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러시아 남부 칼미키야공화국 고려인협회 유산 그리고 고려인들에 대한 기록
구분
사회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3.15

러시아 남부 칼미키야공화국 고려인협회 

[유산 Юсан] 그리고 고려인들에 대한 기록


[칼미키야 고려인협회 '유산'의 고려인 대표 12명과 카잔연방대 고영철 교수]

[칼미키야 고려인협회 '유산'의 고려인 대표 12명과 카잔연방대 고영철 교수]


러시아 남부의 자치공화국 칼미키야공화국의 수도 엘리스타에는 200여 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연해주에서 거주하던 중 1937년경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타지기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 당한 분들의 후손이다. 사계절 일조량이 풍부하여 논농사에 적합한 이곳 칼미키야공화국으로 1954년부터 이주했다. 이외에도 사할린에서 농업 관련 일자리를 찾아 1973년 이후 유입된 고려인 동포들도 수도 엘리스타에 모여 거주 중이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 조선인 강제노역, 칼미키야공화국으로 이주한 고려인, 강제 이주의 땅에 정착한 한인의 아이러니한 역사
러시아에서의 고려인들은 1860년대 연해주 최초 이주, 1937년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라는 두 개의 역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러시아의 사할린 남부 지역에 '가리후토 청'을 형성하였던 일본은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부족한 노동력 보충을 목적으로 조선인들 가리후토로 강제 징용하여 탄광, 군수공장 등에서 노동력을 착취했다. 1937년 만주 전쟁 후 군수산업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1939년과 1942년 모집 형태의 조선인 노동력을 동원했다. 1944년에는 한반도 남부 지역에 거주 중이던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한다.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로의 한인의 유입은 1860년대 이후와 1939년 이후 한인(고려인)으로 분류된다.

칼미키야는 칼미키야 민족에게도 강제 이주의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땅이다.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준가리아 지역에 살던 몽골계인 칼미키야 민족은 17세기 청 말기부터 유라시아 지역에서 카스피해 연안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청 제국 중심이던 중부 유라시아 지역의 국제관계 패러다임이 격변하던 19세기에 정착지에서 밀려나 이곳 칼미키야공화국 곳곳에 정착한다. 현재는 인구 275,000명의 칼미키야공화국으로 러시아 연방 15개 공화국 중 하나다. 수도 엘리스타에는 102,000명이 살고 있다. 공화국 전체 인구의 57%는 칼미크인(칼미키야 민족)이고, 30%는 러시아계, 나머지는 볼가타타르, 크림타타르, 카잔타타르, 독일계와 우크라이나계 그리고 고려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로 칼미크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2023년 겨울 칼미키야공화국의 바람이 유독 날카롭게 느껴지지만 아픈 역사로 강제 이주의 땅을 거쳐 간 동포의 마음보다는 덜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칼미캬야공화국으로 가는 길, 건조 기후인 초원지역이다.]

[칼미캬야공화국으로 가는 길, 건조 기후인 초원지역이다.]


수도 엘리스타의 대표적인 고려인협회 '유산'에 대해서
앨리스타를 대표하는 고려인협회 '유산'은 현재 박 나탈리아 겐나지브나 회장을 중심으로 운영 중인 단체로 현재 약 70명의 고려인이 모여 활동하고 있다.

'유산'은 2021년 9월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엘리스타에 거주하는 54명의 고려인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졌는데, 한국의 전통과 문화 보존을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박 나탈리아 회장은 말했다. 한국 전통을 지키고자 매년 새해가 되면 엘리스타를 포함한 공화국 내 고려인 어르신과 젊은 세대를 초대하며 한국의 전통과 K-POP이 어우러진 콘서트를 열고, 명절 음식을 요리하고, 한복을 입으며 전통 명절을 보낸다고 한다. 인근 볼고그라드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 행사 등에도 방문하는 등 인근 지역 내 고려인 커뮤니티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로스토프나도누 국립문화센터와 한국교육원(교육원장 장인영)과도 긴밀히 협조 중이라고 한다.

