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문화정책/이슈] 강제 격리가 가져온 역설, 야간족의 문화 전승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5.27

215칠레 코로나바이러스의 추세는 꺾일 줄 모른다칠레의 백신 접종률은 이스라엘과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를 달리고 있지만 일 확진자가 여전히 5,000명을 웃돈다칠레 정부는 지속적으로 추이를 모니터링하면서 각 지역의 확진자 수와 병상 점유율에 따라 자택 강제 격리를 진행 중이다산티아고는 5주간의 락다운(자택 강제격리)을 마치고 10개 구(區)2단계인 주말 강제 격리로 이동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전체 상황은 좋지 않다.

 

1년이 넘도록 지속된 1단계(전체 락다운)2단계(주말 격리)의 반복 속에서 칠레의 섬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까칠레는 태평양을 접하고 세로로 길게 뻗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섬으로 이뤄진 도시들이 많다대부분 알고 있는 칠레의 남쪽 도시 푼타 아레나스보다도 아래에 있는 칠레 최남단 인구 공동체거주인구 약 2천여 명의 작은 섬 푸에르토 윌리엄스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20203월 첫 번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사례가 확인된 이후로 푸에르토 윌리엄스 섬은 완전 봉쇄를 진행했다해상과 항공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고생필품의 운반만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칠레 지도 중 푸에르토 윌리엄스의 위치. 푼타 아레나스보다 남단이다 - 출처 : Maritime studies 저널<칠레 지도 중 푸에르토 윌리엄스의 위치. 푼타 아레나스보다 남단이다 - 출처 : Maritime studies 저널>

 

이곳은 본래 야간(Yagan)족 원주민이 오래 전부터 지내왔던 곳이라고 한다모든 민족이 그렇듯 이들도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야간어는 다른 언어와 유사성이 확인되지 않는 고립어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칠레 남부에 들어오기 시작한 유럽 이주민들에 의해 야간족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고야간족만의 언어와 문화를 기억하는 사람 또한 점점 줄어 갔다스페인 식민지화 이전의 푸에르토 윌리엄스 섬은 5개의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 4,000여 명의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거주자들 대부분이 스페인어를 사용하며현재 거주 중인 2,000여 명의 주민 중 단 94명만이 야간족의 후예로 남아 있다.

 

그런데 푸에르토 윌리엄스 섬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외부와 소통하지 못하게 되고각 가정의 외출마저 금지된 채로 1년이 지나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야간족 또한 강제 격리로 고립되면서 역설적이게도 야간족의 언어와 문화 전승이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락다운이 계속되면서 3대가 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그들의 고유한 언어는 조부모에서 부모청소년과 어린이로 전해 내려왔다과학 저널 중 하나인 해양 저널(Maritime studies)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지난 1년간 야간족 고유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던 젊은 세대들에까지 야간어가 전승되었다고 한다뿐만 아니라 갈대로 바구니를 만드는 방법과 야자조개류를 채집하는 그들 특유의 문화까지 전승되고 있는것이 밝혀졌다.

 

갈대로 바구니를 짜는 야간족 고유의 문화 - 출처 : 칠레 국립 문화재 웹사이트<갈대로 바구니를 짜는 야간족 고유의 문화 - 출처 : 칠레 국립 문화재 웹사이트>

 

20213월 야간족 커뮤니티는 더 많은 어린이들이 갈대 바구니 짜기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온라인 워크숍을 조직했고지금까지도 수업이 지속되고 있다야간족은 바구니를 만들 때 마피(Mapi)라고 불리는 토착 갈대를 사용하는데우선 갈대를 수집한 뒤 빠르게 가열하여 타지 않을 정도로 말린다그런 후 갈대를 비틀기 쉬운 모양으로 만들고아미(Ami)라 불리는 뼈나 나무로 만들어진 송곳으로 바구니를 직조한다이는 야간족이 갑각류나 생선야생 과일과 같은 먹거리를 수집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인데바구니를 만드는 작업이 매우 섬세해 세대를 거쳐 전승되면서도 예전과 같은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불청객이지만야간족에게는 특히 더 큰 공포를 가져오는 대상이다그들이 살아온 역사에 있어 외지의 풍토병은 극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홍역결핵과 같은 외부 질병을 함께 가지고 왔고2,500명이었던 야간족이 50명 미만으로 감소했다고 하니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그러나 이런 바이러스를 피해 집에 머물게 되면서 역설적이게도 사라져가는 그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지게 된 것은 코로나 시대의 격리가 가져온 아이러니한 축복이라 할 수 있겠다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문화적 피해에 대한 소식들이 즐비하여문화를 논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즈음 단연 통신원의 눈에 띄는 소식이었다.

 

※ 참고자료

https://elpais.com/ciencia/2021-04-27/el-coronavirus-llego-al-poblado-mas-al-sur-del-mundo-y-paradojicamente-revitalizo-su-cultura-y-su-economia.html

https://www.elciudadano.com/chile/estudio-abordo-como-el-pueblo-yagan-enfrenta-la-pandemia-a-partir-de-las-experiencias-del-pasado/04/26/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40152-021-00217-2

https://www.museomartingusinde.gob.cl/



이희원 통신원 사진
    - 성명 : 이희원[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칠레/산티아고 통신원]
    - 약력 : 전) 로엔엔터테인먼트(카카오M) 멜론전략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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