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독일에서 호평 받은 '7년의 밤', 조경혜 번역가가 들려주는 뒷 이야기
구분
문화
출처
KOFICE(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작성일
2017.03.29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주목 받기 전 독일 서점에는 정유정의 <7년의 밤>이 있었다. 2015년 독일어로 출간된 <7년의 밤>은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그 해 독일 언론이 선정한 최고의 스릴러 작품 9위에 올랐다. 독일에서 낯선 작가의 작품이 이정도 주목을 받은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7년의 밤> 원작의 훌륭함이야 두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원작이 독일어로 바뀌는 과정, 번역의 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수상 소식도 없었고 소란스러운 마케팅도 없었다. 원작이 주는 느낌을 독일어로 잘 전달했을 뿐이다. <7년의 밤>은 2015년 최고의 추리소설 9위에 오른 이후에도 지난해 초까지 계속 순위권을 유지했다.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주목 받았다는 뜻이다.

 

10개월에 걸쳐 <7년의 밤>을 독일어로 풀어낸 조경혜 번역가는 그 공을 인정받아 제14회 한국문학번역상을 받았다. 독일 예나(Jena)에서 조경혜 번역가를 만나 번역의 뒷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독일어로 번역된 한국추리소설 '7년의 밤'

 

<독일어로 번역된 한국추리소설 '7년의 밤'>

'7년의 밤'을 번역한 조경혜 번역가


<'7년의 밤'을 번역한 조경혜 번역가-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7년의 밤>이 독일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어떤 계기로 번역을 하게 되셨나요?


이전에 독어로 번역에 출간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보고 독일 출판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어요. 저도 너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샘플 번역을 보냈고 바로 시작하게 되었죠. 현지 출판사에서는 보통 국제 에이전시 등을 통해서 책을 추천 받아 저작권 계약을 하고 번역자를 찾습니다.

 

<7년의 밤> 번역에서는 어떤 부분이 어려웠나요?


소설에 잠수 장비와 기술, 댐 설비, 야구까지 전문 분야의 용어들이 많아서 저 스스로 먼저 이 지식을 독일어로 습득해야 했어요. 독일 사람들은 또 축구는 잘 알지만 야구는 별 관심이 없어요. 간단한 야구 용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 부분을 잘 옮겨야 했습니다.


시제 문제도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한국어는 '했다‘, '했었다‘ 정도 이지만 독일어는 현재완료, 과거, 과거완료 등 시제가 세분화 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이 현재에서 7년 전 2주 동안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 등장인물이 과거를 회상하다가 갑자기 현재로 돌아오는 등 여러 시간 층에 있는 이야기잖아요. 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차이를 두어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았죠.


한국 문학의 다채로운 언어를 번역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던데요.


제가 번역을 첫 시작했을 때는 '의역'하는 것에 대한 갈등, 걱정이 많았습니다. 작가의 텍스트를 그대로 옮겨야 하는데 이걸 번역자가 다른 단어로 바꿔도 되나 하는 고민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저도 용기를 좀 가지게 됐어요. 전반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다면 단어 하나 하나에 연연하지 않고 포기해야 하는 건 포기를 하는 것으로요.


지금은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번역하고 있는데, '탁탁', '휙휙', 이런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습니다. 운율을 살려 의도적으로 더 많이 사용을 하신 거 같아요. 이게 독일어로 그대로 번역을 하면 '만화책' 느낌이 많이 납니다. 이런 경우엔 의성어 느낌이 포함된 동사를 쓰거나 모국어 사용자에게 가장 적확하게 다가오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독일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번역을 하시는 건데요, 번역가들의 처우는 어떤가요?


대부분의 계약서가 출판사에 유리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번역가들은 사실 이름을 남기는 걸로 만족하는 거죠. (웃음) 인세도 책이 최소 2-3만 부 이상 팔리고 나면 받을 수 있는데, 한국 문학으로는 결코 쉽지 않죠. 번역을 해서 보낸 이후론 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번역 장당 기준 비용이 있어요. 경험이 있을수록 장당 비용을 좀 더 높게 해서 받을 수가 있어요. 1년에 소설 2권을 번역하면 '생계'는 꾸릴 수 있는 정도에요. 물론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 전일제로 번역 일을 계속 해야 하겠죠.


