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일본] 신각수 대사 / 닛케이 / 인터뷰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2.04.23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3996&c=&t=&pagenum=1&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동아시아 지역 협력을 위한 한일의 역할: 번영의 확보 위해 규범 창조를
신각수 주일본대사 / 2012.4.10 / 닛케이



o 물리적인 통합보다도‘다양성 속의 조화’

o 평화로운 지역환경이 지역협력 진전의 대전제

o 중국의 틀 참가는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


일본은 작년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교섭참가를 결정했다. 이 교섭결과는 향후 태평양시대를 구축하는데 있어 중요한 열쇠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일본은 한일중자유무역협정(FTA)에도 적극적으로 되고 있다.

한편 FTA허브(축)를 지향하는 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과 FTA를 체결하고 있으며 올해는 중국과도 교섭에 들어갈 전망이다. 그리고 중국도 동남아시아각국연합(ASEAN)과 적극적인 FTA정책을 전개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을 망라하는 FTA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FTA 三國志 현상의 배경에는 아시아시대의 도래,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통상교섭(도하라운드)의  부진, 중국의 대두, 미국의 아시아에 대한 재관여, 신흥국의 지위향상 등 여러 요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지라는 그랜드 디자인과 관련돼 있다.

21세기의 큰 흐름은 글로벌화, 지역화라고 할 수 있다. 종래의 국민국가로 대변되는 주권의 개념이 약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질서는 구심력에 의한 통합과 원심력에 의한 분열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지역화의 흐름을 잘 타고 통합으로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동아시아지역협력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89년에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호주 등은 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를 미국과 함께 발전시켰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90년에 역외 각국을 제외한 동아시아경제협력체(EAEC)를 제창했지만, 당시의 美 부시정권은 미국배제 움직임에 강하게 반대해 실현되지 않았다. 클린턴 정권에서 겨우 태도가 유연화돼 ASEAN의 주도로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시작됐다.

1967년 설립된 ASEAN은 냉전종료 후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의 가입으로 동남아시아 지역통합의 중핵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97년에는 아시아금융위기가 한창인 가운데 한일중 3국을 초대해 ASEAN 플러스 3을 개최해 동아시아지역협력의 장도 마련했다. 한일중 3국도 ASEAN 플러스 3에 대한 참가를 계기로 독자적으로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3국협력 사무국을 서울에 설립하는데 이르러 본격적인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체제 구축에 나섰다.

동북아시아협력은 아직 초기로 ASEAN과 같은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는 단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3국의 경제력이나 상호의존도의 고조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발전 잠재력은 크다.

한편 당초 ASEAN 플러스 3체제의 일체성을 강화해 장래‘동아시아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 조치로서 생각된 동아시아정상회의(EAS) 구상은 역외의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포함시키고 나아가 최근은 미국, 러시아를 합쳐 18개국으로 확대했다. 주도권 견지를 노리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의도나 동아시아지역통합의 미래에 대한 복잡한 기로의 지정학적 고려로 당초의 구상과는 멀어져 역외 각국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발전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들 수 있다. 첫째로 최근의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ASEAN이 중핵이 된다는 흐름에 큰 변화는 없다. 이 배경에는 지역의 大國인 일본과 중국의 대항의식이 있다.

둘째로 동아시아는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면에서 다양성이 풍부해 규범적이고 동시에 제도적인 통합이 쉽지 않고, 통합이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물리적인 통합보다는“다양성 속의 융화”를 지향하고 있다.
셋째로 동아시아지역 통합을 이끈 최대의 요인은 지역 전체에서의 경제적 분업의 심화이며 美 캘리포니아대학의 스칼라피노 명예교수가 지적하는 자연적 경제영토(natural economic territory)의 등장이다.

넷째로 역외국가로서 이 지역의 안전보장과 경제에서의 중핵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의 생각의 차이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은 자신이 참가하는 것 보다 높은 레벨의 아시아태평양 지역협력체를 바라는 한편 중국은 역내 국가만에 의한 동아시아협력체를 바라고 있다.

다섯번째로 여러 지역협력의 메카니즘이 겹쳐져 ASEAN, ASEAN 플러스 3, 한일중의 3국 협력, EAS, APEC 등이 병행 발전하는 중층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여섯번째로 개방주의를 내세워 경제체제에 관계없이 어떤 국가에도 열려 있다.

일곱번째로 동아시아공동체의 형성에는 대단히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완만한 지역통합의 형태를 지향할 수 밖에 없다.

동아시아지역협력이 본격화하려면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가 존재한다. 우선 지역의 전략환경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불투명한 전략환경의 안정화와 북한의 핵개발에 의한 위협의 제거를 꾀할 필요가 있다. 미군의 존재로 유지되고 있는 지역의 안전보장을 지역안보체제의 형성을 통해 보완할 필요도 있다. 평화로운 지역환경 없이 순조로운 지역협력의 진전은 바랄 수 없다.

다음으로 대립과 반목이 점철된 20세기 역사와의 화해가 불가결하다. 역사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전개해 나가는 진정한 노력이 요구된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영토, 해양관할권 문제가 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도 중요하다. 특히 이 지역에서 대두하는 민족주의와 융합하면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나아가 경제우선의 지역통합이라도 정치, 문화, 사회, 교육 등의 분야에서 지역협력을 활성화하고 소프트 파워의 면에서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지역협력의 이점을 공유하려면 에너지, 교통통신망, 인프라 등의 전지역적 프로젝트의 추진으로 지역협력의 구체적 성과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 때에는 시장의 흐름에만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역내의 정치지도자가 확실한 비전을 나타내고 그것을 강하게 추진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는 보다 책임있는 역할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무역과 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현재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역내 FTA 네트워크를 조기에 완성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단일의 동아시아 FTA와 아시아태평양 FTA를 지향해야 한다.

발전도상국으로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으로 발전한 한국은 동아시아지역협력 추진으로 일본과 중국,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아시아와 북미 사이에서 교량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역내 대국간 라이벌의식을 고려하면 한국은 이해충돌을 조정하는 좋은 위치에 있다. ASEAN + 3에서도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큰 로드맵을 그리고 구체적인 사업의 발굴과 이행, 나아가서는 EAS의 설립을 주도했다.

한일양국은 활발한 지역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중국이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가 되는 것은 이 지역의 공동이익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중국이 지역협력의 틀에서 만들어진 규범과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2개국뿐인 OECD 가입국으로서 한일 양국은 중국이나 관련국과 함께 여러가지 지역협력체제를 통해 국제법과 국제기준을 기초로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확보하는 지역규범과 지역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