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카스트 제도(Caste System)’이다. 이 제도는 직업에 따라 사람을 크게 브라만(Brahmins), 크샤트리아(Khsatriyas), 바이샤(Vaishyas), 수드라(Shudras) 네 개의 신분으로 구분한다. 계층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은 불가촉천민(Untouchable)으로 불린다. 아마 책과 영화 등을 통해, 하나의 인격으로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21세기 현재, 인도에서 아직까지 카스트 제도를 찾아볼 수 있을까?
<인도의 카스트 제도 - 출처 : The Kalros Company>
카스트 제도는 더 이상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도 내에서 일종의 관습처럼 남아있다. 50~60대는 본인들의 자녀가 같은 카스트를 지닌 배우자를 만나기를 희망하여 다른 카스트로 인해 헤어진 젊은 인도 연인들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종교와 카스트가 다르면 인도에서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로맨스 영화가 절로 생각날 따름이다. 그뿐만 아니라 인도인은 ‘성(Surname)’을 통해 서로가 대략 어떤 카스트에 속하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서비스업(세탁, 청소 등) 종사자들의 카스트는 직업이 세습되는 경우를 고려해 봤을 때 더 쉽게 분별할 수 있다. 이제는 카스트가 금전적인 여유로움이나 사회적인 위치와 직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은 문화로 뿌리박혀 있다.
<같은 카스트와 종교를 가진 배우자와 결혼하는 인도인 - 출처 : Wedding Ideas & Planning>
코로나19에 모두 하나 되어 대응책을 마련해도 부족할 판인데, 인도에선 카스트로 인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주에서 운영 중인 격리 시설 요리사 리라와띠 데비(Leelawati Devi) 씨는 《텔레그라프 인디아(Telegraph India)》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의 계급이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로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 격리자들 때문에 힘들다”는 입장을 털어놓았다. 인도 내에서 음식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도 많은데, 이 어찌 복에 겨운 불평이 아니란 말인가. 인도 정부는 4월 말까지 봉쇄조치를 연장하면서, 시설의 격리자들은 일종의 단식투쟁에 돌입한 셈이다. 인도 인민당(바라티야 자나타당, Bharatiya Janata Party, BJP)의 정치인 비제이 두베이(Vijay Dubey) 씨는 직접 격리시설을 방문해 시설이 청결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격리자들을 안심시켰지만, 이들의 불평불만은 쉽게 잠들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카스트 제도 찬성자들은 코로나19의 예방을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distance)가 아닌 ‘카스트 거리두기(caste-distance)’ 캠페인을 해야 하며, 이는 수년 천 전부터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선조들로부터 얻은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육류 및 유제품을 즐겨 먹는 사람들은 채식주의자보다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크다는 루머성 주장도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전문가 빔라오 암베드카르(Bhim Rao Ambedkar) 씨는 “과거 전염병 사례를 돌이켜 봤을 때, 의료시설을 이용하기 어려운 불가촉천민들이 오히려 더 큰 면역력을 갖추고 있다”고 언급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하여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성 - 출처 : The Print>
코로나19는 나이, 인종, 종교 등 모든 여건에 상관없이 발병하는 전염 질병이다. 모두가 코로나 발병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리다 보니, 인도에서도 이런 터무니없는 대응과 주장이 발생한 것이라 예상된다. 현재 우리가 코로나19의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계층분류가 아니라, '협동의 자세'일 것이다. 앞으로 계층 간 구분 없이 한마음 한뜻으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을 잘 마련해 인도의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해본다.
※ 참고자료
《The Print》 (20. 4. 3.) <Practice disease distancing? how India can use corona crisis to kill its caste virus>, https://theprint.in/opinion/practice-disease-distancing-india-corona-crisis-kill-caste-virus/394162/
- 성명 : 고정주[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인도/뭄바이 통신원] - 약력 : 전) 외교부공공외교현장실습원근무(주그리스대한민국대사관) 현) 주뭄바이 대한민국 총영사관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