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언론분석] 중국 《광명일보》가 소개한 한국 여성 영화감독의 약진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4.06

최근 중국 《광명일보(光明日报)》에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여성 영화감독들이 소개되었다. 기사는 '여성 감독과 한국 영화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광명일보》의 국제문화란 전면에 걸쳐 게재되었다. 1949년 창간한 《광명일보》는 《인민일보》와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주관하는 중국의 대표적 관영매체이다. 주로 지식인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학술이론 · 문화 · 과학 · 경제 분야 등의 주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칼럼들이 실린다. 국제 정세에 따라 매우 민감하고 보수적으로 기사를 선정하는 관영매체에 한국 여성 영화 감독들의 활약이 대대적으로 소개되어 눈길을 끈다. 또 중국에서 한국영화는 이창동 · 박찬욱 · 홍상수 · 봉준호 · 김기덕 등 남성 감독 위주로 거론되는 가운데 “여자는 한국영화의 미래다”라는 신선한 글귀와 함께 한국 영화계를 소개하고 있어 더욱 반갑다.

  

중국 ‘광명일보’ 국제문화란 전면에 게재된 '여성 감독과 한국 영화의 미래' - 출처 : 2021년 3월 25일자 광명일보<중국 ‘광명일보’ 국제문화란 전면에 게재된 '여성 감독과 한국 영화의 미래' - 출처 : 2021년 3월 25일자 광명일보>

 

기사는 2019년 <기생충>이 이룬 한국영화의 찬란한 성과로 인해 다소 희석됐지만, 최근 한국 여성 감독들의 활약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2019~2020년 사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계에서 흥행과 호평을 받은 네 편의 영화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먼저 장유정 감독 · 라미란 주연의 <정직한 후보>(2020)를 꼽았다. 올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라미란 배우는 “한국판 자링(贾玲)”으로 소개됐다. 참고로 자링은 중국의 유명 배우이자 개그우먼이다. 올해 개봉한 자링의 감독 데뷔작 <니하오, 리환잉(你好,李焕英)>(2021)은 현재 중국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이어 기사는 라미란을 “미녀가 가득한 한국 영화계에서 그녀가 상업영화의 주인공을 차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여성 이미지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또 전도연· 설경구 주연의 <생일>(2019)은 “한국 스크린에서 최초로 ‘세월호’ 사건을 다룬 상업영화”로 소개했다. 영화를 연출한 이종언 감독을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 출신으로 소개하며 <생일>의 연출은 “이창동의 영향을 크게 받아 급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태도를 유지한다. 영화는 비극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신파로 눈물을 짜내지 않고, 냉정하고 절제된 앵글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붕괴한 가정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고 호평했다.


독립영화 <벌새>(2019)는 소녀 은희를 통해 1990년대 한국의 집단(가족· 학교· 사회)적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영화로 소개했다. 또 <벌새>의 김보라 감독을 “데뷔작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59관왕을 거머쥔 1980년대생 한국 스타 감독”이자 세계무대에서 아시아 여성 영화인을 대표할 역량 있는 후속 세대로 주목했다. 끝으로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는 “로맨틱 코미디, 로맨틱 판타지 장르 등의 요소를 활용해 뛰어난 상상력과 유머러스한 대사로 풍부한 재미를 선사한다”고  평했다. 김초희 감독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 프로듀서로 활동해온 이력도 소개됐다. “김초희 감독은 2007년의 <낮과 밤>에서부터 2015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이르기까지, 홍상수 감독과 7년간 총 10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때문에 홍상수 감독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은 대부분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도 한눈에 반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기사는 전반적으로 새로운 세대의 한국 여성 감독들이 “강한 상업적 분위기를 풍기는 한국영화의 문제를 수정하고, 사회 속에서 무시당하는 약자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남성 중심의 세계에 저항하는 동시에, 자체적인 완성도를 가진 여성의 경험을 담은 세계를 점차 구축해내고 있다”고 호평했다.


이번 광명일보에 기사를 쓴 범소청 교수 - 출처: 범소청 제공<이번 광명일보에 기사를 쓴 범소청 교수 - 출처: 범소청 제공 >

 

이번 기사를 쓴 중국전매대 범소청(范小青) 교수는 오랫동안 중국에서 한국영화를 소개하며 한중 영화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2008년 한국 중앙대에서 영화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중국에서 다양한 학술지와 대중매체를 통해 한국영화에 관한 활발한 저술 활동 및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주최하는 한중 영화산업 관련 행사를 기획하며 양국 문화산업 교류에 앞장서 왔다. 범소청 교수에게 직접 이번 특집기사를 기획하게 된 배경에 대해 들어보았다. 또 지면에서는 다루지 못한 한국영화 연구의 계기, 한중 영화 창작문화의 다른 점 등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우선 한국영화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2000년에 중국 북경전영학원에서 유학생들이 제1회 한국영화제를 개최했습니다. 아마 삼성에서 후원했던 거 같아요. 저는 당시 북경방송국에서 일할 때였는데 한국 친구들과 영화제에 가서 현장의 열기를 체감했어요. 그리고 다양한 색깔의 영화들을 보게 됐죠. 멜로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로맨틱코미디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첩보액션 <쉬리>(1998), 액션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등. 뜻밖에 동시대 한국영화가 이렇게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됐죠. 당시 저는 신문에 영화평론을 기고하고 있었어요. 다양한 영화에 대해 글을 썼지만 어떤 특정 한 분야에 관심을 두진 않았어요. 이후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를 보고 정말 감탄했어요. 어떻게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통찰할 수 있을까, 익숙하면서도 참 섬세하구나! 그때 제 주변에는 한국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 내가 공부해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바로 일을 관두고 한국에 갔죠. 그게 2003년 봄이었어요.

