “정율성”은 2022년 중국 건군95주년,  2024넌 정율성 탄생 110주년, 2027년 건군100주년의 작품으로 계속하여 그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존재감을 이어갈 것이고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 주요 지역의 순회공연은 정율성의 영향력을 크게 높일 것이며 정율성음악연구센터의 끊임없는 탐구로 새로운 분야의 창작 역시 기대해 볼만한 희망 사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사진 : 연변대학교 예술학원 제공>


주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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