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독립 30주년을 맞이한 우크라이나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9.09

우크라이나는 지난 8월 24일 독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대규모 축하행사를 개최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구소련 연방에서 탈퇴하여 자주적인 주권국가로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사실 우크라이나를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혹은 중남미의 우루과이와 혼동을 하곤 한다. 사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동슬라브의 어머니’라 지칭되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여기서 동슬라브 국가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3개 국가를 의미한다. 키예프는 9세기부터 13세기까지의 중세시대에 류릭크 왕조가 집권한 국가, 키예프 루시의 중심도시이기도 했다. 키예프 루시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하여 발틱해 지역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통치했다. 영내에는 다양한 슬라브 부족들과 함께 발틱계 민족과 북방의 핀란드계 민족들이 함께 구성원을 이루고 있었다.

 

키예프 루스의 맹주국이었던 키예프 공국의 전성기는 10세기, 당시 대공이었던 블라디미르 시기에 이르러 동로마 제국을 통하여 현재의 정교회인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로 받아들였다. 11세기, 키예프 공국은 야로슬라브 현인의 통치 시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당시 유럽에서 강국으로 자리를 매김했다. 그러나 12세기에 접어들면서 왕자들 간의 세력 싸움으로 분열되면서 결국 13세기 몽고제국의 침략을 받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11세기에 세워진 키예프 뻬체르스키 라브라 정교회 사원 영내 우스펜스키 사원 – 출처 : My Ukraine>

<11세기에 세워진 키예프 뻬체르스키 라브라 정교회 사원 영내 우스펜스키 사원 – 출처 : My Ukraine>


우크라이나의 명칭은 ‘변방의 지역’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흔히 ‘카자크’라고 하면 러시아의 대문호 고골의 작품에 나오는 대장 불리바를 한 번쯤은 연상한다. 실제로 고골 자신도 우크라이나 출신이었다. 카자크라는 명칭은 터키어에 기원을 두며 ‘자유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당시의 폴란드 지배하에서 압제를 피하여 드네프로 강의 하구로 모여든 우크라이나인들은 점차 군락을 형성하여 카자크라는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카자크들의 거주 지역은 당시 크림 타타르와 폴란드가 지배하던 우크라이나 영토 사이에 위치했고, 그들은 폴란드의 남부 국경 수비를 담당하는 용병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폴란드는 ‘변방’이란 의미를 지닌 우크라이나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18세기까지 우크라이나의 강 우변을 지배했다. 우크라이나의 서부지역은 19세기 이르러 폴란드의 지배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로 넘어감에 따라 더욱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소련의 점령까지,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경험은 없다. 반면 동부지역은 17세기 러시아의 통제권에 속하게 되어 이후에는 사실상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 러시아가 흑해 연안으로 점진적인 영토확장을 함에 따라 당시에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거주를 기피하던 우크라이나 동남부지역으로 상당수 러시아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이유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는 국가 공용어인 우크라이나어 이외 동남부 지역에서는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한다. 러시아계 민족 비율도 높게 나타난다.

<러시아 화가 레핀의 자포로즈 코사크 – 출처 : 러시아국립박물관>

<러시아 화가 레핀의 자포로즈 코사크 – 출처 : 러시아국립박물관>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유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우크라이나에는 원칙적으로 농노제도도 없었다. 우크라이나 카자크에는 1인 중앙집권이라는 통치가 아닌, 당시 유럽의 마데부르그 법에 따른 민주적인 합의를 통한 의사를 결정했다. 우크라이나의 국가의 마지막 구절에는 다음과 같이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자유를 위해 바치자.

우리가 코자크 혈통의 후예임을 보여주자.

 

우크라이나는 17세기에 드네프로강을 중심으로 폴란드와 러시아가 좌우로 양분하여 지배하면서, 현대의 유럽과 유라시아라는 두 개의 상이한 문화적인 경계를 이루고 있는 국가다. 문화적인 경계, 그리고 역사적으로 상이한 배경은 때때로 정치적인 충돌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동양과 서양의 이중 문화를 빠르게 이해하고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접하고 있어 기원전 번성했던 고대의 그리스 문화와 남방의 이슬람의 영향(주로 터키)을 받아 다양하게 문화가 융합된 국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은 한국에 동감하고 이해한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흑토라는 비옥한 토지를 배경으로 한 농업 국가이기에 한국과 유사하게 농경사회의 가족 문화, 가족 간의 애정을 중시한다. 김치를 별다른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보아도, 한국 특유의 매운 음식에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소감에서도 듣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적 정서를 좋아하고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우크라이나인 특징이기도 하다.

 

이번 가을학기에도 우크라이나의 한국어 학습 열풍은 식지 않는 듯하다. 키예프에 위치한 한국어교육원 한국어 강좌 수강신청 인원은 정원을 초과하고도 많은 인원이 대기자 명단에 올려져 있다. 키예프국립쉐브첸코대학과 키예프국립 외국어대학 한국어학과들도 입학정원을 확대했다. 일련의 소식 모두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다소 생소하지만, 상호 교류가 민간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어 양국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 사진 출처

https://myukraine.org.ua/kyevo-pecherska-lavra/

https://ru.wikipedia.org/wiki/Запорожцы_(картина)


임길호

성명 : 임길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우크라이나/키예프 통신원]
약력 : 현) 키예프대학원 박사과정(인문학) 수료, 전문통번역 및 지역전문가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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