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더블린 고등학교에 교과목으로 채택된 한국어
구분
교육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2.05.27

지난 5월 9일, 더블린에 위치한 Ardscoil Ris Secondary School에서는 의미 있는 한국어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이희정 교사는 다가오는 6월 25일을 맞이하여 역사 문화 수업의 일환으로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Ray LeGate 씨를 초대해 학생들에게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 역사 수업이 한창인 Ardscoil Ris Secondary School. 사진 중앙 왼쪽부터 민주평통 남상긍 위원, TY 한국어 담당 이희정 교사. 사진 제공은 참관 교사 Peter McDunphy]

[한국 역사 수업이 한창인 Ardscoil Ris Secondary School. 사진 중앙 왼쪽부터 민주평통 남상긍 위원, TY 한국어 담당 이희정 교사. 사진 제공은 참관 교사 Peter McDunphy]


이희정 교사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5월 말이면 봄학기가 끝나고 긴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6.25 전쟁에 대해 미리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전쟁은 과거에 묻혀 버린 아픔이 아니고 2022년 현재, 아일랜드가 속해 있는 유럽 대륙에서도 발발하고 있어서 학생들이 전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련한 수업이었다.


[6.25 참전 용사 Ray LeGate 씨. 사진은 참전 당시 모습. 사진 제공은 참관 교사 Peter McDunphy]

[6.25 참전 용사 Ray LeGate 씨. 사진은 참전 당시 모습. 사진 제공은 참관 교사 Peter McDunphy]


이희정 교사의 바람대로 학생들은 한국전쟁 당시 참전용사가 느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 야구를 좋아하던 스무 살, 젊은 청년의 생생한 전쟁 경험담을 경청하며 수업 종료 후에도 질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수업에 참관한 교사 중 한 명인 Peter McDunphy 씨는 "내가 가르친 Geography나 Irish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잊어버릴지 모르겠지만 오늘 참전용사가 나누어준 그의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도 계속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번 '6.25 전쟁'과 같이 이희정 교사는 학생들에게 단지 한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탈 만들기, 부채 만들기 등 다양한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일주일에 1회, 80분으로 진행되는 한국어 수업은 참여하는 학생 대부분이 처음 한국어를 공부하는 거라 자음과 모음 등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가끔은 드라마나 K-POP을 통해 한글을 접해본 학생들도 있는데 읽고 쓰는 것은 못 해도 들은 단어들이 많아서 조금만 알려주면 바로 습득해서 놀라움을 줄 때도 있다고 한다.


[이희정 교사가 담당하는 학교의 다양한 한국문화 수업. 사진 제공 이희정 교사]

[이희정 교사가 담당하는 학교의 다양한 한국문화 수업. 사진 제공 이희정 교사]

[이희정 교사가 담당하는 학교의 다양한 한국문화 수업. 사진 제공 이희정 교사]

[이희정 교사가 담당하는 학교의 다양한 한국문화 수업. 사진 제공 이희정 교사]


올해로 3년째 아일랜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희정 교사는 필자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을 들려주었다.


[TY 한국어 담당 이희정 교사]

[TY 한국어 담당 이희정 교사]


질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답>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한국의 문맹률이 1%라는 점에 신기해하며 특히 한글을 알려주었을 때 한글이라는 글자가 아름답다고 감탄합니다. 그리고 상호문화주의에 입각한 양국 간의 문화비교를 통해 한국문화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고 자신의 문화를 알게 되는 이점이 있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질문> 학생들은 무엇을 재미있어 하고 어려워하나요?
답> 학생들은 한국 길거리 음식, 한국 게임 등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활동 중에서는 한복 입어보는 체험을 좋아하고 한글로 간단한 인사나 응원의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또한 태극기의 색이 예뻐서 태극기도 좋아합니다. 제일 어려워하는 것은 한글 쓰기입니다. 쓰기는 많은 시간을 연습해야 하는데 제한된 짧은 시간 내에 수업하다 보니 충분히 쓰기 수업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질문> 한국어 수업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고 계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답>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강의식이 아닌 학생 중심의 대화 형식의 수업과 학생들의 삶과 연관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는 실제적인 자료들을 수업에 활용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소개를 배우는 시간에는 K-POP 아이돌이 자기소개하는 영상을 이용하여 수업이 이루어지고 숫자를 배우는 수업에서는 한국의 모형 돈을 가지고 제한된 예산을 주고 생일잔치 음식을 주문하는 것이나 한국에 아일랜드 음식을 소개하는 팝업 가게 사업을 계획하며 가격표를 만드는 등으로 수업합니다.

