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언론분석] 코로나19 봉쇄 중인 터키에 <기생충>이 전한 것
구분
사회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6.08

살면서 창 밖의 소리들 하나 하나에 귀를 기울여 본 적이 있던가? 지금까지는 밖에서 질서 없이 들려오는 소리들은 모두 소음이라고 치부하면서 살아온 거 같다. 그래서 그 소리들이 담고 있는 가치들마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언제부터인가 창 밖의 소리들 하나 하나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리들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한 층 한 층,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는 건물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서로 무언가를 이야기하면서 망치와 연장을 힘차게 내리친다. 그 옆에는 시청에서 나온 산림과 용역 직원들이 봄철에 새로 자라날 어린 묘묙들을 옮겨 심느라 소리가 분주하다. 좁은 골목길 마다 구비구비 다니며 승객들을 실어 나르던 마을 버스 기사들은 어제도 오늘도 텅 빈 정류장을 지나치며 깊은 한숨을 길게 내신다.

 

코로나19 전면 봉쇄로 텅 빈 모스크에서는 조문객 없이 장례 방송만 안내한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코로나19 전면 봉쇄로 텅 빈 모스크에서는 조문객 없이 장례 방송만 안내한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 모든 소리는 코로나19 전면 봉쇄로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부터 들려오는 소리이다. 일상의 소리들 가운데는 통신원의 마음을 숙연하게 해 주는 소리도 있다. 사람이 사망했을 때, 모스크에서 알려오는 장례식 안내 방송이다. 고인이 된 이들은 이젠 말이 없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코로나 기간 사회에서 성실하게 일하셨을 한 가정의 아버지였을 것이고 어머니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 이 어려운 시기에 들려오는 장례식 방송 소리는 필자의 마음을 더 슬프게 만든다. 코로나19 전면 봉쇄로 모스크에서는 조문객들을 받지 않고 장례 시간과 장소만 알려주는 외로운 안내 방송이 연일 들려 온다.

 코로나19 전면 봉쇄로 라마단 금식 성월 이후 대명절 기간까지 터키 전역은 텅 빈 모습이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코로나19 전면 봉쇄로 라마단 금식 성월 이후 대명절 기간까지 터키 전역은 텅 빈 모습이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전 국민 통행 금지로 텅 빈 창밖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들려오는 이 소리들은 정부의 이동 허가증을 받고 봉쇄 기간 중에도 집 밖에 나가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노동자들의 소리인 셈이다. 터키는 지금과 같은 봉쇄가 지난 해 3월부터 띄엄띄엄 일 년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물가에 집 안에 갇혀 일하지도 못하는 터키 시민들의 한숨 소리는 더욱 깊어진다.

 

봉쇄 기간, 사람들이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TV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시간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집안에 갇혀 일하지 못하고 있는 터키 시민들은 상심한 마음을 가지고 어떤 장르의 작품들을 시청할까? 모든 직원들이 작가이고 자체 콘텐츠 제작을 하고 있는 중립적 뉴스 포털 사이트인 웹테크노(webtekno)는 이 질문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기사 하나를 전했다. ‘넷플릭스가 다른 국가들에는 방송하고 터키에는 방송하지 않은 열여덟 개 드라마와 영화들’이란 제목의 기사다. 열여덟 개 리스트들 안에는 유일한 한국 작품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다. 2019년 개봉한 <기생충>이다.

 

웹테크노는 지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담긴 작품성을 높이 소개했다. “2019년 영화계에는 좋은 양질의 작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최고의 스릴러 영화는 단연 한국 영화, <기생충>이었다”고 재조명했다. 이어 “인터넷 영화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하는 IMDb(Internet Movie Database, IMDb)가 8.6점으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기생충이야말로 최고의 작품”이라 호평하며, 마지막으로 “그런데 넷플릭스는 터키에서 이렇게 좋은 작품인 <기생충>을 방송하고 있지 않다”고 지면을 통해 전했다.

