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언론분석] 카자흐 문학신문, 빅토르 초이 작품세계 조명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2.02.03

<카자흐스탄 문학 신문 ‘카자흐 문학(Қазақ әдебиеті)’이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의 노래를 번역한 기사를 실었다.>

<카자흐스탄 문학 신문 ‘카자흐 문학(Қазақ әдебиеті)’이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의 노래를 번역한 기사를 실었다.>


지난 1월 21일 자로 카자흐스탄 문학 신문 《카자흐 문학(Қазақ әдебиеті)》에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의 러시아어 노래를 카자흐어로 번역한 기사가 발행됐다. 해당 기사는 《카자흐스 문학》 지면에 더불어 문학 포털(Әдебиет порталы, http://madeniportal.kz)에도 게재되어 있다. ‘차가운 조국(Бір сұп-суық отан бар)’이라는 제목으로 14면에 실려있다.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는 1962년 소련 시기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아티스트로, 그의 친조부는 일제 강점기 초기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이다. 빅토르 초이는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 지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점에서 카자흐스탄에서도 지금까지 주목받는 인물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문학 신문, '카자흐 문학'>

<오랜 역사를 지닌 문학 신문, '카자흐 문학'>


참고로 《카자흐 문학》은 오랜 발간 역사를 지닌 신문이다. 보수 매체로 분류돼왔지만, 최근에는 그러한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평가다. 기사는 주로 당대 주목받는 작가, 시인 등 문학계에서 최소 5편의 작품을 발표, 출판한 사람들만이 작성할 수 있다. 일반인의 투고는 받지 않는다. 사무국은 알마티시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작가연합(Қазақстан Жазушылар Одағы) 건물 2층에 소재한다.


<알마티시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작가연합 건물 2층에 소재한 ‘카자흐 문학’ 사무국>

<알마티시에 위치한 카자흐스탄 작가연합 건물 2층에 소재한 ‘카자흐 문학’ 사무국>


사실, 빅토르 초이는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CIS 국가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아티스트일 것이다. 고려인 4세라는 점에서 그를 아는 한국인도 많을 것이다. 그는 작품 세계를 통해 여러 사람과 소통한 가수로, 구소련의 록 시대를 연 아티스트였다. 사실 문학보다는 음악과 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린 인물이지만, 그가 전한 노래 가사는 문학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는 당시 소련의 삶을 은유한 가사와 반전(反戰)을 내세우는 곡을 많이 작사 및 작곡해 공연이 금지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노래의 메시지는 당시의 청년들 사이에서 트렌드가 되었고, 그가 이끄는 밴드 ‘키노’는 큰 인기를 끌었다.

빅토르 초이가 큰 인기를 끌던 1980년대, 빅토르 초이와 키노의 음악 세계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현재 50~60대의 중년이 되었다. 이들은 빅토르 초이의 음악과 함께 성장했고, 빅토르 초이와 함께 노래하며 한 시대를 살았다. 빅토르 초이의 음악은 당시 사회현상이기도 했다.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람들은 빅토르 초이의 노래를 기억하고 부르며, 최근의 청년들도 그의 노래를 부르곤 한다.

《카자흐 문학》에 실린 번역 가사는 총 다섯 곡으로, <뻐꾸기(Көкек)>, <태양이라는 별(Күн есімді жұлдыз)>, <슬픔(Мұң)>, <아버지(Әке)>, <새가 되어라(Құсқа айнал)>다. 번역은 아슬란 쿠아니쓰울르(Асылан Қуанышұлы)이 맡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카자흐 문학》이 유명세가 높은 사람들로 필진을 구성해 온 ‘수준 높은’ 신문이라는 점에서 빅토르 초이의 노래 가사가 실리고, 번역되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을 것이다. 점차 변화하는 문학계의 행보도 관찰할 수 있다.

기사는 빅토르 초이가 작사한 노래 가사들은 당시 소비에트 사회의 변화를 원했던 빅토르 초이와 그와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드러낸다고 언급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빅토르 초이와 그가 이끄는 밴드 키노는 러시아뿐 아니라 당시 소련을 구성하고 있었던 16개 공화국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사회현상이 된 점 때문일 것이다. 한편, 몇 해 전인 2017년에는 알마티 툴레우바 거리에 빅토르 초이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사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전히 사람들은 빅토르 초이와 그의 작품 세계를 기억하고 있다. 빅토르 초이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원하는 이들의 생각을 노래로서 아름답게, 한편으로는 혁명적으로 전하는 유일한 아티스트였다. 그의 노래는 지금까지 살아 있고, 여전히 카자흐 사회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 참고자료
http://madeniportal.kz/article/6213
https://qazaqadebieti.kz/


아카쒸 다스탄

성명 : 아카쒸 다스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카자흐스탄/누르술탄 통신원]
약력 : 현) 카자흐스탄 신문사 해외부 한국 담당 기자 카자흐스탄 기자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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