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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한국에서 활동 중인 러-한, 한-러 문학번역가 승주연 선생님 인터뷰
구분
문화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3.22

러시아와 한국에서 활동 중인 러시아어 한국어 번역가 승주연 선생님 인터뷰


러시아와 한국 양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러시아어-한국어 번역가 승주연 선생님과 인터뷰를했다. IT 대기업을 다니며 튀르크어 문학 번역가를 꿈꾸던 시절에 "나도 승주연 선생님처럼" 문학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곤 했는데, 실제로 뵙게 된다니 만남 전부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알려져 있듯 러시아에는 슬라브계, 몽골계, 타타르-튀르크계 등 여러 민족이 살고 있고, 여러 민족은 러시아어 문학, 몽골어 문학, 타타르어 문학, 바시키르어 문학, 크림 타타르-튀르크어 문학 등 다양한 자신들만의 문학을 꽃피웠다. 이들의 각기 다른 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이를 세계 문화유산의 기록물적 가치로 남기기 위해 다양한 언어로 번역하여 여러 세대와 민족에게 읽힐 수 있도록 보급해야 하는 것이 언어를 공부하거나 문학 번역 활동을 하는 번역가의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두 권의 책을 번역한 튀르크어 문학 번역가로서 앞으로 공부하며 나아갈 길이 구억 만 리. 한국과 러시아, 러시아와 한국에서 러시아어-한국어 문학 번역가로 활약 중인 승주연 선생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기록해본다. 한국어에서 러시아어로, 러시아어에서 한국어로 쌍방 언어의 번역을 대단히 매끄럽게 하시고, 상세한 감정의 교차까지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의 문체가 특징인 승주연 선생님 번역서의 팬으로서 존경심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어-러시아어, 러시아어-한국어 문학번역가 승주연]

[한국어-러시아어, 러시아어-한국어 문학번역가 승주연]


[질문 1] 승주연 선생님,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러시아와 한국에 잘알려져 있기 때문에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 어떤 계기로 번역가를 하게 되었고 약 몇 권 정도의 책을 번역 출판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원에서 강의하며 통번역하던 시기인 2005년부터 한국 문학 1권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문학 번역가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수입이 일정하지도 않았고, 나 자신의 실력을 검증할 기회도 적었습니다. 처음 문학번역을 시작한 2005년부터 현재까지 약 21권의 한국문학을 러시아어로 번역 출판했습니다. 2019년부터는 러시아어로 쓰인 초역 초판인 러시아 현대 문학을 한국어로 번역 출판하는 작업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질문 2] 문학 번역가로 볼 때 21권의 역서는 적은 수가 아닌데요. 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번역서나 작업 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작품마다 작업 시 어려운 점들이 있기 마련인데요, 예를 들어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번역했을 때 조울증을 앓고 있는 소설의 배경에 따라 질병에 대한 각기 다른 명칭을 정확하게 번역해야 했습니다. 특히 의사인 현지인 독자가 읽었을 때도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가독성도 좋아야 하고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질병 등의 의학용어 이외에도 물리학, 법학 분야의 전문 용어도 꼼꼼히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작업해야 했습니다.


[승주연 번역가의 역서들]

[승주연 번역가의 역서들]

얼마 전에 넘긴 책으로는 초역 초판되는 번역서이기도 한 러시아 현대 문학 '라우르스트'라는 작품인데요. 정교회와 관련된 용어, 배경지식이 필요한 작품으로 정교회 성인과 성자의 이름, 성가 명칭 등을 하나하나 확인해가며 작업해야 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정교회가 있으나, 한국 정교회는 천주교에서 번역한 성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로'라는 단어도 '신부', '원로' 등 보직의 명칭이 다를 수 있거든요. 명칭도 정확해야 하고, 한국어로 이 명칭을 어떻게 발음하고 읽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에는 축일이 많습니다. 이 축일은 또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정교회의 금식 기간은 어떤 기간으로 번역해야 하는가 등을 확인하는 작업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고대 슬라브로 현재의 러시아어와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정교회 신부님을 찾아뵈어 배경지식을 쌓아가며 번역을 진행했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정교회의 성찬 예식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어떻게 먹고 등 이러한 내용을 정확하게 번역해야 독자는 이 소설을 머리로 그려가며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정교회 신부님으로부터 이콘 설명을 듣는 중인 승주연 번역가]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정교회 신부님으로부터 이콘 설명을 듣는 중인 승주연 번역가]


즉, 문학 번역을 할 때, 문학의 배경과 분야의 전문가에게 연락해서 용어와 배경지식 스터디를 병행하는 편입니다. 2021년 '비행사(원제: Авиатор)' (예브게니 보돌라스킨(Водолазкин, Евгений) 저, 2021년 출판)을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소설의 배경이 되는 비행기에 대해 알아보고자 조사하고, 전문가를 통한 배경지식 습득과 전문 용어 조사를 하며 이 작품을 번역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 참고로 이 책은 [2018 클리오 역사문학상], [2019 북스타 문학상], [NOS 문학상 최종 후보작], [러시아 문학번역원 번역지원금 선정작] 및 [러시아 최고 현대문학에 수여하는 빅 북 어워드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질문 3]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의 학생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공부했고, 언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관용어 및 관용어의 명언으로, "지혜의 슬픔"에 있는 명언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당시 공부하며 주말마다 종교 활동을 위해 교회에 출석했는데요, 목사님의 설교를 예배 일주일 전에 번역 작업을 했고, 예배 통번역하는 일을 약 1년간 했었습니다. 번역할 때는 항상 원어민에게 보여주고 검수받았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1년간의 경험이 번역가로서의 역량을 개발할 수 있었던 엄청난 시간이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 이후, 2005년부터 시작한 공지영 작가의 [봉순이 언니]는 2006년에 번역, 2014년에 출판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졸업 당시(왼쪽), 재학 시절(오른쪽)]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학교 졸업 당시(왼쪽), 재학 시절(오른쪽)]


