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뉴질랜드는 영원한 스포츠 라이벌
호주 국기(위)와 뉴질랜드 국기(아래)
호주와 뉴질랜드 양국 국기는 디자인이 매우 유사해서 가까이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분간하기 어렵다. 두 나라가 서로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두 나라는 영국의 식민지를 거쳐서 20세기 초반에 독립한 나라로서, 영국의 군주를 국가의 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라는 점 등,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유사점이 많다.
다만 식민지화와 독립의 과정이 서로 다르고, 역사와 지리적 환경, 무엇보다도 인구와 사회경제적인 특성이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두 나라를 “형제”의 나라라고까지 보기는 힘들고, 서로 “사촌” 정도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캐나다는 “육촌”?)
20세기 초 호주가 먼저 독립할 때 뉴질랜드를 하나의 주로서 호주 연방에 소속시키려는 논의도 있었으나 결국 뉴질랜드도 독자적인 독립국의 길을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원교근공(遠交近攻)”, 즉 “먼 곳(나라)과 사귀고 가까운 곳(나라)을 친다”는 것이 <삼십육계>에서 제시된 한 병법으로서, 중국 역사뿐만 아니라 근현대 외교 및 전쟁의 국제관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원칙으로 활용돼 왔듯이, 호주와 뉴질랜드도 서로 인접국으로서 갈등과 분쟁의 소지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양국이 영국의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난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양국이 심각한 갈등 및 분쟁 상태에 빠진 적은 없고, 오히려 정치, 군사, 외교, 경제, 문화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우호 관계
1차세계대전에는 호주와 뉴질랜드는 ANZAC 연합군(Australia-New Zealand Allied Corps)을 편성하여 영국군과 함께 참전했고, 2차세계대전에도 양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국 편에서 함께 싸웠다. 또한 6.25 한국전쟁에도 양국은 유엔군의 일원이 되어 함께 싸웠고, 이후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도 양국은 함께 참전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는 1951년 태평양 안전 보장 조약(ANZUS)을 체결한 바 있으며,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루어진 5개국 간의 군사 동맹 및 정보 네트워크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회원국으로서, 양국은 군사 및 국방에서 강력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양국은 비슷한 정치체제로서(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차이점이라면 호주가 양원제이고 연방제라는 점이다. 양국 총리는 매년 정기적인 회담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중요 정치 회의에 관련 뉴질랜드 장관이 참석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양국은 긴밀경제관계 무역협정과 트랜스태즈먼 여행 합의를 체결했고, 이를 통해 두 나라 국민들은 특별한 비자나 제한 사항 없이 두 나라를 방문하고 일하고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약67만명의 뉴질랜드인이 호주에 거주하고 있고(뉴질랜드 인구의 약15%), 약7만명의 호주인이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다.
양국의 방문 및 관광 인원도 매년 상당수에 이르고, 문화 및 사회적인 교류, 특히 스포츠 분야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2021년 11월 기준 호주 인구는 약 2600만명에 이르고 뉴질랜드 인구는 약 500만명에 이르지만, 스포츠 종목에 따라서 호주와 뉴질랜드가 전통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서 양국간 경기는 마치 “한-일전”과도 같은 주목과 관심과 인기를 끌기도 한다. 심지어 인구가 적은 뉴질랜드가 더 우위를 차지하는 종목도 있어서 묘미를 더해준다.
럭비 유니온은 뉴질랜드가 강세
양국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럭비 종목에서 호주에는 일찍부터 럭비 프로 리그가 정착되었지만 뉴질랜드에서는 아마추어리즘 럭비 유니온이 주류를 형성한 까닭에 국가 대표팀 럭비(유니온) 대항전은 뉴질랜드가 절대 강세를 보이고 있다.
호주의 럭비 유니온 국가 대표팀인 “왈라비(Wallabies)”는 뉴질랜드 럭비 유니온 국가 대표팀인 “올 블랙(All Blacks)”과의 상대 전적이 1899년 이래 173전 45승 8무 120패일 정도로 올 블랙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여자 대표팀의 경우 호주 “왈라루(Wallaroos)”는 1994년 이래 뉴질랜드 대표팀 “블랙 펀(Black Ferns)”과 19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다.
2021년 11월에 발표된 럭비 유니온 세계 랭킹을 보면 남자팀의 경우 뉴질랜드는 세계 2위 호주는 6위이고, 여자팀의 경우 뉴질랜드 2위 호주 5위다.
축구는 호주가 강세
축구(soccer)의 경우에는 호주가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호주에는 A-리그라는 프로 리그(여자는 W-리그)가 있고 월드컵 본선 진출이나 아시아컵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인기를 웬만큼 누리고 있는 것에 비해 뉴질랜드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2015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사커루
2021년 11월에 발표된 FIFA 랭킹을 보면 남자팀의 경우 호주 대표팀 “사커루(Socceroos)”는 35위임에 반해 뉴질랜드 “올 화이트(All Whites)”는 110위에 그치고 있다. 여자팀은 호주 “마틸다(Matildas)” 11위, 뉴질랜드 “풋볼 펀스(Football Ferns)” 23위다.
호각지세인 종목들
전통적으로 영연방 국가들에서 인기가 있는 주요 종목 중 크리켓(Cricket)과 넷볼(Netball)은 양국이 호각지세를 이루고 있다.