질문>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던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답> 평소에 엄청 문제를 일으키던 학생이 있었는데 심각한 문제행동으로 정학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학교에 오게 되자마자 한국어 수업에 제일 먼저 오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츰 학교에 적응도 하게 되어 문제 행동도 줄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선생님에게서 들었습니다. 그 학생이 손흥민 축구 선수를 좋아해서 손흥민 선수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맛있는 컵라면도 추천해주면서 가까워졌습니다. 그때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울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아일랜드의 조금은 특별한 교육 과정인 TY(Transition Year)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TY는 Junior Cycle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Senior Cycle에 들어가기 전, 1년 동안 다양한 직업 체험과 관심 분야의 학업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율학기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중학교 자율학기 프로그램이 바로 아일랜드의 TY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TY 기간 학생들은 평소 배우고 싶었던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서 들을 수 있는데 그중 외국어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아일랜드 교육부 산하 Post Primary Language Ireland(중·고등학교 외국어 부서)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Kirsi Hanifin 씨에 따르면, 현재 TY에서 운영되고 있는 외국어로는 한국어를 비롯해 일본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리투아니아어 등이 있다고 한다. 이는 대부분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선택하고 있는 프랑스어나 독일어, 스페인어 등을 제외한 제3외국어로, 글로벌 시대에 발맞춰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인재 육성에 가치를 두고 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이 모든 외국어를 동시에 채택하는 것은 아니다. 각 학교의 TY 운영자가 매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학교 측의 희망 언어를 PPLI(Post Primary Language Ireland)에 신청하면 담당자인 Kirsi Hanifin 씨가 언어별 선생님들의 스케줄과 상황 등 수업 운영 가능 여부를 파악하여 학교별로 선택이 가능한 교과목을 알려주고, 그 옵션 중에서 어떤 외국어를 개설할지는 학교 재량 또는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해서 각 학교의 TY 운영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현재 한국어는 총 7개 학교에 개설되어 있는데 한국어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의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켰던 '오징어 게임' 등 한국 드라마나 K-POP, 한국 음식 등 한국의 문화에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PPLI의 담당자인  Kirsi  씨와 Alice 씨도 한국 드라마의 열렬한 팬인데 평소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한다는 Kirsi 씨는 한국 드라마의 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사랑의 불시착, 힐러, 아는 와이프, 미스터선샤인 등 최신 드라마부터 과거 방영했던 드라마까지 다 챙겨 보고 있어요. 한국 드라마 중에는 특히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오가는 연출이 많은데 그 점이 개인적으로 매우 인상적이고 재미있어요."

[한국 음식을 즐기는 PPLI 담당자. 왼쪽부터 Kirsi Hanifin, Alice Davenhill. 사진 제공: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정형욱 서기관]

[한국 음식을 즐기는 PPLI 담당자. 왼쪽부터 Kirsi Hanifin, Alice Davenhill. 사진 제공: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정형욱 서기관]


아일랜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교과목으로 채택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지난 2018년,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아일랜드 공식 방문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협력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고 2018년 8월 말부터 정식으로 TY 과정에 한국어가 포함되었다.


[2018년 이낙연 전 국무총리 아일랜드 방문, 바라드카(Leo Varadkar) 아일랜드 전 총리와 회담. 사진 출처: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2018년 이낙연 전 국무총리 아일랜드 방문, 바라드카(Leo Varadkar) 아일랜드 전 총리와 회담. 사진 출처: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2018년 이낙연 전 국무총리 아일랜드 방문, 바라드카(Leo Varadkar) 아일랜드 전 총리와 회담. 사진 출처: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


한국어가 아일랜드 고등학교에 선택과목으로 채택되기 시작한 지 올해로 4년째 접어들면서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도 한국어를 보다 더 확대 보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지난 PPLI 담당자와의 오찬에서도 한국어 보급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PPLI의 Kirsi 씨에 따르면, 외국어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자격조건을 갖춘 교사 구하는 것이 사실 가장 큰 애로사항인데 한국어도 예외는 아니라 원하는 학교에 교사 수급을 하지 못해 한국어를 더 많이 보급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에 정형욱 서기관은 아일랜드 내 소재한 더블린 한글학교 교사 중 4명이 올해 한국어 교원자격증 2급을 취득해서 공식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설명하고 이를 통해 한국어가 더 많은 학교에 선택과목으로 채택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TY 담당 정형욱 서기관]

[주아일랜드 대한민국 대사관 TY 담당 정형욱 서기관]


한글이 가진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과학적인 글자에,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와 창제 원리, 시기 등을 알 수 있는 문자다. 한국인으로서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어와 해외에서 외국인을 통해 만난 한국어는 그 결이 조금 다르다. 한글의 소리, 모양 등 세부적인 것에 좀 더 관심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나의 모국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글이 주는 매력을 대한민국을 떠나 해외에서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를 넘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 사물이 좀 더 객관적으로,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PPLI 담당자인 Kirsi 씨의 한글에 대한 의견이 새삼 흥미롭게 느껴진다.

"한국어는 충분히 selling point가 있는 언어입니다. 10대 학생들도 친숙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많이 발달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드라마로부터 자주 듣게 되는 발음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면 오빠, 아빠, 엄마, 여보, 진짜 등 들을수록 재미있는 발음이 아주 많은 것 같아서 학생들도 흥미를 갖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 같습니다."

한글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대한민국의 자존심, 한국문화 속에 녹아 있는 한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매력을 지녔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제 이 아름다운 언어를 7개 학교를 넘어 아일랜드 전 지역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김은영
아일랜드 김은영
더블린한글학교 교사
MBC.SBS 교양제작국 구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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