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볕이 낮게 깔린 지난 10월 9일 한글날, 베를린 도심 젠다르멘 광장에서는 ‘한글을 아름답게 연주하다’라는 공연이 개최됐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음악 전공자 엄마들이 함께 모인 그룹 ‘맘스 챔버 울림’이 기획한 행사다. 젠다르멘 광장은 독일돔과 프랑스돔, 콘체르트하우스가 우뚝 서 베를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관광객들과 햇볕을 찾는 베를리너, 지나가는 행인들이 모두 모여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맘스 챔버 울림이 기획한 ‘한글을 아름답게 연주하다’ 공연>
<’한글을 아름답게 연주하다’ 공연이 열리는 베를린 젠다르멘 광장을 꽉 채운 사람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무용팀 ‘베를린 코리안 댄스 프로젝트(Berlin Korean Dance Project)’의 무대로 공연이 시작됐다. 서민성 무용가가 이끄는 베를린 한국무용 프로젝트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 OST인 <생 도청의 아침> 선율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한복과 춤사위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이어진 공연에서 맘스 챔버 울림은 BTS의 <아리랑>, 박효신의 <야생화>,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 김동율의 <출발> 등 한국 가요를 클래식 버전으로 연주했다. 많이 알려진 케이팝 이외에도 좋은 메시지를 지닌 한국 대중가요를 소개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는 코로나로 침체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희망 메시지를 주는 여러 곡들을 모아 ‘희망 메들리’를 선보였다. 공연 중간중간에 작은 강연 시간을 두어 한글에 대한 소개도 빠트리지 않았다.
<공연 중인 베를린 한국무용프로젝트(위)와 맘스 챔버 울림(아래)>
이번 공연의 백미는 도르트문트에 있는 성악 아카데미(Akademie für Gesang NRW)에 소속된 영 보이스 청소년 합창단(The Young Voices Project)이 부른 아리랑이었다. 정나래 지휘자가 이끌고 있는 청소년 합창단은 독일 민요인 <가장 아름다운 초원에서(Im schönsten Wiesengrunde)>와 한국의 아리랑을 편곡한 <가장 아름다운 아리랑>을 노래했다. 합창단원들은 한글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르기 위해서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익히고, 한국문화 토론 수업을 받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한글을 아름답게 연주하다’라는 이번 공연의 이름과 딱 맞는 무대였다.
<’가장 아름다운 아리랑’을 부르고 있는 독일 청소년 합창단>
광장 한 켠에서는 한글 이름을 서예로 써 주고, 한글 배지를 나눠주는 등 다양한 이벤트도 함께 진행됐다. 이번 공연은 거창한 콘서트는 아니었지만 독일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무대로 나와 정체성을 내보이고, 자존감을 회복하고, 또 독일 현지와의 문화 교류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독일에서 한독 문화 교류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다양한 그룹을 초대해 협업의 장을 만든 점도 뜻 깊다. 맘스 챔버 울림을 결성한 이소정 대표는 “독일과 프랑스, 한국 등에서 모두 음악을 전공했지만 결혼 후 베를린에 와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재능도 살리면서 선한 영향력을 주고, 우리 스스로도 행복하자는 생각으로 챔버를 결성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한글날을 맞아 첫 공연을 마친 이후에는 어떤 사명감도 생겼다. 이소정 대표는 “공연을 마치고 한 독일인이 와서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세종대왕이 도왔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그동안 한글이 중국 문자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행사에 와서 한글이 한국 고유의 문자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행사의 큰 뜻이 된 것 같다. 한글날을 맞이한 이런 행사가 매년 지속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맘스챔버 울림은 계속해서 공연 기회를 찾는다. 초청 공연은 물론 이번 공연처럼 직접 기획도 해 볼 생각이다. 공연뿐만 아니라, 이들의 활동 그 자체가 타지에 살면서 자존감과 정체성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동포들에게도 작은 위로와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란다.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