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평균 연령 68세, 고려인 할머니들의 [아리랑]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1.08.30

58, 59, 60, 62, 64, 65, 67, 67, 70, 71, 75, 76, 77 그리고 79, 앙상블 [아리랑]은 평균 연령 67.8 세인 14명의 고려인 할머니들로 구성된 예술 단체다. 러시아 서남쪽에 있는 바따이스크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아리랑]은 지난 6월 25일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2021년 상반기 정기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6월 30일에는 따간록에 위치한 전쟁, 역사박물관 '삼벡 고원' 영광의 기념관에서 [쥬라블리–백학]을 음악 배경으로 한국 부채춤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 지난 6월 30일 러시아 따간록에 위치한 '삼벡 고원' 영광의 기념관에서 선보인 한국 부채춤. 러시아 유명한 가요 [쥬라블리-백학]가 배경 음악이다. '삼벡 고원'은 1943년 '미우스 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한 전쟁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전쟁, 역사 기념관으로 약 14헥타르의 면적에 1,000개 이상의 전쟁 관련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 지난 6월 30일 러시아 따간록에 위치한 '삼벡 고원' 영광의 기념관에서 선보인 한국 부채춤. 러시아 유명한 가요 [쥬라블리-백학]가 배경 음악이다. '삼벡 고원'은 1943년 '미우스 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한 전쟁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전쟁, 역사 기념관으로 약 14헥타르의 면적에 1,000개 이상의 전쟁 관련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쥬라블리-백학]은 1995년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로 방영된 [모래시계] 주제곡이다. 방영 당시 '남편들의 귀가 시계'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본 드라마 최고 시청률은 64.5%를 기록했다. 드라마 흥행으로 함께 유명해진 [쥬라블리-백학]은 민족 시인인 감자토프가 쓴 시에 영화 음악 작곡가 얀 프렌켈이 곡을 붙인 러시아 가요다. 주요 가사는 전쟁에서 죽은 젊은 병사들을 기리는 내용이다. 러시아어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우우우우~우'로 시작하는 첫 음률에서 비장함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이 노래는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하는 5월 9일 [전승기념일] 행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애창되는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 중 하나다.

앙상블 [아리랑]은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다. 이 앙상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불과 얼마 전 고려인 지인이 보내준 동영상을 통해서다. 한 눈에 봐도 연세가 있어 보이는 고려인 할머니들이 귀에 익숙한 '백학' 음악을 배경으로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부채춤을 추는 동영상은 감동을 넘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 2014년 1월 31일에 설립된 앙상블 [아리랑] 단원들. 음악과 무용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동일한 꿈을 향해 열정을 가진 동지들이 모인 순수 예술 단체다. 아래 줄 오른쪽 끝이 [아리랑] 설립자이자 현재 단장인 이엘마다.

▶ 2014년 1월 31일에 설립된 앙상블 [아리랑] 단원들. 음악과 무용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동일한 꿈을 향해 열정을 가진 동지들이 모인 순수 예술 단체다. 아래 줄 오른쪽 끝이 [아리랑] 설립자이자 현재 단장인 이엘마다.



앙상블 [아리랑]은 2014년 1월 31일 설립되었다. [아리랑] 본 고장인 바따이스크는 러시아 서남쪽에 있는 인구 약 12만 명의 도시이며, 러시아에서 고려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다. 현재 약 5,000여 명이 거주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지역 고려인 대부분이 대규모 농사를 주업으로 삼고 있다. [아리랑] 설립자인 이엘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그 도시의 많은 고려인처럼 2003년에 바따이스크로 이주했다. 이엘마에게 [아리랑] 설립 배경과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저는 춤과 노래를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예술을 사랑해 왔고, 특히 한국 전통 노래와 음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과 조부모님께 듣고 배운 한국, 저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노래와 음악 그리고 춤을 통해 표현되었나 봅니다. 처음 러시아 바따이스크에 왔을 때 '바따이스크 문화 회관'에서 일했습니다. 그곳에서 문화 관련 행사를 진행하고 행사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한국과 관련된 예술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관심과 열망만 가지고 살면서 10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많은 고려인 지인들이 생겼는데 대부분 저처럼 자녀들이 이미 성장한 고려인 할머니들입니다. 제가 만난 대부분 고려인 할머니들은 의기소침해 보였습니다. 그분들은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는 못해도 부모님께 듣고 자란 북한식 한국어를 말할 수 있었고, '찬가'라고 저희가 말하는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었습니다. 만나면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혼합한 언어로 서로 대화하면서 음정, 박자, 가사를 무시한 찬가를 열창하는 것이 저희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전문적일 필요가 없는 우리만의 앙상블을 만들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14년 1월 31일 음력 설날에 [아리랑]이 탄생했습니다. 창립 공연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많은 고려인과 특히, 저희 자녀들과 손주들이 참석해서 당시 평균 연령 61세, 고려인 할머니들이 꿈꾸는 [아리랑]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 '우정의 공원'에서 열린 [다민족 문화 행사]에 참석한 앙상블 [아리랑]. 자신들을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간다. 단원들이 입은 한복은 단장인 이엘마가 천을 사서 직접 만든 것이다. 머리 장식은 김라이온이 만들었다. 아직 정기적이고 충분한 후원이 없어서 공연에 필요한 재정은 대부분 단원들이 충당한다.

▶ '우정의 공원'에서 열린 [다민족 문화 행사]에 참석한 앙상블 [아리랑]. 자신들을 불러주고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달려간다. 단원들이 입은 한복은 단장인 이엘마가 천을 사서 직접 만든 것이다. 머리 장식은 김라이온이 만들었다. 아직 정기적이고 충분한 후원이 없어서 공연에 필요한 재정은 대부분 단원들이 충당한다.



