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한국학교 일일 교사 판서 - 출처: 통신원 촬영>
한번은 해보고 싶었던 한국학교 교사. 아이가 한글을 배워야 할 적령기라 한글학교를 보낼까 고민하면서 스톡홀름 한국학교를 알게 됐고, 스웨덴 내 한인 커뮤니티에서 교사 모집공고를 보면서 통신원이 도전할 수 있는 일일까 궁금했다. 무엇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이 스웨덴에서도 꽤 오랜 기간 1위를 차지했고 스웨덴 내 K-드라마, K-푸드 등 K-콘텐츠와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한국학교 임시교사 제안은 우연이었다.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현장을 찾다 보니 이런 기회도 생겼다. 통신원이 맡은 반은 성인 한국어 기초반이었다. 스톡홀름에 있는 재스웨덴 한국학교는 유아부, 유초등반, 성인반을 운영하고 있다. 모국어 초등반과 비모국어 초등반, 성인반은 초급반, 중등반, 고급반으로 한국어 수준 등을 고려해 세분화돼있다. 즉 한국어가 모국어이거나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라 한글을 배우는 아이, 학생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도 한국학교 문은 열려 있다.
기초반이라니 우리 아이를 가르치듯 알려주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이는 단단한 착각이었다. 이들은 한글을 전혀 모르는 스웨덴 성인이었고, 통신원은 스웨덴어를 잘 못하니 영어로 강의를 해야 했다. 처음에는 '내 영어 실력으로 남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걱정으로 강의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강의를 준비하면서 아이가 오랜 기간 한국어가 노출된 '한국어 원어민'이었기 때문에 내 아이를 가르치듯 준비하면 안된다는 점을 금세 깨달았다. 예를 들어 5~6세 한국 아이는 이미 수많은 한국말을 알고 있다. 이를 글자와 매치시키는 과정만 반복하면 된다. 하지만 처음 한글을 접하는 외국인에게 자음 14개와 모음 10개를 정확하게 읽고 이를 조합한 '가', '갸', '거', '겨'를 이해해서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한글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이 '무엇부터 배워야 하나'와 '무엇을 배우고 싶을까'에 집중했다. 일단 자음과 모음, 이중모음과 이중자음을 복습하기 위해 발표 준비를 하는 것처럼 대본을 썼다. 학생들이 참고할 자료로 PPT도 만들었는데 스웨덴 학교 교실의 빔 프로젝트와 한국 노트북이 호환되지 않아서 사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잔뜩 긴장한 통신원과는 달리 스톡홀름 쇠데르말름의 한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모두 프로페셔널했고, 매주 토요일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 한국어 교육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구나 싶어 존경하는 마음이 샘솟았다.
<스톡홀름 한국학교 수업이 열리는 쉐데르말름 에릭스달스콜란 전경 – 출처 : 통신원 촬영>
강의 시간은 총 120분. 40분씩 3번이었다. 직접 가르쳐보니 학생들은 단모음과 단자음을 예상보다 쉽게 이해했다. 초성의 'O'은 왜 발음되지 않는가도 순조롭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중모음은 진도를 나가기 시작하니 수강생 6명 전원의 눈이 흔들렸다. 머리에 쥐가 나는 듯이 보여서 어렵다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했다.
“한국인 또한 이중모음을 아주 정확하게 발음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단어와 문맥 속에서 이해합니다. 그러니 'ㅐ'와 'ㅔ', 'ㅙ'와 'ㅞ'를 비슷하게 발음한다고 해서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다만 한글은 한번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모든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고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나도 모르게 우리 한글이 문자로서 얼마나 우수한지 자꾸 알려주고 싶었다. 영어와 비교하자면 아이는 지금 파닉스를 배우고 있는데 예외가 정말 많아서 결국은 통째로 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글을 생각하면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가 떠오르면서 가슴이 웅장해진다.
수강생 구성은 다양했다. 통신원이 수업한 날은 등록 인원 9명 중 6명이 출석했는데, 10대 2명, 20대 1명, 30대 1명, 40대 2명으로 구성됐다. 10대는 제3언어로 무엇을 공부할까 고민하다가 한글을 선택했다고 설명했고, 20대는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었다. 40대 2명은 아내가 한국인이고 아이가 있어서 함께 한국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상과 달리 K팝이나 K드라마 때문에 한국어에 호기심이 생긴 수강생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수업 집중도는 정말 놀라웠다. 강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눈을 반짝거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에너지가 샘솟았다. 특히 10대 학생 한 명은 처음 한국어를 배우는데 이중모음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한국어 기초 대화 역시 완벽한 발음으로 소화했다.
학생들은 칠판에 쓴 한국어 기초 대화를 따라 쓰고 발음표기법을 아래에 적어서 열심히 대화를 연습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려울 것 같은 부분은 한 명씩 붙잡고 알려줬다. 한국어 기초 대화로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도를 준비했는데 이후 한 학생이 '당신은 몇 살입니까'를 알려달라고 했다. 국적을 초월해 나이가 몇살인지 궁금한 건 똑같구나 생각하면서 웃었다. 한국에 여행 가면 스웨덴에 있을 때보다 나이가 2살 많아진다는 문화적인 배경을 알려줬더니 아주 흥미로워했다. 120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전날 밤에 수업을 준비하면서 몇 시간 자지 못했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성명 : 박소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웨덴/스톡홀름 통신원]
약력 :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현) 파이낸셜 뉴스기자(휴직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