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일본] 신각수 대사 / 마이니치 / 기고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12.04.26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4030&c=TITLE&t=&pagenum=6&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특집 와이드, 한류 붐으로부터 10년. 주일 한국대사와 신오오쿠보를 걷다
신각수 주일본대사 / 2012.3.12 / 마이니치



한류 붐의“성지”인 도쿄 신오오쿠보(新大久保). 여전히 대성황이다. 그러나 불과 10년전 일본과 한국이 월드컵축구를 공동개최한 2002년에는 소녀시대도 KARA도 ‘겨울연가’도 아직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진화를 계속하는 일본 재일 코리안타운을 신각수 주일한국대사(57)와 걸었다. 

검은색의 공용차로부터 신대사가 내려선 곳은 한류배우나 K-POP 아이돌이 방문하는 것으로 유명한 한국 레스토랑‘대사관’앞. 진짜 대사가‘대사관’ 앞에 있다... 무엇인가 신기한 광경이다.

월드컵 개최시인 2002년에 개업, 대회 중에는 주차장에 대형 모니터를 설치한 이 가게, 한국이 아시아 쪽에서 첫 4강에 들어간 밤에는, 새빨간 유니폼 모습의 한국 서포터로 메워졌다고 한다.

“그날 밤, 서울의 광장에서 나와 딸은 빨간 유니폼을 입고, 한국 전국의 700만명 서포터와 함께 가두 중계를 관전하고 있었습니다”. 신대사는 서울대 재학중에 외교관시험에 합격. 1986년부터 3년간 일본에서 근무한 한국 외교통상부의 대표적인‘재팬 스쿨’멤버.“월드컵을 양국에서 공동개최 할 수 있었던 것이 제일 기뻤다”고 회상한다.

그로부터 10년. 지금의 신오오쿠보는‘한류의 테마파크’다. 쇼쿠안토오리와 오오쿠보토오리. 그 두 길을 잇는 골목길에 한국계 음식점이나 잡화상 등 약 350채가 들어차있다. 가게 앞에는 한류 스타의 브로마이드나 K-POP아이돌 포스터. 봄방학 중인 여대생이 한국 화장품을 정신없이 물색하고 있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면서 신대사는 차분하게“한류는 미래를 향한 한일관계가 중요한 자산입니다”. 지난 번 일본에서 근무한 25년 전과는 격세지감이 있다고 한다.“당시 일본인은 마늘냄새를 싫어했기 때문에 김치 먹기를 참는 재일 한국인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보시는 것 처럼 되었습니다”. 음식점 간판에는, 삼겹살에 떡복이, 거기에 호떡. 그야말로 “전철로 갈 수 있는 서울”이다.

신오오쿠보는‘한류 10년’을 응축한 거리다. 한국요리의 칼럼니스트 핫타(八田 靖)씨 (35)에 의하면“10년전 한국계 가게는 50∼80채이었지만, 2003년의 ‘겨울연가’붐을 거쳐 2005년에는 한류 샵이 급증. 나아가 2010년의 K-POP인기로 ‘아주머니의 거리’는 전 세대의 여성을 위한 거리가 되었다.‘젊은이들의 거리에서 노인들의 거리까지’ 응축된 곳입니다”고 한다.

동일본 대지진 재해 직후는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떠나 한때는 고스트타운화 되었지만,“‘해외여행의 자숙무드’가 오히려 도움이 돼 5월의 대형연휴에는 손님이 부활. 지금도 좋은 한류 버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고 핫타씨는 말한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붐이 정착된 것을 잘 알 수 있다. 가게에서 흐르는 BGM에 맞추어 한국어 노래가사를 흥얼거리는 여고생들은“듣고 있는 동안에 외워버렸다”고 한다. 잘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더듬거리면서 한국어를 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대학의 한국어 학습자도 붐의 영향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식품점은 언제나 대혼잡.“홍초(석류 등을 숙성시킨 초)는 어디에 있지”,“이 브랜드를 좋아한다”. 평소 사용하는 간장을 사는 것처럼 여성들이 한국식품 재료를 산다. 붐 초기는 신기해서 사는 사람이 많았었는데.

10대 소녀와 50대 아주머니가 같은 남성을‘좋아’라고 환호하는 이상한 여자의 거리에도 요즘은 젊은 아빠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초등학생 딸이 상품을 고르는 것을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는 ''''겉모습뿐이다‘, ’표층적이다‘고 비판도 받은 한류 붐이지만 시간을 거쳐 깊게 정착된 것 처럼 보인다.

한국 드라마 DVD가 늘어서는 가게에 “일본어 자막 없습니다”의 벽보를 발견했다. 원어라도 괜찮은 손님조차 늘어나고 있는 것인가! 고 놀라자 옆에서 50대 후반의 여성 5명이 “비디오대여점보다 훨씬 싸다”, “그래도 자막 없는데”, “얼굴만 보면 되는데”.

어쩐지 있는 것이 어색해져 매장에 늘어서 있는 얼짱 배우의 사진이 만재한 한국어 학습용 텍스트를 펼치자 한글의 설명보다 먼저 이런 예문이. “나는 당신의 팬입니다”,“악수해도 좋습니까”,“영원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과연... 생각에 잠겼다. 이로서 좋은 것일까? 예전에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불렸던 저  나라는 확실히 훨씬 가까워 졌다. 그러나 불고기를 먹고, 얼짱에 환호하고, 화장품을 사고... 그것뿐? 한편에서는 “혐한류”에 대한 공감은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국가간에 가로놓인 영토문제나 역사문제에서도 이렇다 할 진전은 없다.

한국 연구자인 오구라 기조(小倉 紀藏) 쿄토대학대학원 준교수는 8년전, 한류 붐을 평하며 이렇게 썼다.“유행을 쫓는 군단의 두터운 세력이야말로 한일관계를 좋게 해 나간다”고. 그는 지금 “10년이 지나도 얼짱과 요리뿐 이라는 전개에 다소 낙담하고 있습니다. 더욱 많은 분야에서 한일 관계의 전문가가 육성돼 활약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한편 “이 거리에서, 일본과 한국이 최고인 형태로 만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만났다’는 것은 크다. 앞으로는 양국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소의 마찰에도 흔들리지 않는, 보다 공고하고 깊은 상호이해가 시민 레벨에서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신대사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일본에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사실은 한국으로의 일본문화 침투도 굉장합니다. 한국인은 1주일에 두 세번 정도일본요리를 먹으며 짜짱면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단무지를 함께 먹습니다. 한국에서 1년간 출판되는 간행물의 40%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문학작품입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내 28세의 딸은 그야말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문가입니다”고 덧붙였다.

한글이 넘치고 ‘한류’라고 쓴 ‘간판’이 서있는 거리를, 미소띤 일본인관광객이 간다. 신대사는 “언젠가 드라마와 K-POP에 머물지 않고 문학이나 클래식 음악, 무용 등 보다 다양한 한국문화를 알아 주신다면...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에게 교류를 깊게 해 비로서 참된 상호이해로 도달한다. 이것이 우리들의 다음 10년의 과제입니다”.

2022년의 신오쿠보를, 왕래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졌다.