설립 당일, 존재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감동을 준 앙상블 [아리랑]은 현재까지 건재하다. 열정만으로 시작한 앙상블은 지난 7년 동안 많은 희로애락을 마주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재정도, 재능도 아닌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이었다. '그 나이에 자식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그렇게 자기를 내세우고 싶으냐' 가슴을 후벼파는 아픈 말들을 들었다. 격려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면서 앙상블 단원들은 더 끈끈한 정으로 뭉쳤다. 서로를 향한 토닥임이 어려운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가장 큰 힘이었다.

현재 [아리랑]은 바따이스크 문화회관에서 연습하면서 대면 공연과 온라인 공연을 준비 중이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로 많은 행사가 취소되고 있어 아쉽다. 문화회관 이외 다른 연습 장소는 각 단원의 집이다. 순서는 없다. 부담도 없다. 상황과 형편이 되는대로 초대해서 음식도 나누고 함께 차도 마신다. [아리랑]이 연습하는 모든 춤과 노래는 그들 열정의 표현일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서로의 교제를 위한 수단이다.

▶ 6월 30일 삼벡 고원 행사를 모두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들이다. 평범하고 순박하고 친근해서 더 [아리랑]을 닮았다.

▶ 6월 30일 삼벡 고원 행사를 모두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할머니들이다. 평범하고 순박하고 친근해서 더 [아리랑]을 닮았다.



하룻밤을 이엘마 집에 머물면서 본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만남은 정식 인터뷰라기보다 수다였고, 교제였고 또 인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엘마는 현재 65세로 [아리랑]에서 정확히 중간 나이다. 동생들을 챙기고 언니들을 모시면서 [아리랑]을 통해 함께 한국을 기억하는 것이 행복해 보였다.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은 올해 79세이신 김올가 할머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했던가. 이 말을 삶에서 실천하며 살고 계신 분이시다. 김올가 할머니는 [쥬라블리-백학] 춤의 가장 중요한 멤버 중 한 분이다. 각각의 춤 동작을 외우는 것이 젊은 사람들도 쉽지 않은데 대단한 열정의 소유자라며 단장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평균 연령 68세 [아리랑] 단원들 14명이 기대하는 꿈이 무엇인지, 왜 이들은 계속 노래하고 춤추는지 궁금했다.

"먼저, 관객들이 [아리랑]을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앙상블팀이 많습니까? 저희는 그런 앙상블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희는 기대하고 바랍니다. 적어도 우리 단원들이 [아리랑]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꿈을 펼치고 이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아리랑]이 선보이는 춤은 공연과 관객을 위해 연습하고 보여줘야만하는 숙제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이를 잊게 해주고, 젊고,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실제로 [아리랑] 이전에는 안 아픈 곳이 없던 할머니들이 지금은 자기 병을 잊고 삽니다. 또한, 저희는 춤과 노래를 통해 우리 고국 문화를 기억하고 전달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저희 단원들 대부분은 나이가 많고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보지 못했어도, 평생 가볼 수 없을지 몰라도 한국은 저희들의 영원한 고국입니다. 저희 앙상블 명칭인 [아리랑]에는 이런 저희의 마음과 사랑, 그리고 고국에 대한 애틋함이 담겨있습니다."


▶ 지난 6월 25일 오후 4시 '바따이스크 문화 회관'에서 열린 2021년 상반기 정기 공연 안내와 초대장. '춤추고 노래하세요 - 젊어집니다' [아리랑] 전 단원들의 삶을 함축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 지난 6월 25일 오후 4시 '바따이스크 문화 회관'에서 열린 2021년 상반기 정기 공연 안내와 초대장. '춤추고 노래하세요 - 젊어집니다' [아리랑] 전 단원들의 삶을 함축한 문구가 인상적이다.



지난 7년 [아리랑] 역사를 회상하는 이엘마는 대화 중 많은 분께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아리랑] 설립 시에 큰 도움을 준 김빠블리나(전, [바따이스크 한글학교] 교장), 강아지아, 유율리아, 천블라지미르 그리고 이아나똘리는 앙상블 설립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라이온은 [아리랑] 앙상블 공연에 필요한 장식품을 직접 만든다. 김아나똘리와 김로베르트는 공연 시 필요한 음향과 비디오 촬영 등을 돕는다. [아리랑]의 솔리스트 이나딸리아는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노래한다.

이엘마가 언급한 모든 분 이름을 다시 한번 읊어본다. '성'은 모두 한국성이다. 이들의 뿌리는 한국이다. '이름'은 그분들이 태어나고 자란 또 하나의 고국, 러시아 이름이다. 앙상블 [아리랑] 전 단원뿐만 아니라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이들을 후원하고 돕는 모든 분이 한국 정체성과 고려인 정체성을 동시에 가진 우리 재외동포들이다. 평균 연령 68세, 14명의 고려인 할머니들의 [아리랑]은 그 존재만으로 도전이 되었다. 뭉클했다. 그분들이 표어로 삼는 세 개 키워드가 삶에 깊이 들어왔다. 아직도 충분히 새로운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나이다.

Живи, Твори, Мечтай! 살아라, 창조해라, 꿈꿔라!



서지연
[러시아/바로네즈] 서지연

재외동포재단 해외통신원 3, 4, 5, 6기
현) 러시아 바로네즈 한글학교 교장
경력) 청강문화산업대학 상담학 강사
러시아한글학교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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