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 브라질 아프리카 역사의 흔적 ‘발롱구 부두’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1.28

리우데자네이루 항구 지역에 위치한 ‘까이스 두 발롱구(발롱구 부두, Cais do Valongo)’가 세계문화유산이 관리 소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까이스 두 발롱구는 과거 아프리카 노예들을 라틴 아메리카로 실어 들여오던 주요 진입 부두이다. 브라질 인구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아프리카계 후손의 고통과 생존이라는 투쟁의 기억을 간직한 곳으로 유일한 실존 항구 유적임을 인정받아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다. 그러나 길어진 코로나 사태와 정부의 무관심으로 이처럼 주요한 가치를 지닌 세계문화유산이 적절한 관리 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까이스 두 발롱구의 보전 문제는 예전부터 꾸준히 나온 의제였다작년 연방 법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는 구조물 부식주변 쓰레기기물 파손잦은 침수노숙자 칩거 등의 관리 불량 문제가 불거졌다당시 발표에 따르면세계유산 등재 유지를 위한 필수 지침으로 조성된 관리 위원회가 2018년 결성 후 딱 두 차례 회동을 가졌으며 이마저도 2019년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의해 해체되었다고 보고되었다리우 전 시장 마르셀로 크리벨라 역시 이 사태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현재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계속 유네스코 관리 협약을 따르지 않고 방치한다면 세계문화유산 지위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부터 브라질 사회의 아프리카 문화는 그 역사적 가치와 영향력에 비해 배척되는 일이 많았다그러나 현재 많은 지식인들과 시민 사회의 투쟁으로 무시되었던 역사를 조명하기 위한 노력이 여기저기 계속되고 있다최근 리오에는 브라질의 아프리카 역사와 문화를 알리려는 문화제예술 전시전용 박물관 개관 등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그중 하나로 비영리 문화기관 IPN은 주요 유적지 순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을 맞아 유엔인구기금(UNFPA)과 파트너십을 맺어 네 달간 일주일에 2회 특별히 무료로 시행된다새해를 맞아 통신원도 투어에 참가해 보았다.


 <유엔인구기금과 함께 IPN이 현재 무료로 시행하고 있는 리우-아프리카 유적지 순회 프로그램 – 출처: IPN 홈페이지>

<유엔인구기금과 함께 IPN이 현재 무료로 시행하고 있는 리우-아프리카 유적지 순회 프로그램 – 출처: IPN 홈페이지>


토요일 아침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임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역사를 알고자 하는 뜻으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참가자 대부분이 리오 시민이었지만 다른 시에서 찾아온 관광객과 외국인들도 몇몇 보였다두어 시간 진행되는 순회 프로그램은 전문 가이드가 함께 한다방역 지침에 따라 마스크를 쓰고 진행되었다.

 

투어가 진행되는 지역들을 크게 합쳐 작은 아프리카(Pequena África)라고 칭한다. 100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첫 도착지이자 바이아에서 리우로 이주한 흑인 후손들이 터전을 마련한 곳이기 때문이다투어는 프라잉야 광장에서 시작해 브라질 흑인 문화의 역사를 담은 꽁세이썽 언덕을 넘어 문화 탄압과 은폐의 증인인 수스뺑수 두 발롱구 정원 등을 거쳐 비로소 까이스 두 발롱구에 도착한다브라질의 위대한 흑인 문예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집을 거쳐강제 노예들의 처참한 유해가 안치된 프레뚜 노부 묘지까지 돌아보며 끝난다.


<투어가 시작되는 프라잉야 광장.광장 가운데 브라질 흑인 무용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메르세데스 밥치스타의 동상이 서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투어가 시작되는 프라잉야 광장.광장 가운데 브라질 흑인 무용의 선구자로 널리 알려진 메르세데스 밥치스타의 동상이 서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지금은 작은 가게와 식당이 모인 작은 광장이지만 프라잉야(작은 바닷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때 이곳은 바다와 접해 있었다그 바닷길을 타고 아프리카 노예들이 이곳까지 운반되었을 것이다광장을 돌아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면 바로 바로크 양식의 작은 예배당을 만난다. 1696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프랑스의 침략으로 화재가 발생했지만 1740년에 재건되어 현재는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꽁쎄이썽 언덕은 포르투갈인이 처음 리우데자네이루를 점령했을 때 거주했던 곳이다지금도 그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그중 하나가 소금의 돌(Pedra do sal)’이라고 부르는 언덕으로 오르는 길목이다큰 암벽을 깎아 계단처럼 만들었는데 부두에서 소금을 하선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과거 이곳은 선박 인부들의 만남의 장소이면서도 노예들을 묶어 공개 처벌했던 곳이기도 하다노예제가 없어진 먼 훗날 바이아에서 리우로 이주해 온 많은 흑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리우-아프리카 문화를 꽃피우게 되었다지금도 Donga, Pixinguinha 등 위대한 삼바 음악가들을 기리는 그라피티에서 그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흑인 노예와 선박 인부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소금의 돌'의 벽면.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은 현재 리우 삼바의 근원지로 탈바꿈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흑인 노예와 선박 인부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소금의 돌'의 벽면.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은 현재 리우 삼바의 근원지로 탈바꿈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꽁쎄이썽 언덕에 오르면 무엇보다도 도시의 가지각색의 특색을 담은 파노라마 전경이 눈을 사로잡는다비즈니스 건물이 즐비한 시내의 풍경을 등지고옆에서는 저멀리 우뚝 선 그리스도상이정면에서는 프로비뎅시아 언덕(Morro da Providência)를 덮은 빈민가 파벨라가 그만의 활력을 더한다오래되고 좁은 골목들마다 보이는 색색깔의 아기자기한 집들도 언덕 산책길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어느새 끝에 다다른 언덕에서 아래쪽으로 작은 수스뼁쑤 두 발롱구 공원이 보인다테라스산책로다양한 식물들로 원래는 더욱 아름다웠을 이곳은 최근 코로나로 인해서인지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꽁쎄이썽 언덕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꽁쎄이썽 언덕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이 작은 공원이 특별한 것은 이러한 낭만적인 외관 속에 감쳐진 어두운 역사 때문이다과거 바로 이곳이 과거 노예 매매 시장이었다. 1906년 리우 시장이었던 페레이라 파쑤스(Pereira Passos)는 리오를 프랑스처럼 만들겠다는 목표로 여러 도시계획을 펼쳤는데 브라질의 흑인 문화와 역사를 지우기 위해 당시 많은 유산들이 처분되었다이 공원을 건설한 것도 노예 시설의 흔적을 지우고 은폐하기 위해서였다투어를 진행한 가이드 하파에우 씨는 어린 시절 이러한 역사에 대해서 학교에서 배운 적 없었다며 여전히 브라질에 존재하는 차별을 강조했다그 설명을 듣고 보니 정원에 자리 잡은 네 개의 유럽식 로마 조각상들이 이토록 어색해 보일 수 없었다. “우리끼리는 우스갯소리로 저 동상들을 흑인 로마신이라고 하지요.” 하파에우 씨가 던진 농담에 다들 헛웃음을 지었다.