카잔 내 고려인 커뮤니티도 현재 모국어의 습득과 이해는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고민 중인 주요 문제인데, 엘리스타의 칼미키야공화국 내 고려인 커뮤니티 '유산'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지 쉬꼴라와 로스토프나도두 한국교육원 등을 통해 수업하며 학습서를 구입하고, 선생님을 육성 중이다. 이와 관련 2022년 10일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 카잔연방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연구소장 고영철) 주관, 주러시아 대한민국대사관 로스토프나도누 한국교육원 주최로 열린 [러시아 한국어 채택학교 교원 워크숍]에 엘리스타에서도 한국어 채택학교 쉬꼴라 및 대학의 엘리스타 지역의 교원 5명이 참여하여 연수받기도 했다.


[러시아 한국어 채택학교 교원 워크숍 (2022년 10월 19일~22일, 러시아 카잔)]

[러시아 한국어 채택학교 교원 워크숍 (2022년 10월 19일~22일, 러시아 카잔)]


유산을 이끄는 박 나탈리아 회장은 우즈베키스탄 출신인데 러시아 사마라로 유학 왔다가 현재의 남편을 만나 16년 전 엘리스타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남편은 칼미키야 민족으로 이들 부부는 옷 가게를 운영 중이다.

'유산' 외에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인 고려인 청년협회인 '댄스 54'는 50여 명의 고려인이 모여있는 젊은 고려인 모임이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설날과 추석 등 한국 고유의 명절 축제를 개최하며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가는 중이다.


[엘리스타의 고려인협회 '유산' 대표 박 나탈리아(왼쪽)과 카잔연방대학교 고영철 교수]

[엘리스타의 고려인협회 '유산' 대표 박 나탈리아(왼쪽)과 카잔연방대학교 고영철 교수]


칼미키야공화국의 고려인에 대한 기록: 칼미키야의 고려인 연구자인 남루예바 루드밀라 바실레예바 부교수의 연구와 고려인 협회 '유산' 회원들의 증언에 대해서

칼미키야공화국의 고려인협회 유산이 만들어지기 전 이미 이곳에는 고려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칼미키야공화국으로의 고려인에 대한 이주와 유입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는 러시아 사회과학아카데미(칼미키야공화국) 소속의 문화사회학/농촌사회학을 연구 중인 남루예바 루드밀라 바실레예바(Намруева Людмила Васильевна) 부교수가 연구 중이다.

남루예바 루드밀라 부교수가 연구한 고려인에 대한 자료와 2023년 2월, 고려인협회 '유산'이 증언한 이곳 고려인들에 대한 활동을 기록해본다.

(1) 1954년 칼미키야공화국에 최초로 정착한 고려인, 이 콘스탄틴 바실례비치
이 콘스탄틴 바실례비치는 1954년 칼미키야에 도착한 최초의 고려인이다. 그의 딸 이 갈리나 콘스탄찌노브나에 따르면 부친 이 콘스탄틴은 1951년 북-오세찐스키국립사범대학 역사학과를 졸업 후, 칼미키야의 라간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당시 소비에트 공산당은 칼미키야 수도 엘리스타에서 북동쪽으로 250km 떨어진 곳에 볼가강의 물을 끌어들여 벼 농사로 경제를 윤택하게 할 목적으로, 1957년 카자흐스탄의 농업 전문가 '김 게리 콘스타찌노비치'를 초청하여 운하를 연결하는 토목공사를 시작했다.

이후 집단 농장을 세우기 위해 건설전문가, 농업 이민자를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사할린에서 초청하게 되었다. 집단농장은 악짜브리스키 라이온의 잔가르 마을에 '바스호드'라는 이름으로 1968년 처음 조직되었고, 2번째는 1972년 '깔미스키', 3번째는 '50렛악따브랴'가 1975년 설립되었다. 이때 근로자 수는 1,500여 명이었다. 현재 3번째 농장은 국영농장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 2번째 농장은 주식회사가 운영하고 있고 전체 고려인 농업 종사자 수는 500여 명 정도이다.


[2023년 칼미키야고려인협회 '유산'의 모임에서 발언 중인 고려인들]

[2023년 칼미키야고려인협회 '유산'의 모임에서 발언 중인 고려인들]


(2) 에세이스트 허가이 블라지미르 영화예비치, 그리고 그의 저서들
'허가이 갈리나 블라지미르브나'라는 할머니는 자신의 부친 '허가이 블라지미르 영화예비치'가 저작한 '고려인 재정착의 어린 시절 기억(2013)', '큰 잔디가 있는 쿠르간의 대초원에서(2015)'를 가지고 고려인협회 '유산'의 모임을 찾았다.

