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캄보디아 황금시대 음악과 예술에 대한 오마주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6.22

<캄보디아 문화 황금시대로 불리던 1960~70년대 최고 가수들을 소재로 한 팝 아트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스페이스 포 제로(Space Four Zero)' 입구 그림 벽화 - 출처 : 통신원 촬영>

<캄보디아 문화 황금시대로 불리던 1960~70년대 최고 가수들을 소재로 한 팝 아트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스페이스 포 제로(Space Four Zero)' 입구 그림 벽화 - 출처 : 통신원 촬영>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왕궁 옆길 비좁은 골목길 사이로 ‘Space Four Zero’라는 이름의 작은 팝아트 갤러리가 있다. 갤러리로 이어진 10여 미터 남짓 골목길 담벼락은 ‘캄보디아의 엘비스 프레슬리’, 또는 캄보디아 락음악의 황제로까지 추앙받던 가수 신 시사뭇, 그리고, 당대 최고의 인기 여성 가수로 유명한 롯 스레이 소띠아, 판 론 등을 그린 벽화 그림들로 가득하다. 이 갤러리에서는 캄보디아 문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최고 가수들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종류의 현대 팝아트 미술작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또한 이 곳에선 캄보디아 락밴드들의 공연무대가 간헐적으로 펼쳐지기도 한다. 화려했던 6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당시 음악계를 이끌었던 최고 음악예술인들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라고도 볼 수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위에서 언급한 예술가 대부분은 1975년 4월 17일 수도 프놈펜을 함락시킨 크메르루즈 공산정권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다. 공개 처형을 앞둔 당대 최고 가수 신 시사뭇은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의 노래를 부르게 해줄 것으로 간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크메르루즈 간부들에 의해 결국 마지막 소원마저 거절당했다. 롯 스레이 소띠아도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녀와 견줄만한 유명 여가수 호이 미어는 집단 윤간을 당한 뒤 처참히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음악관련 유품과 사진, 앨범들은 현재 이 곳에서 팝아트 작품으로 재창조되어 부활했다. 이곳에서 판매 전시중인 작품들 가운데는 당대 최고의 가수, 신 시사뭇의 유가족들조차 소장하고 있지 않은, 그의 앨범 자켓 카피본도 있다. 신 시사뭇과 듀엣으로 나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인기 여가수 롯 스레이 소띠아의 사진을 팝아트로 재해석한 실크 스크린 작품들은 꽤나 인상이다. 그 외에도 6~70년대 제작된 레코드판을 비롯해, 카피본이 아닌 실제 희귀 소장품들도 더러 있어 관심을 끈다.


<팝아트 갤러리 Space Four Zero 운영자인 미국인 리차드 레퍼츠 씨가 오래된 엘피 음악을 틀고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팝아트 갤러리 Space Four Zero 운영자인 미국인 리차드 레퍼츠 씨가 오래된 엘피 음악을 틀고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 아트 갤러리는 한 때 캄보디아 퓨전음악밴드로 해외에서 더 인기가 높았던 유명 인기밴드 ‘The Cambodian Space Project’의 비공식 본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밴드의 리드싱어이자, 간판스타였던 여성 가수 깍 짠티(Kak Channthy)가 지난 201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팀은 곧바로 해산되었고, 이후 이곳은 그들의 아지트로서의 역할도 동시에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캄보디아-호주 합작 밴드, ‘더 캄보디안 스페이스 프로젝트’의 아지트였던 이곳은 현재...

이 갤러리에서는 음악인이자 유명 기획자이며, 갤러리 창업자이기도 했던 호주 타스매니아 출신 줄리엔 폴슨(Julien Poulson)이 직접 제작한 한정판 실크 스크린 작품들도 전시 판매중이다. 그는 좀 전에 언급한 캄보디아-호주 합작 밴드 ‘더 캄보디안 스페이스 프로젝트(The Cambodian Space Project)’의 리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다. 갤러리는 약 6년 전인 지난 2014년 문을 열었다. 처음 영업을 시작한 곳은 메콩강변 도로변이었다. 약 3년 전 쯤 이 곳으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현재 갤러리 운영을 맡고 있는 이는 미국 텍사스 출신 60대 음악인 안소니 레퍼츠(Anthony Lefferts)씨이다. 그는 코로나 탓에 악수 대신 주먹 맞대기 인사를 한 그는 자신을 ‘토니’라고만 간단히 소개했다.