[질문 4] 러시아 생활 중 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러시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약도 먹고 했는데 통증이 가시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갑자기 맹장이라며 수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수술을 포함해서 약 10일 입원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 생각보다 수술 금액이 상당히 많이 청구되었는데, 보험료 커버가 되지 않는 여름 방학 기간이라 어려움이 있던 찰나 아프리카 유학생 출신인 의사 선생님께서 병원비를 지원해 주셔서 감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러시아에서 좋은 기억이 많습니다. 작은 동양인이 러시아어를 배우고 말하면서 열심히 산다며 교수님들도 다 예뻐해 주셨고, 공부하는 1년간 잠시 방황하던 때에도 제가 수업을 열심히 잘 듣고는 있는지, 참여는 잘하고 있는지 교수님들께서 저의 감정 하나하나까지도 챙겨 주신 덕분에 이방인으로 낙오하지 않고 러시아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즉, 러시아에서 배운 건 사람들과의 관계인데요. 겉으로 보기에 러시아 사람들은 잘 웃지도 않고 무뚝뚝해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친구가 되면 대단히 진심으로 대합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러시아 작가로 초청된 알리사 가니에바와 승주연 문학번역가, 역자로 참여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러시아 작가로 초청된 알리사 가니에바와 승주연 문학번역가, 역자로 참여했다.]


[질문 5] 관계, 저도 이 부분에 동의합니다. 제가 볼 때도 러시아 사람들과 진심으로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진정한 친구가 되면 그 우정의 끈을 오랫동안 끌고 간다고 느꼈습니다. 이와 관련된 경험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한국과 러시아 양국에서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다 보니 러시아의 공공기관인 러시아 국립도서 협회(Russian Book Union, Российский книжный союз)와 함께할 일이 많습니다. 러시아 국립도서 협회 담당관인 마르가리따 알렉세예브나(Маргарита Алексеевна)는 해마다 러시아의 초콜릿이며 책이며 소소한 것들을 선물로 보내주곤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작은 선물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인간관계에서의 관심과 성의를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1월, 갑자기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그녀의 딸이 저에게 연락했습니다. 러시아어로 엄마가 없다고… 저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던, 출판계 관계자이자 서로 안부를 물어보고 일상을 나누던 친구였기 때문에 대단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지금은 그녀의 딸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 러시아와 한국 양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러시아 국립도서 협회 이외에도 한국문학번역원 등과도 업무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번역가 대표로 발제 중인 승주연 문학번역가]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번역가 대표로 발제 중인 승주연 문학번역가]


[질문 6] 번역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가장 먼저 러시아와 한국의 번역 현황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러시아 고전은 많이 읽히고 사보는 보증수표와 같은 분야로 특히 19세기 전후로 활동한 체홉(Чехов, Антон Павлович), 고골(Гоголь, Николай Васильевич), 똘스토이(Толстой, Лев Николаевич), 고리끼(Максим Горький), 도스또예프스키(Достоевский, 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등의 작가가 대표적입니다. 대단히 훌륭한 고전 문학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21세기 현재를 살며 훌륭한 작품 활동 중인 재능 많은 러시아 작가도 대단히 많습니다. 세르게이 차르그노프(Сергей Чаргнов), 에브게니 브로나(Евгений Врона), 구젤 야시나 (Гузель Ясина)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루드밀라 울리쯔까야(Людмила Улицкая) 등 그 이름을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20세기 러시아 문학가도 많고, 번역하고 싶은 책도 많습니다. 번역이라는 것은 훌륭한 번역도 중요하지만, 에이전시와 출판사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거든요. 또 번역서가 1권 출판되기까지 에이전트-출판사-작가 대변인-현지 출판사 등 거쳐야 하는 이해관계자도 많다 보니 번역가 스스로 번역하고 싶다고 해서 번역서가 출판될 수 있는 구조라고 보기 어렵고, 생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하나 기회가 된다면 거론한 20세기의 러시아 문학가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 출판해 보고 싶습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러시아 작가로 초청된 알리사 가니에바, 승주연 문학번역가는 알리사 가니에바의 [상처받은 영혼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러시아 작가로 초청된 알리사 가니에바, 승주연 문학번역가는 알리사 가니에바의 [상처받은 영혼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러시아(어) 디자인 삽화 책 1권, 튀르크어(터키어, 튀르키예어) 책 1권을 번역 출판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번역서 1권이 출판되기까지의 절차가 절대 쉽지 않다는 말은 공감되었다. 번역가로 필요한 역량에 대해 조언을 구했는데, 선생님께서는 학생 때 돈이 생기면 사전류인 속담 사전, 반의어 사전, 동의어 사전, 2권으로 된 문법 사전 등을 구입하고 공부했다며 모국어와 번역하고자 하는 도착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십년지기 공역자와 함께 한국문학 번역상을 받은 승주연 문학번역가]

[이십년지기 공역자와 함께 한국문학 번역상을 받은 승주연 문학번역가]


[승주연 문학번역가와 함께]

[승주연 문학번역가와 함께]

사진 출처: 직접 촬영, 승주연 문학번역가 제공





강경민
 러시아 강경민
 따따르한글학교 교사
 KBS글로벌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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