<채식주의자>가 상을 받으면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의역과 오역 논란이 있었습니다. 한국 문학을 한국인이 아닌 도착언어 모국어자가 번역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채식주의자>를 계기로 한국인 번역가 보다는 도착 언어 모국어자가 번역하는 걸 더 선호하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물론 각자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착어 모국어 사용자인 경우는 한국어의 감정을 놓치거나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느낌을 모국어로 유창하게 표현할 수 있죠.


두 개의 언어를 모국어수준으로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에 조금이라도 확신이 서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문을 구하면서 작업을 해야겠죠. 저도 원본 한 단락을 읽고 독일어 번역을 읽은 후에 이 느낌이 아니고 뭔가 좀 미흡하다 싶을 경우엔 제 독일인 남편과 토론을 많이 해서 상황이나 배경, 감정 등을 설명하고 가장 적확한 표현을 끌어내려고 노력합니다. 번역이 어느 정도 틀이 잡히면 여러 사람들에게 읽게 합니다. 모국어 사용자들이 '이건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 라고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건 이해가 잘 안 된다' 라고만 얘기해줘도 그 부분은 다시 고민을 해야한다는 거니까 도움이 되죠. 하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교정을 보고 제안과 질문을 해도 마지막 결정은 결국 제가 하는 거죠. 번역가로서의 제 소신에 맞춰서 이 정도면 되겠다 하고 만족스러울때까지 고뇌를 하는 거예요.


독일에서 한국 문학은 거의 불모지라고 하는데요, 어느 정도 소개가 되어 있나요?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한국에서 유명한 현대 문학 작가들의 책이 꽤 많이 번역되어 나왔어요. 다만 대부분 한국 문학을 출간한 독일 출판사가 규모가 작아 홍보나 마케팅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책이 나오면 서점마다 책을 한 권씩 다 보내거나 하는 홍보 업무를 하는데, 그런 것을 하기에 좀 힘이 들죠.


독일 독자들의 성향도 영향을 미치나요?


제 주위를 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를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서점도 낯선 작가의 책을 가져다 놓으려 하지 않더라고요. 제가 있는 예나에서도 제가 적극적으로 책을 소개하고 나서야 5권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거 팔리는 데도 몇 주가 걸리더라고요. (웃음) 독일 독자들은 또 자기 취향이 더 확고한 거 같아요. 인기 많다고 다 읽지 않고, 인기가 많은 건 오히려 안 읽는 경우도 많아요.


그럼 <7년의 밤>이 인기를 얻은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독일은 범죄 추리 소설의 팬이 두터운 편입니다. 독일에서 이 분야의 리스트를 선정하는 것도 그 이유겠죠. <7년의 밤>이 독일 주요 미디어뿐 아니라 추리 소설 커뮤니티 등에서도 화제가 많이 되었더라고요.


앞으로 한국 문학이 독일에 더 많이 소개될 걸로 보시나요?


네 그럼요. 특히 <채식주의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을 계기로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사실이고요, 더 많고 다양한 한국 문학이 이곳에 소개되길 바랍니다.

 

독일 아마존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 현대 소설들

<독일 아마존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 현대 소설들>

 

<7년의 밤>이 올랐던 추리소설 리스트는 독일어권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공신력 있는 리스트다. 유력 언론사인 차이트의 이름으로 발표하지만, 심사위원단에는 슈피겔, FAZ, 도이칠란드 라디오 등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주요 미디어 문학 평론가들이 다 모여있기 때문이다. 아마존 독자들도 5점 만점에 4.7를 주며 호평을 이어가고 있다. <7년의 밤>은 1쇄를 모두 판매하고 이제 막 2쇄를 찍었다고 한다. 2쇄를 찍은 것도 고무적인 결과다. <7년의밤>에서 <채식주의자>까지, 요즘 독일에서 들려오는 한국 문학의 이야기가 밝다.

독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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