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통신원 소식

현대사까지 이어지는 중국 동북공정
구분
사회
출처
연합뉴스
작성일
2020.12.15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10월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인민지원군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대회에서 “한국 내전에 미국이 무력으로 간섭해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를 결심했다”고 연설했다.

역사적 사실과 한국인의 상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관점을 중국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밝히자 한국에서는 거센 비판과 항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별다른 사과나 정정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중국 내 한국전쟁 관련 기념관들은 시 주석의 발언과 비슷한 입장을 계속 선전하고 있다.

70년 전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은 중국이 한국 고대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 한 2000년대 초중반의 동북공정을 떠오르게 한다. 당시 한국인들은 중국을 강하게 성토했고 정부도 중국 당국에 항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비판의 목소리가 줄어들자 이제는 버젓이 동북공정의 결과물을 내세우고 있다.

만리장성이 허베이성 산해관을 넘어 동북 3성과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랴오닝성 박물관에 전시된 지도에는 고대 만리장성이 평양 부근까지 표시돼 있다. 또 명나라 때 장성은 북·중 접경인 랴오닝성 단둥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단둥에 장성 관광지를 만들고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으로 선전하고 있다.


중국 라오닝성 선양의 향미원조열사기념관 설명(위), 단둥에 장성 관광지를 만들고 ‘만리장성의 동쪽 시작점’으로 선전(아래)  이뿐만 아니라 랴오닝성 박물관은 북만주에 세워진 고대 부족국가 부여에 대해 “한나라와 군신 관계를 유지했다”고 기술하는가 하면 당나라 시기를 다룬 지도에는 발해가 당의 통치 지역이었던 것처럼 ‘발해도독부’로 표기해놓았다.

  중국은 최근 들어 고대사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만주 지역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자국 역사로 편입하는 한편 공산당 투쟁사 위주로 정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표기했으며, 청산리전투 기념비 건립 취지문도 떼어냈다.

  시 주석 집권 이후 공산주의 홍색(紅色) 교육과 소수민족의 한족화(漢族化)를 강조하는 가운데 미·중 갈등 국면을 맞아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워 내부 결집을 다지려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며 자국 국경 안에 있는 56개 민족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로 보는 통일 다민족국가론을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은 9월 말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의 집단학습에서 “고고학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정신적 힘”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고고학 성과에 대한 발굴·정리·해석사업을 잘하고, 국제 고고학계에서 중국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시대를 넘나들고 민족과 지역을 가리지 않는 중국 중심주의 역사관은 수천 년 전부터 중국과 깊은 관계를 맺어온 우리 민족과 마찰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더욱이 현대사에 관해서는 남북한이 공동 대응하기도 쉽지 않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차병섭 연합뉴스 선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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