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신형근 총영사 / 츄고쿠신문 / 기고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1.12.12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3849&c=&t=&pagenum=1&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조선통신사의 현대적 복원
신형근 주히로시마총영사 / 2011.11.27 / 츄고쿠신문



가까운 국가와의 관계를 볼 경우, 대부분 갈등의 측면을 떠올리기 쉽다.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는 백년전쟁을 떠올릴 수 있으며, 영국과 독일의 경우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양국관계가 회복될 전망도 기대하지 못할 정도로 격한 전투를 반복해 왔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복잡한 갈등을 경험해 온 구주(歐洲)의 국가들은 20세기 후반 이후, 단일공동체형성을 이루었으며, 경제공동체로서의 현저한 진전을 이루었다.
교류와 협력, 그리고 통합으로의 지향성을 명확하게 보여주었으며,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을 현실화(現實化)한 구주(歐洲)의 예(例)는 한일(韓日)관계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방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과 일본은 이미 이러한 전례(前例)를 가지고 있다. 조선(朝鮮)과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연결했던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야말로, 한일의 역사(歷史)에 있어서 이와 같은 교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총 12회에 걸쳐 행해진 조선통신사의 파견은, 실제로는 양국의 관계정상화와 정치적 안녕(安寧)을 꾀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으로서는 자국의 포로들을 송환하기 위해, 또한 두 번 다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본 측에 다짐을 받아야 했으며, 일본으로서는 아직 전국(全國)적으로 권력기반이 약했던 신생(新生) 도쿠가와막부(徳川幕府)가 외국 사절을 맞이하면서, 그 권위를 보여줄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통신사 파견은 문화교류의 장(場)으로 발전해 오게 된다. 일본의 유학자(儒學者)가 주자학(朱子學)을 이유로 사절단을 방문하고, 화가들은 행렬의 모습을 화폭(畵幅)에 넣었다.
한편으로는, 조선의 문인관료들은 오사카(大坂), 에도(江戶)의 발전하는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아, 당시 지역을 두고, 시모카마가리(下蒲刈:현 구레시 시모카마가리쵸)를 「고치소이치방(御馳走一番):가장 대접을 잘 받았던 곳」로 토모노우라(鞆の浦:현 후쿠야마시 토모마치)를 「닛토다이이치케이쇼우(日東第一形勝):일본 동쪽지방에서 으뜸가는 경치」라고 치켜세울 정도로 일본의 문화적 역량을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전근대(前近代)의 동아시아에 있어서 특별한 이문화 교류라고 말 할 수 있다.
이미 에도시대 마츠리(祭り:축제) 속에는 조선통신사 행렬이 재현되고 있었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갓을 쓴 특이한 행렬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간접적으로 조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場)이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선린(善隣)의 이상(理想)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게 새겨졌을 것이며, 도쿠가와(徳川)의 평화와 조선과 일본의 선린관계는 이를 바탕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도 조선통신사행렬의 재현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일양국의 불행한 과거를 딛고, 창조(創造)적으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쌓아가기 위해 필요한 심적(心的) 토대를 제공하는 수단이 된다.
단지, 현재의 조선통신사행렬재현은, 몇몇의 마을과 지역이 서로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결여한 채, 독자적으로 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히로시마(広島)의 시모카마가리(下蒲刈)와 토모노우라(鞆の浦)에서의 행렬재현에 있어서는 필자(筆者)가 정사(正使)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시모노세키(下関)의 행렬재현에서는 부산시의 대표가 바다를 건너와서 정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등, 각각의 지역에서 한일교류는 행해지고 있기에 그건 그걸로 좋다고 본다.
그러나, 어딘가 부족하다. 본래 조선통신사의 행렬은 조선의 수도(首都)로부터 일본의 수도(首都)까지를 묶는 하나의 선(線)을 나타낸 것으로, 역시 선(線)이라는 그 자체에 의의(意義)가 있다고 본다.
필자가 조선통신사행렬 재현행사에 참석하며, 마음속으로 그렸던 꿈은 그러한 것이다. 서울을 출발한 통신사의 행렬이 충주와 경주 등을 경유해 부산에서 대마도(対馬)로, 그 후에 시모노세키, 시모카마가리, 토모노우라 등 세토나이(瀬戸内)의 마을과 지역에 머물며, 오사카를 향하고, 또한 육로의 나카센도(中山道)를 이용해, 도쿄(東京)까지 가는 것이다.
동시에 일본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 한국 내(內)에서의 경로를 조선통신사행렬과 함께 걷는 것이다. 양국의 시민, 특히 젊은이들이 그 행렬의 중심에 서서, 그 기쁨을 서로 나누며 서로의 문화를 존중․수용하며 함께 걸어 나아간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광경이 되지 않을까

양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협조 하에, 우선은 가능한 부분부터 구간마다 연결을 해 나아가자. 그리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는 조선통신사행렬 전체의 현대적인 복원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