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굴곡진 역사의 땅 위에 들어선 훔볼트포룸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09.14

 <지난 7월 개관한 베를린 훔볼트포룸>

<지난 7월 개관한 베를린 훔볼트포룸>



제국주의, 세계대전, 냉전, 세계화 같은 묵직한 현대사의 족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베를린. 그 중에서도 2021년 7월 20일 개관한 훔볼트포룸은 지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많은 사연을 담고 있다. 훔볼트포룸은 독일의 21세기 최대 문화프로젝트로 알려지면서 시작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 시립박물관, 베를린 컬쳐프로젝트 그리고 훔볼트 포룸 재단이 힘을 합쳤고, 42,000m2 부지 위에 19년간 6억 7,700만유로(약 9,50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었다. 

 

훔볼트포룸의 위치는 베를린에서도 역사의 지층이 가장 복잡하고 두터운 곳이다.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로이센 제국의 왕과 독일제국의 황제가 머물던 베를린 궁이 있었고, 2차 대전 때 폭격을 받아 파괴되었던 것을 종전 후 복구해 박물관으로 사용했다. 분단 후에는 동독에 속하게 되면서 완전히 철거되어 동독의 중심 문화공간인 공화국 궁전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공산당의 전당대회가 열렸고 시민들은 쇼핑을 하고 문화를 즐겼다. 그리고 통일이 되자 이 또한 헐리게 된다. 통독 정부는 이 땅의 활용방안을 놓고 뜨거운 논의를 벌였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도시 중심부에 공터로 남은 채 10여년이 흘렀고, 프로젝트가 결정된지 19년이 지나 마침내 새로운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훔볼트포룸 메인 전시 '베를린 글로벌', 베를린 도시와 도시의 역사, 그리고 세계문화사와 담론을 경험할 수 있다>

<훔볼트포룸 메인 전시 '베를린 글로벌', 베를린 도시와 도시의 역사, 그리고 세계문화사와 담론을 경험할 수 있다>

<훔볼트포룸 메인 전시 '베를린 글로벌', 베를린 도시와 도시의 역사, 그리고 세계문화사와 담론을 경험할 수 있다>


건물의 외관은 바로크 양식의 웅장한 베를린 궁을 복원하되 부분적으로 현대식 스타일을 접목시켜 완성했다. 내부는 행사, 전시, 연구가 함께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 메인 전시회인 ‘베를린 글로벌’은 세계와 베를린의 관계를 재조명이라는 테마로 진행되고 있다. 베를린의 역사와 문화, 세계적인 담론을 경험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한 경험을 제공한다.


‘훔볼트포룸과 식민주의’

훔볼트포룸이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독일이 과연 '식민주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유럽의 박물관들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타국 문화재로 가득한데, 훔볼트포룸은 시작부터 이를 인정하고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을 위한 공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특히 제국주의에 동참하고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켜 많은 문화유산을 파괴한 독일로서는 세계와의 공존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를 공론화했다. 나치 역사와 동독 독재 청산에 집중해 그간 크게 집중받지 못했던 식민주의 역사 청산을 이제 막 시작한 셈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인 하르트무트 도겔로(Hartmut Dorgerloh)는 훔볼트포룸 오픈 기자회견에서 “앞으로의 핵심 주제 세가지는 이 도시와 도시의 역사, 연결과 사회적 책임 그리고 민주적 지식전달이라는 훔볼트의 원칙, 식민주의와 식민주의성의 거대한 복잡성”이라고 말하며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하지만 식민주의 반성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다른 유럽 박물관처럼 약탈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고 전시한다. 독일 정부는 약탈 문화재를 돌려주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지만 그 속도와 규모에 있어서 여전히 ‘생색’만 내고 있는 정도다. 추후 공개될 아시아 아프리카 박물관 내 한국관이 작은 규모로 중국관 내에서 속해 있다는 사실도 논란이 됐다. 훔볼트포룸은 이후 한국관 전담 큐레이터를 영입해 한국관 기획을 개선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훔볼트포룸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공간의 크기가 의미를 좌우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나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훔볼트포룸의 식민주의 담론이 펼쳐지게 될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지역 전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전시품을 선보일지 지켜보는 눈이 많다.


<메인 전시 중 하나인 '베를린 글로벌'에 전시된 독일 식민지 지도>

<메인 전시 중 하나인 '베를린 글로벌'에 전시된 독일 식민지 지도>


<당신에게 자유와 평등은 어떤 의미입니까>

<당신에게 자유와 평등은 어떤 의미입니까>


베를린 글로벌 전시를 돌아보며 여러 물음에 답하고 반응하다보면 마지막 티켓이 나온다. '당신에게 자유와 평등은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 선택에서 자유와 평등 요소가 부족한 것 같으니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세계시민의 담론, 개방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다. 훔볼트포룸이 이런 전시를 가장 먼저 내세운 이유는 뭘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하는 전시. 여느 때였다면 훌륭한 기획이라고 평가했겠지만 훔볼트포룸의 면면을 생각해보면 쉽지 않다. 그들의 식민주의 역사를 명확히 마주하거나 제시하기보단 두루뭉술한 테마와 '우리 모두 잘하자'는 메시지. 식민주의에 대한 정확한 제시가 아니라 어떤 총합적 플랫폼에 연결하고 합쳐버리는 것. 그것은 본 주제를 희석시킬 뿐이다. 훔볼트포룸에 대한 평가는 모든 전시가 공개된 이후에 해야할 듯 하다.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이유진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약력 :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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