 

중국과 비교해 볼 때, 최근 한국 여성영화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번 기사에서 다양한 여성 영화인의 작품을 소개해주셨는데요. 특별히 이 작품들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중국에서도 여성 감독의 수가 남성 감독보다 적지만, 남성 감독이 여성 감독의 설 자리를 밀어내고 있다는 점을 많이 강조하지 않아요. 오히려 온라인 플랫폼이나 영화 제작 분야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줄곧 더 강했죠. 특히 온라인 플랫폼 제작자 중 투자분야를 담당하는 영향력있는 여성들이 아주 많아요.


그동안 한국 여성감독 중 인재가 드물었던 건 386영화세대 중 남성들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가려져 있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한국의 여성 감독은 굉장히 강하고 또 처절한 것 같아요. 남성 감독들처럼 일할 때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외형조차도 남성과 같아져야 하죠. 예를 들면 임순례 감독, 변영주 감독, 이정향 감독, 정재은 감독. 저는 그들을 눈여겨보고 정말 감탄해요. 남성의 정글 속에서 혼자 싸우는 건 쉽지 않죠. 386세대의 여성 영화인이 가정과 일을 동시에 보살피는 사례는 극히 드문 거 같아요. 차별당하지 않기 위해, 쉽게 오지 않을 일의 기회를 잡기 위해, 그들은 전통적인 여성의 삶을 포기했어요. 이미지부터 일하는 스타일까지 다 남성과 같아져야 하고 여장부가 되어야 하죠.


최근 2019년을 전후로 대거 배출된 한국 여성 감독은 386세대 후속 여성 영화인들이죠. 이 감독들은 여러모로 점점 ‘여성의 특징’을 회복하면서, ‘수컷 경쟁에 참여’하던 인간에서 ‘사회경쟁에 참여’하는 인간이 됐어요. 그녀들은 좀 더 여유만만하게 자신의 일상 속에서 민주적인 요구를 주장하고, 남성이 주도한 스크린 세계를 보완하면서 욕망을 표현하고 있죠. 제가 선정한 네 편, <정직한 후보>, <생일>, <벌새>, <찬실이는 복도 많지> 중에는 상업영화도 있고 독립영화도 있지만, 모두 작은 것에서 큰 이슈를 발견하고 개성이 분명한 작품들이에요. 개인의 성장부터 사회 · 정치 사건을 드러내는 방식까지 여성 감독들 모두가 진취적으로 관찰하고 사유하고 있고, 모든 작품이 개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타겟 관객층을 탐구하고 있어요. 그녀들의 주된 의식과 미학적 개성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현재 중국에서 인지도가 있거나 좋은 평가를 받는 한국의 여성 감독/영화가 있다면요?

아마 <82년생 김지영>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이 영화는 영화 자체를 넘어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거든요. 근데 사실 해외에서 영화를 볼 때 일반 관객이라면 감독에게 그리 관심을 두지 않죠. 더욱이 감독 성별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웃음)

 

중국 학계나 대중은 한국영화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요? 기사에서 지적하셨듯이 한국영화는 남성서사 위주의 작품이 많고 폭력성이 강한데요. 한국 여성 감독의 영화가 ‘한국영화는 폭력적이다’라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완화 시키는 역할을 하는지요?

저는 그게 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영화 속 폭력의 미학은 아주 선명하고, 적나라해요. 중국 관객들이 가장 많이 관심 갖고 언급하는 한국영화는 <소원>(2013)과 <도가니>(2011)인 거 같아요. 이전에는 김기덕 감독이었죠. 모든 작품이 중국 관객을 확 끌어당겨요. 근데 그게 폭력적이거나 선정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중국과 달리 한국은 연령 등급제가 있어서 표현이 비교적 자유롭죠. 이것이 중국 관객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고, 또 영화가 사회정치 영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한국영화의 장르 다양화도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는 거 같아요. 일반 중국 영화팬들은 <부산행>(2016)이나 <황해>(2010) 이런 영화를 굉장히 흥미롭게 봐요.

