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꽃은 없어도 놀이는 풍성합니다
구분
문화
출처
스터디코리안
작성일
2023.05.03

'꽃을 본다'는 의미의 한자로 '하나미'라는 일본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꽃놀이' 혹은 '꽃구경'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말로는 왠지 '꽃구경'이라는 말이 좀 더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데 일본에서는 '구경'보다는 '놀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와닿는다. "하나미를 가자"라고 하면 도시락을 준비하거나 먹을 것을 싸 들고 경치가 좋은 곳에서 돗자리를 펴 놓고 앉아 다 같이 담소를 나누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초창기에는 '야유회'로 불렸지만, 이제는 '꽃놀이'로 정착되었다.


햇볕이 따가운 봄 햇살을 맞으며 모두가 한데 어울려 음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꽃놀이'의 왁자지껄함이 완연한 봄을 느끼게 해준다. 너무 바빠 '꽃놀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봄을 완전히 만끽하지 못한 채 여름을 맞아야 한다는, 뭔가 우울하고 손해를 본 듯한 감정이 든다.


동경 민단의 오타지부에서도 코로나로 3년간 중지되었던 꽃놀이가 평화의 섬이라는 뜻을 가진 '헤이와지마'캠프장에서 열렸다. 올해로 창단 74주년을 맞는 오타민단의 꽃놀이는 전국 민단의 행사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가장 '공을 들여 준비하는 행사'답게 올해도 단원들뿐만 아니라 한국어교실과 문화교실의 수강생들이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데리고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행사현장


좀처럼 야외에서 모일 기회가 없는 재일동포들에게 꽃놀이는 단순 '만남의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친목을 도모한다는 명목도 있지만 사실 민단은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꽃놀이를 통해 서로의 끈끈한 연대감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

도시락으로 간단히 때워도 될 점심을 직접 고기를 굽거나 정성스레 준비한 김치나 시루떡, 주먹밥과 샐러드 등을 대접하는 것과 오타 민단에서 장구나 한국의 민요 강좌를 개설하여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국적인 것을 선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문화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한번은 악천후로 개최가 힘들어지자, 근처의 회관을 빌려 행사를 치르기도 했는데 이렇게 주변에 한국문화와 한국을 홍보하다보니 민단의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강호 단장은 특히 올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성과가 있었다고 평한다. 재일동포 사회의 세대교체로 참여 인원들이 줄고 있지만 올해도 120여 명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탓에 장소 섭외에서 준비까지 스태프들의 업무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안내장을 발송하기도 하지만 고령자가 많아진 탓에 단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여를 독려하였다.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도록 무료로 진행되는 이벤트였지만, 감사하게도 스태프들의 노고에 기부봉투를 건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행사현장1


'우리 꽃놀이에는 항상 '꽃'만 없다'는 사무장의 표현처럼 꽃의 화사함보다는 녹색의 싱그러움이 주를 이룬 어느 주말의 아침. 입구에서 등록을 마치고 자리를 잡고 앉자, 장구 팀이 자리를 돌며 행사의 포문을 연다. 초등학생부터 80세 어르신까지 함께 연주하는 오타 장구 팀은 이제 일본 전국에서 꽤 명성을 얻고 있다.

연주자 중 이세키 씨에게 오늘 공연에 대해 어땠는지 여쭤보았다. "야외라 옷을 갈아입을 장소가 마땅찮아 붉은 티셔츠를 입고 하는 것이 좀 아쉽지만, 꽃놀이 행사는 제일 좋아하는 무대예요. 관객들이 연주를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왠지 몸으로 느끼며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행사현장2


한국어 교실에 다니다 장구 소리에 이끌려 장구 팀에 합류하게 된 이세키 씨는 꽃놀이 행사는 다른 무대공연과 다른 흥이 느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공연 모습을 보고 초등학생인 손녀까지 같이 팀에 들어와 장구채를 집게 되었다. 올해는 특별히 민요팀의 공연도 열렸다. 모두 어느 정도 배를 채운 후, 아이들의 풍선 터뜨리기 게임과 어른들의 '노래자랑' 시간이 흥겨움을 더해준다. '너무 옛날 노래만 많다'는 볼멘소리가 참가자들의 세대교체를 느끼게 해 주는 듯해 앞으로의 과제와 희망을 엿보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강호 단장은 "이렇게 행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재정적인 여유와 스태프들의 사명감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게 없어서 안 된다.' 대신 '이게 없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기는 언제든지 할 수 있고 가장 쉬운 일입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시고 미래를 향해 힘내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말과 함께 재일동포 사회를 지탱해 온 선배들의 수고에 감사함을 전했다.






엄용주
 일본 엄용주
 재외동포재단 해외통신원 8기
 현) 동경 오타 민단 한국어 강사
 경력) 영상 미디어 기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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