 

그는 60년대부터 70년대 초까지 이어진 크메르 락 음악을 비롯해 당시 캄보디아 음악에 대해 매우 강한 애정을 가진 서양인으로 현지사회에서도 나름 유명한 인사다. 자신의 음악 동료이기도 했던 줄리엔 폴슨이 약 3년 전 떠난 후로 오로지 순수한 열정 하나만으로 팝아트 갤러리 ‘Space Four Zero’를 소유 운영해오고 있다. 레퍼츠 씨는 통신원이 보는 앞에서 직접 턴테이블에 오래된 레코드판을 올려놓고는 경쾌한 리듬의 60년대 캄보디아 락 음악을 들려주었다. 두툼한 안경 너머로 기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는 듯했다. 흥겨운 음악에 눈빛으로 반응을 보이자, 그제서야 레퍼츠 씨가 ‘엄지척’을 하며, 밝은 미소를 보낸다. 오랜만에 턴테이블을 통해 낡은 LP판 음악을 들으니 솔직히 감개가 무량했다. 간혹 흘러나오는 잡음 소리조차 아주 잠시나마 아련한 옛 추억에 빠져들게 했다.

<갤러리의 공동창업자이자, 현 운영자인 미국인 리차드 레퍼츠 씨가 전시중인 엘피 음반을 고르고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갤러리의 공동창업자이자, 현 운영자인 미국인 리차드 레퍼츠 씨가 전시중인 엘피 음반을 고르고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그에게 갤러리 ‘Space Four Zero’를 운영하는 실제 궁극적인 목적이 뭔지 물었다. 그의 입에서 “이 갤러리의 운영 목적은 캄보디아 황금시대로 불리던 지난 6~70년대 캄보디아 락 음악들과 당시 음악예술인들이 일구어낸 예술적 성과와 업적을 후대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나왔다. 크메르음악에 대한 남다른 그의 애정과 열정이 느껴지는 정답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캄보디아인이 아닌 서양인이 반세기가 다 지난, 아주 오래된 캄보디아의 락 음악과 당시 문화예술에 심취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게까지 느껴진 것은 솔직히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저 대단하다는 느낌 밖에는...

이 갤러리에서는 각종 현대아트 미술 작품들과 800개가 넘는, 과거 소위 엘피(LP)판으로 불리던, 검정색 레코드 음반들도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해외주문고객들을 위한 특별 항공배송판매서비스도 근래 들어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통한 갤러리 홍보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그는 현재 고객의 1/3은 캄보디아인 손님들이고, 나머지는 유럽인 거주자들이라고 귀띔해주었다. 하지만, 점차 현지인 고객들이 늘어가는 추세라고 그는 덧붙였다. 최근 들어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레코드판이나 예술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들리기 시작했다며, 기분 좋은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얼마 전에도 한 청년 그룹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이들은 당시 과거 크메르 락 음악에 대해 좀 더 알기를 원하고 궁금해했다. 심지어 그들 상당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레코드판을 본 적이 없는 그런 젊은이들이었다.”


팝아트 갤러리에서 오래간만에 우연히 만난 엘피판과 턴테이블. 검정색이 아닌, 붉은색 엘피판이 눈길을 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팝아트 갤러리에서 오래간만에 우연히 만난 엘피판과 턴테이블. 검정색이 아닌, 붉은색 엘피판이 눈길을 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LP판을 난생 처음 보는 캄보디아 젊은이들도 당시 음악에 관심을...

그가 꾸준히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젊은 음악인들을 위한 ‘예술가 거주 인-하우스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런 활동을 할 만한 저변 인구가 아직은 적은 편이라, 결국 계획을 접은 상태”라고만 대답했다. 이어 그는 “돈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 동기라면, 음악은 분명코 비즈니스로 하기에는 가장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털어놨다. 어쩌면 그의 말투 속에는 비즈니스와 음악 예술과의 숨길 수 없는 괴리, 그리고 현실에 대한 보다 솔직하고 냉정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이 뭔지 묻자, 그는 담담한 어투로 이렇게 답했다.

“과거 황금시대의 음악 예술을 경험하는 가운데,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이를 통해 음악적 영감을 얻고, 또 이를 통해 그들의 창조적 능력과 재능을 더욱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아울러, 이 갤러리 역시 보다 많은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그들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유산에 대해 더욱 많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리포트에 넣을 만한 쓸만한 사진 몇 장을 찍는 사이, 그가 대뜸 프놈펜에 한국인 교민들이 대략 얼마나 사냐고 물었다. 많게는 약 2만 명쯤 될 것 같다고 대답하자, 예상했던 대로 그는 “한국인들에게도 이 갤러리의 존재를 널리 소개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금세 바깥 해가 어둑어둑해졌다. 이날은 통신원이 마지막 방문 손님이었던 것 같다. 곧 실내등이 꺼졌다. 20불짜리 ‘Space Four Zero’ 기념 티 한 장을 사지 않고, 그냥 문을 나선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캄보디아-호주 합작 밴드 "더 캄보디안 스페이스 프로젝트"의 공연 중 한 장면

<캄보디아-호주 합작 밴드 "더 캄보디안 스페이스 프로젝트"의 공연 중 한 장면. 리더 싱어이자 간판 스타였던 깍 찬티는 2018년 8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결국 밴드는 해체되고 말았다. - 출처 : Space Four Zero 공식 홈페이지>


박정연 통신원 사진정성명 : 박정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캄보디아/프놈펜 통신원]
약력 : 현) 라이프 플라자 캄보디아 뉴스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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