 

정원 바로 아래에는 코로나로 임시 휴업 중인 치아 시아따의 집이 있다치아 시아따는 이 작은 아프리카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19세기 말 15명의 아이를 데리고 바이아에서 리우로 이주한 그녀는 아프리카식 민간요법 치료사로 유명했다어떤 의사도 고치지 못한 벤세슬라우 브라스 대통령(Venceslau Brás)의 다리 상처를 자신만의 치료법으로 낫게 한 후 그 보답으로 아프리카 신앙 의식을 할 때 더 이상 경찰의 제지를 받지 않게 되었다그녀는 바이아에서 가져온 흑인 문화를 리우 지역사회에 안착시키고 오늘날 삼바의 영향을 끼친 주요인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그녀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이 기념공간은 과거 공공 화장실이 위치하던 곳이라며 가이드는 씁쓸하게 설명했다.

 

언덕을 내려와 조금 더 걸어가면 문제의 세계유산 까이스 두 발롱구가 있다. 1811년에 지어져 노예 시장이 정점 시기 이곳을 통해 100만 명이 넘는 흑인 노예가 들어왔다이는 미국 전체로 팔려간 노예 수보다 두 배나 많은 수치다이후 1843년 동 빼드로 2세와 결혼할 테레사 크리스티나 공주를 맞이하기 위해 새롭게 꾸며졌다이때 완전히 탈바꿈된 된 항구는 예전 이름을 버리고 황후의 부두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그렇게 까이스 두 발롱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지만다행히 2011년 재개발 작업 중에 이 왕실용 항구가 발견되면서 그 밑에 숨겨졌던 원래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까이스 두 발롱구는 노예 제도라는 추악한 인류의 역사를 반증하고 브라질 국가의 일부임을 인정해 후손들의 인종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유네스코는 까이스 두 발롱구를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추모비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고통의 기억과 장소로 인정하며 201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까이스 두 발롱구가 현재 관리 문제로 도마에 올랐다. – 출처: 통신원 촬영>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까이스 두 발롱구가 현재 관리 문제로 도마에 올랐다. – 출처: 통신원 촬영>


가이드 하파에우 씨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자격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올해 6월까지 지정된 장소에 관광안내센터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내센터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맞은편의 조선소 건물은 여전히 철창이 처 있고 여전히 방치된 상태였다. 밖에서 보기에 시설을 위한 내부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하파에우 씨는 세계유산의 앞날이 걱정이 되는 듯 부디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하루빨리 지원이 있길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브라질을 두고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다인종의 국가라고 한다. 실제로 수많은 인종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러한 겉모습은 오랫동안 브라질 안팎으로 ‘인종 민주주의’의 환상을 낳았을 뿐 내부의 인종 갈등과 차별 시스템에 대해서는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짜 신기루에 갇혀, 학교에서 불의의 과거를 배우지 않고 일부 정치가들이 차별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더욱 더디기만 할 것이다. 귀한 의의를 가진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더 늦기 전 올바른 조치가 취해지길 희망한다.


※ 참고자료
《Agência Senado》 (21. 10. 25.) <Por inação do governo, Cais do Valongo pode perder título de patrimônio mundial, alerta debate> https://www12.senado.leg.br/noticias/materias/2021/10/22/por-inacao-do-governo-cais-do-valongo-pode-perder-titulo-de-patrimonio-mundial-alerta-debate
《The Washington Post》 (21. 1. 17.) <Brazilian port tied to arrival of enslaved Africans to Americas>, https://www.washingtonpost.com/world/2022/01/17/brazil-slavery-valongo-wharf/



서효정

성명 : 서효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 통신원]
약력 : 전) 서울여자대학교 의류학과 졸업 현) 리우데자네이루 YÁZIGI TIJUCA 한국어 강사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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