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꽹과리 울리며 미 평화시위에서 연대감을 표한 LA 한인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0.06.09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시에서 20달러짜리 위조지폐 사용혐의로 체포된 흑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는 백인 경찰관 데릭 쇼빈(Derek Chauvin)의 강경진압으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경찰관은 846초간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압박했고 그 과정에서 조지 플로이드는 질식사했다현장의 진실을 담은 동영상이 퍼지면서, 미국 전역에서는 대규모 평화시위와 더불어 약탈을 동반한 폭동이 벌어졌고 경찰은 이에 강경진압으로 대응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LA의 경우, 마켓과 소매점 등은 폭도들의 약탈을 막기 위해 보호막 나무합판까지 설치했다.


통행금지는 지난 5월 30일부터 5일간 실시됐다. 첫 나흘간은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그리고 통행금지 마지막 날인 6월 3일에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 30분까지 모든 시민들의 외출이 제한됐다. 그동안 코로나바이러스(Covid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내려졌던 외출제한명령에 이어 통행금지까지 이어지다보니 도시 전체가 쥐죽은 듯 조용한 날들이 계속됐다. 그 와중에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헬리콥터가 밤늦게까지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가끔씩 터지는 최루탄 발사소리와 폭도들의 방화로 인한 매캐한 냄새까지 번지는 통에, 시민들은 집안에 머무르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한인 타운 한복판을 지키는 주방위군의 모습<한인 타운 한복판을 지키는 주방위군의 모습>

 

지난 61일에는 드디어 한인 타운에까지 주방위군이 들어왔다. 1992LA 폭동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지역인지라올림픽대로과 웨스턴대로가 만나는 갤러리아마켓웨스턴대로와 9번가 사이의 코리아타운플라자, 6번가와 웨스턴대로의 CGV마당몰 등 무장한 주방위군이 주요지점을 순찰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인들은 어느 정도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통행금지와 폭도들의 약탈, 주방위군의 무력대응에도 불구하고 미국 전역에서 평화시위가 계속됐다. 6일 토요일에는 드디어 한인 타운 중심가인 윌셔파크 플레이스 잔디광장에서도 시위가 열렸다. 라디오코리아가 들어서 있는 건물 앞의 광장은 그동안 월드컵 경기가 있을 때면 한인들이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이른 아침부터 모여서 단체로 관람하며 응원했던 곳이다.

 

통신원은 지난 한 주 동안 미국 전역에서 펼쳐지는 집회와 시위를 보면서 한국의 촛불집회와 너무 비교된다는 생각을 했다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집회는 경이로울 정도이다몇 가지 특징을 예로 들어보자면, 첫째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 집중적으로 모인다. 둘째 집회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집회 주도자에게 일정금액을 기부해 집회비용을 마련하고, 모니터와 음향기기 등을 임대해 더욱 효과적인 집회를 기획한다. 셋째 참가자들 역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도구를 각자 추가로 준비해온다. 넷째 노래와 퍼포먼스가 함께하며 시민들을 단합한다. 다섯째 집회 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이런 점들은 전 세계가 칭송하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만한 ‘집회시위의 한류’를 만들어냈다. 특히 참가자들이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어깨동무를 하며 생성되는 연대감과 동지애는 한국 집회와 시위의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내 집회에선 이런 점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있던 차에, 66일 한인 타운에서 열린 집회는 미국 내 여타집회들과는 차이가 있었다'BLM(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을 지지하는 아시안·태평양 주민 모임'이 주최한 이날 시위에는 주민 8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경찰폭력과 인종차별 철폐를 촉구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시위 중간에 무릎을 꿇고 9분 가까이 침묵한 채 플로이드를 애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백인경찰의 무릎에 8분 46초간 목이 짓눌려 숨진 플로이드의 고통을 기억하자는 의미였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흑인의 목숨도 소중해요', '한국인들은 흑인들과 연대합니다', '정의 없인 평화 없다등의 한국어 구호를 적고 호랑이와 태극기 등을 그려 넣은 메시지보드를 들고 시위를 했다이날 집회가 다른 곳과 차별됐던 가장 큰 점은 한인청년 풍물패들이 꽹과리와 장구, 북을 울리며 흥을 돋운 것이다. 한국문화의 흥과 성숙한 집회문화가 미국에 역수출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집회에 나온 다른 이들도 풍물에 매혹된 모습이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여성, 다니아(Dania)는 “한국의 타악기들은 심장을 더욱 뜨겁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살인경찰 물러가라, 헤이헤이 호우호우((These killing cops have got to go, hey hey, ho ho.)”라는 구호에 꽹과리와 북소리가 더해지자 온몸으로 리듬을 타며 신명나게 목소리를 높였다.