부친께서는 목축 전문가인데 우수리스크로부터 강제 이주와 그동안의 삶 그리고 다시 극동 지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 등이 담긴 소책자였다. 저자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중등학교 졸업 후 모스크바농업대학을 졸업한 수재이고,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와 어머니 이 소피아와 결혼한 후 1956년 칼미키야로 들어와 정착했다.

허가이 블라지미르의 기록물은 논문 형식을 빌린 에세이 형태로 이를 자세하게 번역해보면 한인 역사에 도움이 될 내용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부성이 '영화예비치'인데 이것은 구소련 정부가 부성을 추가하라고 해서, '영화'라는 조부의 이름에 '예비치'라는 격식을 넣어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세이스트 허가이 블라지미르의 저서들]

[에세이스트 허가이 블라지미르의 저서들]


(3)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인 칼미키야의 고려인들
비단 이들만이 칼미키야의 고려인 사회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고려인 백화식(러시아 이름: 유리 세르게예비치) 씨는 1946년생으로 사할린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건축대학을 졸업(1968~1972)한 건축기사로서 1973년 악짜브리스키 라이온의 칼미스키의 집단 농장에 취업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 집단농장 지역에서 엘리스타로 이사하게 되었고, 부부를 제외한 모든 자녀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음악계와 정치계에서 활동 중인 고려인도 있다. 칼미키야의 고려인 3세 김 메르겐은 칼미키야 수도 옐리스타의 시의원을 역임하였고 '칼미키국립오케스트라' 성악 단원으로 활동하는 사회 문화계 인사이다.


[고려인 협회 '유산'(왼쪽), 고려인 현지 조사를 지속할 칼미키야대학교 석사과정 학생들과의 만남(오른쪽)]

[고려인 협회 '유산'(왼쪽), 고려인 현지 조사를 지속할 칼미키야대학교 석사과정 학생들과의 만남(오른쪽)]


헤어짐은 결국 기쁨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것
러시아 남부의 칼미키야공화국은 한반도와 물리적인 거리는 가깝지 않지만, 마음만은 그 어떤 만남보다 가까웠다. "고국에서 오신 분을 엘리스타에서 직접 만나니 한국이 가까이 있는 것 같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뵌 것처럼 아주 기쁩니다. 자주 오시기를 부탁합니다."라며 고려인들의 헤어짐의 인사에는 기쁨의 다음 만남의 기약이 담겨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동포애가 지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사회과학적인 측면의 한인에 대한 과거의 기록물의 연구도 함께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E.H.카의 역사관을 오늘만큼은 결코 부정하고 싶지 않다.


[카잔연방대 출판 한국 역사, 문화사, 문학, 유교 도서와 한국 달력 등 선물을 증정 중인 카잔연방대 고영철 교수]

[카잔연방대 출판 한국 역사, 문화사, 문학, 유교 도서와 한국 달력 등 선물을 증정 중인 카잔연방대 고영철 교수]


사진 및 자료
칼미키야공화국 고려인협회 '유산'
카잔연방대학교 국제관계대학 한국학연구소
러시아사회과학아카데미(칼미키야공화국)  http://www.kigiran.com/NamruevaLV

참고 논문
- Социологический анализ идентичности калмыков и корейцев, проживающих в Республике Калмыкия (по итогам опросов, проведенных в 2009-2010 гг. )
https://cyberleninka.ru/article/n/sotsiologicheskiy-analiz-identichnosti-kalmykov-i-koreytsev-prozhivayuschih-v-respublike-kalmykiya-po-itogam-oprosov-provedennyh-v-2009

- МЕЖЭТНИЧЕСКИЕ СЕМЬИ КАЛМЫКОВ И КОРЕЙЦЕВ: ВЫБОР ЭТНИЧЕСКОЙ ИДЕНТИЧНОСТИ
https://cyberleninka.ru/article/n/mezhetnicheskie-semi-kalmykov-i-koreytsev-vybor-etnicheskoy-identichnosti







강경민
 러시아 강경민
 따따르한글학교 교사
 KBS글로벌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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