크리켓의 경우 테스트 매치(Test match), 원 데이(One day), T20 세 가지 게임 방식이 있는데, 전통적인 테스트 매치의 경우(남자팀) 호주와 뉴질랜드의 전적은 1946년부터 2020년까지 24전 15승 6무 3패로 호주가 우위다.
2019년 호주-뉴질랜드 크리켓 테스트 매치
다만 최근 발표된 세계 랭킹을 보면 테스트 매치와 원 데이의 경우 뉴질랜드가 1위, 호주가 3위이고 T20은 뉴질랜드 4위, 호주 6위다.
크리켓 여자팀의 랭킹은 원 데이의 경우 호주 1위, 뉴질랜드 6위고, T20의 경우 호주 1위, 뉴질랜드 4위다
여자팀 경기인 넷볼은 농구와 유사해 보이면서도 다른 점이 많은데, 양국에서는 제법 인기있는 스포츠다. 최근 랭킹은 호주 1위, 뉴질랜드 2위인데 두 팀은 너무나도 호각지세여서 랭킹이 수시로 엎치락뒤치락한다.
넷볼 월드컵 2019 결승전에서 맞붙은 호주와 뉴질랜드
이밖에 양국이 대등한 팀 스포츠 종목으로 남녀 하키(Hockey)를 들 수 있다.
이상의 호각지세인 종목들이나 럭비 유니온의 호-뉴전은 한-일전만큼이나 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은다. 경기장에 나가서 관람하지 못하는 관객들은 펍(Pub)에서 대형 화면으로 중계방송을 보며 응원전을 펼치는 것이 이들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호주에 거주하는 뉴질랜드인이 67만에 이르므로 호-뉴전 경기장에는 뉴질랜드인도 상당수 입장해서 응원하며, 경기 시작 전 빠지지 않는 뉴질랜드 팀 퍼포먼스 “하카(Haka dance;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출정 댄스)”는 모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경기 전 왈라비(호주) 앞에서 “하카”를 시전하는 올 블랙(뉴질랜드)
호주 프로 리그에 참가한 뉴질랜드 클럽팀
호주 프로 럭비 리그(NRL)와 프로 축구 리그(A-리그)에는 뉴질랜드의 클럽팀이 참가하고 있다. 뉴질랜드 자체적으로는 프로 리그를 운영하기 어렵고 호주에 상당수의 뉴질랜드인이 거주하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NRL은 현재 16개 클럽으로 리그를 벌이는데 뉴질랜드 오클랜드(Auckland)를 연고지로 하는 “워리어(Warriors)” 클럽이 호주의 프로 럭비 리그(1998년 이전은 ARL, 1998년부터는 NRL)에 1995년부터 참가해왔으며, 시즌 1위를 기록한 적도 있고 결승 시리즈인 “파이널(Finals)”에 8차례 진출한 기록을 갖고 있다.
호주 여자 프로 럭비 리그(NRLW)는 2018년에 출범해서 현재 6개 클럽이 리그를 벌이는데 2018년에서 2020년까지 뉴질랜드 “워리어” 여자 클럽팀이 참가했다.
호주 프로 축구 리그인 “A-리그”는 2005-06 시즌부터 8개 클럽으로 시작해 현재 12개 클럽으로 늘어났다.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Wellington)을 연고지로 하는 “웰링턴 피닉스(Phoenix) FC”가 2007-08 시즌부터 줄곧 14시즌을 참가하여 2019-20에 시즌 3위를 기록하고, 6차례 파이널에 진출하여 2009-10 시즌에 파이널 3위를 기록했다.
뉴질랜드 웰링턴 피닉스 FC 이전에는 오클랜드를 연고지로 하는 “뉴질랜드 나이트(Knights) FC”가 2005-06 시즌부터 2 시즌을 참가했는데 좋은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팀 해체로 리그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호주 여자 프로 축구 리그(W-리그)는 2008-09 시즌부터 시작하여 현재 8개 클럽이 리그를 벌이고 있다. 그동안 뉴질랜드 클럽팀이 참가하지 않았는데 “웰링턴 피닉스 여자 FC”가 2021-22시즌부터 참가하고 있다.
호-뉴 한인 여자 골퍼 라이벌
한국 출신 여자 골퍼가 세계 여자 골프계를 주름잡아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뉴질랜드의 한인 교포 “리디아(보경) 고”는 1997년생으로 뉴질랜드에 이민온 후 2013년에 프로로 데뷔했다. 통산 22승을 했고 그 중 LPGA에서 16승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토쿄 올림픽에 뉴질랜드 대표로 출전하여 여자 개인 종목에서 동메달을 땄다.
호주의 한인 교포 “이민지”는 1996년생으로 호주에 이민온 후 2014년에 프로로 데뷔했고 통산 9승, LPGA 6승을 기록하고 있다. 이민지도 올해 토쿄 올림픽에 호주 대표로 출전했지만 메달권에는 들지 못했다. 이민지의 남동생 이민우도 프로 골퍼로서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둬서 더욱 화제가 되고 있다(세계 랭킹 49위).
최근 발표된 세계 골프 랭킹은 리디아 고 5위, 이민지 7위로, 두 골퍼는 한인 동포로서 친한 친구 사이지만 경기에서는 강력한 라이벌 관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한인 동포들은 친구이자 라이벌인 두 골퍼 모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모두를 응원한다.
2012년 미국 여자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 리디아 고(오른쪽)를 축하하는 이민지.
2주 후에 이민지는 미국 걸스 쥬니어 대회에서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