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훔볼트포룸 내 아시아미술관의 한국 전시를 강화하기 위한 협약이 체결됐다. 주독한국문화원과 독일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은 지난 12월 7일 한국 소장품 연구와 전시를 강화하기 위해 향후 3년 간 큐레이터를 고용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9월 개관한 아시아미술관은 개관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중국과 일본 전시관에 비해서 한국 전시 공간이 매우 작다는 이유에서다. 식민주의를 반성한다는 훔볼트포룸에서 한국을 여전히 식민주의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독일 베를린의 옛 프로이센 왕궁터에 설립된 훔볼트포룸. 민속학박물관과 아시아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훔볼트포룸은 문화, 예술, 퍼포먼스, 전시, 교육 등을 수행하는 종합적인 글로벌 문화 플랫폼이다. 특히 식민주의 역사를 다루겠다는 의지로 민속학박물관과 아시아미술관을 이곳으로 이전시켰다. 베를린 민속학박물관은 1873년 식민지에서 약탈해 온 유산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곳으로 식민주의의 상징, 그 자체였다. 아시아미술관 또한 민속학박물관에서 파생된 인도미술관과 제국주의 당시 세워진 동아시아 미술관을 근간으로 설립됐다. 하지만 베를린 서남쪽 지역에 위치해 접근성이 떨어져 대중들의 무관심에 놓인 상태였다. 베를린의 심장부, 프로이센 옛 왕궁터에 바로 이 박물관과 미술관을 옮긴 것은 자신의 과거와 과오를 세상에 내놓고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의지였다. 아주 정치적인 담론을 하겠다는 의지였다. 문제는 그 의지가 독일 스스로의 문제에만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아시아미술관 한국관 논쟁이 벌어졌을 때 훔볼트포룸 측은 독일 자신의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제3자 지역인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역사는 자신들이 다룰 영역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 한국 전시 공간 확대나 다른 국가 지원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한국 측의 오랜 설득을 받아들이고, 큐레이터 채용에 합의한 것을 성과라고 보는 이유다.
훔볼트포룸의 초라한 한국 전시
지난 12일 방문한 훔볼트포룸 민속학박물관과 아시아미술관. 한국 전시 공간은 60㎡ 정도로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의미가 부여된 전시는 고려 시대 청자 주전자 1점과 사발과 그릇 6점 등 총 14점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설명 없이 유리 벽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위쪽 선반에는 유물을 보관하던 상자까지 그대로 쌓아놨다. 전반적으로는 전시라기보단 학술적 목적의 소장품 아카이브를 공개한 것에 가까웠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재 전시를 기대하고 들어갔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유물을 대단위로 유리 선반에 진열해놓는 건 다른 지역 및 국가 전시에도 마찬가지로 발견됐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전시 규모와 비교해보면 초라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따로 떼어 의미를 부여하고 전시할만한 한국 소장품이 부족한 것은 지금부터 보완해 나가야 할 일이다.
<훔볼트포룸 아시아미술관 내 한국 전시 공간 - 출처: 통신원 촬영>
<유리 선반에 설명 없이 진열된 한국 유물들. 도자기가 대부분이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약탈 문화재'의 의미가 큰 민속학박물관 소장품과는 달리 아시아미술관은 독일 수집가의 관심에 따라 소장품이 결정됐다. 약탈품 전시라면 전시물이 없을수록 다행인 셈이다. 지금 한국 전시의 모습은 한국에 대한 독일의 관심이 그만큼 없었다는 방증일 뿐이다. 지금 와서 '왜 훌륭한 한반도 역사의 예술품에는 관심이 없었냐'고 탓할 수 없다. 한국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세계화된 것이 겨우 몇 년 전이다. 현재의 한국 문화의 자부심을 기준으로 소장품을 평가한다면 당연히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막 시작된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흐름을 놓치지 않고, 미처 알리지 못했던 위대한 유산을 '마케팅'하는 데 더 에너지를 쏟을 때다.
2010년부터 8년간 베를린 아시아미술관을 이끌었던 클라스 루이텐베크 관장은 중국, 대만, 일본에서 연구한 중국학자였다. 현재 관장인 라르스 크리스티앙 코흐(Lars-Christian Koch)는 민속음악학 전공자로 인도 민속음악을 주로 연구했다. 이들의 특성은 아시아박물관의 현재에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이다. 대중문화에 대한 가벼운 관심으로 들어온 학생 100명 중 1명이라도 유능한 한국학자로 성장할 수 있다면, 한국에 관심이 높은 동아시아 미술사학자가 성장할 수 있다면 20년, 30년 뒤 이곳 아시아박물관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다.
큐레이터 단 한 명의 역할
이번 한국 전시에서는 도자기를 설명하는 글도 논란이 됐다. “1590년대 일본이 한반도를 침략하며 한국 도공들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으로 끌고 갔다”고 소개했지만, 제국주의 시대 역사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의 다도 전문가들이 한국 도자기를 높게 평가’했고 “일본이 한국 도자기를 높이 평가해서 (독일) 미술관도 많이 소장하게 됐다”는 등 식민주의적 시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을 통해 한국을 접하게 된 당시 독일의 시선에서는 ‘자연스러운’ 서술일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이 소개글의 탈맥락과 식민주의적 시선을 인지하고, 지적하고, 정정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이다. 단 한 명의 큐레이터가 중요한 이유다.
<한국과의 협약 소식을 알리는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 훔볼트포룸의 상위 기관이다 - 출처: preussischer-kulturbesitz.de>
이번 고용 협약으로 신설될 한국 전시 전문 큐레이터는 한반도 관련 소장품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 업무를 수행하고, 중장기적으로 소장품 컨셉을 세우는 업무를 맡을 예정이다. 훔볼트포룸 한국 전시를 개선하고 학술적인 워크숍과 세미나도 기획한다. 헤르만 파칭어(Hermann Parzinger)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이번 협약은 이때까지 해왔던 한국 예술과 예술사 연구를 보다 더 집중적으로 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하며, 한국 소장품들의 잠재력을 높이고 소장품을 더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협약으로) 발생하는 학술적 부가가치는 더 매력적인 전시와 담론을 기대하는 방문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르스 크리스티안 코흐 아시아미술관 및 민속학박물관장은 “이번 협약으로 향후 한국 동료들과 협업을 강화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 이로써 아시아미술관과 민속학박물관의 한국 소장품은 학술적으로 더욱 지향점을 가지고 다뤄질 수 있으며, 훔볼트포룸 내 전시에서도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베를린에서 사무라이 박물관이 확장해 재오픈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무라이 유물에 심취한 독일인이 세운 박물관이다. 하나의 주제만 다루는 이 박물관은 아시아미술관의 한국 전시보다 몇 배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끈끈한 국가 간 문화 교류와 상호 간의 애정은 이렇게 견고하며 독일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지난 역사의 결과인 지금의 한국 전시가 초라하다고 누구를 탓할까. 훔볼트포룸의 한국 전시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