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한지부조공예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10.15

그레이스 장씨는 한인 타운에서 그레이스 장 공방을 32년째 운영해왔다. 그동안 그녀의 클래스를 거쳐간 사람만 수만 명이다. 지난 2019년, 그녀는 36명의 제자들과 함께 ‘작가의 집(스튜디오 겸 전시공간)’에서 공예작품 전시회를 했었다. 전시회의 카탈로그도 작품 사진을 포함해 근사하게 출판했다. 그녀의 공방 인생 30주년을기념하고 환갑 축하의 의미도 담은 전시회였다. 한두 명도 아닌 36명이 함께 하는 전시회라 더욱 뜻깊었다.

 

대성황이었어요. 작품도 많이 판매됐었죠. 보통 전시회를 하면 오프닝 하는 날만 바쁜데, 그때엔 일주일 내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습니다. 전시회를 하는 일주일 내내 주차 관리 요원까지 둘 정도였으니까요. 광고를 하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성황을 이뤘던 것은 전시회에 왔던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좋으니 끝나기 전에 꼭 가보라’고 권해서입니다. 30년의 세월이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졌다. 그 직전에 전시회를 했던 것은 ‘신의 한수’와도 같은 결정이었다. 코로나 전 대대적인 정리를 했고 펜데믹 기간에는 여행을 통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레이스 김씨는 자신을 ‘코로나 최고의 수혜자’라 부른다.

 

팬데믹 이전에는 거의 매일 클래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매주 목요일 한 차례만 한다. 코로나로 아직은 불안 불안하기 때문에 클래스를 하려는 생각을 않고 있었는데, 10년간 공방의 연락처를 갖고만 있다가 은퇴 후 드디어 마음을 잡고 연락한 민디 변씨, 항상 마음에 갖고 있다가 용기를 내어 해보자 하며 연락해온 김원희씨 등이 있어 조심스레 다시금 교실 문을 연 것이다.

 

그레이스 장 공방에서 가르치고 있는 공예는 50여 가지인데, 예전에는 그 가운데 20여 종류의 공예를 가르쳤었고, 코로나 이후에는 한지부조공예, 냅킨 공예, 드로잉 공예, 펄프아트 공예 등 5가지를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민디 변 (65세, 가정주부) 씨는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그레이스 장 공방의 존재를 알았지만 아들 셋을 키우느라, 20여 년간 마음만 굴뚝 같았었다. 지난 6년 전부터 아이들이 결혼하고 분가해, 시간을 내어 공방을 찾아와 여러 작품들을 함께 하게 됐다. 그녀는 이곳에서 한지부조공예, 펄프공예, 냅킨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만들었다. 냅킨공예는 나이트스탠드, 가구 등 어떤 것이든 만들 수 있어 좋다며 붓칠을 하는 그녀의 표정에서 행복을 읽는다.

 

한지부조공예 작품도 여럿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농자천하지대본>이다. 그녀의 남편은 진흥원의 기사로도 속개한 적이 있는 변덕수씨. 자녀들에게 한국인의 얼을 심어주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직접 나서 자녀들에게 사물놀이를 가르치고 이제는 팀을 이뤄 공연까지 했던 인물이다. 민디 변씨는 남편과 아이들을 표현하기 위해 사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담은 한지부조공예 작품을 만들려 했다가 사물놀이 패들이 농악놀이도 하는지라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작품을 만들게 됐다. 그녀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풍물패가 손에 들고 있는 소고에 태극무늬도 있고, 상모와 까만 고무신 등 디테일 살린 것이 요즘 사람들 표현으로 “쩐다”. <겨울 이야기>라는 작품도 만들어 액자를 근사하게 해서 집에 걸어놓았을 때엔 자녀들이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김원희(56세, 패션업) 씨 역시 예전부터 공예에 관심이 많았지만 펜데믹 이후에 혼자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3개월 전 공방을 찾았다. 현재는 드로잉을 위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녀 역시 공예 작품 활동을 하면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힐링을 맛본다고 말한다.

 

그레이스 장 씨에 따르면 여러 공예 장르 가운데 학생들이 특히 좋아하는 것이 한지부조공예라고 한다. 그녀 역시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 때 하던 여러 놀이를 주제로 한지부조공예 작품을 여러 점 만들었다. 지금은 작품들을 남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3점만 프레임도 없이 남겼다.

 

요즘은 한류가 대세이잖아요. 예전에는 우리들 자신이 한국의 것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천시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너무 좋아하니까 이제서야 우리 스스로도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알아가고 귀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주류사회에 한국 문화가 어찌나 많이 알려졌는지 요즘은 공방을 찾은 현지인들도 한복 등 한국의 전통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단다. 그레이스 장 씨가 만든 한지부조공예 작품은 썰매타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 어린 시절이면 설날 때 하던 놀이 장면들을 묘사한 것들이다. 또한 추석 즈음, 과일이 영글어 있는 마당에서 추석빔을 입고 딱지치기 놀이 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작품으로 표현했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한복의 질감과 색상까지 세세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한국 전통 문화를 작품에 옮기다 보니 한국의 생활 문화에 대해 더욱 감사하고 좋아하게 된단다.

 

그레이스 장 씨와 학생들이 여러 공예 중 한지부조공예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공예라서다. 한지공예의 최대 장점은 오래 될수록 더 품위있어 진다는 것. 다른 공예 작품들은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고 질리는 경향이 있지만 한지부조공예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멋있어진다.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는데 어필이 많이 된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3D 시대에 걸맞는 입체감이 있어 너무들 좋아한다고.