 

이번 기사를 통해서 다양한 한국의 차세대 여성 영화인을 소개해주셨는데요. 교수님께서 특별히 중국 영화팬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여성 영화인이나 작품을 하나만 꼽자면요? 또 평소 교수님께서 좋아하는 한국의 기성 여성 영화감독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제가 가르치는 중국 학부생들이나 대학원생들에게 여러 한국 여성 영화감독의 작품을 추천해줬는데, 그중 <벌새>가 가장 반응이 좋았어요. 최근에는 홍의정 감독의 <소리도 없이>(2020)도 남자주인공인 유아인 배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죠. 제 개인적으로는 임순례 · 변영주 · 방은진 · 노덕 · 이경미 · 김초희 · 장유진 감독 등을 계속 주목하고 있어요.

 

최근 중국 박스오피스에서 엄청난 흥행 성적과 호평을 얻은 <니하오, 리환잉>은 여성 감독의 작품입니다. 심지어 자링 감독은 배우 출신으로 이번 작품이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데요. 중국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인의 영향력은 어떤가요? 교수님께서도 기사에서 언급하셨듯이 한국은 아직 여성 영화인의 영향력과 활동 비중이 남성에 비해 적습니다.

중국에서는 배우가 재능이 넘치면 감독이 되어 그 기량을 발휘하는 게 하나의 전통인데요. 실비아 창(张艾嘉)부터 쉬징레이(徐静蕾), 자오웨이(赵薇)까지 모두 관객들에게 인정받는 여배우 겸 감독이죠. 또 중국영화감독협회의 위원장은 줄곧 여성 감독이 맡아왔어요. 중국 5세대 감독인 리샤오홍(李少红) 감독님이 5년 동안 맡아 왔죠. 감독협회 통계에 따르면 359명 중 여성 감독이 46명이라고 하니까 여성 비율이 12.8% 정도인데요. 남성 영화인의 비율이 87%에 달하지만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일은 잘 없는 것 같아요. 아마 여성의 신분이라서 차별대우를 받는 일들이 많지 않거나 두드러지지 않는 거겠죠. 또 최근 몇 년간 제가 소속된 중국전매대만 보더라도 주목받고 있는 저희 학교 출신 영화감독 중에는 여성의 비율이 더 높아요. 예를 들면 요정정(姚婷婷) · 왕리나(王丽娜) 감독 다 여성이죠. 그러니까 성별 때문에 유감스럽다거나 그런 건 비교적 적죠.

 

이번 기사에서 한국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하고 있는 ‘한국영화 성인지 통계’를 언급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이 통계는 한국 영화산업의 양성평등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영진위가 2017년부터 조사해 온 데이터입니다. 혹시 중국도 한국처럼 양성평등과 관련한 지원정책이 있나요?

중국에는 없는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최근 몇 년간 중국에서 한국영화가 정식 극장 개봉된 사례가 없습니다. 아마 2015년 <암살>이 근래 중국에서 개봉한 마지막 한국영화인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께서는 중국의 다양한 미디어나 대중강연을 통해 한국영화와 영화인들을 소개하는데 아낌없는 열정을 쏟아 오셨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영화를 정식으로 상영하는 창구가 매우 제한적인데요. 이에 대해 아쉬움은 없는지요?

유감스럽죠. 예를 들면 <기생충>도 정식 개봉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중국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영화시장에서 자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하고, 제3국의 영화가 티켓파워를 갖는 경우는 드물죠. 불행 중 다행인 건 지금 국내외 플랫폼이 많아져서 여러 통로를 통해 한국영화와 그와 관련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요. 또 활용 가치가 있는 한국영화의 IP도 많이 소개되고 있고요. 확실히 제한적이지만 그나마 한국영화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도 대중이 중국영화를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매년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영화제를 찾아가야 겨우 중화권 작품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일반 극장 개봉작은 극히 드물고, OTT 플랫폼을 통해 소리소문없이 영화가 공개되어 소수의 마니아에게만 관심을 얻고 있는데요. 교수님께서 직접 한국 대중에게 중화권 문화나 여성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여성 감독 혹은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실비아 창 감독이나 허안화(許鞍華) 감독은 해외 관객들에게도 이미 익숙할 텐데요. 중국의 리위(李玉) 감독, 쉐샤오루(薛晓路) 감독 역시 실력 있는 중견 여성 감독들입니다. 또 작년 홍콩영화 중 노리스 웡 이람 감독의 <프린스 에드워드 역에서: 내 오랜 남자친구에게(金都)>(2019)와 차이 청지에(蔡成杰)라는 남성 감독이 만든 <과부 마녀(北方一片苍茫)>(2017)가 매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앞두고 양국이 올해와 내년을 '한중 문화교류의 해'로 정했습니다. 끝으로 양국의 우호적인 문화교류에 있어 영화 콘텐츠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한국은 세계 민족영화의 본보기로서 21세기 이후 줄곧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어떻게 한국영화의 경험을 잘 활용하여 중국 관객에게 복무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한국영화가 중국영화에 갖는 가장 큰 의의입니다.

 

※ 사진 출처

《광명일보(光明日报)》 https://epaper.gmw.cn/gmrb/html/2021-03/25/nw.D110000gmrb_20210325_1-13.htm



박경진 통신원 사진
    - 성명 : 박경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북경)/북경 통신원]
    - 약력 : 현) 중국전매대학교 영화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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