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문화정책/이슈] 무분별한 개발로 사라진 문화유산
구분
사회
출처
KOFICE
작성일
2022.10.04

최근 말레이시아의 토지 소유권자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무덤을 함부로 파헤친 사건이 발생해 많은 말레이시아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달 푸텡뇽 무덤이 훼손돼 공동묘지에 이장한 사실이 알려졌다. 푸텡뇽은 19세기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청켕퀴가 사랑했던 셋째 부인이다. 또한 그녀는 페락주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청테핀의 어머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던 중국인 푸추촌의 고모이다. 1884년 청켕퀴 사유지에 안장된 푸텡뇽 묘지는 약 766평의 규모로 미학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가치가 크다. 그러나 100여 년의 세월 동안 토지 소유주가 변경돼 개발, 분양을 위해 묘소가 훼손된 것이다.


< 지난 3월 촬영한 푸텡뇽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 지난 3월 촬영한 푸텡뇽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처음 묘지 이장 소식이 보도된 것은 지난 3월이다. 비정부단체와 문화유산 관계자는 묘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펼쳤으나, 묘지 이장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결국 지난달 시신이 이장됐다. 비정부단체는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묘석을 촬영하고 말레이시아 문화유산 보호법에 따라 이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주정부가 묘지 이장을 허용한 사실을 지적하는 내용의 편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토지 소유권 문제로 100여년 동안 조성돼 온 묘지들을 이장해야 하는 논란에 대해 페낭주는 문화유산위원회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16년 개정된 페낭문화유산법령 2011에 따르면, 페낭주총리가 임명한 문화유산위원회는 자연·문화 보호, 보존 및 활용에 관한 정책을 제언하고, 유산 보존 현황과 위험 사항을 관리·감독한다. 현재 효율적인 문화유산의 관리체계가 정립되지 않아 문화유산을 보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페낭주민들과 비정부단체 사이에서는 남은 문화유산이라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문화유산위원회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 (위)지난달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푸텡뇽 묘석, (아래)훼손된 푸텡뇽 묘지 - 출처: 'New Straits Times' >

< (위)지난달 쓰레기 매립지에 버려진 푸텡뇽 묘석, (아래)훼손된 푸텡뇽 묘지 - 출처: 'New Straits Times' >


문화유산위원회가 설립되면 푸텡뇽의 남편 청켕퀴와 그녀의 아들 청테핀의 묘지가 보호 대상으로 지정될 계획이다. 청테핀의 묘지는 푸텡뇽 묘지처럼 토지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상황이라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말레이시아 최고의 거부였던 청켕퀴 묘지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어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청켕퀴는 주석 광산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부호로 학교, 사원 설립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세기 페락주에서 최대 규모의 주석 광산을 소유해 15,000명에 가까운 쿨리(중국인 광산 노동자)를 고용했다. 그는 영국 식민지 정부의 신임을 받아 중국 이주민 공동체의 지도자인 카피탄 치나를 역임했으며, 중국 객가 출신의 하이산(Hai San) 조직의 수장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 1904년 조성된 당대 최대 규모의 청켕퀴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 1904년 조성된 당대 최대 규모의 청켕퀴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 1904년 조성된 당대 최대 규모의 청켕퀴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1901년 12월 13일 74세에 사망한 청켕퀴의 묘지는 1904년 지금의 자리에 조성됐다. 1985년 기준, 청켕퀴 묘지는 말레이시아 중국계 중 최대 규모로 왕실 무덤의 규모나 웅장함에 버금간다고 기록돼 있다. 청켕퀴 묘지에는 무덤을 지키는 4개의 석상이 있는데, 이는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한 형태의 무덤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청켕퀴 묘지는 아무도 찾지 않는 듯했다. 닭과 개가 웅장한 무덤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대낮인데도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청테핀 묘지도 마찬가지였다. 청테핀 묘지는 입구도 찾기 어려운데다가 묘지 주변에는 부러진 나무와 잡초가 뒤엉켜 있었다. 청테핀은 정치·경제적으로 막강한 청켕퀴 가문의 넷째 아들이다. 아버지에 이어 페락의 카피탄 치나로 임명됐고, 자선과 기부사업을 위해 많은 재산을 기부했다. 그러나 그의 묘지는 지방정부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


< 페락주 마지막 카피탄 치나 청테핀의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페락주 마지막 카피탄 치나 청테핀의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페락주 마지막 카피탄 치나 청테핀의 묘지 - 출처: 통신원 촬영>


페낭주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조지타운이 문화유산일 뿐 대부분의 다른 지역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다. 비정부단체는 버터워스, 부킷 메르타잠 등 페낭 본토에 역사기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시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탄중붕아 지역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탄중붕아는 탄중토공과 함께 국제학교가 많아 페낭주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중 하나이다. 풍수지리가 좋아 과거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으로, 푸텡뇽 무덤부터 청켕퀴, 청테핀 무덤도 모두 이곳에 조성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한국인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한국 교민들의 관심은 조지타운에 머물러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는 한국 교민을 중심으로 탄중붕아, 탄중토공 문화유산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오히려 한인들이 이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며,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교육인 동시에 문화외교의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
- 통신원 촬영
- 《New Straits Times》 (2022. 9. 9). Pieces of illegally demolished 138-year-old tomb found in Jelutong landfill,
https://www.nst.com.my/news/nation/2022/09/829986/pieces-illegally-demolished-138-year-old-tomb-found-jelutong-landfill

- 《Malay Mail》 (2022. 9. 28). Commissioner rues Penang’s delay in setting up state heritage council six years on,
https://www.malaymail.com/news/malaysia/2022/09/28/commissioner-rues-penangs-delay-in-setting-up-state-heritage-council-six-years-on/30556




홍성아

성명 : 홍성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 통신원]
약력 : 현) Universiti Sains Malaysia 박사과정(Strategic Human Resource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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