 

한지부조공예에 드는 비용은 액자 포함해 45달러 정도이다. 2번 정도만 수업에 참가해 4시간이면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들 수 있다. 표현할 수 있는 내용도 무궁무진하다. 요즘은 한지공예에 점토공예를 함께 하기도 하고 내프킨 공예를 더하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 공예를 함께 혼용하면 더욱 특별한 작품이 된다.

 

그레이스 장 씨에게 공예를 배웠던 현지인 제자도 지금까지 100여명 정도나 된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온 사람도 있고, YWCA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클래스을 열었을 때에도 수강생들이 많았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현지인 제자는 줄리(Julie) 라는 여성이다. ‘한국의 날 축제’ 행사장에 마련된 부스를 방문했다가 한지부조공예에 마음을 빼앗겼던 그녀는 안내 브로슈어를 가져가지 않아 나중에 한국 미술 학원을 모두 수소문하고 다니다가 연락이 된 케이스이다. 그녀는 한지부조공예 작품을 여럿 만들었다. 지금은 나파 밸리(Napa Valley)로 이사갔다. 보통 장거리 이사를 갈 때엔 다운사이징(Down Sizing)을 하기 때문에 공예품들은 버리고 가기 일쑤인데 줄리는 그녀의 딸이 너무 좋아한다며 조심스레 공예 작품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다.

 

일본계 미국인으로 도서관 관장을 하던 제자도 기억난다. 한국어도 따로 배웠을 만큼 한국과 한국의 문화를 좋아했던 그녀도 전시회에 왔다가 한지부조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처럼 현지인들 가운데 한국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예가 바로 한지부조공예이다. 너무 공예를 좋아하고 감격하고 감사해하고 귀히 여기니까 한국인 학생을 가르칠 때보다 보람도 크다. 현지인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것은 역시 한국인들이 손재주가 좋다는 것이다. 세밀한 것을 표현해내는 한국인들의 손놀림을 현지인들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더란다.

 

팬데믹을 지나며 그레이스 장 씨는 30년간 만들어왔던 작품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작품이 너무 많아, 5년 전 창고를 빌려 보관해왔었는데 그 5년 동안 자신이 한 번도 가서 작품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작품은 계속 생기니, 공간이 더 필요했지만 창고 크기에 한계가 있어 더 가져다놓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럼에도 임대료는 매달 따박따박 나가는 현실을 두고 그녀는 칼로 무우를 싹 베듯, 마음을 먹었다.

 

제가 조금만 젊었더라도 어쩌면 작품들을 보관하고 뭔가 하려고 했을 거에요. 하지만 이제 은퇴도 멀지 않고 코로나로 많은 것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후, 제 자식 같은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모두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이곳저곳에 기부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너무 아까웠었다.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 번 바꿔먹으니 아까운 게 아니라 감사할 뿐이었다. ‘거저 받은 재주로 30년 동안 잘 살았고 즐겼으니 이제 미련 갖지 말고 내려놓자.’고 마음 먹은 후 그녀는 평생을 끼고 살았던 작품들을 한 달 만에 모두 정리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이었음을 그녀는 깨달았다. 학생들과 지인들은 “선생님, 혹시 우울증 아니세요?” 라며 걱정하는 전화도 많이 걸어왔다고 한다. 다 주고 났을 때, 그녀의 마음은 너무 가벼웠고 홀가분했고 자유로웠다. 펜데믹 기간 동안 그녀는 자동차를 타고 미국 대륙횡단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감사했고 행복했다.

 

제 일생에서 공방이 최우선순위였는데 그것을 내려놓고 나니 이렇게 가벼울 수가 있어요? 또한 여행은 공방을 통해 지난 30년간 얼마나 행복했었나를 돌아볼 수 있고, 진정한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공방을 운영할 때도 행복했지만, 일단락하고, 그 많은 작품을 거저 나눠주었을 때의 기쁨은 이전의 몇 천 배, 몇 만 배이더군요. 새로 제 작품의 주인이 되신 분들이 그것을 보고 잠시라도 힐링을 경험한다면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작품들은 정리했지만 그녀의 손재주와 노련한 경험은 고스란히 그녀의 것. 지금 있는 것 가지고도 충분히 새롭게 작품을 할 수 있고 클래스를 열 수 있음에 그녀는 감사한다.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클래스를 해달라는 요청이 온다. 그녀는 기회가 되면 더 작품을 만들어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하고 싶다는 바램을 안고 있다. 그녀의 유난히 밝은 표정의 깊은 이유를 이제서야 할 것 같다.


<그레이스 장 공방의 그레이스 장 원장(가운데), 학생인 민디 변 씨(우)와 김원희 씨(좌)>

<그레이스 장 공방의 그레이스 장 원장(가운데), 학생인 민디 변 씨(우)와 김원희 씨(좌)>


<그레이스 장 씨의 한지부조공예 작품 연작인 설날 놀이하는 어린이들>

<그레이스 장 씨의 한지부조공예 작품 연작인 설날 놀이하는 어린이들>

<그레이스 장 씨의 한지부조공예 작품 연작인 설날 놀이하는 어린이들>

<그레이스 장 씨의 한지부조공예 작품 연작인 설날 놀이하는 어린이들>


<그레이스 장씨의 한지부조공예 작품인 추석날 딱지치기 하는 어린이들>

<그레이스 장씨의 한지부조공예 작품인 추석날 딱지치기 하는 어린이들>

<민디 변씨의 작품, 농자천하지대본>

<민디 변씨의 작품, 농자천하지대본>


<민디 변씨의 작품, 겨울이야기>

<민디 변씨의 작품, 겨울이야기>


<입체감이 도드라지는 펄프아트 작품>

<입체감이 도드라지는 펄프아트 작품>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박지윤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전)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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