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언론분석] 레니 로브레도 필리핀 부통령과 케이팝
구분
사회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1.24

<마닐라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선거 홍보물. 필리핀에서는 전통적으로 현수막 형태의 홍보물을 주로 이용하지만, SNS를 이용한 홍보도 늘어나고 있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2022년 5월 9일은 필리핀의 17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1992년 이후 필리핀에서는 6년마다 5월 두 번째 월요일에 대통령 선거를 하고 있다. 1987년 헌법에 따라 필리핀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6년 단임제이다.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Comelec)에 따르면 내년 대선 출마자는 모두 10명이며 그중에는 현직 부통령인 마리아 레오노르 제로나 로브레도(Maria Leonor Gerona Robredo) 부통령도 포함되어 있다. 


레니 로브레도(Leni Robredo) 부통령은 1996년에 사법시험 합격한 뒤 오랜 시간 인권변호사로 일했던 인물이다. 2012년 남편인 제시 로브레도 전 내무장관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잃은 뒤 2013년 자유당(Liberty Party) 소속으로 하원의원 선거에 나와 정치에 입문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선거에서 1,440여 만 표를 획득하여 부통령으로 취임했다. 당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 상원의원을 26만 3,000여 표 차이로 제치고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고 하여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레니 로브레도는 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두테르테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공식 석상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이 완전한 실패라고 비판하는 등 두테르테 대통령을 견제하는 활동으로 두테르테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필리핀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이 별도의 선거를 통해 분리 선출되기 때문이다. 정당 정치가 뚜렷하지 않은 필리핀에서는 정치 노선보다는 개인의 인기에 의해 선거 결과가 좌우되는 경향이 있어 러닝메이트로 입후보한다고 하여 함께 당선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대통령과 부통령 모두 과반수 여부와 관계없이 가장 많은 표를 얻는 후보가 당선되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레니 로브레도는 한국 드라마의 열혈 팬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코로나로 인한 격리 기간에도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런 로브레도 부통령의 대통령 출마를 적극 지지하는 계층 중 하나는 바로 필리핀 내 케이팝 팬들이다. 필리핀 선거에서 케이팝이 등장한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다양한 케이팝 팬클럽에서 함께 모여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지금의 방식은 2009년 대선에서 마누엘 빌라(Manny Villar)가 당시 유행했던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SORRY, SORRY)> 음악을 단순히 지지자들의 시선을 끌던 용도로 사용하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 2022년 선거에서 케이팝 팬덤은 SNS 공간을 활용하여 그들의 지지를 나타내고 있으며 흡사 케이팝 스타들에 대한 팬심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로브레도 부통령 역시 SNS를 통해 지지자들과 소통하기에 힘쓴다. 젊은 층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 표심 얻기에 주력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Kpop Stans 4 Leni'이다. 지난해 로브레도 부통령이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뒤 그녀를 지지하는 한류 팬들은 'Kpop Stans 4 Leni'란 이름으로 그룹을 만들어 레니 로브레도를 지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그룹의 가입자들은 특정 연예인의 회원이 아니다. 다양한 케이팝 팬클럽의 회원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 공간은 주로 페이스북이며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 공간이다. 마치 팬클럽을 운영하는 것처럼 SNS 팔로워를 확보하고, 케이팝 음원을 활용한 패러디 동영상을 올려 시선을 끈다. 케이팝 굿즈를 만들 듯 로브레도 부통령의 얼굴을 인쇄한 컵 슬리브나 셔프, 수건 등을 제작한 뒤 판매하여 활동 기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독특한 것은 로브레도 부통령 자체를 지지하는 행동보다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활동에 더 주안점을 둔다는 점이다. 온라인에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을 막거나 자연재해로 피해를 당한 지역에 기부금을 보내는 등으로 후보 지지 활동을 하는 식이다. 필리핀에서는 미리 유권자 등록을 해야 투표를 할 수 있는데 유권자 등록을 통해 투표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필리핀 선거관리위원회(Comelec) 측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하기 쉬운 젊은 계층이 케이팝을 통해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 반갑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최근 로브레도 부통령이 더 필리핀 스타(The Philippine STAR)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필리핀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를 지원함에 있어 한류를 참고한다는 발언을 하여 화제이다. 한국드라마와 한국영화, K-Pop 등과 같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해외에서 주목받게 된 것에는 정부의 정책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 정부처럼 적극적으로 문화 산업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겠음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물론 한류의 성공 요인을 전적으로 정부의 지원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가 역할이 없었던 건은 아니지만, 정부가 강력하게 정책적인 지원을 한다고 하여 대중문화가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도 부통령의 발언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그동안 문화 산업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지원이 상당히 열악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는 필리핀의 예술가들을 격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했다. 공연 및 전시와 같은 예술 관련 행사가 모두 무산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공연장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니 '매번 K-드라마 볼 때마다 부러웠어요. 필리핀의 예술가들도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Every time I watch K-dramas, naiinggit ako na pakiramdam ko. kayang kaya natin ito if only yung support ng pamahalaan is enough.)'라는 로브레도 부통령의 발언은 정부 지원만이 필리핀 대중문화 활성화의 길이 된다는 뜻보다는 예술가가 생활에 대한 두려움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조성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문화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복지와 보호를 제도화하여 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최대한의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누가 5월 선거에서 표심잡기에 성공하여 말라카냥(필리핀 대통령궁)의 주인이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필리핀의 대중문화도 한류처럼 성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로브레도 부통령의 공약이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큰 희망을 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로브레도 부통령의 얼굴을 인쇄한 상품들 - 출처 : Kpop Stans 4 Leni 페이스북 페이지 (@KPOPSTANS4LENI>

<로브레도 부통령의 얼굴을 인쇄한 상품들 - 출처 : Kpop Stans 4 Leni 페이스북 페이지 (@KPOPSTANS4LENI>



<트라이시클(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만든 삼륜차)에 부착된 로브레도 부통령의 선고 홍보물 - 출처 : 통신원 촬영>

<트라이시클(오토바이를 개조하여 만든 삼륜차)에 부착된 로브레도 부통령의 선고 홍보물 - 출처 : 통신원 촬영>



※ 참고자료
《The Philippine STAR》 (22. 1. 14.) <Leni Robredo on self-care, romance, and how local teleseryes can measure up to K-dramas>, https://philstarlife.com/news-and-views/473970-leni-robredo-interview-presidency-arts-culture




앤 킴

성명 : 앤 킴(Anne Kim)[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필리핀/마닐라 통신원]
약력 : 프리렌서 작가, 필리핀 정보제공 블로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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