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이스라엘 영사관이 후원한 LA 한인회관 벽화가 연대의식을 드높인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10.22

바쁜 일상에 정신줄 놓고 살다 보면 늘 다니는 길거리에 새 건물이 들어선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느날 갑자기 마음의 여유가 생겨 하늘을 올려다 보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머, 못 보던 건물이네.” 하는 순간이 온다. 아마 독자 여러분에게도 익숙한 경험일 것이다. 새로운 건물까지는 아니지만 대형 건물의 벽면이 완전 새로운 모습을 한 것도 한참을 모르고 지냈다. LA 한인타운 한복판, 정확히 웨스턴 애브뉴(Western Ave.) 선상, 올림픽 대로(Olympic Blvd.)가 만나는 지점, LA 한인회관 건물(981 South Western Ave.)의 북쪽 벽면에 큰 변화가 생겼다. 10월의 어느 날, 웨스턴 가에서 신호 대기에 걸려 있는데 이 건물에 못보던 대형 벽화가 들어서 있는 것이다. 한복을 입은 젊은 여성의 모습이 참 곱다. 그림과 함께 “여기가 고향입니다.(This is Home)” 라는 메시지가 화제(畵題)처럼 적혀 있다. 도저히 놓칠 수 없는 크기의 벽화이거늘, 도대체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기에 그냥 지나쳤던 걸까. 

 

LA 한인회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지난 8월 23일, LA 한인회관 주차장에서 제막식을 갖고 벽화가 공개됐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벽화는 지난해부터 LA를 비롯, 미 전역에서 급증하고 있는 한인 등 아시안을 대상으로 한 증오범죄를 근절하고, 평화를 기리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특히, 이 벽화에 쓰여진 “여기가 고향입니다.(This is Home)”라는 문구는 더 이상 아시아 이민자들을 미국 땅에 온 이방인으로 취급하지 말아달라는 호소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의 아랫면에는 “우리는 증오에 함께 맞섭니다.(We Stand Against Hate)” 라는 메시지와 함께 벽화 작가의 이름인 앤드류 함(Andrew Ham), 기금 제공자인 이스라엘 총영사관(consulate General of Israel, Los Angeles), 이스라엘을 위한 아티스트들(Artists for Israel) 이라는 글자가 함께 들어가 있다. LA 한인회 관계자는 지난 8월 제막식과 함께, 모든 이민자와 다문화 주민들에 대한 인종증오 범죄 근절 촉구 대회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제막식에는 LA 한 사회의 리더들이 대거 참여했다. LA 한인회 제임스 안(James Ahn) 회장, 영 김(Young Kim) 이사장, 힐렐 뉴먼(Hillel Newman) 태평양 남서부 이스라엘 총영사, 마크 리들리-토머스(Mark Ridley-Thomas) 10지구 시의원, 니티아 라만(Nithya Raman) 4지구 시의원 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벽화 완성을 축하했다. 

 

LA 한인회관의 한복 입은 소녀 벽화가 더욱 의미있는 것은 이스라엘 정부가 벽화 제작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인회 관계자는 벽화 제작에 필요한 2만여 달러의 비용을 이스라엘 총영사관에서 모두 부담했다고 밝힌다. 돈을 목숨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대인들이 어떤 이유로 지원을 했을까. 이미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역사 속에서 늘 혐오범죄의 희생이 되어 왔다. 코카시언이 주류인 미국 땅에서 아시아인들은 늘 차별의 대상이었지만 지난 해 코로나 펜데믹이 시작되면서 아시아인들이 바이러스의 원흉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심각한 아시안 증오 범죄를 초래했다. 이스라엘 총영사관은 LA 한인회관 벽화 제작비를 지원함으로써 자신들의 오랜 고통과 결을 같이 하는 한인 사회의 고통에 강력한 연대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 벽화를 그린 예술가는 앤드류 햄(Andrew Ham), 베트남계 미국인으로 아내는 한인이다. 앤드류는 벽화 속 한복을 입은 여성이 단지 한인 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아시안 여성들의 특징을 조합한 얼굴을 그려냄으로써 아시아 여상 모두를 상징하려 했다고 말한다. 푸른색 치마에 흰색 저고리를 입은 단발의 여성은 일제 강점기를 힘겹게 견뎌오신 우리 할머니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상징한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미국 땅에 한국의 혼을 이어갈 차세대 여성들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커뮤니티와 이스라엘 커뮤니티의 연대로 LA 한인회관은 멋진 벽화를 갖게 됐다. 이 벽화를 오가며 보는 모든 이들이 약해보이지만 내면은 창호지처럼 강한 한국 여인들을 기억하길 바란다. 더 나아가 작가가 의도한 대로 소수계 아시아 여성들, 더 나아가 인류의 고통을 함께 딛고 일어서 앞으로 전진 도약하겠다는 의도를 심어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LA 한인회관 벽면에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크고 작은 정성을 모았던 동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몸은 미국 땅에 살지만 한민족의 혼을 잊지 않도록 동포들의 구심점이 되어주었던 LA 한인회관 건립 기금 조성에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참가할 만한 명분을 한복 입은 여성 벽화는 마련해주었다. 


<LA 한인회관 건물 벽면에 새롭게 들어선 한복 입은 여성의 벽화><LA 한인회관 건물 벽면에 새롭게 들어선 한복 입은 여성의 벽화>


<벽화 클로우즈업>

<벽화 클로우즈업>


<벽화 하단의 아티스트 이름과 후원 단체명>

<벽화 하단의 아티스트 이름과 후원 단체명>


<LA 한인회관 건립에 도움을 준 동포들 명단>


<LA 한인회관 건립에 도움을 준 동포들 명단>

<LA 한인회관 건립에 도움을 준 동포들 명단>


<LA 한인회관에 현재 들어서 있는 사업체들 간판>

<LA 한인회관에 현재 들어서 있는 사업체들 간판>


<LA 한인회관 주차장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태극 문양>

<LA 한인회관 주차장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태극 문양>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박지윤

  •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전)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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