 

블랙 파워 설루트를 직접 그려 나온 마이클 무뇨즈(우)와 정의 없인 평화 없다는 한국어 메시지를 들고 있는 대니 고그스(좌)<블랙 파워 설루트를 직접 그려 나온 마이클 무뇨즈()와 정의 없인 평화 없다는 한국어 메시지를 들고 있는 대니 고그스()>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드는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수신호인 블랙 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를 그려온 참가자도 있었다마이클 무뇨즈(Munoz)는 대형 액자에 블랙파워 설루트를 그렸고 뒷면에는 목소리를 내고자 시위한다변화를 만들고자 시위한다(People protest to be heard, people protest to make change happen)”라는 메시지를 적어 왔다며 미국에서 불공정·부정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자 참석했다며 이번 시위로 미국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그의 친구인 대니 고그스(Danny Ghoghs)소수민족인 우리 모두 다 기본적으로 인간이다인간이 인간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미국도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마스크도 했고내가 준비해온 메시지보드 외에는 아무 것도 손으로 만지지 않아요다른 시위자들과 사회적 거리두기도 잘 준수하고 있어요.”라고 응답했다하지만 이날 집회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집회의 초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보도의 제목은 “한인들도 미 평화시위 동참.. 흑인여성 ‘한인 이미지 확 달라져’”였고 '1992년 LA 폭동과 같은 사태를 방지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흑인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주고 평화적 시위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한인과의 인터뷰를 인용하기도 했다.

 

목소리를 내준다거나 우리 한인들이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태도는 집회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인종갈등은 이러한 자세로는 해결될 수 없다한인들 역시 인종갈등과 인종차별의 희생자들이다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을 흑인들에게만 국한된 인종차별이라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또 다른 인종차별이다이번 사건의 본질은 경찰공권력의 남용이었고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포함한 소수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었다이렇게 소수에 대한 연대를 확장시켜나가야지, “우리는 괜찮은데 흑인 커뮤니티가 어려우니 좀 도와줄게” 라는 자세로는 이 골 깊은 갈등을 풀어낼 수 없다.


한 한인 청년은 '우리도 흑인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일원'이라며 '경찰 폭력에 희생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고자 나왔다.”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다. 미국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낸 국가로, 서로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호존중을 하지 않는다면 그 갈등을 피해갈 수 없다. 그리고 이는 다양성이 커진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강조되어야 하는 덕목일 것이다.

 

시위와 집회를 신명나게 이끌어준 북<시위와 집회를 신명나게 이끌어준 북>

 

둥둥 북소리와 함께 구호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둥둥 북소리와 함께 구호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울렸다>

 

확성기를 들고 의견을 발표하고 있는 한인 집회 참가자<확성기를 들고 의견을 발표하고 있는 한인 집회 참가자>

 

윌셔파크 플레이스 잔디 광장에 모여든 집회 시위 참가자들<윌셔파크 플레이스 잔디 광장에 모여든 집회 시위 참가자들>

 

'숨 쉴 수가 없어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입고 나온 참가자<'숨 쉴 수가 없어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입고 나온 참가자>

 

한글 메시지를 들고 서 있는 한국인 참가자<한글 메시지를 들고 서 있는 한국인 참가자>

 

태극기를 그려 넣은 연대 메시지<태극기를 그려 넣은 연대 메시지>

 

한글로 적힌 '정의 없이 평화 없다'의 메시지를 들고 있는 한인참가자(좌)와 '모든 것이 아프다.'는 메시지를 들고 있는 히스패닉 참가자(우)<한글로 적힌 '정의 없이 평화 없다'의 메시지를 들고 있는 한인참가자(좌)와 '모든 것이 아프다.'는 메시지를 들고 있는 히스패닉 참가자(우)>

 

자신이 직접 쓴 메시지보드를 들고 나온 참가자<자신이 직접 쓴 메시지보드를 들고 나온 참가자>

 

한인 청년이 황색 호랑이와 검정색 호랑이가 그린 그림에 메시지를 적어 들고 있다<한인 청년이 황색 호랑이와 검정색 호랑이가 그린 그림에 메시지를 적어 들고 있다>

 

'살상을 멈추라'는 등의 영문 메시지를 들고 서 있는 참가자들<'살상을 멈추라'는 등의 영문 메시지를 들고 서 있는 참가자들>

 

※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 약력 : 현재)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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