 

 

영화 ‘기생충’이 터키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인기 콘텐츠 1위에 올랐다. – 출처 : 넷플릭스 터키

<영화 ‘기생충’이 터키 넷플릭스에 공개되자마자 인기 콘텐츠 1위에 올랐다. – 출처 : 넷플릭스 터키>

 

그 후로 두 달이 지났다. 정말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넷플릭스가 상기 기사 내용을 접했던 것일까. 기사가 발행되고 정확히 두 달 후인 5월 1일, 터키 넷플릭스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기생충>은 공개되자마자 첫 주에 인기 콘텐츠 톱10에 진입했고, 곧바로 1위 자리까지 차지했다. 통신원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특별히 국가 전면 봉쇄가 내려진 이 시기에 터키 넷플릭스 시청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두 달 전, 한 언론사가 ‘터키 넷플릭스에는 왜 <기생충>을 서비스하지 않느냐’고 지적한 이유도 궁금해졌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영화가 전해주는 공감력 때문일 것이다. 터키에서 <기생충>은 지난 2019년 11월에 극장에서 개봉했다. <기생충>을 관람했던 터키인들의 반응이 좋아서 주터키 한국문화원은 자체적으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무료 앙코르 상영회를 주관했다. 통신원도 당시 영화 상영회에 취재를 다녀왔다. 캄캄한 상영관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스크린 불빛에 잠깐씩 비추는 관람객들의 표정은 웃고 놀라면서 영화 시간 내내 진지해 보였다.

 


2019년, 주터키 한국문화원이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앙코르 ‘기생충’ 무료 상영회를 가졌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2019년, 주터키 한국문화원이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 앙코르 ‘기생충’ 무료 상영회를 가졌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그 후로 2년의 시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현지시간 기준 5월 13일, 코로나19로 목숨을 잃은 총 누적 사망자 수는 508만 3,000여 명에 이른다.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았고,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헤아리지 못한다. 2021년 3월 OECD 국가들 가운데 밥상 물가 상승률이 최상위 1위가 터키로 나온 것도 지금의 상황이 터키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고충이 되고 있을지를 대변해 준다. 다시 말해, 터키인들이 2년 전 <기생충>을 관람했을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통신원은 코로나 19 전면 봉쇄로 텅 빈 거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들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본 지면을 시작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한 가족이 반지하에서 오손도손 살면서 들려오는 소박한 삶의 소리들이 터키 시청자들의 마음을 공감해 주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봤다. 그들은 비록 영화의 제목과 같이 부유층에 기대어 살아가는 기생충 가족이 됐지만, 자신들의 가족을 헤치거나 와해되지는 않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서로 기생충이 되기로 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오히려 아껴주며 챙겨 주었다는 점에서 코로나19 봉쇄 속 집 안에 갇혀 지내고 있는 터키 시청자들에게 감동이 재해석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

 

TV와 인터넷, 신문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베야즈페르데(BEYAZPERDE)》는 자체 웹 채널을 통해 2021년 터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 중인 영화 <기생충>에 대해 언론사 평을 실었다. 1995년 첫 발행을 시작해 터키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온 언론사 《에브렌셀(Evrensel)》은 “매우 낯선 이 영화 장면 중 특별히 반지하 기택의 집이 침수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비주얼과 상징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긴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웅장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터키 대표 일간지 《밀리옛》 신문사도 “어두운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기택의 가족은 관객들의 공감을 유지해 준다”면서 “이와 같이 청중들에게 역동적으로 다가가는 영화는 없었다. 분명한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봉쇄의 지속으로 텅 빈 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잃었다. 이러한 상황 속 <기생충>을 통해서 받은 가족들의 정과 사랑은 더 돈독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참고자료

《webTEKNO》 (21. 3. 4.) <Netflix’in Diger Ulkelerde Yayinlayip Turkiye’de Yayinlamadigi 18 Dizi ve Film>, https://www.webtekno.com/netflix-turkiye-yayinlanmayan-dizi-film-h101855.html

《BEYAZPERDE》, https://www.beyazperde.com/filmler/film-255238/basin-elestrileri/

KAFAKALEM.COM》 (21. 5. 5.) <Oscar Odullu bir film: cok izlenenler arasinda yer alan Parazit filmi konusu nedir? Oyunculari kimlerdir?>, https://www.kafakalem.com/oscar-odullu-bir-film-cok-izlenenler-arasinda-yer-alan-parazit-filmi-konusu-nedir-oyunculari-kimlerdir/10534

《KTV 국민방송》 (20. 1. 17.) <영화 ‘기생충’ 해외 호평∙∙∙아카데미상도 수상 기대>, https://www.ktv.go.kr/content/view?content_id=591379



임병인 통신원 사진

  •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터키/이스탄불 통신원]
  • 약력 : 현) YTN Wold 리포터 전) 해외문화홍보원 대한민국 바로 알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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